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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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1
“아이참, 오늘따라 웬 모래 먼지가 이렇게 많이 쌓인담. 주인님이 오시면 에델 아가씨와 앉아서 호수를 구경할 텐데 어쩜 좋아.”
바셀이 쫑알거리며 총채로 의자에 쌓인 모래 먼지를 탁탁 털어내고 물걸레로 닦았다. 엎드려서 걸레질하면 동그란 엉덩이가 흔들리고, 팔을 들어서 먼지를 털면 티셔츠가 말려 올라가서 앙증맞은 배꼽이 드러났다. 바셀은 개의치 않았다. 괄목상대라 해야 할까 상전벽해라 해야 할까? 아무튼, 놀라운 변신이요. 식겁할 패션이다.
흔들의자는 쿠르드족 장인이 꼬박 한 달간 밤새워 만든 역작이다. 보석에도 관심 없는 에델이 아끼는 유일한 사치품이기에 바셀도 흔들의자를 유난히 챙겼다. 오늘만 세 번째 청소다.
뚜바이부르파가 신의 화신 체로 경외의 대상인이라면 에델 아가씨는 함께 웃고 우는 천사다. 노바토피아 인은 누구나 에델 아가씨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테라스 흔들의자에 앉아 요아 호수를 바라보는 금발의 미녀는 노바토피아 인의 아바타가 되었다. 요아 호숫가 저택 테라스의 물푸레나무 흔들의자는 엉뚱하게도 고귀한 사랑, 정절의 대명사, 반드시 이루어지는 사랑의 대명사로 유명해졌다. 무쌍이 알면 기함일 일이다.
[배사메 배사메 무초(키스해 주세요. 많이 많이 해 줘요)
깨 땡고 미에도 아 빠르데르떼
(당신을 잃을까 두려워요.)
뻬르데르떼 데스뿌에스
(앞으로도 두려워요)
끼에로 페네르떼 무이 세르까
(아주 가까이 당신을 갖고 싶어요)
……]
주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듣는 귀가 시원해지는 맑은 목소리지만, 안타깝고 절절했다.
“아휴! 어쩜 좋아, 아가씨가 말라죽네! 죽어.”
뚜다다닥- 바셀이 신경질적으로 총채를 휘둘렀다. 뚜바이부르파님이 지하수를 개발하고 훌쩍 떠난 지 일 년이 지났다.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화 없고, 어디로 갔는지도 몰랐다.
옴부티님은 뚜바이부르파님이 고향에 갔다고 했다. 바셀은 깜짝 놀랐다. 뚜바이부르파는 신의 화신이다. 신의 고향은 당연히 천국이다. 천국은 즐겁고 기쁜 일만 가득하다고 했다. 예쁜 천사들도 수없이 많을 텐데 천국에 눌러살면 에델 아가씨는 어쩌란 말인가!
[미라르메 엔 두스 오호스(그대의 눈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싶어)
에스다르 훈뜨 아 띠
(날마다 그대 곁에 있고 싶어요)
피엔사 깨 딸 뻬스 마냐나 요 야 에스타르 레호스
(생각해 보세요. 내일 나는 먼 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무이 레호스 데 아끼
(이곳에서 아주 멀리요.)]
배사메 배사메 무초
(키스해 주세요. 많이 많이 해 줘요)
꼬모 시 푸에라 에스타 노체 라 울티마 배스.
(오늘 밤이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요)
깨 뗑고 미예도 아 뻬르데르떼 뼤르데르떼 데스뿌에스
(그대를 잃을까 두려워요.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떡하나요?)
“아! 아가씨~”
바셀이 가슴을 누르고 휘청했다. 저 마지막 소절만은 정말 듣기 싫었다. ‘뻬르데르떼 뼤르데르떼’ 연속되는 노랫말이 열아홉 살 어린 가슴을 푹푹 찔렀다. 그리움에 지친 아가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뚜바이부르파님 미워!”
