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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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 웬 떡이야! 11->여기까지 21권
무쌍의 시선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향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배가 점점이 떠 있다.
“저것들 때문이지. 파이프 라인을 통해서 유조선 탱크에 주입되는 석유의 80%는 슈퍼메이저인 엑손모빌(XOM), 로열 더치 셸(RDS), 브리티시페트롤륨(BP), 셰브런(CVX), 코노코필립스(COP), 토탈(TOT) 소유다. 슈퍼메이저가 보유한 지구적인 재력과 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슈퍼 메이저의 영향력이 콘티넨털, 몬산토, 카길 같은 곡물 메이저보다 더 강한가?”
무쌍은 극동 변방의 한구석인 한국에서 태어나서 전장을 전전했다.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기회도 시간도 없었다. 아이스크림 빨다가 이빨 부러질 소리에 폴이 입을 쩍 벌렸다.
“호랑이와 고양이의 차이다. 곡물 메이저를 몽땅 합쳐도 슈퍼메이저의 막내인 토탈 발끝에도 못 미친다. 프랑스는 토탈사 덕분에 산유국 아닌 산유국으로 큰소리를 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가 제일 먼저 인사하러 가는 곳이 라 데팡스(La Défense, 프랑스 파리 근교 업무지구로 토탈 본사 소재지)라는 말이 있다. 토탈이 흔들리면 프랑스가 흔들린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서방 세계의 목줄이다. 인간이든, 나라든 목줄이 졸리면 숨 막혀 죽는 건 마찬가지다.”
“주둔 목적이 지부티의 치안 확보가 아니라 토탈사의 석유 창고 경비원이라는 소리구먼.”
“틀린 말은 아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석유가 쏟아지는 한 이곳을 지켜야 한다. 아메리카합중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로부터 챙기는 반대급부도 짭짤하고 말이야. 소비에트연방이 오래전부터 에덴만의 석유 통로를 장악하려고 소말리아와 예멘을 부추기고 있다. 평안해 보이지만 이곳은 살얼음판이다.”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전쟁터군.”
무쌍의 눈이 무저갱처럼 깊이 가라앉았다. 관안 발동이다. 뇌가 공간을 건너뛰어 직접 사물을 인식했다. 12배 줌을 당긴 듯 손바닥 크기의 선박이 눈앞에 쭉 다가섰다.
거리가 멀어서 작아 보였을 뿐 갑판이 축구장보다 훨씬 넓었다. 배의 상부엔 시설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미에 데크하우스(선원 거주구)가 덩그러니 솟아있고 선수엔 배관만 만수산 드렁칡 얽히듯 얽혀있는 유조선이다. 점점이 떠 있는 이십여척의 배가 전부 비슷한 형태다.
“엄청나군. 흘수선에서 갑판까지 높이만 30m가 넘겠어. 해적선은 기껏해야 전마선이나 나룻배에 엔진을 붙인 통통배 수준 아닌가. 어떻게 유조선을 납치하지?”
해적의 무기는 RPG와 기관총, 소총이 전부다. 대여섯 명이 타는 목선은 유조선이 파도만 일으켜도 뒤집힌다.
“허접해도 무장 해적과 민간인은 차원이 다르다. 놈들은 작은 배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서 시속 50노트로 달린다. 근거리에서 RPG를 한 방 때려서 겁을 준 다음 서너척이 달려들어서 갈고리를 걸고 배에 오른다. 굼뜬 유조선에 달려드는 놈들을 보면 거대한 혹등고래를 공격하는 범고래떼가 따로 없다.
“RPG에 거대한 유조선이 파공되나?”
“유조선은 석유 운반선이지 전함이 아니다. 석유를 많이 운반하려면 가능한 자체 무게를 줄여야 한다. 유조선 선체 외판은 18mm 강판이다. 격벽 강판은 6mm에 불과하다. RPG 한 방이면 뚫린다. 홀수 부분에 연타 당하면 격벽구조도 소용없다. 파공되면 자체 무게로 인해 침몰한다.”
