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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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3->여기까지 22권
무쌍이 중얼거렸다. 호수 방풍림은 묘목이 아니라 성목이었다. 수고(樹高) 3~6m 나무를 일정한 패턴으로 심어서 문양인지 글씨인지 모를 상징을 만들었다.
무쌍은 속으로 놀랐다. 이곳은 조경업자가 발에 채듯이 많은 한국이 아니라 사하라 사막이다. 누구 생각인지 모르지만 수천 그루의 성목을 이식해서 모종의 상징을 만든 집념이 놀라웠다.
팰컨은 지상 2,500m 상공에서 선회 중이고 방풍림은 6,000m밖에 있다. 일반인의 시력으로는 호숫가의 방풍림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지표의 열기가 대기를 흔드는 바람에 무쌍의 시력으로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두웅- 에피듐의 시력에 안법을 더했다. 방풍림이 줌 렌즈로 당기듯 쭉 끌려왔다. 대추야자나무와 처음 보는 나무가 섞여 있다. 무쌍은 자트로파를 모른다.
대추야자나무는 가지 없이 쭉 솟아오른다. 그늘은 좋지만, 방풍림에 적합한 나무는 아니다. 처음 보는 나무는 교목과 관목의 중간 형태로 가지와 잎이 빽빽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호숫가에 그늘용 나무와 방풍용 나무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안법으로 당겨도 비스듬한 각도에서 글씨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인터폰으로 기장을 호출했다.
“레옹, 호수 상공으로 이동하라. 고도 유지!”
“넵!”
요아 호수 상공에서 무쌍은 숨을 들이켰다.
[I envy your mother.]눈을 비비고 내려다보았다. 몇 번을 확인해도 수천 그루의 나무가 만든 문장은 [나는 당신 어머니가 부러워요.]다. 저 문구를 쓸 사람은 에델밖에 없고 알아볼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흐으, 어머니가 부럽다고!”
무쌍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nvy는 부럽다는 뜻도 있지만, 질투 난다는 뜻도 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했듯이 사랑하겠다는 에델의 결연한 의지와 절절한 마음이 가슴을 푹 쑤셨다.
대수층 탐사를 끝내고 노바토피아를 떠나기 전날 밤, 별빛 쏟아지는 사막에서 에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밤에 아버지 박진보와 어머니 김말순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안달 났던 이야기다.
무녀였던 어머니, 남해 바닷가에서 춤추는 어머니에게 반한 아버지, 어머니 마음을 얻으려고 일 년 반이나 굿패를 따라다니며 허드렛일을 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얻고 행복하게 살았던 세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불행, 언어로 표현 못 할 지고지순한 두분의 사랑을 듣는동안 에델은 내내 울었다.
[당신 어머니가 너무 부러워요.] 눈이 퉁퉁 부은 에델이 했던 말이다. [무슨 소리! 어머니는 너무나 불행한 여자다.]무쌍은 턱도없는 소리에 펄쩍 뛰었다.
[뚜바이, 행복과 불행을 누가 정하나요? 바로 자신이에요. 하루살이는 하루 동안에 사랑을 나누고, 자손을 남기고 죽어요.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의미 없어 보일 만큼 짧은 생이죠. 신이 인간을 볼 때 하루살이와 다를 게 있을까요?] [없겠지. 장구한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백 년이나 하루나 다를 게 뭐 있겠어.] [그래요. 백 년도 못사는 인생이에요. 내 어머니 로라 여사는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고 저주했어요.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셨어요. 만인이 존경했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얼빠진 이상주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요.] [젊고 예쁜 아내를 리버풀에 팽개쳐두고 아프리카에서 재산과 젊음을 탕진하고 있었으니 귀족 가의 여자라면 성질날 만도 했겠지.] [그래요. 게다가 어머니는 인종차별주의자였어요. 흑인의 몸을 주무른 손을 증오하고,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어요.] [루드리 에델이 용케 세상에 나왔군.] [호호호, 그러게 말이에요. 두 분 중에 한 분이 술에 취했거나 두 분 모두 취한 날이 있었던 모양이죠.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해요. 왜 아프리카로 건너와서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을까요? 아프리카 생활은 영국보다 불편해요. 그렇지만 좋은 점도 많아요.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어머니가 아빠를 사랑했을까요?] [여자의 입장에서는 큰 문제일 수도 있겠지. 수세식 화장실도 없고 벌레와 동거해야 하잖아.] [흥, 착한 남자인 척하지 말이요. 나처럼 예쁘고 여린 미녀도 잘살아가고 있네요. 로라 여사는 지금도 리버풀의 저택에서 여왕처럼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아버지를 원망하면서요. 나는 어머니가 싫어서 아빠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살았어요. 부유한 삶을 사는 내 어머니가 행복할까요?]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군. 죽은 남편을 원망하고 무남독녀에게 외면받은 인생 아닌가.] [그래요. 당신 어머니는 진정한 사랑을 얻었어요. 이토록 당신을 그리워하는 아들이 있잖아요. 이 세상 누가 당신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았을까요! 뚜바이, 어머니가 불행하다고 생각지 마세요. 나는 당신 어머니가 미치도록 부러워요. 하루, 단 하루만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있다면 남은 생은 기꺼이 포기하겠어요.]에델과 나누었던 대화가 오롯이 기억났다. 에델은 여자로서의 감정 표현에 서툴 뿐 가슴은 용암처럼 끓는 뜨거운 여자다. 아버지를 위해 살고, 아버지만 바라기 한 어머니 김말순과 비슷한 여자다.