바셀이 중얼거리고는 흠칫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듣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지만, 뚜바이부르파님이 밉다고 말한 불경스런 자신의 입이 믿어지지 않았다.
[바셀 자디르, 너는 본래 죄가 없다. 스스로 죄가 있다 여긴다면 나 뚜바이부르파가 죄를 사하노라. 모하메드 자디르의 여동생 바셀 자디르의 마음과 몸이 깨끗함을 나 뚜바이부르파가 선언한다.]누구의 딸, 누구의 여동생에서 바셀 자디르라는 한 인간을 인정해 주신 분, 생명을 지옥에서 꺼내준 뚜바이부르파님의 복음이 토씨 한 개까지 생생히 떠올랐다. 복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
자신과 가족, 일족 전체의 목숨을 구해주고, 살아갈 땅을 주고, 훌륭한 남편까지 구해준 뚜바이부르파님을 원망하다니 미쳤다. 생명의 은인이자 믿음의 주인,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뚜바이부르파다.
“흥, 그래도 미운 건 미운 거지.”
이 세상 누구보다 좋아하는 뚜바이부르파지만, 천사 같은 아가씨의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는 나쁜 남자는 미웠다. 투다다닥- 총채를 터는 바셀의 손길이 바빠졌다. 열아홉 살 소녀의 감성은 꽃잎보다 연약하고 예민했다.
“바셀!”
“네, 아가씨!”
듣는 사람의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부름이다. 바셀이 얼른 테라스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섰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던 에델이 돌아보았다.
“금방 먼지가 덮일 텐데 팔 빠지게 청소하면 뭐해.”
“헤헤, 언니가 언제 앉을지 모르잖아요.”
“하여튼 쓸데없는 짓 그만두고 쉬어. 하르마탄이 불어올 철도 아닌데 웬 모래바람이 이렇게 부나 몰라.”
“아직도 요리 연습 중이세요?”
“응, 이제 막 재료 손질은 끝냈어. 좀 쉴까.”
주방에서 에델이 나왔다. 바셀과 비슷한 차림새다. 골반을 겨우 감싼 핫팬츠와 딱 달라붙는 티셔츠가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냈다. 분이 묻어날 듯 뽀얗던 얼굴이 연한 구릿빛으로 그을렸을 뿐 눈부신 미모는 변함이 없었다.
황금을 실로 뽑아낸 듯한 금발, 늘씬한 키에 절묘하게 흐르는 곡선, 머리에 꽃은 한 송이 익소라 치넨시스가 관능미를 더했다. 청순미에 관능미가 더해진 에델은 블랑슈 거리(창녀촌 밀집지역)의 막대사탕 남자도 흠칫할 정도로 뇌쇄적이었다. (막대사탕을 든 남자는 볼일이 끝났다. 삐끼가 잡지 않는다.)
“아!”
바셀이 가느다란 비음을 토했다. 여자인 자신도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얼굴에 뭐 묻었니?”
에델이 밀가루 반죽이 묻은 손을 들어 올렸다.
“아뇨. 아가씨가 너무너무 예뻐서요.”
“싱겁기는……. 예뻐면 뭐해. 봐줄 사람도 없는데.”
“그러게요. 뚜바이부르파님은 너무해요.”
“할 일이 많은 분이란다. 그분이 그저 그런 돈 많고 잘생긴 남자라면 내가 홀딱 반했겠니?”
에델이 삐죽이는 바셀을 외면하며 한숨 쉬듯 말했다. 그를 처음 만난 아띠의 병원이 기억났다. 본인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고통에 빠진 아이들의 몸에서 기생충을 빼내 주던 사람, 초인적인 능력보다 영혼의 그릇에 반해 버렸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처럼 홀연히 나타난 남자는 그렇게 자신의 가슴에 박혀버렸다.
“그건 그래요. 좋은 남자는 왜 나쁜 남자일까요?”
