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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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용병과 인간의 조건6
“아직 붕대가 충분한걸 다행으로 아쇼. 아니면 야자나무 껍질로 압박해야 할 판이오. 당분간 절대 움직이지 마쇼.”
벨맨이 압박 붕대를 매조지고, 항생제를 한 움큼 먹였다.
샤트르가 한탄했다.
“이런 젠장 다 끝난 판에 이게 뭐야. 아차, 블랙맘바는?”
“멀쩡하더군.”
“멀쩡? 블랙 바로 앞에서 터졌단 말이야.”
“보라고 멀쩡하지.”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샤트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얼마나 급하게 돌아갔는지 목이 부러지지 않았나 걱정될 정도였다.
놀란 두 눈이 블랙맘바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재수가 좋았다. 미안하다.”
블랙맘바는 어린 시절의 월송산 폭발 사고가 데자뷰되었다. 당시엔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던가. 이번에도 자신의 부주의가 원인이다.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벨맨이 샤트르를 보고 느물거렸다.
“죽어야 될 놈은 멀쩡하고, 십리나 떨어져 있던 인간이 이게 뭐냐고. 샤트르도 늙었어. 그만 손주나 보러 가쇼.”
“저 돌팔이 자식이…….나 장가도 안 갔다.”
“깔비와 아작시오에 뿌린 정자만 해도 자식이 열 타스는 태어났겠구먼.”
벨맨이 끝까지 깐죽거렸다.
블랙맘바가 샤트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냉정하게 소년병을 사살했으면 샤트르가 부상당할 일이 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경험 부족이다.”
“그렇게 배우는 거다. 지난번에 내가 말한 소년병들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어차피 터질 수류탄이었다. 자책할 필요 없다. 블랙이 다치지 않아서 큰 다행이다.”
샤트르는 쿨하게 블랙맘바를 위로했다.
몇 마디 나누던 샤트르가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쇼크다. 벨맨이 구급낭에서 아트로핀을 꺼내 샤트르의 허벅지에 찔렀다.
“상태가 나쁜가?”
깨비텐이 물었다.
“쇼크입니다. 외상은 크지 않지만 폭압으로 허파가 손상을 입었습니다. 에어 엠블로심이 의심됩니다.”
“에어 머시기? 그게 뭔가?”
“동맥공기색전증(Airterial air embolism)은 잠수시에 발생하는 색전이지만 폭발 시에도 발생합니다. 폭압으로 허파꽈리가 손상을 입기 때문입니다. 혈관에 공기가 차는 거죠. 현재 상태로는 심각하지 않지만 관찰이 필요합니다.”
“블랙맘바는?”
“뒤통수에 생긴 혹이 문제죠. 엄청 아플 겁니다.”
“끄히히! 그것참 아프겠군. 경사 났군.”
깨비텐이 헤픈 웃음을 흘렸다. 농 뿌라브럼이란 말을 본인에게 들었지만 걱정을 놓지 못했다. 블랙맘바가 건재하다는 사실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샤트르가 다쳤다는 사실이 잠깐 잊혀졌다. 블랙맘바의 안위는 그만큼 중대 사안이었다.
“깨비텐, 사체를 묻을 시간이 없습니다.”
“냅둬, 하이에나도 먹고 살아야지.”
깨비텐이 냉정하게 말을 받았다. 찢어지고 흩어진 수십 구의 시체를 찾아서 매장할 시간적 여유도 의사도 없었다. 장비를 챙기기에도 급급했다.
엉망이 된 전장에 블랙맘바가 시가를 물고 나타났다.
멀쩡한 모습이다. 블랙맘바가 나타나자 팀원들을 닦달하던 마이크가 입을 닫았다. 그는 선별해둔 부상자를 끌고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마이크 인생의 걸림돌이 된 블랙맘바다.
블랙맘바는 전장 정리에 합류하지 않았다. 바위 그늘에 앉아 담배 연기만 피워 올렸다. 옴부티가 당연한 듯이 권총을 뽑아들고 주위를 경계했다.
야간임에도 파리떼가 새카맣게 날아와 시체를 덮었다. 얼디 하마르 전투는 단병 접전을 벌여서 피를 뒤집어 썼다. 이번 구라디 전투는 스나이핑만으로 끝장을 냈지만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살상당한 게릴라 삼분지 일은 십대 초 중반의 어린애들이다. 학교에서 또래들과 장난치고 떠들어 댈 나이다. 자폭한 소년병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인간의 행위는 질퍽한 무논에 근거할 수도 있고, 단단한 암반에 근거를 둘 수도 있다. 정작 행위의 근거는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익숙해져 버린다.
“죽여야 한다면 죽여야지!”
