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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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설거지는 나도 싫다4
“그것참! 어이없는 존재군.”
무쌍이 수정 용기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날뛰던 루스루훼는 사라지고 까만 팬 케이크 한 조각이 용기 속에 들어있다. 죽은 듯 풀어져 있지만, 일주일만 지나면 본래의 형태로 복구되는 생명체다. 실정 모르는 사람이 병뚜껑을 열었다간 악마를 풀어주게 된다.
루스루훼는 부두교 발상지인 베냉지역 토속어로 ‘현신한 천사’라는 뜻이다. 으스스한 외모와 악기가 번득이는 동공이 천사는커녕 악귀에 다름아니다. 천사다운 면모는 어디에도 없다.
루스루훼는 본체를 무화(霧化)할 수 있다. 격리된 보안 구역이나 차폐 구역도 무시로 드나들 수 있다. 잠입을 알아차리기 힘들고, 물리적 데미지를 가할 수 없으니 퇴치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자신도 기껏 발사라로 분자 결속을 해체하거나 공진파로 세포 결합을 흔들어 놓는 수준이다.
이놈이 원자력 발전소에 잠입해서 연료봉이 들어있는 반응로 냉각수를 차단하면 도시 전체가 날아가 버린다. 항공기 테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참사가 벌어진다.
“갈수록 태산이구먼!”
무쌍의 한숨이 깊어졌다. 한숨을 쉬기는 쌈디도 마찬가지다. 주인과 이상한 생물체의 싸움은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순식간에 끝났지만 룸은 난장판이 되었다.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페어 글라스는 모두 금 갔다. 내부에 충전된 수지가 유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악마 비슷한 놈이 별 힘을 못 쓰고 제압당하긴 했지만, 주인이기에 가능한 행사다.
“후와! 뭔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위험해 보이더니 까만 밀가루 반죽이 되어버렸네. 죽었나?”
쌈디가 수정 용기를 짤짤 흔들었다. 용기 속의 탄화된 팬케이크가 나무토막처럼 굴러다녔다. 이놈이 허연 눈깔을 번득이던 루스루훼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죽지 않았다. 죽은척하는지 가사 상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재수 없어 보이는데 없애버리지.”
쌈디는 원인 모를 적개심이 솟았다.
“지금은 죽일 방법이 없다.”
“고압 전기로 지지거나 밀폐용기에 넣고 백린으로 태우면 죽지 않을까?”
쌈디는 시종일관 기분 나쁜 생물체의 소멸을 주장했다. 세상에 나오면 사건을 쳐도 크게 칠 놈이다. 두들겨 잡을 존재는 주인밖에 없는데 제모습을 찾아서 빠져나오면 큰일이다.
“잠깐! 백린으로 태운다고? 그 반대다. 온도가 내려가면 분자 운동도 줄어들지. 드라이아이스에 채워놓아야겠어.”
무쌍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드라이아이스 박스에 들어간 루스루훼는 확연히 위축되었다. 루스루훼를 굳이 죽이자면 못 죽일 것도 없지만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예감 때문이다. 훗날 쓰임새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사형 집행을 미루었다.
“젠장, 역시 설거지는 귀찮아.”
십 년 이상 투덜거렸던 불평이다. 혼자 살면 밥과 반찬을 만들기보다 뒤처리가 더 귀찮았다. 백부댁에서 5년, 자취 생활 6년, 나이트클럽 5개월, 스승님 시봉까지 주야장천 설거지가 따라다녔다. 먹거리든 사건이든 작전이든 뒤처리는 빛도 안 나고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다.
프랑스가 휘두른 정의의 주먹은 종료되었지만, 동방불패의 주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루스루훼 두 개체가 임산부의 배를 찢고 사라졌다. 병 속에 든 놈의 예로 볼 때 정상적인 숙성(?)은 자연 분만이다. 다른 두 개체는 자력이든 카무게의 소행이든 비숙성 상태로 탈출했단 소리다. 보니파스에게 언급조차 않았지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귀찮은 설거지거리가 남은 셈이다.
루스루훼만큼 위험성은 높지 않지만, 양키가 개발 중인 그렌델이나 혼터도 위협적이긴 마찬가지다. 양키의 소크라테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MK 프로젝트가 찜찜한 이유는 일본 때문이다.
최도식(사이 도지쿠)과 그를 따르는 신도를 통해서 일본인의 속성을 뼈저리게 겪었다. 일본인은 대체로 소심하고 멘탈이 약하지만, 집단을 형성하면 광기를 뿜어낸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정당화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진주만 기습이 대표적이다. 일본 통막은 항공대가 도라 도라 도라를 타전한 후에야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일본다운 비열함과 뒤통수 치기다. 반면에 미국의 정보 분석관들은 기습 징후를 포착하고도 무시했다. 분석관 본인이 일본의 정책 결정권자라면 강력한 미국을 공격해서 화를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러이미징 때문이었다.
