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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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설거지는 나도 싫다5
뿌드득-
원한 섞인 독백에 이어 이빨 가는 소리가 새나왔다. 고릴라가 혼잣말하면서 이빨을 갈 리 없다. 독백은 실버백의 넓은 가슴에 안겨 있는 깡마른 중년 흑인의 입에서 나왔다. 텔레포트로 도주한 담발라 호웅간 카무게다.
블랙맘바의 손길을 피해서 기껏 도주한 카무게의 목적지가 노바토피아 인근의 엔네디 고원임은 아이러니한 노릇이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신의 섭리를 엿볼 수 없다고 했다.
카무게가 반들거리는 새하얀 도구를 품에서 꺼냈다. 살과 힘줄을 깔끔하게 발라내고, 하얀 뼈만 남은 어린아이의 손, 메낭(부두교의 접신 의식용 도구, 10살 미만의 여자아이 손목을 잘라서 만든다.)이다. 고리의 시야를 빌리려면 메낭을 통해서 고리의 뇌와 접속해야 한다.
고릴라 시력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지만, 루스루훼가 빙의된 고리는 보통 고릴라가 아니다. 천리안에 상당하는 사기적인 스킬에는 미치지 못해도 10km 전방에서 달리는 토끼를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두웅- 캄캄한 밤에 가로등이 주르륵 켜지듯 시야가 거침없이 개방되었다. 1km, 2km, 3km, 4km 전방에 길게 찢어진 계곡과 맑은 물이 흐르는 와디가 시야에 잡혔다.
“물이 있었군! 고리야, 가자.”
카무게가 실버백의 관자놀이를 메낭으로 탁 때렸다. 루스루훼와 주술사의 관계는 애매하다. 루스루훼는 주술사를 자신의 노예로 인식하지만, 주술사가 인간의 피만 충분히 공급해주면 부탁을 잘 들어준다.
주술사가 감히 루스루훼를 때리는 불경을 범했다간 곧바로 찢어진다. 주술사에게 얻어맞는 고리는 루스루훼가 아니라 그냥 힘센 고릴라에 불과했다.
고릴라 두 마리가 바람처럼 달렸다. 땅을 박찰 때면 붉은 땅이 푹푹 파이고 십여미터가 죽죽 단축되었다. 지난 7일간 쉴 새 없이 달려왔음에도 힘이 펄펄 넘쳤다. 고리가 아무리 뛰어나 봐야 지성이 없다. 오마의 업그레이드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빌어먹을! 담발라가 삼켜버릴 놈!”
욕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욕설의 대상은 루스루훼를 망친 페트로다. 카무게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블랙맘바가 이투리 정글 수상가옥에서 루스루훼를 때려잡을 때, 식겁한 카무게는 눈물을 머금고 숙주의 복부를 갈라서 자궁을 들어냈다. 루스루훼의 씨앗은 상성이 맞는 인간의 자궁에서 꼬박 육 개월간 숙성 과정을 거쳐야 깨어난다. 일단 각성이 시작된 씨앗을 중간에 꺼내면 신성이 없는 괴물이 된다. 바호메이 왕국의 멸망도 왕가의 주술사가 루스루훼의 재생을 잘못 다루었기 때문이다.
자궁을 들어내면 숙성 중인 루스루훼가 망가진다. 하지만 숙성된 루스루훼가 적에게 넘어가면 더 큰 일이다. 상대는 대항할 엄두도 못 낼 막강한 페트로다. 죽 쒀서 개 줄판이다.
카무게는 눈물을 머금고 미성숙된 루스루훼를 안고 도주했다. 아니나다를까 형상을 갖추지 못한 루스루훼가 날뛰기 시작했다. 아차 하면 자신이 잡아먹힐 판이었다. 숙주를 찾지 못한 카무게는 다급해졌다. 이투리 정글에서 사람을 만나기란 사하라 사막만큼이나 어렵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이투리 정글을 벗어날 즈음 호기심 많은 고릴라 부부가 앞을 막았다. 카무게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고릴라의 체내에 루스루훼를 집어넣었다. 유전체 서열로 볼 때 인간과 고릴라 사이의 유전적 분화시기가 5백만 년을 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에 기대를 걸었다.
