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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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2
물론 수석 요리장이 알려준 레시피에 충실히 따랐지만, 문제는 양이다. 무게단위도 부피단위도 아닌 적당량, 살짝, 분량 등의 형용사가 판치는 요리계는 의학을 전공한 에델의 영역이 아니었다.
의료계는 계량 단위가 명확하다. [소아 패혈성 쇼크 환자의 부신 기능부전이 발생하면 12시간 관찰 후 중심정맥 산소포화도가 60% 이하일 때 스테로이드 2mg을 투여한다.] 라고 시간, 행동지침, 치료방법, 약물, 분량 등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반면에 요리는 적당량을 넣는다. 살짝 조미한다. 분량을 넣는다. 등의 레시피 외계어가 난무한다. 에델의 천박한 내공으로 요리계를 넘보기란 애초 언감생심이었다. 예로부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파슬리에 사프란을 섞으면 풋내가 사라진다고 했지.”
에델은 선반에서 Azafran de la Mancha Denominacion de Origen(라 만차 산 사프란)이라 쓰인 유리병을 꺼냈다. 향수병처럼 작고 섬세한 수정 병에 말린 보라색 꽃술이 들어있다.
사프란은 따뜻한 물에 풀어서 사용하라고 요리장이 가르쳐 주었다. “물보다야 와인이지.” 에델이 중얼거리며 와인잔에 보로도산 백포도주를 가득 따르고 핀셋으로 사프란을 듬뿍 집어서 투입했다.
“아! 아름답다!”
에델의 눈이 몽롱해졌다. 라 만차의 사프란은 향신료가 아니라 염색제에 다름 아니었다. 꽃술이 요동치며 붉은색에 가까운 진노랑색을 토해냈다. 폭발적으로 퍼져나온 노란색이 백포도주를 황금 포도주로 만들었다.
‘맛만 조금 볼까?’
에델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포도주를 노려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갈등하던 눈빛이 체념으로 바뀌었다. 체질상 알코올 성분이 조금만 들어가도 얼굴이 새빨개진다. 님에게 술 취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여자는 없다. 파슬리에 황금 포도주를 골고루 뿌려서 냄비에 투입했다.
에델은 자신이 방금 지옥 문턱에 다녀왔음을 꿈에도 몰랐다.
사프란은 사프란 크로커스라는 보라색 꽃의 암술만을 따서 말린 향신료다. 사프란 크로커스는 서남아시아와 이베리아 반도에 서식한다. 수술을 중심으로 암술 세 가닥이 나 있는데 수술을 피해서 암술만을 한 가닥씩 따야 한다. 사프란 1kg을 얻으려면 사프란 크로커스 20만 송이를 따야 한다. 스페인의 정품 라만차 사프란 1kg을 구입하려면 한화 1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 사프란 크로커스 한 송이에 500원꼴인 셈이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시대부터 왕가와 귀족 가는 사프란을 의복과 빵의 염료로 사용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금색은 고귀함과 부의 상징이었다. 카로테노이드 색소는 강력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알몸이 황금색으로 빛난 이유가 사프란을 풀어 넣은 욕조에 몸을 담갔기 때문이라 한다.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의복을 걸치고 샛노란 빵을 먹으며 사치를 만끽했던 왕국들은 사라졌지만, 사프란은 굳건히 남았다.
사프란이 고대부터 향신료의 제왕이라 불린 이유는 값비싸고 희소할 뿐 아니라 암살용 독약으로 은밀히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사프란 15g이면 치사량이다. 훈증 과정을 거쳐서 크로신 성분이 농축된 라 만차의 사프란은 8g으로 성인을 독살할 수 있다. 게다가 크로신이 알코올에 용해되면 독성이 더욱 강해진다. 선무당이 독극물을 제대로 만든 셈이다.
에델은 준비된 못생긴 생선을 부야베스 육수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락 피시(볼락), 뭉크 피시(아귀), 레드뮬(갯장어), 헤드 피시(작은 개복치)가 줄지어 들어갔다.