무쌍이 수중용 그렌델과 일본을 연결한 배경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본의 비열함과 미국의 안일한 미러이미징이 재결합하지 말란 법이 없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나라다. 국민은 넘치는 국부에 비해서 그리 부유한 삶을 살지 못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돈이 넘쳐난다. 미국은 자본주의 극단에 서 있는 나라로 돈이 곧 인격이다. CIA가 불법적인 자체 사업을 통해 비밀 공작금을 충당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은 매파와 비둘기파가 충돌하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매파가 이니셔티브를 움켜쥐는 나라다. 미국과 전쟁을 논의하는 어전회의에서 전쟁을 반대한 고노에 수상은 개전파인 도조 히데키 육상에 밀려서 사직했다. 총리대신에서 물러난 고노에는 패전 후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했다.
미국과 전쟁을 한사코 피하려 한 고노에는 비겁자로 매도되고,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고 수백만의 젊은 피를 태평양에 쑤셔 박은 도조 히데끼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영토적 야심이 없는 특이한 나라다.] 일본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시바 료타로가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착잡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한국인이 아니다. 아니, 역사와 국가 비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래 만주땅은 한민족 역사에서 사라졌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도 북방 영토를 기웃거리지 않았다. 조선도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세종조에 이종무가 쓰시마섬을 토벌했지만, 해적 소탕에 만족하고 깨끗이 철수했다.
이처럼 영토에 담백한 민족이 있을까? 그런데 좁은 한반도에서는 한 치의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물고 뜯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민족이 한민족이다.
왜족(대화족)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민족과 대척점에 선다. 조선이 양반 문화라면 일본은 사무라이 문화다. 양반은 상민을 잡아다 곤장을 쳤지만, 사무라이는 즉석에서 목을 날렸다. 사무라이는 상민 처녀가 치마를 벗지 않는다고 대로에서 목을 칠 정도로 개념 없이 기세등등했다. 피지배층은 공포가 뼈에 새겨졌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사무라이 문화에 젖은 왜족은 두 가지 특이한 기질이 유전자에 새겨졌다. 지배자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근성과 약하고 힘없는 존재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차별의식이다. 왜족 근성의 대표적 잔재가 이지메와 부라꾸(백정, 무당, 거지, 망나니 등 천민 집단)천시다.
부라꾸(部落)는 일제가 강점기에 한국 마을을 표기했던 명칭이기도 하다. 한국인을 평민도 못 되는 백정 수준의 천민으로 취급했다는 소리다. 대동아 공영을 외치던 일본의 자존망대함은 끝을 몰랐다. 일본인은 니혼진이라 해서 일등 신민, 조센진은 이등 신민, 중국인은 돼지라 불렀으니 말이다. 지금도 마을을 부락이라 부르고 자신을 조센진이라 비하하는 사람이 있음은 슬픈 일이다.
사무라이 문화는 왜족을 쥐떼 근성으로 물들였다. 누군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면 우르르 따라간다. 정상배가 정치해 먹기 참으로 좋은 나라다. 강자에게 서슴없이 머리를 숙이고, 약자는 철저히 짓밟는 의식은 러시아, 중국, 한국, 대만, 동남아 각국의 침공으로 표출되었다.
영토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전쟁과 교섭이다. 전쟁이 싫으면 교섭을 해야 하는데 교섭으로 영토분쟁이 해결된 사례는 거의 없다. 결국, 한국의 국력이 일본을 앞서야 독도 분쟁이 끝난다는 소리다.
무쌍이 걱정하는 바는 일본이 그렌델을 독도 해역에 풀어놓는 사태다. 바닷속에서 전봇대보다 더 굵고 긴 문어발이 올라와서 어선을 덮쳤다는 기사가 나고, 한 아름이 넘는 바다뱀이 여객선을 덮치면 한국은 공황 상태가 된다. 일본은 아마테라스의 분노가 한국에 임했다며 신 나게 썰을 풀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이 제주도를 삼키려는 공작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독도나 제주도나 상황은 다를 바 없다.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였고 실효지배하는 영토다. 일본인의 유전자엔 한반도 전체가 일본 식민지라는 인식이 각인되어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은근슬쩍 숟가락을 얻기엔 그렌델이 그만이다.
“그렌델과 일본이라~ 맘대로 해라. 기꺼이 지옥 설계도를 그려주지.”
무쌍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한국 정부가 자신처럼 일본을 경계하고 미래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을까?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바램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이 그 정도 안목과 양식이 있었으면 용병이 되지도 않았다.
나라는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은 나라를 버리지 못한다. 불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한 위정자와 부패한 관료의 문제일 뿐 땅이 자신을 버리지는 않았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조국이 무쌍을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이끌었다.
