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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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설거지는 나도 싫다10
선우현은 땅바닥에 처박힌 휀다와 쌈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좀비 따위에 나미르(나는 용이다.) 선우현의 위상이 시궁창에 처박힌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무지막지한 파워도 기함할 일이지만, 수령 동지의 지도를 능가하는 말빨에 억장이 무너졌다.
좀비는 겉보기에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사고력이 없다. 사고력이 없는 존재는 진화의 둑을 뛰어넘지 않는 한 발전할 수 없다. 본능에 따른 행태를 반복할 뿐이다.
해달은 조개를 배 위에 올려놓고 돌로 껍질을 깨지만 그뿐이다. 침팬지가 나뭇가지로 흰개미 낚시를 한다지만 그뿐이다. 해달이 돌도끼를 만들 수 없고, 침팬지가 나뭇가지에 목줄과 바늘을 달 수도 없다. 좀비는 좀비일 뿐 인간일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석탄처럼 검은 피부가 옅은 홍색으로 바뀌었다. 니그로가 아니라 스칼릿에 가깝다. 문제는 좀비 아니라 좀비 할애비라도 철판을 찢고 목사님 언변을 구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번쩍하고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환골탈태!’
선우현의 상상력은 끝 간 데를 몰랐다. 껍질과 속이 바뀌었으면 환골탈태밖에 없다. 쌈디의 변화는 아녀영웅전에서 묘사된 그대로 똑똑해지고 신체가 강해졌다. 와킬도 오금연노법을 통해서 환골탈태했다고 했다. 오금공이 껍질이라면 오금연노법은 알맹이다.
사람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경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본인의 경험에 기초한 선입견이 개입되지만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럴 수가!
의심이 불길처럼 일었다.
지난 일 년간 보이지 않더니 와킬이 쌈디에게 오금연노법을 베풀었다. 자신이 원할 때는 인간의 몸으로 견딜 수 없다고 딱 자르더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선우현의 가슴에 불신이 싹텄다. 자신은 같은 동포고 쌈디는 근본도 모르는 깜둥이다. 남북으로 나누어져 싸우지만 같은 동포라고 하더니 말짱 헛소리다. 그는 쌈디에게 형편없이 당한 좌절감보다 블랙맘바가 쌈디만 챙겨준다는 상실감이 더 컸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누군가를 탓하는 선우현의 불치병이 발동되었다.
쌈디는 본바탕이 신실하기에 좀비였을 때도 살인을 피하고, 인간화된 뒤로는 대우선사가 후계자로 여길 만큼 충직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의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지만, 본성은 무덤까지 함께 간다. 선우현이 변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또한,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도 농후했다.
‘흐흐, 저 녀석 얼굴 좀 보라지. 그러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내가 생각해도 주인님의 말은 멋있어. 빨리 한글을 배워야 멋있는 말을 정리해서 자알 써먹을 텐데 말이야.’
쌈디의 뇌리에서 선우현과 벌인 드잡이질은 이미 잊혔다. 멋있는 행동을 하고 멋있는 말을 뱉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다. 선우현이 피를 토할 일이지만, 항상 현실에 충실한 쌈디야말로 행복의 비밀을 푼 존재일지도 모른다.
바크리 등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쌈디를 바라보았다. 어떤 가르침을 받았기에 일 년 만에 렁후(Langue kungfu, 혀로 하는 쿵후)가 천의무봉 경지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너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이 미소 짓게 하였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라.]그녀가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함축적인 말인가! 봉사하는 삶을 살아라, 남을 도와라, 유머를 생활화하라, 등등의 진부한 말이 필요없는 명언이다. 강력한 신체에 만부막적의 전투력을 가진 남자가 깊은 지성까지 갖추었다. 상남자도 이런 상남자는 없다.
‘오늘 저녁에 당장 데이트를 신청해야겠어.’
무울소리 교수의 눈에서 하트형 레이저가 뿜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까마득히 잊었다. 쌈디가 그녀의 내심을 알았으면 망연자실하지 않았을까!
속 좁은 선우현이 시무룩하니 한쪽에 찌그러졌다. 선우현이 쿨하게 쌈디를 인정했으면 기분 좋게 끝났을 대타인데 뚱해 있는 바람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종간나새끼래 니 팔뚝 굵다. 49호 종간나가 홀로 충신이디. 내래 더러워서 못 해먹겠슴메.”
선우현의 투덜거림에 힘이 빠졌다. 블랙맘바에게 오금연노법을 따지고 싶었지만, 눈알 시뻘건 놈과 인상 고약한 짐승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예전엔 투정도 부리고 기어오르기도 했지만, 뻘건 놈과 살벌한 고양이 때문에 엉구럭 부리기도 글렀다. 어떻게 된 게 와킬 주변에 갈수록 센 놈이 나타났다. 이러다간 잊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부쩍들었다. 봄날은 갔다. 찢어진 철판 위로 선우현의 봄날은 갔다.