“아악, 안 돼!”
에델이 비명을 질렀다. 역시 분량이 문제다. 대책 없이 재료를 집어넣다 보니 육수가 냄비 밖으로 넘쳤다. 허겁지겁 재료를 들어내던 에델이 머리를 탁 쳤다. 큰 그릇을 쓰면 될 일을 삽질했다. 에델은 재료가 들어있는 냄비보다 세배쯤 큰 냄비를 불에 올리고 절반쯤 익어가는 재료를 새 냄비에 쏟아붓는 만행을 저질렀다.
재료가 부글부글 끓었다. 에델은 손목으로 턱을 괴고 주방 시계를 초조히 지켜보았다. 이지하나 요리장님이 부야베스라는 말의 의미가 끓이다와 졸이다가 합쳐진 단어라며 40분간 육수를 끓이라고 했다. 충분히 센 불로 졸여야 올리브유가 국물에 녹아서 묵직한 맛이 나온다나.
“아잉, 아직 5분이나 남았어.”
재료가 졸여지다 못해 타들어 갔지만, 에델은 시계만 쳐다보았다. 레시피는 그녀의 종교다. 섬연한 미녀가 가느다란 손목으로 턱을 괴고 요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르고 남지만, 실제로는 독액의 농도를 진하게 만드는 조제 과정에 다름 아니다. 땡- 기다리던 주방 시계가 울렸다.
“옳거니!”
에델은 국물과 건더기를 한꺼번에 믹서에 넣고 와르르 갈아내서 성긴 아마포에 넣고 육수를 짜냈다. 영리한 머리는 한 번 들은 조리과정을 잘도 기억해냈다.
뽑아낸 육수를 다시 불에 올렸다. 탄내가 조금 났지만, 곧 사라질 거라 여겼다. 정확히 레시피대로 했기 때문이다. 끓는 육수에 감자를 잘라 넣고, 생선과 새우, 조개를 통째로 투입하고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뚝뚝 떼어 넣었다.
밀가루 반죽 투입은 뚜바이부르파가 수제비라고 설명했던 음식 재료다. 이름이 이상하고 질감도 별로지만, 뚜바이가 음식재료라면 음식재료다. 포크로 감자를 폭 찔렀다. 쑥 들어갔다. 요리장이 가르쳐준 대로라면 마무리 타임이다. 마지막으로 파슬리를 다져서 뿌리고 아껴두었던 사프란도 재차 듬뿍 뿌렸다.
“오우, 엑셀런트!”
향기로운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 드디어 특제 부야베스가 완성되었다. 에델이 혼자서 감탄하며 땀이 흘러내린 이마를 손등으로 훔쳤다.
“바셀!”
“네, 아가씨!”
바셀이 와당탕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냄새 좋지? 맛 한 번 볼래?”
에델은 두 손을 허리에 짚고 턱 끝으로 거만하게 식탁을 가리켰다. 대여섯 명이 먹어도 배가 불룩 나올 양의 부야베스가 턱 하니 식탁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뚜바이의 식성에 맞추려면 이 정도 양은 되어야 한다.
바셀의 얼굴에 긴장이 스쳐 갔다. 그동안 아가씨의 요리를 먹고 식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럴듯해 보이는 요리에 속아서 맛을 보지만, 매번 미각의 무덤으로 초대받았다. 사양하고 싶지만, 자부심 가득한 얼굴, 기대로 빛나는 눈을 외면하기엔 바셀의 심장이 여렸다.
츄릅- 눈 딱 감고 스푼으로 육수를 떠서 입에 넣었다. 혀의 고통, 경련하는 신경, 뇌의 분노를 기다리던 바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미 무취다. 비린내도 없고 탄내도 없다. 혀를 탁 쏘는듯한 미묘한 맛과 약간의 현기증이 전부였다.
“아가씨, 지금까지 만든 요리 중의 최고예요.”
