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64
x 464
제43장 웬 떡이야! 15
뱅샹은 속이 탔지만, 보니파스는 썩어 문드러졌다. DGSE 총국장에게 반갑지는 않지만 만나 주겠다고 말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빌어먹을, 어쩐다지!’
보니파스의 고민이 깊어졌다. DGSE는 국제무대에서 깡패로 통한다. 전통적으로 시긴트(SIGINT)보다는 휴민트에 주력하고, 즉각적이고 폭력적인 성향 때문이다. 프랑스는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음지의 정보기관이 자존심 운운하면 조직이 폭망할 뿐만 아니라 국가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솔직함, 우직함, 마초적 기질이 DGSE의 유전자에 들어있다.
보니파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속이 썩어 문드러진 이유는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애써서 구축한 좋은 관계가 망가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보니파스의 가슴을 옥죄었다.
나쇼널 트레조르 블랙맘바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파괴공작의 지존, 에이전트의 한계를 뛰어넘은 컨설턴트, 최악의 아사신이 블랙맘바다. 한마디로 휴민트의 최고봉이자 마초적 성향의 DGSE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초특급 컨설턴트다.
프랑스는 블랙맘바의 세 차례 공작을 통해서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세 번의 공작이지만, DGSE 작전 단위로는 32번의 공작이다. 거액의 수당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이유다. 정보 활동의 처음과 끝은 결국 인간이다. 시긴트가 아무리 발전해도 휴민트 없이는 의미 없는 신호에 불과하다.
양키가 번번이 블랙맘바에게 물먹고도 눈치를 못 채는 이유는 시긴트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계가 상식을 벗어난 존재를 분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소비에트연방, 아메리카합중국, 영국 등의 시긴트 강국과 경쟁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블랙맘바다.
정보 수장으로서 판단할 때 블랙맘바는 코르시카를 주고서라도 무조건 잡아야 하는 치트키다. 문제는 그가 삐쳤다는 점이고, 돌아앉은 원인이 전적으로 프랑스 정부 측에 있다는 사실이다.
마가 끼었는지 블랙맘바가 작전을 벌일 때마다 DGSE는 삽질했다. 틀린 정보를 제공하고, 안내인을 잘못 붙이고, 부실한 백데이터를 주고……. 그럼에도 블랙맘바는 작전 활동에 큰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그만큼 상식 밖의 존재라는 소리다. DGSE 측의 거듭된 실수나 능력부족을 별로 탓하지도 않았다. 무신경한 부분도 있고 강자의 여유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마가 끼어도 크게 끼었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국방부와 DGSE 최고위급이 앞장서서 콜네임의 공작을 까발렸다. 뒤통수를 맞은 블랙맘바에게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촉이 너무 좋아도 탈이다. 정작 당사자인 무쌍은 친구들과 유전 발견 축배를 들고, 뜻하지 않은 능력치 상승에 어리둥절해 있는 참이다. 처음부터 삐치고 말고 한 적도 없다. 보니파스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고민을 사서 하는 셈이다.
딱딱딱- 딱딱딱- 뼈만 남은 손가락이 30분째 테이블을 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불안할 때 나타나는 보니파스의 버릇이다. 본인은 의식 못 하지만, 단속적인 소음을 계속 들어야 하는 사람은 고역이다.
‘으으, 저놈의 손가락을 확~’
뱅샹 대령이 가자미눈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노려보았다.
“뱅샹, VIP 파트너가 마음 상했을 때 기분을 풀어줄 뾰족한 수가 없을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답답해서 묻는 말이다.
‘써펀드가 특별군사고문에게 약점을 잡혀도 단단히 잡혔구먼.’
짬밥 30년이면 포크로 참호를 판다. 눈치를 긁은 뱅샹은 말을 아꼈다.
“글쎄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세익스피어가 말하기를 여자가 삐치면 선물을 먼저 안긴 다음 끝까지 거짓말하고, 남자가 삐치면 진실을 말하고 선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뱅샹은 세익스피어를 끌어들이고 자신은 슬쩍 빠져나갔다. 고래 싸움에 끼어들어서 데미지를 입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남녀 차별적인 발언 아닌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성 역할의 차이가 아니라 기질의 차이입니다. 여자는 진실보다 자신의 기분을 중시합니다. 백 마디 설명보다 한마디 공감해주면 됩니다. 남자는 어설픈 변명을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보니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뱅샹의 말은 백번 옳다. 발자크도 여자는 감성으로 접근하고 남자는 진심으로 접근하라고 했다. 블랙맘바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비결도 대의에 따라 진심으로 대한 덕분이다. 자부심이 머리꼭대기에 붙은 인간은 협잡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 이왕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낫지.’
보니파스가 벌떡 일어나서 프록코트를 걸쳤다.
