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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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설거지는 나도 싫다2
도바의 사마리아 농장과 매입 예정지인 삼각주는 50㎢, 1,500만 평이다. 여의도 넓이의 6배로 한국식 마지기 단위로 계산하면 75,000마지기다. 아버지가 20년 동안 땀을 쏟아 장만한 논이 여섯 마지기다. 75,000 마지기는 감이 잡히지 않는 광대한 땅이다.
백부와 장씨는 손바닥만 한 1,200평 토지를 가로채려고 아홉살짜리 아이를 끌고갔다. 조카를 양육한다는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버지가 남긴 논밭이 없었으면 노예 생활을 5년이나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속셈을 알고 얼마나 허탈하고 분노에 떨었던가.
베란다 바깥의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검은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빼곡했다. 어머니는 착한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어릴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지금은 믿고 안 믿고의 명제가 아님을 안다. 별은 하늘에 있지 않고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늘에서 보고 있지요. 논은 아니지만 75,000마지기입니다. 아버지 아들이 이런 놈입니다. 잘났지요?’
가슴 아래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밀려 올라왔다. 코허리가 시큰했다.
“이봐,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해. 슈어드 장관이 720만 불이나 주고 산 땅은 쓸모없는 냉장고였어. 자네는 땅이 아니라 검은 황금이 잔뜩 들어있는 그릇을 샀다고. 100억 배럴만 뽑아내면 100조 프랑이란 말이다. 아이고 배야. 배 아파 죽겠네.”
보니파스가 짐짓 배를 두 손으로 싸안고 인상을 푹푹 썼다. 보니파스는 평소 농담 한마디 않는 빡빡한 인간이다. 그를 아는 사람이 보았으면 뒤로 자빠질 연출이다. 도바의 석유는 써펀드라 불릴 만큼 냉정한 그도 흥분할 수밖에 없는 충격이었다.
“100억 배럴은 개뿔이, 전 세계 석유 매장량 추정치가 2조 배럴이다. 단일 유전의 매장량이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0.5%나 된다는 게 말이 돼?”
“무슨 소리! 석유 매장량을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놈은 아무도 없어. ‘석유와 가스 저널’의 헛소리 따위를 누가 믿어. 석유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단 말이야. 석유 메이저가 매장량 고갈 운운하는 소리는 유가를 올리려는 개소리라고.”
“채굴 심도가 점점 깊어지니까 문제지. 테스트 시추공을 뚫어서 쪽박 차면 어쩔 겨?”
“탐사하나 마나다. 도바 유전은 무조건 P1이다.”
“P1?”
“P1은 생산 성공확률 90% 이상의 유전을 말한다. 석유 채굴이 성공하려면 매장량도 중요하지만, 회수율이 더 중요하다. 자네 말대로 채굴 심도가 지나치게 깊어지면 매장량이 아무리 많아도 그림의 떡이다. 1억 프랑의 석유를 뽑자고 2억 프랑을 투입할 멍청이는 없으니 말이다.”
무쌍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보니파스는 정보기관의 수장이다. 자기 자신이 진짜 보니파스인지조차 의심한다는 인간이 확신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의심쟁이 보니파스가 확신하다니 별일이군. 뭔가 다른 데이터가 있는 모양인데…….’
무쌍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파스를 살폈다. 혈류와 뇌파가 평온하다. 자신의 말에 확신을 한 자의 특징이다.
“일단 보안 조처를 해야겠군. 쌈디야, 쫄따구에게 즉각 연락해라. 석유 분출을 목격한 인부들을 격리 조치하고 농장 경계령을 진돗개 셋으로 올려라.”
“알았다.”
쌈디가 위성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투성이다. 에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변덕이 생겨서 개입했던 농장이다. 골칫덩이 농장에서 기름이 터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거야말로 잠자다가 떡이 생긴 꼬락서니다.
“하여간 조상 묘를 잘 써야 발복이 되는 벱이여. 망할 년, 감히 아버지 유골에 방자해!”
무쌍이 뜬금없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양아치를 보내서 아버지 무덤을 파헤친 장씨에 대한 분노가 새삼 끓어올랐다. 복수행이 덧없음을 깨달았지만, 설렁설렁 넘어간다는 소리는 아니다. 인간의 조건을 저버린 행위에 피드백이 없다면 세상은 이투리 정글과 다를 바 없다.
“왜 그러나?”
“아 아니다. 탐사와 개발은 아무래도 메이저에 위탁해야겠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던 무쌍이 손사래를 쳤다. 아무리 석유가 좋아도 전적으로 매달려서 골치를 썩이고 싶지 않았다.
“중동 석유의 60%는 석유 메이저를 통해서 개발되고 판매된다. 나는 토탈에 유전 지분을 일부 넘기고 개발과 판매를 맡기는 방법을 추천한다. 자네는 사우디 왕가처럼 돈만 챙기는 거지.”
“나야 좋지만 토탈을 신뢰할 수 있나? 석유 메이저에 대한 악명이 워낙 높아서 말이야.”