‘그것참! 내가 사람을 잘못 보기는 처음이네.’
무쌍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자의식이 병적으로 강한 인간이다. 선우현은 함께 사선을 넘고 몇 차례나 목숨을 구함 받고, 먹고살 길까지 열어주었음에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인성의 차이인지 체제의 부작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와킬, 이 정도 품질의 활주로를 만든 쫄따구님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기장 코니예 레옹이 엄지를 번쩍 들고 소리쳤다. 눈치가 백 단인 인간이다. 시무룩해진 선우현의 기를 살려주려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레옹은 프와투 제3 수송 항공대 대위 출신이다. 루만 작전 당시 블랙맘바가 탑승한 허큘리스의 기장이었다. 침착한 상황 대처 능력에 반한 무쌍이 팰컨 조종사로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감복한 레옹은 기꺼이 블랙컬처에 합류했다.
“그렇군.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단단한 활주로를 만들다니 쫄따구가 머리를 많이 썼구먼.”
무쌍이 활주로를 발로 쿵쿵 밟았다. 회백색 활주로는 코르크처럼 무른 듯하면서 단단했다. 활주로는 주변의 현무암질 검은 토양과 대비되어서 조종사가 식별하기도 좋았다.
“이곳에 고령토 비슷한 백토가 많디요. 백토에 모래를 섞고 폐기 등급의 면화를 넣었슴메. 교반기로 고루 섞어서 활주로에 700mm 두께로 깔았슴메.”
선우현의 기가 살았다. 생각이 많으면서도 단순한 인간이 선우현이다. 선우현이 힘들게 활주로를 만든 이유는 무쌍의 지시 때문이었다.
무쌍은 사마리아 농장과 지푼다리에 활주로를 만들 때 가능하면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비행장 활주로 대부분은 황토를 다져서 만든 흙길이다.
지각 표면을 덮은 흙은 수십cm에서 수십m에 불과하다. 육지부의 모든 생물이 종이짝처럼 얇고 허약한 흙에 기대어 살아간다. 인간은 생육의 기반인 허약한 종이짝을 너무 쉽게 훼손한다. 스스로 목을 조르는 행위다.
흙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어버리면 죽어버린다. 땅을 빌려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무쌍은 노바토피아 건설에도 가능한 한 천연재료를 쓰고 오염 재료를 피하도록 지시했다.
“고령토라~ 그거 좋지.”
무쌍은 직관적으로 노바토피아 특산품에 도자기를 즉각 추가했다. 먹거리는 많을수록 좋다. 한국에 도자기 기술자는 엄청나게 많다. 이천이나 여주에 가면 한 집 건너서 도자기를 만들고 전국적으로 도자기가 생산되는 읍면이 열 개는 넘는다.
고령토는 탄산이나 지하수가 바위 속의 장석류를 화학적으로 분해해서 만들어진다. 고령토라 불리게 된 연원은 중국 협서성 서안의 고릉(高陵) 지방에서 많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생각하듯이 경북 고령에서 연유된 명칭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백토라 불린다.
도자기나 토기 제작은 육체노동의 연속이다. 무거운 흙과 뜨거운 불과의 싸움이다. 제작 비용의 90%는 인건비다. 아프리카에는 값싼 인력이 넘쳐난다. 좋은 흙만 있으면 생산은 문제가 아니다.
“쫄따구, 덕분에 좋은 사업 아이템이 생각났다. 승패에 연연하지 마라. 주먹질은 주먹질일 뿐이다. 이기고 지는 승부 자체에 집착하면 틀에 갇히게 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함으로써 배우게 된다.”
무쌍은 진심을 담아서 충고했다.
“알았슴메. 내래 나잇살이나 먹어서 부끄럽수다래.”
“북한 말투부터 고쳐라. 한국에 들어가서도 북한 말을 쓸 거야?”
“한국으로 데려갈 거임메?”
선우현의 눈이 반짝했다.
“때가 되면 당신도 들어가야지. 아니면 진심으로 노바토피아를 고향으로 삼거나.”
“알았시오. 내래 한국땅에 미련은 별로 없슴메. 그래도 결혼은 동족끼리 해야 하지 않겠슴메.”
“동족도 좋지만, 타민족도 나쁠 것 없다. 교통과 통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생활권이 넓어질수록 민족주의는 흐릿해진다. 원래 한 조상을 둔 다람쥐와 청설모가 지역적으로 고립되면서 종이 갈라졌다. 반대로 고립이 사라지면 다르다는 개념이 희미해진다.”
“오오! 뚜바이는 아는 것 많아서 행복하겠어요. 지금은 생물학 시간이 아니라 지질학 시간이랍니다.”
무울소리 교수가 슬쩍 비꼬았다.
“이런! 부록에 정신이 팔렸군. 쫄따구, 보안 조치는 취했나?”
“외부에서 들어온 지하수 개발업자와 농장 인부 100명은 모하메드 동무가 관리 중임메.”