“훗!”
바셀의 요령부득 언변에 에델은 실소가 터졌다. 진정한 사나이는 여자에게 나쁜 남자일 수밖에 없다. 루드리 에델의 치마폭에 감싸인 뚜바이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지하나님은 어디 가셨니?”
“낚시 가셨나 봐요. 요즘은 툭하면 낚싯대를 메고 나서더라고요.”
“아픔이 많은 분이야. 월척을 잡으면 기분이라도 풀릴 텐데. 티그레는 어쩌고?”
에델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이지하나는 석 달 전 옴부티 아저씨가 데려온 요리사다. 가족을 모두 잃고 겨우 어린 딸만 데리고 탈출한 에리트레아인으로 아픔이 많은 분이다. 이지하나는 뛰어난 요리사였다. 아랍식 요리와 프랑스 요리에 능하고 동양식 요리에도 해박했다.
그는 예리한 칼 한 자루로 자신을 증명했다. 머리와 뼈만 남기고 살을 저며낸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칠 때 에델은 만세를 불렀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에델 본인도 자신의 요리 솜씨가 썩 훌륭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훌륭한데 미맹인 제자가 기법을 습득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티그레는 아크라가 돌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요아 호수는 보기만 좋지 짠물인데 무슨 고기가 있겠어요. 저도 요리장님이 개구리밖에 없는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혹시 개구리 요리를 만드시려고?”
바셀이 움찔했다. 아랍권에서 비늘 없는 개구리는 상상할 수 없는 요리재료다. 시리아 정교도는 아랍권 문화를 오랫동안 강요받았고 상당 부분 동화되었다. 문화적 용해는 바크리 등의 정교도 지도자가 종교의 무오류성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를 품게 된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여자도 남자가 이해 못 하는 행동을 할 때가 많거든.”
“어쩌면 응앵가 세리르의 부쿠 호수에 갔을지도 몰라요. 그곳은 물고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어쩌지? 부쿠 호수는 50km나 떨어져 있잖아.”
에델의 얼굴이 흐려졌다.
“왜요?”
“뚜바이님이 지금 사마리아 농장에 계셔. 오늘 노바토피아에 오시면 어떡해!”
“아, 그래서 요리 실습을 한 거예요? 사람을 보내서 불러올까요?”
“요리장님을 번거롭게 하기는 싫은데…….”
에델이 우물쭈물했다.
“아가씨는 그게 문제예요. 이지하나님은 저택의 요리사고 고용인이에요. 지금도 너무 많은 자유를 주는 거라고요.”
“어머!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바셀은 못됐어. 그분은 마음이 아픈 분이야. 요리는 마음이야. 아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를 먹는 사람이 즐거울까?”
“……”
바셀의 정신이 잠시 방황했다. 역시 천사의 마음을 가진 아가씨다. 근데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사실은 그이가 먹을 음식은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서 그래.”
에델이 배시시 웃었다. 요리는 마음이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뚜바이를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 즐거움을 타인에게 왜 준단 말인가!
“아가씨, 오전 내내 환자를 진료하셨잖아요. 저도 피곤한데 오죽하겠어요. 요리장님께 그냥 맡기고 쉬세요.”
바셀은 못내 불안했다. 하느님은 에델 아가씨에게 미모와 마음씨, 몸매, 명석한 머리, 모든 것을 허용했지만, 요리 실력만은 주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아가씨의 혀는 미맹에 가깝다. 향료를 강하게 쓰는 바람에 자신도 식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냐, 부야베스 정도는 내가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왜 꼭 부야베스에요?”
“지난번에 그이가 칼칼한 매운탕을 먹고 싶다고 하셨거든. 이지하나님께 물었더니 동양 요리인 매운탕은 부야베스와 비슷하다고 하셨어.”
“그럼 맛도 없어 보이는 냉동 물고기들이 전부 부야베스 재료란 말이에요?”