“풉!”
보니파스가 와인을 뿜었다. 악명이라니! 누가 감히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 앞에서 악명을 논한단 말인가.
핏-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무쌍의 얼굴을 가렸다.
“쎄 모베!(형편없군!), 쌀 티프.(더럽게시리.)”
쌈디가 투덜거리며 침과 술이 튄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엑스뀌제, 즈 느 레 빠 패 엑스프헤!(미안하다. 고의가 아니다.)”
보니파스가 손수건을 던져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스피드와 순발력이다. 총을 쏘았어도 막았을 것이다. 스위트룸 밖에 대기 중인 경호원들이 한심해졌다.
‘저 인간은 전생에 지구라도 구했나!’
본인도 등급외 인간이지만 경호원도 등급외 인간이다. 만부막적 경호원을 거느린 블랙맘바가 한없이 부러웠다.
“어떤 인간이 감히 죽음의 천사를 물 먹일 수 있겠나. 마르주리 회장이 세상살이에 염증을 느끼지 않은 다음에야 야료를 부릴 수 없지.”
“자살하고 싶으면 뭔 짓을 못하겠어.”
“불에 타죽거나 배가 갈라져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어. 문제는 지분 양도 가액이다. 매장량 평가는 대단히 보수적이다. 유전의 지분 가치는 1P(생산 성공확률 90% 이상), 2P(생산 성공확률 50%), 3P(생산 성공확률 10%)에 따라서 어마어마하게 달라진다. 탐사 시점의 배럴당 가격과 향후 수요 예측에 따라서도 지분 가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수입국의 경제 성장률도 영향을 미친다. 양질의 유전은 매장량과 회수율 데이터를 뽑은 뒤에 계산기를 두드려야 유리하다. 서두르면 노회한 메이저에 당한다. 일단 탐사 계약을 체결하고 생산과 지분 계약은 나중에 사인해도 된다. 유전 개발에 관한 계약을 전적으로 내게 맡겨줄 수 있나?”
보니파스가 눈을 반짝였다. 블랙맘바가 소유권을 갖고, 토탈이 개발권을 가지면 서로 이익이다. 프랑스 정부로서도 최선의 해법이다.
“나를 지켜주는 프랑스인이 두 사람 있다. 에밀은 등을 지켜주고 보니파스는 주머니를 지켜준다. 당신에게 내 등을 맡기기엔 불안하지만 주머니는 기꺼이 맡길 수 있다.”
무쌍이 내민 손을 보니파스가 잡고 흔들었다.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리지만 믿어주니 고맙네. 어이쿠, 큼직한 떡을 빚어내느라 허리가 다 아프네. 재주를 부린 곰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은 없나?”
보니파스가 무쌍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차례 재주를 넘고 주인의 칭찬을 기다리는 발바리의 눈매, 아니 국익에 가치를 둔 관료의 자부심이 담긴 눈이다. 헐렁해 보이는 프랑스가 선진국인 이유다.
‘한국에도 이런 관료가 있었으면…….’
무쌍의 눈에 부러움이 담겼다. 정치인과 관료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사심 없이 일하면 국가가 발전하고 부패하면 망쪼가 든다.
“하하하, 공개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총국장의 얼굴 두께에 경의를 표한다. 도바 유전의 지분 1%를 주겠다.”
“헉, 진심인가?”
보니파스의 눈이 잔뜩 커졌다. 두 눈에 웃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동방불패는 허언하지 않는다.”
“진짜군!”
보니파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공무원 정년이 육십 세던가? 총국장의 정년이 대략 5~6년 남았다. 한창나이에 은퇴하면 뭘 할 건가? 뤽상부르 공원 벤치에서 햇볕이나 즐길 건가? 강아지 목줄을 잡고 센 강변을 하릴없이 오르내릴 건가?”
“으음!”
자신의 은퇴 후 모습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은퇴 후 대략 20년 세월을 더 살아야 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프랑스는 공직자의 민간 진출에 관대한 편이다. 문제는 민간 기업이 공직 경험자를 꺼린다는 점이다. 프랑스 공무원은 불친절하고 무능력하기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밤톨만 한 애완견 목줄을 잡고 공원을 어슬렁대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살아가기에 충분한 연금이 나오겠지만, 남자의 삶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일은 경제적 보상 이전에 자기실현의 장이다.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베르늬에 보니파스를 가칭 동방불패 오일의 고문으로 초빙한다. 단, 근무는 공직 은퇴 한 달 후부터 시작한다. 보수는 출근일부터 지급하며 동방불패 오일의 지분 1%를 스톡옵션으로 부여한다.”
“허어!”
황당한 선언이다. 보니파스가 할 말을 잊고 멍하니 무쌍을 쳐다보았다. 동방불패 오일의 지분 1%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악마의 유혹이다. 보수는 문제가 아니다. 스톡옵션은 회사가 설립되는 순간부터 효력이 발동된다. 구두 약속이지만 상대가 약속하면 지옥이라도 들어간다는 블랙맘바다. 그의 언약은 프랑스 땅덩이만큼이나 무겁다.
