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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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 웬 떡이야! 9
무쌍이 비죽이 웃었다. 프랑스란 나라는 확실히 재미있는 나라다. 발리사리와 리베라시옹은 근거 없이 정부 방침과 정책을 조롱하고 비난했다. 발리사리는 발리고 리베라시옹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기준은 국익이다. 콜네임이 노출되면 프랑스는 대외 정책과 역외 지배 체제에 막대한 타격을 받는다. 반면에 리베라시옹의 매도는 국익과 상관없다. 국익을 심각히 훼손하지 않는 한 정부는 ‘너는 입이 있으니 말해라. 욕이 배 따고 들어오나.’하는 느긋한 태도를 보인다. 프랑스 언론은 ‘국익을 해치지 않는’이란 명제아래서 무한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셈이다.
한국의 리베라시옹이 가능할까? 남양일보가 근거 없이 정부를 매도하고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기사와 사설을 올릴 수 있을까? 즉각 폐간되고, 담당 기자는 서빙고에 끌려가서 짬뽕 국물 한 사발을 코로 마셔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의 언론이 국익을 위해 대승적인 자세를 보인 적이 있던가? 안타깝지만 정부에 야합한 역사만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나온다. 프랑스와 한국의 다른 점은 정부든 언론이든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다양성의 인정이다. 다양성이 역설적으로 사회통합의 지렛대로 작용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작가 주:여기서 말하는 다양성은 한국 정부가 시행 중인 다문화가 아님.)
“블랙, 지부티에서 휴가를 보내지 않을 거면 크루즈 여행은 어때? 오바뉴의 왕고들이 기분 전환엔 최고라고 하더라.”
폴이 은근히 부추겼다. 크루즈 여행은 비싼 만큼 낭만 여행의 끝판왕이다. 좋은 친구, 최고의 먹거리, 세계 각국의 여행지 방문도 좋지만, 무엇보다 승객이 언제라도 갑판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블랙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돛새치라도 낚아올릴 수 있는 인간이다. 폴은 장기 휴가와 회 두 가지에 필이 꽂혔다.
“당분간 바쁘다. 고향에서 할 일도 있고 엠마 여사(샤트르의 어머니)의 집도 수리해야 해.”
무쌍은 샤트르의 노부모와 쥴리 여사(부리머 중사의 미망인)에게 매달 생활비를 송금하고 있다. 보니파스를 협박하다시피 만든 신탁연금과 재단에서 생활비가 지급되지만, 그냥 있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이번엔 왕창 벌어들인 김에 낡은 집을 리모델링해 줄 작정이다.
“실비와 레아도 많이 컸겠구먼.”
작전이 틀어졌지만, 폴의 입가에 미소가 매달렸다. 육군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 블랙맘바가 레아의 혈전증과 자폐증을 고쳐주었다. 아이를 고쳐주고 탈진해서 늘어진 친구는 죽음의 천사가 아니라 생명의 천사였다. 지금도 진땀을 줄줄 흘리던 블랙맘바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이 따뜻해졌다.
블랙맘바 덕분에 부자가 된 블랙 컬처 회원은 자발적으로 죽은 동료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한다. 전우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도 매달 적은 돈이지만 실비와 레아의 양육비를 보낸다. 외인 용병대의 전우애는 끈끈하다. 더욱이 수십 차례 죽음의 위기를 함께 넘긴 라텔팀의 우정은 형제 이상이었다.
“자네는 할 일이 많아, 리모델링은 내가 처리하지. 물론 비용은 갑부인 자네가 부담해야겠지. 샤트르는 멋진 친구였지만 직업을 잘못 선택했어. 인텔리는 군복이 어울리지 않아.”
“샤트르는 멘토였었지. 경험이 부족한 나 때문에 샤트르가 죽었다. 외로이 고통 속에 죽은 샤트르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부리머도 내가 조금만 침착했으면 죽지 않았다.”
무쌍이 망망한 수평선으로 눈길을 돌렸다. 죽은 동료와 그들의 남은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아내를 부탁하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오버랩되어 울컥하게 된다.
“블랙, 자넨 늘 최선을 다했어. 자네 덕분에 나도 살아서 태양과 바다를 즐기고 있지 않나. 군인의 무덤은 전우의 가슴이다. 우리가 잊지 않는 한 그들은 죽지 않았다.”
“위로해주니 고맙군. 이번에 쌈디와 내 손에 죽은 담발라가 700명이 넘는다. 키담바 마을에서 솥 안에 든 피그미족 잔해를 보는 순간 눈이 돌아갔다. 인간이 인간을 먹는 놈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쏴 죽이고 목구멍에 표창을 쑤셔 박고 채찍으로 무 썰 듯 잘라버렸다. 그 순간엔 녀석들을 살려두면 큰일 날 것 같은 두려움이 들더군.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자식이고 남편이란 생각은 일호도 하지 못했다. 피그미족이 두 번다시 그런 끔찍한 재앙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중 잣대일까?”
