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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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 웬 떡이야! 13
손바닥만 한 목선에 고성능 엔진을 붙여서 아덴만을 질주하는 소말리아 해적의 모습이 그려졌다. 예전에는 가젤이 출격해서 기관포 몇 발만 갈겨주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바다가 좋은 점은 사후 처리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좋은 시절은 각종 인권단체가 끼어들면서 급속히 나빠졌다. 포격이 금지되고, 현행범이 아닌 한 사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 골칫거리로 바뀌었다.
격침은 물 건너가고, 해적이 선박에 줄 사다리를 걸고 오를 즈음에야 발포 허가가 떨어졌다. 결국, 헬기로 밀어내거나 고속 보트를 타고 추격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 와중에 총격전이 벌어지면 부하들이 사상당하기도 한다. 이 무슨 개 같은 일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흔히 윤리, 정의, 옳음을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해적은 타인의 인권과 재산을 도외시하는 약탈자다. 그들에게 납치된 인질은 몸값을 치를 때까지 쇠사슬에 묶여서 헛간에 처박힌다. 유조선을 강타당한 회사는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본다. 인권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강도와 도둑의 인권도 지켜줘야 하는가?
– 아닙니다.
대답은 송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자신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해적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현 상황과 오버랩되었다.
“니미 조또, 그럼 뭐야?”
폴이 버럭 했다. 점심시간에 내기 당구를 쳐 본 사람은 안다. 스리쿠션 마감 찬스에 상대방 수구가 갠세이 포지션에 있으면 열이 뻗친다. 특히 마누라나 회사에서 연락 오면 기분 잡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제대로 한 잔 빨려는 찬스를 방해받은 폴의 심정도 다르지 않았다.
-복귀 이유는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망할, 잠깐 기다려라.”
폴이 무쌍을 돌아보았다. 계급이 깡패다. 대장이 까라면 까야 한다.
“복귀하라는데 어쩌지?”
무쌍이 손을 내밀었다. 폴이 비시시 웃으며 송수화기를 건네주었다. 호가호위다. 계급이 깡패면 더 힘센 깡패를 부르면 된다.
“식별부호?”
“342-563!”
무쌍이 식별 번호를 누르고 특별군사고문의 고유번호를 눌렀다. 식별번호는 군령을 받는 부대, 고유번호는 군령을 발동할 수 있는 자에 부여된 비밀번호다. 지부티 주둔 레종 에뜨랑제 13연대는 대통령, 국방장관, 11공정 여단장, 특별군사고문이 군령을 발동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종 에뜨랑제 사령관 디망쉬 중장은 군령권이 없다.
다마스쿠스 프랑스 대사관의 아 샤끄 쥬흐 쉬피 싸 페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사건은 DGSE와 국방부 고위층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블랙맘바의 심기를 건드린 멍청한 사코 리베리 상사와 위병들은 하마터면 이승을 하직할 뻔했다.
세계 어느 나라든 꼴통 없는 군대는 없다. 군대라는 집단의 속성이 꼴통을 양산한다. 꼴통을 들어내면 다시 꽅통이 생긴다. 멀쩡한 놈이 하루아침에 꼴통으로 변신하는 곳이 군대다.
상부에서 훈령을 백번 하달해도 단위 부대의 진상을 막을 방법은 없다. 고민하던 DGSE는 식별부호와 고유번호 체계를 만들어서 지휘관과 곧바로 연결되는 백도어 통신 시스템을 만들었다.
-알로! 쎄 코로넬 뱅샹.(안녕하십니까! 연대장 뱅샹입니다.)”
콧소리를 섞은 느끼한 음성이 공간을 건너뛰어 고막을 두드렸다.
‘이 인간은 종일 버터만 먹었나?’
프랑스 군인은 꽁, 뱅, 숑하는 콧소리 발음 때문에 말빨로 적을 압도하기는 틀렸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군사고문이다. 장 폴 대위는 본관과 함께 있다.”
-넵, 알고 있습니다. 그게 말입니다. 저어…….
뱅샹 대령이 우물쭈물했다.
“대령, 폴 대위는 나를 서포트 중이다. 폴 대위를 호출함은 누군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의사의 표현이겠지? VIP가 내려왔나?”
-넵, 보니파스 총국장님이 도착했습니다.
무쌍이 정곡을 찌르자 뱅샹 대령은 잘되었다는 듯이 재깍 털어놓았다.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보니파스의 다그침을 받은 뱅샹은 엔간히 속썩었을 것이다. 세상살이는 어디나 비슷하다. 고래가 싸우면 새우는 등 터지기 마련이다.
“지부티 해변의 낙조가 좋다는군. 낙조를 보고 들어가겠다. 총국장에게 전해라. 나는 락 아살 호수에 있다. 정히 바쁘면 소금호수로 찾아오라고 해. 아니면 술 한 병 들고 내 숙소로 오라고 해.”