블랙맘바는 말 몇 마디로 DGSE 총국장을 자신의 똘마니로 만들었다. 5년 후에 근무한다는 약속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자신은 만들어지지도 않은 동방불패 석유의 근무하지 않는 고문이 되어버렸다.
“이거야 워, 동방불패답다고 해야 하나! 자네는 타고난 보스일세. 본인은 번거로움을 싫어하지만, 사람이 모여들 수밖에 없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 제안은 일단 받아들이겠네. 하지만 보스 노릇은 5년 후에나 하게.”
“당연하지!”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토탈과 협상 자리에 앉은 보니파스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지게 되어 있다. 이번엔 위치가 바뀌어 보니파스가 블랙맘바의 미끼에 걸린 셈이다.
“이렇게 되면 도바의 유전 건은 대충 정리된 셈인가.”
“정리랄 것 있나. 총국장이 할 일만 남은 거지.”
무쌍이 푹신한 소파에 등을 깊숙이 묻었다. 자다가 떡이 생겼고 그 떡을 먹기 좋게 썰어줄 사람도 정해졌다. 자신은 돈만 챙기면 된다. 이거야말로 선우방나의 말대로 조상묘를 잘 쓴 덕분이다.
“어째 나는 자네만 만나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지?”
보니파스가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좁아서 그래. DGSE에서 추적할 인물이 있다. CIA 특수공작부 부장 루이스 아담과 마틸다라는 여자 요원이다.”
“공작부장 루이스 아담은 주시 대상이지만 마틸다는 누구지?”
“30대 중반의 여자로 시긴트와 이민트 분석 책임자다.”
“천하의 블랙맘바가 신경 쓸 정도면 특별한 여자란 소리군.”
“이투리 정글에 쉐도우 2개 조를 투입한 장본인이다. 내가 처치한 써펀드 그렌델을 확인할 목적이었겠지. 쉐도우 지휘관 멕피 소령의 자백에 의하면 마틸다가 혼터와 그렌델의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그녀 자신이 사이킥 혼터다.”
“사이킥 혼터? 지성을 갖춘 초능력자를 만들어낼 만큼 양키의 유전자 통제 기술이 발달했나?”
보니파스가 화들짝 놀랐다. 프랑스 생명과학연구소가 유전자 통제 스위치를 찾아내고 호메오박스라 명명했다. 연구소에서 생쥐의 게놈을 분석해서 눈을 형상하는 유전자를 초파리 배아에 투입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실험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초파리의 몸 곳곳에 눈 수십 개가 만들어졌다. 호메오박스를 컨트롤할 방법이 없는 현존 과학기술의 한계다.
“마틸다가 만들어진 사이킥 혼터인지 본태 에스퍼인지 알 수 없다. 내 생각엔 그녀를 실마리로 추적하면 양키가 추진하는 소크라테스 프로젝트의 전모를 알게 될 것 같다.”
“으음, 중요한 정보군. 이건 자네가 자발적으로 전달한 정보다. 정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겠다. 킬킬킬!”
보니파스는 블랙맘바의 말을 되돌려주는 놀이에 재미 들렸다.
“총국장, 젊은 나는 열심히 벌어야 해. 남자가 쪼잔하면 나이 들어서 버림받는다.”
“자네야말로 유럽 최고의 갑부가 쪼잔하게 굴지 말게. 자식에게 얼마나 많은 재산을 물려주려고 힘없는 늙은이를 진이 빠지도록 닦달하나.”
“흐음~”
보니파스의 지청구에 무쌍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돈이 없어도 행복했다. 아버지가 읍내 장에서 사온 참빗 한 개에 어머니 얼굴은 꽃처럼 피어났다. 아버지가 들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귀지를 파주곤 했다.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은 아버지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편안했다.
[임자, 이것 좀 보게. 토실토실하고 양쪽이 균형 잡힌 게 딱 임자 엉덩이구마.] [에그, 쌍이 듣는데 숭시럽거러 먼 소리를 하는 기요.]잘 익은 복숭아를 들고 놀리는 아버지와 질색하던 어머니가 그린 듯이 눈앞에 떠올랐다.
연분홍 복사꽃잎이 봄바람에 휘날리면 들녘은 못줄 당기는 소리와 때이른 뻐꾸기 소리 낭자하게 어울어진다. 잠방이 젖은 줄도 모르고 모춤 찌는 아버지, 함지에 새참이고 나온 어머니, 도랑에서 가재 잡는 재미에 푹 빠진 어린 무쌍, 금슬좋은 부부의 훈훈한 미소에 고달픈 하루가 솜사탕처럼 녹아든다. 행복은 돈이 아니라 가슴에 있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박진보와 김말순은 봄비에 불어난 개울물에 떨어진 꽃잎처럼 간곳 모를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 자리에 날개 꺾인 어린 무쌍만 외로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