바셀이 엄지를 척 들었다. 강력한 향신료인 라 만차의 사프란이 무려 30g이나 투입됐다. 비린내, 탄 맛은 물론이고 과량의 올리브유로 인한 느끼함마저 날려버렸다. 모든 맛을 중화했으니 무미 무취일 수밖에 없다.
“오호호호!”
넓은 거실에 득의에 찬 소프라노 웃음이 짤랑짤랑 울렸다. 바셀의 칭찬을 듣기는 처음이다. 입맛 까다로운 바셀이 인정했다는 기쁨에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가씨, 요리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호호홋, 나도 하면 한다고. 육수를 조금 더 졸여야겠어. 부야베스 육수는 졸일수록 맛이 좋아진다고 들었어.”
에델은 의기양양했다. 독약의 농도를 팍팍 올리는 그녀는 한다면 하는 여자다.
콰우우- 남서쪽 상공에서 작은 점이 접근했다. 특제 부야베스가 기다리는 노바토피아를 향해 날아오는 비즈니스 제트기 팰컨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태양은 지평선을 한 발쯤 남겨놓았다.
-노바토피아 진입 5분 전, 착륙시계 양호. 현재 고도 9,800, 고도 5,000으로 낮춥니다.
콰우우- 제트기가 고도를 낮추었다. 사하라의 하늘은 모래바람만 없으면 환상적으로 푸르다. 레옹은 휘파람을 불며 기체를 하강했다.
“허, 저게 뭐야?”
무쌍이 여객실 창밖을 손짓했다. 쌈디가 움찔했다. 예전에 비행기 기밀 창을 두드리다 와킬께 혼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좀비 중에 제일 재수 좋은 놈이라고 해야겠지!’
쌈디의 입꼬리에 슬며시 웃음이 매달렸다.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도 자아를 잃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좀비 상태로 이용되고 있을 자신이다.
“방풍림인 듯한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네.”
쌈디의 말에 쫄따구와 무울소리 교수가 우르르 창에 달라붙었다. 두 사람은 사마리아 농장에 매달려 있느라 노바토피아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별다른 건 없는데.”
무울소리 교수가 중얼거리며 쌍안경을 꺼냈다. 고도 5,000m에서 내려다보면 지름 3km인 요아 호수가 손바닥보다 작게 보인다. 보통 인간의 시력으로 방풍림이 보일 리 없다.
“울라, 이럴 수가! 방풍림이다. 끝없는 방풍림이다!”
쌍안경을 들여다 보던 무울소리 교수가 고함질렀다. 바크리 등이 비시시 웃었다. 놀래주려고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쫄따구도 백 팩에서 쌍안경을 꺼냈다. 사막에서 활동하려면 쌍안경은 필수품이다.
“와우! 도로도 있슴메.”
쫄따구가 감탄했다. 아득한 서쪽 사하라에서 홀연히 나타난 도로가 노바토피아를 가로질러서 동쪽 모래 속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선우현은 일 년 남짓한 기간에 천 킬로미터가 넘는 도로를 뚫어낸 인간들의 집념이 경이로웠다.
“고생 많았다.”
무쌍이 바크리 등을 바라보며 치사했다. 이들은 칭찬 들을만했다. 짧은 기간에 신생국의 혼란을 수습해가며 수백 킬로의 방풍림을 조성하고 일천 킬로가 넘는 도로를 뚫었다. 바크리 등의 피땀이 일궈낸 결과물이다.
“뚜바이부르파를 찬양하라! 와킬께서 프랑스의 지원을 끌어내고, 풍부한 자금과 식량, 물자를 지원한 덕분입니다. 그러고도 일을 못 한다면 소인들은 빵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소인들은 뚜바이부르파님의 과업에 숟가락을 얻은 곁다리일 뿐입니다.”
바크리 등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무울소리 교수와 쫄따구는 존재하는 석유를 발견했지만, 자신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석유가 경제재로서 가치가 높을지 모르지만, 노바토피아는 종합선물세트다.