“해상 오염도 심각하겠군.”
“해적은 규칙을 지키지 않기에 해적이다. 해상 오염을 걱정할 거면 해적질을 않겠지. 유조선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화수분이다. 한 척만 납치하면 몇 년은 놀고먹는다. 눈이 뒤집혀서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선주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군.”
“그렇지. 30만 톤 유조선은 2백만 배럴을 선적할 수 있다. 금년도 오펙(OPEC) 기준 유가가 배럴당 31달러다. 유조선 한 척이 6,200만 달러, 프랑으로 환산하면 1억 7천만 프랑의 석유를 적재한 셈이다. 선주는 몸값을 협상할 수밖에 없다.”
“제법 비싼 물건을 지키는 번견이군.”
듣고만 있던 벨맨이 비아냥거렸다.
“흥, 소말리아 해적이 날뛰게 된 배경에는 CIA의 지저분한 공작도 한몫했지. 친 소비에트 바레 정권이 소비에트연방과 우호조약을 폐기하고 친미로 돌아선 이유가 뭘까? 아이디드의 똘마니들이 왜 해적질에 나섰을까? 할 말 없지?”
폴의 반격에 벨맨이 일순 주춤했다. 전함으로 바레 정권을 위협하고 뇌물로 엮은 공작팀에 자신도 있었다. 알면서 약 올리는 폴이 얄미웠다.
“흥, 그러면 아프리카가 새빨갛게 물들어도 내버려두란 말이냐?”
“그렇다고 깡패짓하고 사기를 치냐? CIA 사기꾼보다야 번견이 백배는 낫다.”
“미합중국은 강압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환상에서 깨어난 소말리아는 자발적으로 민주주의를 택했을 뿐이다.”
답변이 궁해진 벨맨이 ‘자비롭게 권유하는 미국론’을 들이밀었다.
“자발적 좋아하네. 물리적인 힘(hard power)으로 위협하고, 슬그머니 정신적인 힘(soft power)을 들이미는 조폭 사기꾼 주제에 말은 비단이구먼.”
“사기꾼이라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무식한 전직 DGSE 도살자보다 못할 건 뭐야.
“깡패 패권주의에 물든 양키!”
“단순무식의 끝판왕 개구리!”
벨맨과 폴의 다툼은 유치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벨맨은 전직 CIA 중동 담당자, 폴은 전직 DGSE 작전부 타격대다. 둘은 툭하면 상대방의 전직을 문제 삼아 티격태격했다. 수컷의 허세이자 우정을 격하게 나누는 방식이다.
“둘 다 여자냐? 좋은 주먹 두고 재미없는 입씨름은 왜 하나? 남자답게 크라브마가와 사바테로 한판 붙어라. 아니면 쌈디와 대타로 욕구불만을 풀어 보든지?”
현직 용병과 현직 무기상이 디노와 노는 쌈디를 흘끗 돌아보았다.
“……”
쌈디가 디노의 꼬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 눈에 팍 박혔다. 디노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앞발을 모래밭에 박고 송곳니까지 박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모래밭에 밭 간 흔적 네 줄기가 남았다. 폴과 벨맨은 눈을 맞추었다.
‘주인이나 하인이나!’
서로의 눈빛이 질려있다. 저런 무지막지한 놈과 대타라니, 죽으라는 소리다. 두 사람은 입을 딱 닫았다.
따르르- 폴의 비상 무전기가 울렸다. 미군이 1968년 실전 배치한 배낭형 AN/PRC 77 무전기는 나토군도 중대 단위의 표준 무전기로 사용한다. 폴이 송수화기를 들었다.
“뭐야?”
-위, 본부 중대 통신병 도데입니다. 아클란 크루 옴부티라는 분이 캡틴을 찾습니다.
“엉! 옴부티 영감이 나를 왜 찾지?”
-현재 특별군사고문님과 연락이 닿는지 묻습니다.