“뱅샹, 지성을 가진 야수에겐 선물을 먼저 주고 매를 맞아야 한다네.”
뱅샹은 보니파스의 차림에 숨이 막혔다. 지부티는 일몰 후에도 기온이 30℃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총국장은 흰색 모슬린 셔츠와 캐시미어 조끼, 칼날처럼 날 선 바지에 프록코트까지 걸쳤다.
저렇게 차려입으면 온몸이 땀띠로 도배된다. 한마디 하려던 뱅샹이 입을 닫았다. 실제로 파충류의 찬 피가 흐르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요즘 같은 세상에 프록코트를 입는 인간이다. 충고가 먹힐 인간이 아니다.
“총국장님의 고민이 지부티 하늘처럼 쨍하니 밝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뱅샹이 보니파스의 뒤통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숙변이 빠져나갔다. 지부티 13연대에 배속받은 3년 동안 오늘처럼 곤욕스러운 날이 없었다.
띠이이- 인터폰이 울렸다. 쌈디가 잽싸게 송수화기를 들었다.
-손님, 삐지너(수영장, DGSE 별칭)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몇 명이냐?”
-한 분입니다.
데스크의 전언에 쌈디가 쳐다보자 무쌍이 머리를 끄덕였다.
“올려보내!”
쌈디가 한 마디 툭 던지고 인터폰을 훅에 걸었다. 뜨악해진 무쌍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고개를 끄덕인 동작은 로비에 내려간다는 뜻인데 쌈디는 불러올리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옴부티와 쌈디의 행태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챙기는 여자와 비슷하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헛!”
룸에 들어서던 보니파스가 주춤 물러섰다. 양탄자에 너부죽이 엎드려있는 거대한 생물체와 눈이 마주쳤다. 호텔 방에서 눈이 시퍼렇게 번득이는 맹수와 맞닥뜨리고도 놀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사자, 호랑이, 표범, 재규어, 기억에 저장된 맹수들이 줄줄이 지나갔지만 매치되는 동물이 없다.
“저놈은 강아지여. 와킬의 애완견이니까 걱정 말더라고.”
문을 열어준 쌈디가 히죽거렸다.
“어헉!”
보니파스가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자신보다 머리 세 개가 더 큰 시커먼 거인이 소리 없이 나타나서 허연 이빨을 드러내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이 녀석이 블랙맘바의 경호원이라는 쌈디 상사구먼.’
보니파스가 매 눈으로 쌈디를 훑어보았다. 숨이 턱 막히는 거구와 그에 어울리는 포스가 줄줄이 뿜어나왔다. 과연 블랙맘바의 경호원이다.
보니파스가 방안을 잽싸게 훑어보았다. 듣도보도 못한 거대한 맹수, 회색곰도 때려잡을 시커먼 거인, 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다행히 한쪽 구석에 유백색 금속 상자가 놓여있을 뿐 또 다른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창틀에 올라앉아 있던 무쌍이 번쩍하고 보니파스의 면전에 나타났다.
“총국장 취임을 축하한다.”
무쌍이 내민 손을 보니파스가 꼭 잡았다. 늙은 남자가 나이 어린 애인을 챙기듯이 애틋함이 넘쳤다.
“축하해줘서 고맙네. 임명장에 사인한 사람은 미테랑이지만, 실질적인 임명자는 블랙맘바라고 해야겠지.”
“별 시답잖은 소리. 나는 일개 현장맨일 뿐이다.”
“자네가 일개 현장맨이면 나는 관음증 환자다.”
보니파스나 무쌍이나 진급 따위에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덕담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무쌍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DGSE가 스파이 집단이니 관음증 환자가 틀린 말은 아니다. 격식이나 형식에 천착하지 않는 총국장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도 화려하게 해 치웠더군. 수고 많았다.”
“수고는 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시니컬한 대답에 보니파스는 뒷골이 땡겼다. 제대로 계산하라는 협박으로 들렸다. 갑의 생각 없는 한 마디에도 상처받는 을의 비애다.
엉덩이 무거운 대통령이 친필 편지로 감사를 대신했네. 초청장도 들어있네. 파리로 복귀하면 이번엔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네.”
보니파스가 파란 봉투를 서류가방에서 꺼내서 건넸다. 번쩍이는 금색 테두리와 화려한 봉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블랙맘바가 봉투를 받아서 손가락으로 탁 튕겼다.
쒝- 거실을 가로질러서 날아간 봉투가 마호가니 책상에 탁 박혔다. 놀랄만한 적엽비화의 한 수지만, 지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성이 된 보니파스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시간 날 때 읽어보지.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프랑스의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미테랑과 친분이 깊었음. 미테랑과 자주 만나는 바람에 연인으로 소문났다.)가 아니다. 초청은 사양한다. 달콤한 작가를 만나기도 바쁜 대통령께서 피비린내 나는 콜네임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보니파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문화 대통령을 표방하며 좌측으로 쏠린 미테랑을 은근히 비난한 말이다. 눈앞의 인간은 프랑스 대통령의 초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인간이다. 감사편지 따위에 감격할 인간이 아니다.