블랙맘바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비바람에 떨어지는 작약 꽃잎을 안타까워하던 무쌍, 날개 찢긴 잠자리를 불쌍히 여기던 짚은다리 무쌍은 전장의 블랙맘바로 다시 태어났다.
스승님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은?
씁쓸한 이야기지만 대량 살인이다.
블랙맘바는 시선을 야공에 두고 흰 연기를 계속 피워 올렸다.
부리머가 깨비텐에게 보급품 잔량을 보고했다.
“사살된 적은 57명입니다. 보급품과 노획품은 보고서에 있습니다.”
“57명이라, 얼디 하마르에서 198명을 살상했어. 도대체 얼마나 죽여야 하지. 휴!”
깨비텐이 보고서를 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구조팀인지 이레이저팀인지 헷갈릴 판이다.
픽업 : 3대 양호함
바이크 : 2대 양호함
전투식량 : 개인 휴대 1일분, 공동 보유 5일분
물 : 150리터
박격포 : 1문, M24고폭탄 10발, 조명탄 5발, 연막탄 5발
무반동총 : 84mm칼구스타프M2 1정, FFv441근접신관 고폭탄 20발
미니미, M60 기관총 : 3정 탄약 1800발
대인지뢰 : M74살포지뢰 60세트, 크레모아 10세트
수류탄 : 10발
총류탄 : 20발
드라구노프 : 5정 탄약 2,000발
파무스 : 11정 탄약 1,600발
베레타 : 3정
글록 : 7정
노획품 : AK47 40정 탄약8,000발
데그차레프 경기관총 3정 47발들이 탄창 10개 탄약6,000발
ASG17자동유탄 발사기 1대, 유탄 90발
보고서를 건성으로 읽은 깨비텐이 얼굴을 찡그렸다.
“박격포 고폭탄과 무반동 포탄, 미니미 탄약이 간당간당 하구먼. 파무스 탄약은 거의 끝장났군.”
부리머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파무스는 AK로 대체하면 됩니다.”
“하비브에게 보급을 해줘서 고맙다고 전해 주게. 데그챠레프는 왜 들고 왔나. 내 나이보다 더 늙은 놈이 제대로 발사는 되려나?”
“미니미와 M60탄환이 부족합니다. 급하면 써 먹어야지요.”
“없는 것보단 낫겠지. 오바뉴에 돌아가면 노인네들에게 선물하자고. 나도 실물은 처음 보네. 빌어먹을 AK는 어디나 흔해 빠졌구먼.”
“소총이야 주워 쓰면 되죠.”
“좋아, 팀원들에게 주워 쓰라고 해.”
부리머가 장쒼을 손짓했다. 장쒼이 육중한 고속 유탄 발사기를 끙끙거리며 들고 왔다. 발사기 본체 무게만 31kg다. 왜소한 장쒼이 발사기에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깨비텐의 눈이 잔뜩 커졌다.
“이게 뭐야? ASG17아닌가!”
“그렇습니다. 30mm 유탄을 분당 오십 발을 퍼부을 수 있는 괴물이죠. 30발 클립 형입니다.”
“휘유, 장쒼이 제대로 큰일을 해 주었어. 으이그 요 이쁜 것 같으니라구.”
깨비텐이 장쒼의 볼을 쥐고 흔들었다.
그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ASG17은 소비에트 연방이 자랑하는 소대급 지원화기다. 사거리 1700m에 유효 발사 속도가 분당 오십 발이다. 놈들이 제대로 운용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거지같은 놈들이 쓰기엔 너무 고급 사양 아닌가?”
“글쎄 말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프롤리나트야 거지발싸개지만 북극곰은 무식하게 무기가 많고, 카다피는 무식하게 돈이 많죠.”
결국 카다피가 소련에서 구입해서 프롤리나트에 공급했다는 소리다.
“놈들이 왜 사용하지 않았지?”
“장쒼이 초장에 박격포로 날려 버렸습니다. 블랙맘바의 견제를 받은 놈들이 중화기를 잡을 엄두도 못 낸 거죠.”
깨비텐은 유탄발사기에 엉겨 붙은 피와 살을 쳐다보았다. 공중 폭발탄에 휩쓸린 사수와 부사수는 넝마가 되고, 발사기는 폭압에 날려 갔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 장쒼, 운용에 지장은 없나?”
“흠집이 많이 났지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좋아, 차량에 거치하거나 블랙맘바가 들고 다니면 되겠군. 유탄은 몇 발이나 있나?”
부리머가 마뜩찮은 눈으로 깨비텐을 흘겨보았다.
읽지도 않을 보고서를 왜 작성하라고 시키는지, 계급이 깡패다.
“세 클립, 90발입니다.”
“횡재했군. 고맙기도 하지. 하비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해 주게.”
