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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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설거지는 나도 싫다1
“그 인간은 푸조, 르노, 시트로앵을 두고 뭔 짓이래.”
“그러게, 눈꼴시어서 못 봐주겠다. 천박한 싸구려 일본 차가 국내 시장을 말아먹는 판국에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러고 싶을까.”
보니파스가 맞장구쳤다. 마르주리 회장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으면 뒷목을 움켜쥐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원유 수입국인 일본은 토탈의 중요한 고객이다. 닛산 후원은 토탈의 전략적인 마케팅이다.
“마르주리 영감이 닛산 후원을 중단하면 파트너가 될 용의가 있다.”
빈정 상한 무쌍이 몽니를 부렸다. 닛산(日産)은 일본산업(日本産業)의 준말로 상호에서 오만함이 물씬 풍기는 재수 없는 회사다. 또한, 한국 전쟁을 틈타서 부활한 대표적인 일본 기업이다. 닛산만이 아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레버리지 삼아서 패전의 후유증을 털고 벌떡 일어섰다.
흔히 일제 강점기 36년을 한탄하지만 정작 복장 터지는 사건은 한국 전쟁이다. 약삭빠른 일본은 한국인이 동족끼리 피를 뿌릴 때 신 나게 돈을 퍼담았다. 집안끼리 피 터지게 싸우는 와중에 동네 조폭의 배만 불려준 꼴이다. 무쌍은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입맛이 썼다. 경제적 타격보다 더 가슴 아픈 부분은 추락한 국격과 민족적 자존심이다.
“나도 마르주리 영감에게 한마디 해 주지. 타나토스를 대면하기 싫으면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고 말이야.”
보니파스가 비시시 웃었다. 블랙맘바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직접 유전을 개발할 수 없다. 본인도 그 점을 잘 알기에 타협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이다.
기존 유전의 채굴량은 줄어들고, 신규 개발되는 유전은 갈수록 질이 떨어졌다. 최근 5년 이내에 분출 유정이 발견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분출 유정인 도바 유전은 가뭄에 단비다.
보니파스는 무쌍이 일본을 싫어하는 만큼 양키를 싫어한다. 블랙맘바가 양키 석유 메이저와 손잡을까 봐 몸이 달았다. 양키 메이저인 쉘, 엑손, 셰브런, 코노코필립스 등은 중동의 석유 지주회사를 합병 인수해서 가격과 판매 조건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작해왔다.
OPEC의 등장으로 이들의 영향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양키 슈퍼메이저의 석유 시장 지배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석유 메이저의 원죄는 자원의 합리적 관리를 외면하고 더 많이 더 깊이를 추구하는 끝없는 탐욕에 있다. 보니파스는 토탈사 역시 슈퍼메이저의 일원으로 온갖 협잡질을 하고 있음을 애써 외면했다.
“아무래도 혼자 먹기는 힘들겠지?”
“천하의 동방불패가 하고자 해서 못할 것은 없지만……. 19세기 개발업자처럼 나무 기둥을 세우고 곡괭이로 땅을 팔 수야 없지 않나. 석유 카르텔과 협조하지 않으면 탐사-생산-운송의 단계마다 생각지 못한 장애를 만나게 된다.”
“기존의 송유관이나 부두 시설을 이용하기 곤란하다는 말인가?”
“그것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유전 소재 지역민과의 갈등 조정이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산유국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폭력사태는 표면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배후에 석유 문제가 깔렸다. 지금도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곳곳에서 원주민들이 NGO의 도움을 받아서 정부와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정부와 개발업자가 잘못했네. 당연히 정당한 보상을 해줘야지.”
보니파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그렇지 않아. 돈맛을 안 원주민은 정당한 보상을 받고도 물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토지 소유권과 환경 파괴를 명분으로 정당한 권리를 획득한 석유회사의 생산을 방해한다. 목적은 돈이다. 석 달 전 나이지리아 니제르 삼각주에서 원주민들이 석유 시설을 몽땅 때려 부수고, 기술자들을 죽였다. 퇴적층 탐사중이던 쉘사는 식겁해서 야반도주했다. 쉘과 미 국무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나이지리아 정부는 무장 폭동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파견했다. 주민들이 기관총에 도륙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지. 아프리카 각국의 정치권 갈등과 군부 쿠데타의 배경은 석유 수입 배분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다. 수단 내전도 석유 때문이다. 남부의 기독교도와 부두교도들은 석유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손가락만 빨게 된 북부의 이슬람교도들이 유전을 탈취하려고 내전을 일으켰다. 전부 돈 때문이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의 탐욕은 어디나 마찬가지구먼. 외부의 간섭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만만치 않겠군.”
“기술적인 문제도 많다. 예를 들어서 시추공이 3,000m만 내려가도 드릴의 열을 식히는 세척액이 끓기 시작한다. 이때 드릴 도관의 나선 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불규칙한 시추압력이 비트를 박살 낸다. 특히 세척액 문제는 예민하다.”