“그럼 제대로 된 선물을 받게.”
“선물? 수당이 아니고?”
뜬금없는 소리에 무쌍이 보니파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인간은 이유 없이 선물 운운할 인간이 아니다.
“그냥 선물이다. 현재 자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가?”
“허, 통 크게 나오시는군. 필요한 거야 많지. 지질음파측정기, 로드 세트(시추에 필요한 도관 세트), 터빈 시추기, 나호로이머~”
“잠깐, 자네 혹시?”
“그 혹시가 맞아. 도바의 사마리아 농장에서 유징(油徵)이 발견되었다.”
무쌍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어차피 유전을 개발하려면 보니파스의 도움이 필요하다. 보니파스는 도움이 될 인간이지 손해날 인간이 아니다. 보니파스의 눈이 커졌다.
“허, 알라의 총애는 블랙맘바, 아니 동방불패에 몽땅 쏟아지는군. 그 문제는 복잡하니 나중에 집중적으로 이야기하세. 또 필요한 게 있을 텐데.”
“전기가 필요하다. 노바토피아 공사 현장마다 이동식 발전기를 돌리고 있지만, 턱도 없다고 하더군.”
“바로 그거야.”
보니파스가 손가락을 부딪쳐서 딱 소리를 냈다.
“800MWp급 중유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주겠네. 그 정도 용량이면 백만 명 대도시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다.”
“공짜로?”
무쌍이 뜨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발전소는 말 한마디에 주고받을 선물이 아니다.
“당연하지. 노바토피아 건국 선물일세.”
“이상해. 내가 아는 총국장은 이렇게 통이 크지 않은데……”
무쌍이 고개를 외로 꼬았다.
“이거 왜 이래! 내가 머리는 작아도 간은 크다고. 건국 선물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이미 대통령의 재가도 받았네.”
보니파스가 펄쩍 뛰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총국장 고맙다. 당신은 6월에 찾아온 산타다.”
무쌍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노바토피아 인프라 구성의 첫 단추다. 전력이 공급되면 난민들의 생활 수준도 몇 단계 높일 수 있다. 대용량 발전소는 돈이 있다고 뚝딱 건설할 수 있는 인프라가 아니다. 프랑스 정부가 선심을 팍팍 쓰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준다는데 사양하면 도리가 아니다. 유전이 개발되자 화력발전소가 굴러들어왔다. 큰 손이 있어 아귀를 딱딱 맞춰주는 기분이다.
“흠 흠! 자네가 좋아하니 나도 기쁘군.”
보니파스는 쾌재를 불렀다. 블랙맘바와 손을 잡은 이래 이번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이로써 자신이 지중해를 건너서 직접 찾아온 목적의 반이 달성되었다.
“와킬, 룸서비스를 신청했다. 나중에 쪼잔하다는 뒷담화를 듣지 않으려면 술 한잔은 대접해야 한다.”
눈치 하면 쌈디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잽싸게 술상을 챙겼다.
“헐, 내가 쌈디에게 배우는구먼. 잘했다.”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자신은 확실히 사교와는 거리가 멀다. 니고시에이터로 나섰다간 밥 빌어먹기에 십상이다.
“저 친구가 삽날로 납치범 수백 명의 목을 날려버린 쌈디 상사인가?”
보니파스가 무쌍의 뒤에 버티고 서있는 쌈디를 쳐다보았다. 실물이 풍기는 위압감이 매키시의 보고서보다 열 배는 강렬했다.
“음, 보안처리는 제대로 했겠지?”
“여부가 있나. 콜네임 수준의 등급을 부여했네.”
“흥, 민영 방송사 르포 기자도 따라다니는 헐벗은 콜네임 말인가?”
무쌍이 코웃음 쳤다. 신랄한 비난에 보니파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가 순식간에 본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내가 총책임자니 내 잘못이라고 해야겠지. 제르맹 장관, 라고스 총국장, 카바에 부장의 모가지가 날아갔다.”
“저런! 아까운 인재들이 옷을 벗다니 안타깝군.”
무쌍이 전혀 안타깝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자네를 귀찮게 한 방송국 여기자도 응분의 처벌을 받을 걸세. 진심으로 사과하네.”
보니파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 금화 소리가 짤랑이면 섭섭함도 눈 녹듯 사라지는 법이지. 큼직한 선물도 받았는데 쪼잔하게 굴 수야 있나. 마음에 담아두지 않겠다.”
무쌍이 짐짓 쿨하게 사과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