“찬양은 당신들이 받아야 한다. 블루아트 블루아트 러 데제! 프로젝트는 지원받는다고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고생이 많았다.”
무쌍이 바크리 등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등을 두드렸다.
“쫄따구, 저게 정치야. 바크리와 모하메드가 자신들의 성과를 낮출수록 와킬이 알아주잖아. 나미르입네 하고 대가리를 꼿꼿이 들어 올리는 너는 하수란 말이야. 바크리에 한 수 배우라고.”
쌈디가 진심을 담아서 쫄따구에게 충고했다. 쌈디는 선임의 미덕을 배우지 않아도 터득하고 있었다. 선우현은 짜장면 먹다가 돌 씹은 얼굴이 되었다.
“뚜바이부르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뒤에 뚜바이부르파 계시도다. 소인들은 신명을 다할 따름입니다.”
바크리 등이 소리높여 외쳤다. 죽음의 위협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강했다. 노바토피아 인치고 게으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도 방과 후에 젬베와 삼태기를 들고 나섰다. 모두가 지니에 홀린 듯이, 일하지 않으면 죽기라도 할 듯이 몸부림쳤다.
노바토피아 전역이 중장비의 굉음과 마음 편히 잘살아 보자는 구호로 뒤덮였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날이 창대해졌다. ‘블루아트 블루아트 러 데제!’로 시작해서 ‘뚜바이부르파 에스터 아베크 누(뚜바이부르파가 우리와 함께 한다.)’ 로 끝나는 나날이었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 아니 죽고 살고를 떠나서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기만 해도 행복하다. 죽을 고생 해서 성과를 냈는데 성과는 탈취당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으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바크리 등은 행복했다.
지푼다리 상공에서 무쌍이 인터폰을 들었다.
“레옹, 고도 2,500, 저속으로 선회하라.”
-넵, 알겠습니다.
팰컨이 시속 300km로 지푼다리 상공을 선회했다.
“젠장, 이곳이 지푼다리 맞슴둥?”
선우현이 눈을 비비고 접안렌즈에 다시 눈을 붙였다. 아프리카에서 볼 수 없는 방사상 계획도시가 푸른 초지에 우뚝 서 있다. 주택과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대지사이로 도로가 쭉쭉 뻗었다.
도시 중앙에 푸른 호수가 있고, 호수 일대는 온통 나무와 초지로 덮인 공원이다. 이 엄청난 역사가 일 년 만에 이루어졌단 말인가? 선우현은 사막을 푸른 초지로 바꾸고 도시를 신설한 인간들에 경외감을 느꼈다. 빨리 빨리는 한국인의 특성인데 이들은 열 곱은 더했다.
무쌍은 묵묵히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지푼다리가 자리 잡은 100㎢는 이미 녹색이 적갈색 대지를 압도했다. 옴부티와 교수들은 자신이 원했던 이상으로 노바토피아를 개발했다.
도시 중앙은 표면적 5㎢인 요아 호수 중심의 공원이다. 안쪽부터 행정시설, 상업시설, 거주지, 농지, 초원, 군사시설이 자리 잡았다. 지푼다리는 이미 손색없는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팰컨이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응앵가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카담 호수와 세리르 호수군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쌍은 흡족했다.
무쌍은 개발이란 미명하에 훼손된 한국의 자연 자원에 질려버렸다. 셔니언 교수에게 호수 지역 650㎢는 일체 개발하지 말 것을 지시했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다.
횡전해서 도로축을 따라 다시 서진한 팰컨이 요아 호수로 접어들었다. 요아 호수 남안과 서안은 야자수가 무성하지만, 북안과 동안은 하르마탄이 실어온 모래가 호수를 잠식하고 있다. 호수의 침식을 방지할 목적으로 북안과 동안에는 별도의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호수 북안의 방풍림 모양이 묘했다.
“응? 저건 글씨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