– 특별고문님, 그 그~
철커덕- 무쌍이 매정하게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답답은 놈이 우물을 파게 되어있다. 힘없는 사람에게 갑질하는 놈은 찌질하지만, 힘 있고 잘 난 놈은 더러 갑질을 당해도 된다. 석유가 쏟아지는 판에 그까짓 수당은 푼돈이다. 보니파스가 투덜대면 불우이웃이나 도우라고 통 큰 기부를 할 참이다.
“니미 조또, 불알 단 놈은 잘나고 볼 일이여.”
폴이 투덜거렸다. DGSE 총국장은 실세 중의 실세다. 파리에서 지부티까지 날아온 보니파스에게 기다리든지 찾아오든지 알아서 하라고 말할 인간은 블랙맘바밖에 없다. 수상도 그렇게 갑질은 못한다.
“후와! 애송이가 엄청나게 컸구먼.”
벨맨이 한숨을 쉬었다. 아메리카로 말하면 CIA 국장을 오라 가라 하는 인간이다. 백악관 주인이나 가능한 포스다.
‘젠장, 써펀드가 왜 왔지? 설마?’
무쌍은 기분이 찜찜해졌다. 보니파스가 파리에서 지부티까지 자신을 만나러 올 일은 의뢰밖에 없다. 총국장 보니파스는 해외 영토와 정보를 책임진 요인이다. 작전부장 보니파스와는 무게가 다르다.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이 인간이 뽕빨을 뽑을 참인가!’
무쌍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이봐 블랙, 하늘에서 꽃 비가 쏟아지는 마당에 웬 겨자 씹은 얼굴이야?”
“아, 별것 아니다. 장쒼은 지금 어디 있나?”
무쌍이 벨맨에게 물었다. 노바토피아 포병을 양성하려면 장쒼만 한 인재가 없다.
“그 자식은 고향인 안휘성으로 돌아갔다. 홍콩의 협객 반점은 휴업이다. 호우잉의 수술은 핑계인 것 같아. 장기 이식 수술을 하려면 홍콩이 백번 낫다. 일부러 의술이 낙후된 중국 본토로 들어갈 이유가 없거든. 녀석이 폴에게 거짓말 한 것 같아.”
“그러게 말이다. 도너만 준비되면 싸무에서 수술을 받아도 돼. 그 정도는 내가 주선해 줄 수 있거든.”
폴의 부언에 무쌍의 얼굴에 그늘이 덮였다.
“곤란하게 됐네. 장쒼은 빚지고는 못사는 놈이다. 자신을 소설 속의 협사로 착각하는 놈이지. 틀림없이 호우잉을 자동차로 박은 당 간부 아들놈을 죽이러 갔다.”
무쌍의 말에 벨맨과 폴의 눈이 둥그레졌다.
“뭐야, 그 자식이 외인부대 물을 먹더니 간이 부었구먼. 중국은 공산국가라 공안과 군인의 감시가 심한데 어쩌려고 그러지. 망할 놈,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못하나?”
폴이 펄쩍 뛰었다.
“장쒼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신의 복수에 친구를 끌어들일 놈이 아니야. 벨맨, 상황을 알아볼 수 있나?”
“글쎄, CIA도 외곽의 자치구나 홍콩 대만에 인접한 성은 몰라도 내륙 휴민트 활동은 힘들다. 공산주의 특유의 야비한 감시 시스템과 고발 시스템이 촘촘하게 짜여있거든. 외국인은 일단 적성분자로 분류되고, 현지인은 신뢰할 수 없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거든.”
“에휴, 이투리에서 짱께놈들과 엮이더라니. 멍청한 놈!”
무쌍이 한숨을 쉬었다. 조만간에 짱께놈들과 엮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중국은 공식적인 인구 12억, 비공식 인구 15억이라는 끔찍한 나라다.
“너무 걱정마. 그놈은 질기기가 악어 힘줄이라는 쉰덕 종자다. 프롤리나트에 쫓기는 와중에도 게릴라들의 권총, 단도, 부적, 장신구를 챙겨서 은퇴촌 선배들에게 경매로 넘긴 놈이야. 본인이 손해날 짓을 할 놈이 아니다.”
“하긴 그 녀석은 쉰덕 중에도 유난히 인색한 놈이지. 돈이 되면 블랙 빼고는 다 팔아먹을 놈이야.”
폴이 낄낄 웃었다. 폴과 벨맨이 위로했지만, 무쌍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장쒼의 행방은 갑자기 왜 찾나?”
“노바토피아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자체적인 군대를 양성해야 할 시점이다. 가능하면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유전 때문에 바빠지게 생겼다.”
“하긴 폭탄마가 포병 교관으론 최고지. 나도 사표 낼까? 밥만 먹여줘.”
폴이 눈을 번쩍였다. 용병 생활도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다. 날마다 짠내 나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적 뒤꽁무니를 쫓는 스토커 노릇도 질렸다.
“안돼. 자넨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야. 때가 되면 용병들을 몽땅 끌고 가야 해. 나도 노바토피아로 가고 싶지만, 정보를 제공하려고 죽음을 파는 놈이란 비난을 감수하고 있단 말이다.”
벨멘이 폴을 말렸다.
“잠깐, 랭글리에서 해외 공작을 담당하는 수장이 누구지?”