루스루훼와 숙주의 합체는 간단하다. 고릴라를 최면상태로 만들고 루스루훼가 들어있는 용기를 코에 가져다 대면 자발적으로 침입해서 뇌를 장악한다. 처음 시도해보는 일이라 긴장했지만, 다행히 안착했다.
혹시나 하고 불안정한 루스루훼로 도박했지만 역시나 문제가 발생했다. 고릴라의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지성이 깨어나지 않았다. 간단한 명령을 알아듣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라를 세우고 남을 루스루훼가 기껏 말 잘 듣는 힘센 고릴라가 되어버렸다.
땅을 쳤지만, 루스루훼와 숙주를 재차 분리할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이름도 성의 없이 ‘고리’와 ‘릴라’로 지었다. 블랙맘바의 추적이 두려웠던 카무게는 말 잘 듣는 고리와 릴라의 도움을 받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쳤다.
엔네디 고원의 경계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CIA 지리정보팀은 대략 6만㎢ 내외로 추정한다. 엔네디 고원은 지층 변동이 극적으로 발생한 지역이다. 6억 년 전까지는 메마른 사바나 지역으로 기반암인 화강암층이 거칠게 침식되었다. 약 6억 년 전에는 아마존 강 유역과 비슷한 저습지로 바뀌었다. 잦은 폭우가 거대한 강과 호수를 만들고 침식된 화강암층 상부에 2,000m~7,000m의 퇴적층이 쌓였다.
고원은 동아프리카 대지구대가 찢어질 당시에 횡 압력을 받아 기반암 지층이 계란찜처럼 부풀어 올랐다. 평평한 초원이 졸지에 800m~1,600m의 고원으로 변했다. 노출된 퇴적 사암층은 장구한 세월 동안 폭우와 격류에 시달렸고, 사막으로 변한 후부터 극심한 풍화에 시달리게 된다.
엔네디 고원은 최근 5억 년 동안에 사바나-저습지-열대 습윤지-사막으로 극적인 변화를 거쳤다. 기후 변화와 지각 변동이 붉은 토양, 장대하게 뻗은 깊은 계곡, 바위 아래를 흐르는 와디, 돌출된 거대한 암석 덩어리, 기괴한 형상의 자연 조형물을 보유한, 현재와 같은 특이지형을 만들었다.
철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리가 성큼성큼 걸어서 사암 절벽 가장자리에 우뚝 섰다.
“고리 오른쪽!”
“고리, 왼쪽!”
카무게는 실버백의 눈을 통해서 계곡을 확인했다. 장미목과 브로멜리아드가 듬성듬성 서 있는 바위 계곡의 바닥을 흘러가는 제법 큰 물줄기가 보였다. 놀랄 일은 아니다. 거칠고 메마른 사암과 모래가 덮인 엔네디 고원에도 물이 흐르는 와디와 호수가 곳곳에 숨어있다.
카무게가 훌쩍 뛰어내렸다. 털 달린 짐승 같은 나무의 행렬, 도끼로 찍어낸 듯 좁은 입구와 넉넉한 항아리처럼 확 퍼진 안쪽 곡 구를 살피던 카무게가 신음했다.
“바칠킬레!”
끔찍한 존재를 피해서 지난 8일간 쉴 틈 없이 달려온 목적지가 바로 이곳이다. 바칠킬레는 엔네디 고원 서남쪽의 사암 계곡으로 파다에서 80km 떨어진 위치에 있다. 계곡의 길이는 31km, 폭은 이삼백 미터에서 십 미터까지 좁아질 정도로 제멋대로다.