무쌍의 귀환은 일주일 늦추어졌다. 각국 정보기관과 언론의 비상한 관심이 콜네임에 쏠렸기 때문이다. DGSE가 연막을 치느라 헉헉댈 정도로 각국의 스파이와 기자가 대거 파리로 몰려들었다.
콜네임에 조명이 집중된 이유는 1963년도에 발생한 드골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때문이다. 당시 암살자 자칼은 드골 암살을 예고하고 비상한 능력으로 삼엄한 경호막을 파고들었다. 자칼은 암살 성공 직전에 헌병 경찰인 장마리 바스티엥에게 막혔다. 바스티엥으로 인해 프랑스의 숨겨진 칼인 콜네임이 세상에 드러났다.
새로운 콜네임의 출현은 호기심과 흥미를 끌 수밖에 없다. 흥분한 스파이와 기자들이 파리를 헤집고, 의심스러운 은자메나까지 뒤지고 다녔다. 심지어 한국의 신문조차 살인 면허를 가진 프랑스 특급 첩보원이 아프리카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도살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악의적인 미국의 뉴스 주간지를 베낀 기사다.
보니파스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당분간 종적을 드러내기 곤란해졌다. 무쌍은 지부티에서 하루를 더 머물고 사마리아 농장으로 이동키로 했다. 파리와 은자메나에는 아예 발걸음도 하지 않기로 했다. 사르코수쿠스 가죽도 에밀에게 보냈다.
“미치겠네. 한가하게 여자 엉덩이나 주무를 시간이 없는데.”
무쌍이 조바심을 냈다.
“이봐 블랙, 겨자 씹은 얼굴 그만하라고. 자비로운 써펀드가 푸짐한 휴가비까지 줬잖아. 푹 쉬라는데 뭐가 문제야? 땅속의 석유는 도망치지 않아.”
“아이고, 늘어진 다크서클 좀 봐.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잖아. 이참에 이것저것 잊고 푹 쉬어.”
벨맨도 거들었다.
“석유 때문이 아니다. 빨리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를 찾아야 해. 돌아가면 리밍이(정보원)를 풀 생각이다.”
“그렇지. 어머니를 찾아야지. 자네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 아닌가! 아메리카에는 추적에 능한 탐정이 많다. 전문가를 투입하자고.”
벨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CIA를 떠난 지가 언젠데 도와준다는 거야? 맨날 삽질만 하는 놈들을 한국에 풀어서 어쩌려고.”
폴이 지청구를 날렸다.
“아직 그 정도 힘은 남아 있다고.”
“으이구, 법석을 떨면 블랙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장사꾼은 권총이나 열심히 팔아.”
“이거 왜 이래. 한국 경찰을 동원할 수도 있어.”
폴과 벨맨이 티격태격했다.
“그만둬. 필요하면 내가 부르겠다.”
무쌍이 손을 흔들었다. 아프리카가 전쟁터라면 한국은 지옥이다. 비참한 모습의 이강철이 백부와 오버랩되었다. 가족을 잃고 곧 죽을 사람이다. 응징하자니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는 패륜적 행사가 된다.
레미제라블, 모두가 불쌍한 사람들이다. 지풍을 깨달을 때 복수의 덧없음도 깨닫지 않았던가. 죄를 지은 자는 모두 악인인가? 그건 아니다.
인간의 혼은 선악이 없다. 선악은 백에 덧씌워진 업일 뿐이다. 죽은 자의 백은 천지간에 흩어져서 땅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죽어 산과 들에 묻히고, 남은 정은 산 사람의 가슴에 묻힌다. 복수 운운은 실체가 없다는 소리다.
그러면 죄를 지어도 뼛속까지 악인이 아니면 용서해야 한단 말인가? 그건 또 아니다. 그따위 물렁한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노바토피아의 법이 ‘피해를 준 만큼 갚아라’가 아니던가. 머리는 정리되었지만, 가슴은 정리되지 않았다. 고뇌와 갈등은 인간의 전유물이고 살아있는 한 피할 수 없는 업이다.
차드 북동부 엔네디 고원 북동쪽 바칠킬레 지역, 거대한 실버백과 한 둘레 작은 암컷 고릴라가 모래바람을 뚫고 나타났다. 앞서 가던 암컷 고릴라가 걸음을 멈추고 코를 킁킁댔다. 메마른 공기 중에 습한 물 냄새가 섞였다. 우웍- 암컷 고릴라가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울었다.
“물이 있나?”
실버백의 품속에서 지친 인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두두두두- 우워워워- 실버백이 가슴을 두드리며 기성을 질렀다.
“빌어먹을, 놈 때문에 천고의 보물인 루스루훼를 망쳐버렸어.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