무쌍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피그미 아이를 삶은 솥을 둘러싸고 낄낄대던 담발라와 피그미족의 음울한 울음과 끝없이 이어지던 춤이 머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담발라는 키담바 마을의 피그미족 대부분을 살해하고 먹었다. 놈들의 식당 부근에서 발굴한 피그미족 해골만 100개가 넘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그렇지만 피그미족 안내인에게 지급한 총기가 걱정이다. 특정인이 소유한 총기로 인해 계급이 생기면 고유의 공동체 사회가 변질하거나 해체된다. 긴 세월 이어온 피그미족의 정체성이 사라질 위험이 있다.”
“그럴까?”
무쌍의 생각은 달랐다. 피그미 족이라 통칭해서 부르는 에페 족과 음부티 족은 수천 년간 이투리 숲에서 고립된 생활을 해왔다. 그들은 여타의 아프리카 부족과 달리 추장이나 장로 등의 지도자가 없다. 공동 생산 공동 배분 사회이며 남녀 차별도 없다. 어쩌면 개미 군집과 비슷하다. 지도자가 없는 공동체는 외부 공격에 극히 취약하다.
“피그미족의 터전은 이미 외부인에게 유린당하기 시작했다. 내가 방문한 키담바 마을은 300명의 마을 사람 중 230명이 살해되고 잡아먹혔다. 이투리 정글은 더 이상 독립적인 니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총기가 피그미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는 나도 모르고 폴도 모른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가지를 흔든다. 피그미족은 이미 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나는 그들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고, 관여할 자격도 없다. 그들은 어린애가 삶아 먹히는 참혹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고 슬픔을 수용했다. 기가 막혀서 총기를 주었다. 정체된 의식을 뒤흔들어서 분노할 줄 아는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총기를 가진 특정인이 권력을 휘둘러서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고, 일치단결해서 외부 침입에 대항할 수도 있고, 총기를 땅에 파묻어 버리고 여전히 활과 창을 들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 나머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지금 생각하면 주제넘은 행동을 했다는 후회도 살짝 든다.”
무쌍이 독백하듯이 주절거렸다. 늘 그렇다. 인간의 뇌과학자들은 인식과 그 인식에 결합한 감정을 관리하는 부분이 다르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물이 펄펄 끓는 주전자가 있다. 뇌는 주전자가 펄펄 끓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한다. 그런데 뜨겁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인식과 감정이 괴리되면 사고를 치게 된다.
“자네는 특이한 존재다. 군인이 천직인 동시에 가장 군인답지 않은 인간이야. 이젠 총을 놓고 분필을 들기로 작정했나? 인류사회학자 블랙맘바가 곧 납시겠구먼.”
“나는 어린 시절에 힘이 없어서 어머니를 잃었다. 힘이 없어 감옥에 갔고,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 나는 힘을 간절히 원했고, 미지의 힘을 손에 넣었다. 인간에게 불을 준 신은 어떻게 사용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로 음식을 익혀 먹든 다른 인간을 태워 죽이든 인간이 결정할 일이다. 피그미족이 총기를 어떻게 처리하든 그들의 선택이고 선택의 결과는 그들의 몫이다. 변덕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변덕은 인간의 특질이니 말이다. 흐흐흐!”
무쌍이 씁쓸히 웃었다. 이투리 정글도 이젠 미지의 땅이 아니다. 숲은 더 이상 피그미족을 지켜주지 못한다. 피그미족은 숲에서 강하지만, 바깥 세계의 인간에게는 피식자에 불과하다. 머지않아 바깥 세상의 미신과 광기와 무지가 그들을 삼킨다. 자신이 제공한 총기가 긍정적인 변화를 촉발시키는 촉매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피그미족이 조잡한 활과 창으로 밀려드는 침입자들을 방어할 수는 없겠지. 살해되고, 흩어져서 다른 종족에게 흡수되기 십상이다. 일부는 다른 종족과 혼혈을 이루어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블랙, 잘했어. RPG도 보내 줄까. 연대 병기창에 불용 무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든.”
폴이 무거운 주제를 농담으로 바꾸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무쌍이 영혼 없이 대화를 마감했다. 정교도와 쿠르드족은 생존 욕구가 치열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탈출을 도와주었다. 키담바와 올롱게에게 총기를 지급한 자신의 행동은 확실히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의 피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에 화가 났다. 동물도 아닌 인간이 약하고 순수하다는 이유로 멸종의 길을 걸어야 한다면 지나치게 불공정하다.
피그미족의 미래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궤를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한 온갖 가설이 있지만, 그 모든 가설의 바탕에 적자생존과 융합이 있다.