바칠킬레에는 물이 있다. 수원을 짐작할 수 없는 물이 갑자기 생겨나서 와디와 바위틈을 흘러가다가 흔적없이 사라져버린다. 계곡 곳곳에 호수가 자리 잡고 있지만, 수원을 짐작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부두교 주술사들은 바칠킬레 계곡을 성지로 여긴다. 한때 오백 명에 달하는 주술사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서 이곳 계곡에 머물렀다. 카무게의 스승인 위대한 호웅간 오덤도 이곳에서 주술을 수련하고 좀비를 제련했다.
주술사들이 바칠킬레 계곡에 모여든 이유는 은밀하기 때문이다. 엔네디 고원에 흩어져 사는 수천 명의 원주민은 계곡에 거주하는 부두교 주술사로 인해 끔찍한 횡액을 당했다.
납치된 원주민은 인체 실험을 당하거나 주술 도구로 만들어졌다. 좀비로 재탄생된 원주민은 수백 킬로 밖의 원주민을 잡아오기도 했다. 20세기 초 프랑스 공정대가 이들을 토벌했지만, 악명과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원주민은 악마의 계곡에 접근도 않았고, 입에 담지도 않았다.
카무게는 스승의 유품을 찾고, 신도를 양성하려고 바칠킬레 계곡을 찾아왔다. 이곳에는 물이 있다. 계곡 안쪽의 넓은 평지에 수수, 기장, 옥수수 등의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은밀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천혜의 은둔지인 셈이다.
“가자!”
우워웍- 고리가 카무게를 안고 20m 높이의 절벽에서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쿵- 풍화된 사암이 부스러졌지만, 고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가슴에 안겨있던 카무게가 훌쩍 뛰어내렸다.
“릴라, 물 떠와!”
카무게가 뒤따라 뛰어내란 암컷 고릴라를 돌아보았다. 릴라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득득 긁었다.
“미치겠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고릴라 두 마리는 죽여라, 덤벼라, 멈춰라, 따위의 단순한 말만 겨우 알아듣는 수준이다. 고리가 빨리 죽여라, 죽이지는 마라, 끌고 와라 등의 조금 복잡한 말을 알아듣지만 도낀개낀이다. 말을 가르치기 귀찮아진 카무게가 직접 물병을 들고 와디로 내려갔다. 신도를 모두 잃고 노예가 해야 할 일을 직접 하는 신세가 처량했다.
“진짜 물이다!”
7일 만에 만난 맑은 물이다. 카무게가 털썩 엎드려서 와디에 입을 처박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진짜 물이란 맑고 오염되지 않은 물을 뜻한다. 맑은 물을 찾기 쉽지 않은데다 맑아 보이는 물도 기생충이 오염되었기 십상이다.
“크으~”
카무게가 도수 높은 위스키를 마신 듯 진저리쳤다. 오염된 물도 마법으로 정수해서 마실 수 있지만, 천연의 맑은 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지난 8일간 이투리 정글을 빠져나와서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수단을 거쳐 이곳 엔네디까지 3,100km를 밤낮으로 달렸다.
달린 놈은 고릴라지만, 자신도 잠 한숨 못 자기는 마찬가지다. 지치고 갈증난 신체에 물이 들어가자 꿀맛이 따로 없었다. 카무게는 배가 출렁거릴 정도로 물배를 채웠다. 멍하던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다.
그는 와디에 주둥이를 처박고 찹찹거리는 고릴라 두 마리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혀를 주걱처럼 사용해서 물을 마시는 꼬락서니가 야생 고릴라와 다를 바 없었다.
“으~ 빌어먹을!”
카무게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눈앞에 있는 미물은 현신한 천사, 루스루훼는커녕 말귀도 못 알아듣는 바보 고릴라다. 천고의 보물인 천사의 알이 아차 하는 순간에 쓸모없는 돌멩이로 변했다. 눈앞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다.