“엉, 위성 전화기를 쓸 수 있는데 무슨 소리야? 알았다.”
폴이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무쌍을 돌아보았다.
“어이 블랙, 옴부티가 답답해서 내게 연락한 모양이다. 위성 전화기 삶아 먹었나?”
“전화?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옴부티가 왜?”
무쌍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보니파스의 협조를 얻어서 설치한 사마리아 농장과 노바토피아의 위성전화기를 까맣게 잊었다. 건망증은 무쌍의 주특기 중 한 가지다.
무쌍이 백 팩에 처박아 놓은 위성 전화기를 꺼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디케이터가 점멸하고 있다. 무쌍이 송수화기를 들자 쌈디가 잽싸게 안테나를 펼쳤다.
-치이익- 와-킬, 납-네-다. 치익-
통신 감도가 무척 떨어졌다. 블랙맘바는 ‘알로!’가 아닌 ‘납네다’라는 술어에 잠시 뉴런 네트워크 접속의 혼란을 겪었다. 전리층의 난반사로 인해 발생한 치직대는 소음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쫄따구?”
뒤늦게 ‘납네다’라는 억센 함경도 말투를 사용할 인간은 선우현밖에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발생하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다.
-넵, 선우현이디요. 치치치~ 와킬께 보고할 일이 있습네다. 치이이~”
간신히 말을 알아들을 만했다.
“머꼬?”
비치체어에 방만한 자세로 누워있던 무쌍이 벌떡 일어났다. 사마리아 농장은 부두교 폭동을 겪었고, 플랜트 설계학 교수인 미셸 무울소리 박사가 대규모 방적 공장과 팰릿 공장을 짓고 있다. 선우현이 위성 전화기를 통해서 연락할 정도면 사달이 났다.
-치이이~ 석유입네다.”
“석유라꼬? 기름 탱크에 불났나?”
무쌍이 버럭 했다. 농장에는 대형 유류 탱크가 다섯 대나 있다. 난방과 취사는 건조된 목화 나무를 사용하지만, 각종 기계장비와 운송 장비, 발전기 연료는 기름을 사용한다.
-아닙네다. 치이이~ 석유가 나왔시오. 펜데 강에 가까운 집하장에서 석유가 나왔시오. 치이이~
칙칙거리는 잡음에 섞인 억센 함경도 사투리를 간신히 알아들었다. 무쌍은 어리둥절했다. 다짜고짜 석유가 나왔다는 말이 이해 불가능이다. 석유는 대충 땅 파면 솟는 지하수가 아니다. 무식한 선우현과 대화해봐야 오리무중이다.
“무울소리 박사 바꿔.”
-알았시오.
찍찍거리는 소음이 예민한 귀를 괴롭혔지만, 무쌍은 청각을 차단하지 못했다. 한국은 에너지 자원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나라다. 석유, 가스, 우라늄은커녕 석탄도 없다. 연탄이나 만드는 비산업용 무연탄이 조금 매장되어있을 뿐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석유와 가스에 한이 맺혔다. 무쌍은 가슴이 뛰었다.
-와킬, 무울소리입니다.
“무울소리 박사님 오랜만이요. 석유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요.”
무쌍은 의례적인 인사를 생략하고 대뜸 물었다. 그만큼 마음이 급했다.
-터-졌-습-니-다. 석유- 터-졌-어-요.
통신 상태가 엉망이 되었다. 뭔가 터졌다는 말 같은데 칙칙 소리와 단락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쌍은 서쪽으로 살짝 기운 태양을 노려보았다.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이 트러블을 일으킨 주범이다.
오전에 13연대 본부에서 강력한 태양 흑점 폭발 때문에 통신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흑점 폭발이 무슨 상관이랴 했는데 상관이 있다.
대기권 밖은 태양풍이 자기폭풍을 일으키고 자외선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출력이 낮은 무전기와 단파 통신은 자기폭풍에 크게 간섭받는다. 전리층을 이용하는 위성통신도 당연히 상태가 나빠진다.