“세척액이 뭐냐?”
“헐!”
보니파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무쌍을 쳐다보았다. 세척액도 모르는 인간이 유전 개발이냐 하는 눈빛이다.
“뭘 놀라? 나는 유전 개발업자가 아니라 이레이저다. 풍향과 탄도의 벡터를 모르면 한심하지만, 시추기의 세척액을 몰라도 빌어먹지 않는다. 소매가 긴 놈은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은 놈은 장사를 잘하는 법이다.(長袖善舞多錢善賈, 장수선무다전선고/조건이 좋으면 성공하기 쉽다는 뜻.)
보니파스는 무쌍의 입심에 눈이 둥그레졌다. 꽃놀이패를 들고 있으니 배팅을 잘하라는 소리다.
“이거야 원! 구멍 뚫린 막대기가 없어도 입으로 사람을 죽이고 남을 인간이구먼. 세척액은 비트의 열을 식히고, 시추파편을 겔 상태로 만들어서 지표로 끌어올리고, 시추공의 붕괴를 막으려고 투입하는 화학제다. 물에 특수한 화학적 성분을 첨가한 액체로 세척액을 젤리처럼 만드는 틱소톤, 대수층에서 새어 나오는 지하수를 차단하는 아쿠아젤, 금 간 지층을 메꾸는 파이버텍스, 소금을 중성화하는 치오지 등등 수십 종이 있다. 조건에 맞는 세척액을 투입해서 시추공 벽을 4mm~10mm 두께로 제대로 코팅해야 유정에 스며드는 지하수나 염수를 차단하고, 유입된 지하수가 석유층 입구를 봉쇄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소금층의 혼합 원유의 분출 높이가 20m라면 마라카이보 이상의 분유정((噴油井)이다. 분출 압력이 높다는 의미는 좁은 지역에 다량의 석유가 고여있음을 예고하는 낭보다. 도바에서 탐사정 시추를 지휘하는 책임자가 누군가?”
“지난번에 DGSE에서 소개해준 무울소리 교수다. 자원공학을 부전공했다고 하더군.”
“얼치기 전문가란 소린데……. 내가 믿을만한 인물을 급파하겠다. 분출 존데(모체 광맥의 압력으로 인해 석유가 지층 광석을 뚫고 시추공을 통해 지표면으로 솟구쳐 오르는 유정)의 압력에 지층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고, 환경 오염이 문제다. 펌프 스테이션의 회전반 아래에 석유와 가스 분출을 막는 견고한 폐쇄 블록을 당장 설치해야 한다. 이것을 프리벤터라 한다. 세계적으로 프리벤터 기술을 가진 회사는 메이저 여섯 개 회사밖에 없다. 토탈의 쉐퍼 프리벤트 기본 장비는 신뢰성이 높다. 석유 카르텔은 곡물 카르텔보다 폐쇄적이다. 자기들끼리는 박터지게 경쟁하지만,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기미가 보이면 합심해서 자라날 싹을 잘라버린다. 메이저를 앞세우면 탐사-채굴-운송 각 분야에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탐사 장비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아이고 머리야. 분출 존데든 펌프 존데든 됐네 됐어. 나를 겁줄 목적이라면 총국장의 의도는 충분히 통했다.”
식겁한 무쌍이 손사래를 쳤다. 보니파스는 한때 토탈사의 해외 유전 개발을 지원하는 DGSE 감독관이었다. 현장에서 주워들은 것도 많았다. 계속 듣고 있다간 원형 탈모증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기술자들이 걱정해야 할 문제를 자신이 왜 걱정한단 말인가.
“뿌흐 네엉 바 오 부와 끼 부와 느 꼬네.(숲을 모르는 자가 쓸데없이 숲에 간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뜻.) 컨소시엄은 내가 중개하도록 하지. 혼자 해결하려다간 머리가 나처럼 된다.”
보니파스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살아남은 주변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무쌍이 픽 웃었다.
“헐, 총국장이 자진해서 나섰으니 중개 수수료는 토탈에서 받아라.”
“있는 놈이 더 하다고 하더니, 천하의 블랙맘바가 쩨쩨하게 굴기는.”
보니파스가 투덜거리며 수첩을 꺼냈다.
“사마리아 농장의 면적이 2,900ha라~ 토탈의 탐사 자료에 의하면 도바 분지에서 석유층이 의심되는 지역은 삼각주 퇴적층을 포함한 50㎢란 말이야. 나머지 땅을 토탈이 매입해서 유전을 개발하면…….”
보니파스가 숫자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톡-톡-톡- 만년필 꽁지가 수첩을 두드렸다. 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나타나는 버릇이다.
프랑스는 유전이 없다. 이웃 독일만 해도 질 좋은 유전이 널려있다. 바다 건너 영국도 석유가 펑펑 난다. 신은 프랑스만 미워했다. 언제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죽자사자 늘릴 수는 없다.