뿌드득- 이빨이 부러져라 갈았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했다. 첫 번째 죽일 놈은 보스코 은타간타다. 은타간타가 루스루훼의 알을 탐내지만 않았어도 지금쯤이면 루스루훼를 활용해서 모부투 정권을 엎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죽일 놈은 페트로다. 카당카는 루스루훼 각성에 최적의 장소였다. 보름, 아니 열흘만 주어졌으면 루스루훼가 모두 각성했다. 루스루훼 셋이면 천하무적의 비대칭 전력이다. 아메리카합중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이계의 르와인지 종말의 괴수인지 모를 놈에게 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십여 년간 애써 기른 군세는 괴멸되고 3년간 꾸며온 근거지도 박살 났다. 집과 세력을 잃고 상갓집 개처럼 쫓겨났다. 무엇보다 큰 타격은 루스루훼 손실이다. 자아 없이 힘만 센 짐승, 고릴라 두 마리를 지켜보는 카무게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나왔다. 이래서야 주술로 강화한 오마와 다를 것 없다. 아니 오마보다 훨씬 강하긴 하다.
우웍- 실버백이 벌떡 일어나서 계곡 안쪽을 노려보았다. 탕- 총성이 울렸다. 바윗덩이 같은 어깨에 총탄이 퍽 꽂혔다. 실버백의 눈이 붉게 변했다. 스스스- 어깨에 박혔던 총탄이 곧바로 밀려나왔다. 탄자가 땅바닥에 툭 떨어질 때 상처는 이미 아물었다. 블랙맘바, 쌈디, 혼터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재생력이다.
탕탕탕- 탕탕탕- 계곡 안쪽에서 연속 총탄이 날아왔다. 특등 사수인 듯 총탄은 손실 없이 고스란히 고리의 몸에 박혔다. 고리가 간지럽다는 듯 몸을 뒤틀었다. 박혔던 총탄이 후두둑 떨어졌다.
“선객이 있었군.”
카무게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불량품이지만 루스루훼의 신력이 들어있는 몸이다. 고리와 릴라는 주술로 덩치와 힘을 키운 어쭙잖은 오마와는 차원이 다르다.
바칠킬레 계곡 상류, 황토색 천막 수십 개가 줄지어 있고, 한 무리의 낙타떼가 바위 그늘에서 한가하게 되새김질 중이다. 대형 캐러밴의 휴식 캠프와 별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외곽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지프와 바이크 수십대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기관총 진지가 구축되어 있다.
“이마드!”
유난히 큰 중앙 막사에서 잔뜩 갈라진 쉰 목소리가 내 나왔다.
“각하, 부르셨습니까?”
건장한 30대 아랍인이 막사 입구의 펠트 천을 젖히고 들어섰다. 야전 테이블에 코를 박고 있던 남자가 지도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고개를 들었다. 살 한 점 없는 깡마른 얼굴, 번들거리는 눈동자, 찔리면 다칠 것 같은 예리한 매부리코, 알로아딘 소장 아부 반시리다.
“한낮에 사격 훈련은 피하라고 하지 않았나? 현재 온도는 48℃다. 메마른 공기는 단련된 전사의 폐도 태운다.”
“훈련이 아니라 실전입니다.”
“실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반시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엔네디 고원은 독특한 곳이다. 붉은 대지와 파란 하늘,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모래바람이 어울려서 착시 현상을 일으킬 때가 많다. 난데없이 낙타를 탄 한 무리의 대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무장한 군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놀라서 총질을 하는 놈도 있지만, 지상의 열기와 지친 뇌가 만들어 낸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전사들이 이브리스를 저지하는 중입니다.”
“이브리스? 허, 툭하면 지니가 나타났다고 총질하더니 이젠 우두머리가 나타난 모양이군.”
반시리가 삼백안을 희번덕였다. 지니의 왕인 이브리스의 본체는 불이다. 엔네디 고원의 혹독한 열기는 이브리스를 부르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