생물학적 추정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벌인 생존게임에서 밀렸다. 그들의 니치는 축소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니치 축소는 가속도가 붙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거대한 현생 인류의 유전자 풀에 녹아들었다. 한 줌도 안 되는 피그미족의 유전자 역시 거대한 유전자 바다에 풍덩빠져서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릴 가능성이 높다. 슬퍼할 일도 아니고,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생물의 분화와 융합은 종의 숙명이다. 현생 인류는 그렇게 단일 속, 단일 종이 되었다.
스무 명 남짓한 담발라가 홀로코스트를 피해서 도주했다. 카당카를 둘러싼 이투리 강과 에플루 강의 가장 좁은 곳도 폭이 120m다. 생존자가 악어와 독충, 독사가 우글거리는 늪을 빠져나가기란 난망이다. 카무게의 통제에서 벗어난 괴물의 뱃속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
평소와 달리 왜 추적해서 죽였을까? 인간은 인간이라는 자체만으로 존중받을 당위성이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의미가 부여될 때 인간은 다른 동물과 차별된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담발라를 비난하고 싶지도 않았다. 담발라는 담발라의 삶이 있고, 자신은 자신의 삶이 있다. 악의가 충돌하면 강한 쪽이 살아남는다. 생물의 세계에서 변함없이 수억년 지속되어온 철칙이다. 자신이 약했다면 이투리 정글에 유기물을 보태주었을 것이다. 지부티 해변에서 뜨거운 햇볕을 즐기고 있음은 자신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파라티온의 독성보다 약해서 죽었고, 어머니는 환경을 극복할 만큼 강하지 못했기에 실종되었다. 세상은 강한 자가 생존하고 약한 자는 사라진다. 총기는 피그미족에게 주어진 시험이다.
“죽은 사람에겐 죽은 시간이, 산사람에겐 산 시간이 흘러간다. 어쨌든 쉴 만큼 쉬었으니 산사람의 시간으로 돌아가야지.”
무쌍이 한숨 쉬듯 말했다. 죽은 사람의 추억에 매달리기엔 챙길 산 사람이 너무 많다.
“블랙, 저 금속상자는 뭔가?”
폴이 오셀롯이 들어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유백색 금속 상자는 부대 창고에 보관을 거부하고 호텔에 맡기지도 않았다. 쌈디가 내내 들고 다녔다.
“판도라의 상자다. 자넨 관심 두지 마라.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무쌍이 손을 저었다. 괴물은 괴물끼리 놀아야 한다.
“후와 덥네. 달걀이 익고도 남겠어.”
벨맨이 산책을 끝내고 종려 그늘을 찾아들었다. 폴은 궁금증을 풀 기회를 놓쳐버렸다.
“여자들은?”
“잘 논다.”
벨맨이 턱으로 바다 쪽을 가리켰다. 해변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이 들렸다. 여자들끼리 물속에서 비치볼을 치며 놀고 있다.
“캡틴, 돌려보내지. 자네 계획은 처음부터 틀려먹었어.”
“젠장, 이번에는 블랙의 똘똘이를 꼭 목욕시켜주고 싶었는데……. 쓸만한 것들을 골라오느라 돈깨나 들었단 말이야. 저년들 휴가비 대준 꼴이네. 이게 뭐냐고?”
폴이 투덜거렸다. 고생한 친구의 정신적 피로를 풀어주려고 A급 콜걸을 다섯이나 데려왔지만, 블랙은 사흘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못된 주인을 만난 똘똘이의 불운인데 어쩌겠나. 블랙은 고자야. 신은 공평하거든. 모든 걸 다 주진 않아. 헙!”
히죽거리던 벨맨이 레인에 뛰어드는 올림픽 수영선수처럼 모래밭에 얼굴을 쑤셔 박았다. 패앵- 빈 맥주캔이 그의 상체가 있었던 공간을 통과했다. 퍽- 맥주캔이 조그만 구멍을 남기고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벨맨의 얼굴이 노래졌다.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뻔했다.
“야, 죽을 뻔했잖아.”
벨맨이 쌈디를 노려보았다.
“벨맨, 빈 맥주캔에 맞는다고 죽지 않아. 와키르께 버르장머리 없으면 친구라도 쌈디에게 혼난다.”
“으~ 내가 앓느니 죽는다. 임마, 아무리 가벼워도 맞았으면 난 죽었어. 에너지가 무게에 비례하고 속도에 제곱비례 하는 건 피그미족도 안다.”
“벨맨이 잘못했네. 쌈디가 화내는 이유는 고자가 아니기 때문이야. 블랙은 게이거든.”
폴이 감정을 담아서 이죽거렸다. 여자 다섯에 처바른 5,000프랑이 헛돈이 되었으니 성질이 날만도 했다.
“어이구, 나이 들어서 그러고 싶으냐?”
무쌍이 폴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크르릉- 묵직한 하울링이 해변을 울렸다. 엎드려있던 디노팰리스가 벌떡 일어나서 폴을 노려보았다.
“으헉!”
놀란 폴이 후다닥 물러났다. 개처럼 엎드려있을 때는 몰랐는데 덩치와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식은땀이 등을 쫙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