독약에 가까운 김치찌개를 조제해서 자랑스럽게 내놓던 에델이 눈에 선했다. 혀는 고통스러웠지만, 가슴은 따뜻했다. 교양과 품위로 무장한 그녀의 어디에 그토록 절절한 열정이 숨어있었을까!
루드리 가의 무남독녀 에델은 지금이라도 리버풀로 돌아가면 상속받은 성이 있고 공주처럼 살아갈 수 있다. 거친 사하라에 남아 고난을 감수하는 바닥엔 측은지심이라 불리는 고귀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때문이기도 하다.
“I envy your mother.”
어머니는 에델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여자일까? 에델의 논리대로라면 행복한 분이다. 에델은 남자라면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여자다. 그 어떤 남자도 에델의 외적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뿜는 치명적 매력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가 에델을 피한 이유는 두 가지다. 그녀가 험악한 블랙맘바의 삶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싫었다. 또 한가지 이유는 혜영이다.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혜영이 나타나면 외면할 수 있을까? 그 불꽃 같은 사랑의 화인을 싹 지울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그날 사막의 밤은 에델의 굳건한 마음만 재확인한 밤이 되었다.
“어머니, 당신은 불행한 분이 아닌가 봅니다. 에델이 부러워하니 말입니다.”
무쌍이 중얼거렸다. 가슴을 누르던 묵직한 돌덩어리의 무게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갑자기 에델이 보고 싶어졌다.
“레옹, 착륙하라.”
-넵, 손님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잉, 기내 방송과 서비스는 스튜어디스가 해야지. 사내 녀석의 꺼끌거리는 목소리는 영 아니란 말이야.”
선우현이 하릴없이 투덜거렸다.
“뭐야, 못 들어간다고? 나는 에델의 동료다.”
“안됩니다. 에델 아가씨가 바쁘시다고 다음에 방문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호숫가 저택 입구에서 장신의 백인과 다부진 체격의 아랍인이 승강이를 벌였다. 무쌍이 백인의 얼굴을 봤으면 싸가지 없는 그 의사 놈? 이라고 했을 것이다. 기즈 박사가 아띠의 MSF 병원에서 뮌헨의 망나니라고 소개했던 로만 발터, 에델이 자기과시 강한 독일산 셰퍼드라고 혹평했던 그 인물이다.
‘아이고, 이 인간은 하필 내 당직 날 지랄이야.’
3조 경비조장 와잘란은 죽을 맛이었다. 진상을 부리는 인간은 한 달 전에 부임한 독일인 MSF 의사 로만 발터다. 그의 신분을 알고 있는 와잘란은 무력을 쓰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나는 너희를 무상으로 치료해주는 의사란 말이다.”
“그 점은 늘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델 아가씨는 조용히 쉬고 싶어 하십니다.”
와잘란은 뒤집히는 속을 꾹꾹 누르고 정중히 거절했다. 자치행정부에서 귀빈으로 대우하는 MSF 의사가 아니었으면 쏴 죽여 버리고 싶었다.
“미치겠네. 에델에 연락하란 말이다.”
발터가 눈을 부라렸다.
“쉬고 싶어 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와잘란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유럽 최고 아헨 병원의 외과 전문의, 나 로만 발터를 만나지 않겠다고?”
발터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의료계에서 명성은 생각보다 강력한 파워를 발휘한다. 자신이 작정하고 방해하면 에델은 어떤 병원에서도 근무하지 못한다.
“네, 분명히 쉬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와잘란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발터는 가슴을 두드렸지만, 무식한 아랍인의 방어벽을 뚫을 방법이 없었다. 말없이 노려보는 흑인 병사 두 놈의 눈도 섬뜩했다.
발터가 아무리 협박하고 애원해도 와잘란이 들어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노바토피아의 천사 루드리 에델의 한 마디는 천상의 복음이다. 그녀가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면 영국 여왕도 저택 입구의 경비소를 통과할 수 없다. 실정을 제대로 모르는 발터만 삽질을 계속했다.
사마리아 농장에서 팰컨이 이륙했다는 보고를 받은 옴부티는 급히 에델을 찾았다. 이브라힘과 아이쉐가 그 뒤를 따랐다. 아이쉐의 차림도 핫팬츠에 상의는 헐렁한 바람막이 옷을 걸친 패션이다.