‘조국이 유전을 소유할 절호의 기회인데……. 설득하면 도바 유전을 프랑스에 넘길까? 나중에 진실을 알면 가만히 있을 인간이 아닌데…….’
미련의 끄트머리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문득 사마리아 농장의 지분을 뇌물로 받은 오리앙탈주 주지사 이브라힘 무타파가 생각났다. 블랙맘바의 방문을 받은 무타파는 악성 신경쇠약증이 생겼다. 주지사 자리도 내놓고 날마다 주술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은근슬쩍 옆 동네에 토탈을 끌어들였다가 들통 나면 뒷감당이 안 된다. 초대하지 않은 블랙맘바의 방문!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어설픈 애국심에 야료를 부렸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밀어줄 때 화끈하게 밀어주자.’
블랙맘바는 한국인이자 프랑스인이다. 솔직히 신뢰의 추는 토탈의 마르주리 회장보다 블랙맘바 쪽으로 기울었다. 보니파스는 미련을 버리고 토탈의 자료를 블랙맘바에게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탁- 만년필을 두드리던 동작이 뚝 멈추었다. 보니파스는 차드 군사지도를 펴고 팬데 강 하류 삼각주에 타원형을 그렸다.
“동방불패, 도바 분지는 동고서저 형태다. 토탈의 자료에 의하면 배사 지층은 사마리아 농장을 기점으로 펜데강 방향으로 뻗었다. 이곳 타원형 안에 거대한 석유 그릇이 만들어져 있을 가능성이 100%다. 삼각주가 포함된 타원형의 면적은 50㎢다. 사마리아 농장이 29㎢를 차지하고, 나머지 삼각주 21㎢는 일부 목화농장을 제외하면 하천부지로 국유지다. 나머지 땅도 몽땅 매입해라. 1억 프랑이면 충분하다.”
심연처럼 깊은 무쌍의 두 눈이 보니파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공간지각력은 간섭장이다. 보니파스의 갈등을 짐작하고 있던 무쌍은 은근슬쩍 공간지각력을 풀어놓았다. 간섭장은 소설에 나오듯이 타인의 의지를 맘대로 조정할 수 있는 파장이 아니다. 호감도를 높여서 상대방이 갈등할 때 결정을 유리하게 이끌 수는 있다. 상대의 의지가 박약할수록 효과가 있고, 의지가 강하면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하브레 대통령이 땅을 팔까?”
무쌍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모른 체 시침을 뚝 땄다.
“걱정하지 말게. 매입할 땅은 팬데 강 저습지로 강물 수위가 높아지면 침수되는 탓에 버려져 있다. 하브레는 1억 프랑을 들이밀면 만년필 뚜껑부터 열 것이다. 더욱이 자네 덕분에 살아난 너구리 마쿰보가 국토부 장관 자리에 앉아있다. 내 말 한마디면 저습지 사이에 끼어 있는 목화농장까지 몽땅 수용해서 넘겨줄 거다.”
보니파스는 자신만만했다. 내무부와 DGSE는 과거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을 공동 관리한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버려진 하천부지는 바로 넘어온다. 정당한 보상은 훗날의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그것참, 개똥도 약으로 쓸 때가 있다더니…….”
무쌍이 중얼거렸다. 세상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패 죽이고 싶었던 마쿰보가 도움될 줄이야.
“나와 함께 은자메나로 넘어갈 텐가?”
“옴부티가 내 전권 대리인이다. 토지 매입 관계는 총국장이 처리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하지. 자네 수당에서 1억 프랑을 토지 대금으로 차감하겠네. 잠시 기다리게. 이런 일은 지체하면 마가 낀다고.”
보니파스가 위성 전화기를 꺼냈다. 지부티나 차드나 통신 인프라가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국제전화를 신청했다간 최소 한 시간은 손가락 빨아야 한다. 일단 연결되어도 툭하면 설탕 과자처럼 끊어지기 일쑤다. 통화를 마친 보니파스가 싱긋이 웃었다.
“날이 밝는 대로 은자메나의 파비에르 대사가 마쿰보를 만나서 거래를 매듭짓기로 했다. 옴부티는 사인만 하면 된다.”
‘됐다!’
무쌍은 보니파스를 업어주고 싶었다. 무울소리 교수가 이미 펜데강 도바 삼각주 전체 매입을 권했다. 타국의 토지 매입은 만만치 않은 일인데다 보안도 문제다. 보니파스가 고민을 깨끗이 해결해준 셈이다.
“이거야 원! 번갯불에 콩 구워먹겠군.”
“흐흐흐, 쇠는 달구어졌을 때 때려야 한다. 미 국무장관 슈어드가 120년 전에 알래스카를 사들여서 큰 재미를 보았지. 이번 토지 거래는 역사상 두 번째로 짭짤한 부동산 거래로 기록될 거다. 축하한다.”
“흐흐흐! 중개업자의 농간이 심하군. 슈어드는 제곱킬로미터당 5달러를 지급했는데 나는 같은 면적에 130만 달러나 뜯기네.”
무쌍이 키들키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