“그들은 저택 별관에 격리 수용했습니다. 현재 유정에서 쏟아져 나온 원유 처리 작업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모하메드가 대답했다.
“원유가 얼마나 쏟아져 나오나?”
“시간당 200배럴이 솟구칩니다. 제방을 쌓고, 장비로 구덩이를 파서 밀어 넣고 있습니다.”
무쌍은 시간당 200배럴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시험 시추공 원 홀, 그것도 오일 지층이 아닌 소금 지층에서 시간당 200배럴이 쏟아져 나온다면 보통 유전이 아니다. 모하메드가 승용차 일천 대를 주유할 양이라고 했으면 실감 났을 것이다.
“흠, 보상은 충분히 했겠지?”
“넵, 지하수 개발업자에게 별도의 사례를 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농장 인부는 한 달 치 노임을 추가 수당으로 지급했습니다.
“일주일이면 토지 소유권, 개발과 관련된 행정적인 절차, 탐사 시설까지 모두 정리된다. 지하수 업자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일주일간 억류해라.”
“알겠습니다.”
선우현과 모하메드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보스 뚜바이님, 남자의 수다는 미뤄두고 검은 황금을 보러 가실까요.”
무울소리 교수가 대뜸 쌈디의 팔짱을 끼고 앞장섰다.
“어 어!”
5톤 중량의 사르코수쿠스를 팽개치는 쌈디가 힘없이 끌려갔다.
“쌈디 인기 좋네!”
바크리가 히믈히믈 웃었다. 사마리아 농장은 900만 평이 넘는다. 차를 타고 돌아야 할 만큼 넓다. 일행은 30분을 걸어서야 유정 개발지에 도착했다. 위치를 물을 필요도 없다. 달걀 썩는 듯한 냄새는 가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역한 냄새는 원유다.
푸파파파- 처럭처럭-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장구한 시간을 땅속에 억눌려있던 석유와 가스가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소음이다. 시커먼 석유 기둥이 30m 높이까지 솟구쳤다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금세기에는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유전에서만 발견된다는 분출 유정이다.
“석유다!”
털썩 무릎을 꿇고 끈적한 원유를 손으로 찍어 올렸다. 역한 냄새가 나는 흑갈색 액체, 이것이 세상을 웃고 울리는 금세기 최고의 보물이다. 감개무량했다. 말로 들었던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차이는 컸다. 유전을 소유한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아니 유전을 직접 눈으로 본 한국인도 없을 것이다.
철거덕- 철거덕- 지옥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축전차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갱도를 드나드는 궤도차는 사람을 태우는 축전차와 석탄이나 장비를 싣는 광차가 있다. 축전차가 빨려 들어가는 시커먼 갱도가 바로 지옥이다.
막장은 두 개의 하늘(갱도 천정과 바깥 하늘)이라 불린다. 탁한 공기 속에서 온종일 습기 젖은 동바리(갱도를 받치는 통나무)를 세우다 보면 자신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은 한국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값싼 기름에 익숙해져 가던 정부와 국민은 화들짝 놀랐다. 폐갱을 열어젖히고 재선탄후 버려진 버럭을 3차 선탄하는 법석을 떨었다. 탄광을 떠났던 선산부들이 고임금에 끌려서 속속 모여들었다.
그 서슬에 14살 무쌍도 곡괭이를 메고 막장에 들어갔다. 탄광 선산부는 공무원 봉급이 4~5만 원 하던 시절에 한 달 만근시 8만원을 받았다. 경험없는 후산부도 4만원은 받았다. 막장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무리에는 또 다른 무리가 따른다. 정부의 독려에 힘입어 질 낮은 석탄이 대거 연탄공장에 투입되었고, 수많은 민초가 가스 중독으로 죽어갔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땅, 한국인치고 석유로 인한 애환을 겪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이게 석유다!’
무쌍은 냄새나고 미끌거리는 액체를 한없이 주물렀다. 끝없이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던 축전차가 빽빽이 늘어선 말대가리와 크리스마스트리(생산정두장치의 속어)로 바뀌었다. 킁- 디노가 머리로 무쌍의 어깨를 툭 쳤다.
“응?”
상념에서 깨어난 무쌍이 디노를 쳐다보았다. 디노가 앞발로 땅을 뒤덮은 시커먼 석유를 가리키고 머리를 흔들었다. 냄새나서 못 견디겠다는 표시다. 후각이 예민한 만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허락을 얻은 디노가 뒤로 멀찌감치 빠져나갔다.
“가만, 이건 아니잖아.”
디노의 행동이 현실을 일깨웠다. 분출 유정을 개발한 석유업자가 기름을 덮어쓰고 엉엉 울었다지만, 눈앞의 상황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반경 수백 미터가 온통 흑갈색 기름으로 뒤덮이고 기름띠가 외곽으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땅을 뒤덮은 원유는 둘째치고 분수처럼 솟구치는 원유는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