“공작부장 아담이다. 딱 한 번 보았는데 본명은 몰라. 50대 초반의 백인으로 중키에 대머리다.”
“첩보 위성과 정찰기를 총괄하는 오피서(공작담당관)는 누군가?”
“보직 이동이 없었으면 마틸다 반장이다. 30대 중반의 백인 여자라는데 얼굴을 본 적은 없다. 그녀에 대해서는 늘씬한 미모와 가랑이를 잘 벌린다는 소문 외엔 아는 바 없다. 추가 정보가 필요하나?”
“됐네. 암호명만 알면 된다.”
벨맨은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도울 인간이다. DGSE 정보부를 통하면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구태여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그들은 왜 찾나?”
“조만간 부딪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벨맨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도 스파이 밥을 10년이나 먹었다. CIA와 DIA가 벌이는 무리한 공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블랙맘바는 프랑스가 숨겨둔 최고의 한 수다. 아메리카와 프랑스는 유일하게 해외 영토를 운영하는 나라고, 국제 분쟁에 기꺼이 무력을 투입하는 국가다. 언젠가는 양측이 부딪히게 되어있다.
프랑스와 아메리카를 저울에 올리면 아메리카로 기울지만, 블랙과 아메리카를 저울에 올리면 블랙 쪽으로 확 기운다. 블랙은 친구이자 보스고 생명의 은인이다. 폴이 벨맨의 어깨를 퍽 쳤다.
“쓸데없는 고민 말어. 우리는 블랙 컬쳐다.”
벨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마디에 찝찝함이 휙 날아갔다.
“고 고! 술 빨러 가자.”
지프 두 대가 소금 입자를 튕기며 호텔로 향했다.
팰리스 켐핀스키 호텔 7층 스위트 룸 창가에 건장한 남자의 실루엣이 비쳤다. 샤워를 끝내고 와인잔을 든 무쌍이다. 바로 옆에 호텔 못지않은 13연대 휴양소가 있지만, 땀내나는 수컷과 비비적거리기 싫어서 호텔에 투숙했다. 어차피 계산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편안한 휴식은 자신의 몫이고 계산은 DGSE 몫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죽도록 일해서 세금 내는 인간과 세금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내 돈 들이지 않고 인생을 향유하는 것만큼 꿀 빠는 인생이 없다. 권력을 맛본 인간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유다.
밤새 퍼마실 듯이 굴던 폴과 벨맨은 씨아까렐로 석 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돌아갔다. 써펀드가 곧 도착한다는 통신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울퉁불퉁한 인생을 굽이굽이 살아본 40대다. 써펀드와 블랙맘바의 만남에 꼽사리 끼어봐야 좋은 꼴을 못 본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무쌍은 베란다 창턱에 걸터앉아 시커먼 해협을 내려다보았다. [밥은 먹었어?] – [바람 참 좋다] – [많이 힘들었구나] – [말 안 해도 알아] – [커피 한 잔 어때?] – [힘든 일들 모두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라] – [모든 힘든 순간은] – [흘러갈 거예요] -[사랑한다] 이런 글귀가 주르르 지나갈 자세다.
불빛이 휘황한 유조선 30여 척이 눈에 들어왔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드나드는 유조선은 늘 그 정도 숫자를 유지한다. 매일 3천~5천만 배럴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해협을 빠져나간다.
전 세계 산유국은 86개국이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들어있지 않다. 석유가 주력 에너지 및 기초 산업재료로 등장한 20세기부터 국제 분쟁의 절반은 석유로 인해 발생했다. 악마의 검은 눈물이란 이름을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블랙맘바라는 별칭만큼이나 어울리는 별칭이다.
“내가 한국인이니 한국도 산유국이 된 건가!”
무쌍이 씨아까렐로를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석유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다. 권력이고 힘이다. 백부에게 네다바이당한 몇 마지기 농토에 분노하던 짚은다리 촌놈이 어쩌다 보니 거대한 땅덩어리를 얻고 석유까지 손에 들어왔다. 신데렐라, 아니 어둠속의 에드몽 당떼스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에드몽 당떼스의 원수 1호는 페르낭 몬데고, 2호는 당글라르, 3호는 제라르 드 빌포르다.
자신의 원수는? 은원록(恩怨錄)에 들어있다. 백 팩에서 스프링으로 제책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조악한 품질의 수첩은 표지가 헐어 바스러지고 속지가 누렇게 바래었다. 어린 시절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은원록이라 이름 붙였을까.
[은혜는 열 배로, 복수도 백배로] 이제는 보푸라기가 일어 잘 보이지는 않는 문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복수가 은혜 갚음의 열 배다. 속이 좁은데다 공평하지도 못했다. 첫 장을 들추었다.제일 앞에 쓰인 ‘엄마’라는 단어가 눈을 가득 채웠다. 그 뒤에 나열된 15명의 이름 중에 가위표 없이 살아있는 이름은 장필녀, 박인보, 박화자, 김달수, 장치수, 이강철이다. 가위표 쳐진 이름은 그의 기억에서도 지워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