“에구, 저 건물을 볼 때마다 속이 답답해지네.”
이브라힘이 혀를 찼다.
“큰일이야. 와킬께서 언제까지 저런 집에 머물러야 할지. 쯧쯧”
옴부티도 혀를 찼다. 뚜바이 가신들이 요아 하우스를 볼 때마다 내뱉는 한탄이다. 뚜바이 궁은 지푼다리에서 50km 떨어진 응앵가 세리르의 부쿠 호숫가에 있다. 설계가 지연되는 바람에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요아 호숫가 저택은 뚜바이 궁을 짓는 동안 뚜바이부르파가 머물 임시 숙소로 덩그러니 크기만 하다. 에델이 이곳 저택에 입주하는 바람에 허름한 가설 건축물이 뚜바이 궁으로 인정받고 요아 하우스란 이름까지 얻었다. 건물을 새로 지으려 해도 에델이 자원 낭비라며 반대했다.
삐- 이부라힘이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들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전용기가 도바에서 이륙했습니다.
“알았다.”
정보팀의 무전을 받은 이브라힘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클란 크루,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하십니다.”
주어 없는 보고에 옴부티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와킬을 뵙게 되는군. 에델 아가씨가 제일 좋아하겠지?”
“아클란 크루님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브라힘이 빙긋이 웃었다.
“당연히 좋지. 그분은 우리 모두의 꿈이자 희망 아닌가.”
“그렇지요. 저는 솔직히 자손에게 독립된 나라를 물려준다는 사명감보다 뚜바이부르파 님의 왕국을 만든다는 보람이 더 큽니다.”
“그게 그거지. 자네도 잘 알다시피 뚜바이부르파님은 욕심이 없는 분이다. 사헬의 거친 모래바람 속에서 그분을 처음 대면했던 때가 생각나는군.”
옴부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블랙맘바라는 암호명의 앳된 청년을 만났던 당시를 회상했다. 리탐도 제대로 감지 못해서 쩔쩔매던 동양인 청년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한 왕국의 왕이 되었다. 본인이 아무리 싫다 해도 왕은 왕이다. 때로는 와킬이 인간인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인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평생 모실 주인인 것을!
“아이쉐, 만찬 준비는 차질 없겠지?”
“만찬이요? 요란스럽게 하지 말라면서요.”
이브라힘의 확인에 아이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이브라힘이 빙긋이 웃었다.
“초청자는 국경없는의사회 다섯 분이 전부에요. 블랙컬처가 열두 명이니까 참석자는 전부 십칠 명이네요. 아, 무슨 석유회사 회장이 온다고 했으니까 18명이네요. 뚜바이부르파님이 십팔이란 숫자는 욕이라고 했는데. 오호호홍”
아이쉐가 썰렁한 농담을 하고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오스마니에의 암표범도 많이 변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잘 체크해. 일 년 만에 오시는 와킬이시다. 소홀함이 있으면 안 돼. 와킬의 고향 음식은 준비했겠지?”
“그럼요. 요리장이 아침부터 수첩을 뒤져가며 땀을 빼던걸요. 닦달당하는 요리사들이 불쌍할 지경이었습니다. 젊은 탓인지 요리장의 성격이 조금 과격하더군요.”
“흐흐흐, 에델 아가씨가 깜짝 놀랄 거야. 요리장이 한가하게 낚시간 줄 알고 있겠지.”
“그것도 악취미예요.”
아이쉐가 눈을 흘겼다. 아클란 크루가 뚜바이부르파의 방문을 비밀에 부친 이유는 오로지 에델 아가씨를 놀래주려는 깜짝 이벤트다. 손님이 오는 바람에 김빠진 이벤트가 되었지만 말이다.
“저 친구는 MSF 의사 아닌가?”
옴부티가 이브라힘을 돌아보았다.
“발터라는 외과의삽니다. 와잘란이 소란을 피울 녀석이 아닌데 왜 저러지?”
저택 경비 책임자인 아이쉐가 대신 대답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노바토피아 자경대의 군율은 엄하다. 근무시간 중의 일탈 행위는 엄중히 처벌받는다. 반면에 치안 유지를 위한 활동은 광범위하게 인정받는다.
MSF 소속 의사는 노바토피아에서 소중히 여기는 인력이다. 탈출 난민 중에 병이 있거나 외상을 입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경비조장 와잘란이 모를 리 없다.
“블루아트!”
아이쉐를 발견한 와잘란이 거수경례했다. 인사까지도 ‘푸르게’다.
“무슨 일인가?”
“당신이 책임자요?”
발터가 말끝을 가로챘다. 느끼한 눈이 핫팬츠를 입은 아이쉐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반짝이던 눈빛이 곧 시들해졌다.
‘건방진 새끼, 눈깔을 뽑아버릴라.’
아이쉐의 가슴에서 분노의 폭죽이 터졌다. 느끼한 눈길보다 시들해진 눈빛이 백배는 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