“뭘 알아들을 수 있어야 면장을 하지.”
무쌍이 신경질을 냈다. 주어는 석유고, 술어는 터졌다인데 도대체 주어와 술어가 매칭되지 않았다.
“블랙, 락 아살(Lac Assal)로 가자. 이곳에서 42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만 지나면 호수가 보인다.”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폴이 서둘렀다.
“교수님, 한 시간 후에 통화합시다.”
무쌍은 이유를 묻지 않고 위성전화기를 정리해서 지프에 올랐다. 폴이 가자고 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짠 소금호수, 락 아살은 어차피 관광 목록에 들어있다.
지프 두 대가 푸석거리는 검은 대지를 맹렬히 치달렸다. 황갈색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거대한 짐승이 지프와 같은 속도로 달렸다. 지프에 타려다 쌈디에게 한 대 맞고 쫓겨난 불쌍한 디노다.
보폭이 무려 20m에 달하는 디노가 시속 70~90km로 달리는 지프를 여유 있게 뒤따랐다. 괴물이 블랙맘바의 똘마니가 되면서 괴수로 변신했다.
폴의 장담대로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하얗게 빛나는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염도가 35%에 이르는 락 아살이다. 수평선이 보이는 호숫물이나 호숫가에 켜켜이 쌓인 소금이나 전부 하얗게 빛났다.
“원더풀! 소금 거품이 둥둥 떠다니네.”
벨맨이 거품이 떠도는 짜디짠 호수에 열광했다. 검은 용암 대지와 하얀 소금 대지가 묘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사실 지부티에서 볼만한 구경거리는 락 아살이 전부다.
“에휴, 싫다 싫어. 더위라면 진절머리난다.”
쌈디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부티 해변은 바람이 불어서 시원했지만, 소금호수는 숨이 턱 막힐 만큼 열기가 덮쳤다. 더위라면 이투리 대삼림에서 지겹도록 겪었다. 이곳은 더했다. 소금 한증탕을 방불케 하는 46℃를 오르내리는 열기에 진저리가 났다. 호수 변이 이처럼 더운곳은 락 아살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게 뭐야? 이걸 보자고 숏빠져라 달려온 거야?”
쌈디가 투덜거렸다. 락 아살은 쓸모없는 황무지 한가운데 만들어진 쓸모없는 호수에 불과했다. 마시지도 못하고 수영도 못하는 호수, 소금밭에 반사된 햇빛에 눈이 아리고, 바람에 날려온 소금 알갱이가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몹쓸 호수다.
‘위대한 자연의 앙상블을 이해 못 하는 닭대가리!’
벨맨이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블랙, 위성통신 재개해봐.”
“알았다.”
무쌍이 단축버튼을 눌렀다. 마지막 통화번호로 자동 연결되었다.
“교수님, 잘 들립니까?”
– 한결 잘 들립니다.
통신 품질이 좋아지기는 무쌍도 마찬가지다. 폴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폴이 비시시 웃었다. 락 아살 일대는 원인을 알 수 없지만, 태양풍이 덮쳐도 통신 품질이 유지된다. 야전 훈련 중에 알게 된 사실을 이번에 제대로 써먹었다.
–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쪽을 먼저 보고할까요?
“한꺼번에 말하시오.”
– 석유가 솟는 바람에 공장 건설이 중단되었습니다.
“분명히 석유가 나왔단 말이지요.”
무쌍이 재차 다짐했다.
-확실합니다. 위치는 R-28 지역입니다. 지난번에 와킬이 알 수 없는 지형이라고 말했던 지역 말입니다.”
“잡초도 없이 푸석한 흙이 드러난 지름 5m에서 10m짜리 써클 수십 개가 있던 땅 말이지요?”
-맞습니다. 목화를 심을 수 없어서 버려진 땅이지요. 그곳에 방추타워를 세우려고 굴착하는 중에 석유가 분출했습니다.
“웬 떡이야!”
무쌍이 버럭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