바셀이 고개를 쭉 빼서 씽크 볼에 담긴 냉동 물고기를 들여다봤다.
“이지하나님이 부야베스 육수용 물고기는 못생길수록 진한 국물이 나온다셨거든.”
“아휴, 아가씨 때문에 내가 못 살아. 그렇다고 헤드 피시를 넣으면 어떻게 해요. 덜 자란 놈은 독이 있단 말이에요.”
“흥이다. 뚜바이님은 오히려 좋다고 할걸.”
“아이 몰라요. 아가씨가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에델이 핫팬츠 단을 잡아 끌어내리며 바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차림도 바셀과 다를 바 없이 골반과 가슴만 가리고 나머지 신체는 훤히 드러나 있다.
핫팬츠와 티셔츠는 노바토피아 여성들의 일상복이다. 일할 때는 뚜바이가 전해준 몸뻬와 행주치마라는 요상한 옷을 입지만, 평상시에는 여자 대부분이 핫팬츠를 입는다. 문제는 그 시발점이 에델 본인이란 점이다.
“아가씨, 또 걱정이세요? 아가씨도 뚜바이님이 와킬 상회에서 직접 하신 말씀을 들으셨잖아요. 저는 외울 수도 있어요. [앞으로 청바지도 입고, 핫팬츠도 입고, 소매 없는 티셔츠도 입어라. 예쁜 얼굴과 몸매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름다움은 만인이 즐겨야 한다.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은 죄악이다.]”
바셀이 턱을 당기고 꼿꼿이 서서 근엄한 목소리로 무쌍의 흉내를 냈다.
“풋, 그렇긴 한데~”
에델이 버벅거렸다. 바셀과 아이쉐의 주장에 밀린 에델은 옴부티에 여성의 복장 자유화를 건의했다. 펄쩍 뛰던 옴부티도 뚜바이부르파의 말씀을 들이대자 꼼짝 못 했다.
바셀의 막무가내에 에델이 핫팬츠를 입자 여성들이 너도나도 핫팬츠를 입기 시작했다. 덕분에 노바토피아 남자들의 눈이 호강을 누렸다.
거리에 나서면 차도르나 니깝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햇볕 아래 팔다리를 온통 드러낸 여자가 활보한다.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노바토피아 여성들로서는 에델이 어둠을 벗겨준 한 줄기 빛인 셈이다.
뚜바이부르파는 은근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사건을 저지른 에델은 은근히 켕겼다. 그렇다고 여자들에게 다시 시커먼 천을 덮어씌우는 만행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요리장님을 부를까요?”
불안해진 바셀이 한 번 더 물었다.
“아냐. 저녁에 먹음직한 매운탕거리를 잡아올지도 모르잖아.”
에델이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마음가는대로 몸가는 대로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알았어요. 저는 아래층 청소하러 가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에델은 자신만만했다. 은자메나에서 생소한 김치찌개로 뚜바이를 감동(?)하게 했다. 맛에 감동한 뚜바이는 눈물까지 흘렸다. 부야베스는 김치찌개보다 훨씬 익숙한 음식이다. 아빠가 좋아해서 프랑스에 갈 때마다 먹었던 요리다. 요리장이 조리법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에델은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올리브유 한 통을 몽땅 투입했다. 올리브유가 충분해야 육수가 깊은 맛을 낸다고 했다. 양파, 회향, 당근, 토마토, 마늘을 팍팍 집어넣고 불을 잔뜩 올렸다. 과다 투입된 올리브유가 미처 졸아들지 못한 채 재료를 코팅했지만, 에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재료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좋은 향기가 폴폴 풍겼다.
“홍홍! 어렵게 한국산 마늘을 구해 넣었는데 맛있지 않고 배겨. 아이, 너무 맛이 좋으면 안 되는데. 그이가 뚱보가 되면 어떡해!”
에델은 터무니없는 걱정을 하며 재료를 듬뿍 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