“그 자식 꼭지를 딴 후에 인사하죠. 재보급은 어떻게 할까요?”
“일단 견뎌 보자고.”
“위, 차량 연료는 놈들의 바이크에서 휘발유를 뽑아서 보총하면 되죠.”
“그러게. 노획한 무기도 예비품만 남기고 매몰시켜. 좌표를 남겨 두고 말이야. 픽업을 한 대 잃었으니 적재할 자리도 부족해.”
깨비텐과 부리머는 상황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낙관할 상태는 아니지만 부족한 탄약은 노획품을 쓰면 된다.
스나이퍼의 탄약 소모량은 일반 전투 보병에 비할 바 아니다. 보병 중대끼리 맞붙었으면 총탄이 수 만발 소모되었을 것이다. 전투 중엔 유실되는 총탄이 실 사격 총탄보다 더 많아진다. 라텔팀의 탄약 효율성은 보병 전투병의 수백 배다. 대량의 탄약이 필요치 않은 이유다.
적의 추격을 염려한 깨비텐은 급속히 현장을 벗어났다.
그날 저녁 전투가 벌어진 구라디(Gouradi)에서 100km 동진한 암주(Amzuo)에 숙영지를 마련했다.
에키야는 70km남짓 남았다.
샤트르는 새벽녘에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는 어깨와 가슴을 두텁게 감은 붕대를 보고 실소를 지었다. 상처에서 오는 둔통을 제외하면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야전 침대에 기대어 잠든 블랙맘바가 보였다. 그가 야전침대 목봉을 손바닥으로 쳤다.
“어이 블랙, 마누라에게 쫓겨났나?”
블랙맘바가 눈을 뜨자 잔소리가 쏟아졌다.
“이봐 블랙, 자넨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사람이야. 팀의 작전 성공 여부를 떠나서 동료들 목숨이 자네 손에 달려 있단 말이야. 누워서 자라구.”
“에구, 크샨디페도 영감만큼 잔소리를 퍼붓진 않았을 거야.”
블랙맘바가 투덜거리며 샤트르의 이마를 짚었다. 이마가 여전히 뜨끈뜨끈했다.
“영감이 문제야. 이마로 에그 스크램블을 만들어도 되겠어. 잔소리 퍼붓는 꼴을 보니까 살만한가 보지. 몸은 어때?”
“휴우, 나도 늙었어. 이까짓 이쑤시개 몇 개 박혔다고 빌빌거리니 말이야.”
샤트르가 한숨을 쉬었다.
“어이구 어련하시겠어. 화장실?”
“썩을, 여자도 아니면서, 냄새나는 사내놈은 취미 없다고.”
샤트르는 블랙맘바의 부축을 뿌리치고 불안정한 걸음으로 막사를 나갔다.
동쪽 하늘이 희붐하니 밝아졌다.
여명을 등지고 나란히 서서 물건을 꺼냈다. 시원스럽게 볼일을 본 샤트르가 블랙맘바의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물건은 괴물이 아니구먼.”
“동양인 치고 나도 크다.”
블랙맘바가 항변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래 봐야 오인치도 안 될 것 같은데.”
블랙맘바가 발끈했다.
“샤트르는 세워 봐야 차이도 없잖아. 한국인은 세우면 두 배로 늘어난다.”
“흥, 보기 전엔 인정 못해. 참고로 난 세우면 십 인치다.”
“헉, 사람이 아니다.”
“남자는 대물 아니겠어.”
샤트르가 어깨에 힘을 주고 거대한 물건을 털털 털었다.
“젠장, 크면 뭘 해. 실속이 있어야지.”
“실속 이야기를 하니 애인이 보고 싶어지네. 그거 애인이 자주하던 소리다.”
짬밥은 공으로 먹는 것이 아니었다. 샤트르는 미안해하는 블랙맘바의 심사를 풀어 주기 위해 흰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움 알 딘, 암르, 아리프 비 알라가 무슨 뜻이지?”
“용케도 기억을 했군. ‘아움 알딘(Yawm al-din)’은 심판의 날이란 뜻이다. 코란에 따르면 그날은 세상이 두루마리처럼 말리고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와 그들의 육신과 재결합 한다고 하지. 그리고 알라의 저울 위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믿어. ‘암르(al-Amr)’는 절대적인 명령을 뜻하고, ‘아리프 비 알라(Arif bi-Allah)’는 신에 의해 계시 받은 자, 즉 선택받은 자로 완벽한 자유를 얻은 자를 뜻한다네. 성스러운 명령에 따라 침략자에게 심판을 내렸으니 자신은 구원 받았다는 의미라고 봐야겠지.”
설명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광신도가 따로 없었다.
“아움 알 딘, 암르, 아리프 비 알라!”
그는 소년병이 외쳤던 기도를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