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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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4
“훗!”
아이쉐가 스산한 눈빛을 지우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웬만한 남자보다 큰 키, 딱 벌어진 어깨, 강철같은 팔뚝, 자외선에 까맣게 탄 얼굴, 울룩불룩 근육이 불거진 다리……. 자신이 보기에도 여성스러움과는 천 리나 먼 신체다.
무엇보다 팬 케이크 가슴이 슬펐다. 알몸을 드러내면 제법 볼륨이 있는데 발달한 가슴 근육에 유방이 묻혔다. 십 년간이나 기관총을 들고 산악을 뛰어다닌 결과물이다.
‘뚜바이부르파님을 제외하면 어느 시러베자식 새끼가 나를 여자로 봐주겠어.’
건강하고 강한 여성이야말로 진짜 여자라던 뚜바이부르파가 급 그리워졌다. 어쨌든 지금은 노바토피아 경비대 책임자의 역할을 해야 할 때다.
“그렇습니다. 내가 경비책임자입니다. 당신은 외과 병동의 의사 선생님?”
“그렇소. 외과 전문의 로만 발터요.”
“오, 한 달 전에 부임한 의사 선생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쉐가 손을 내밀었다.
“읔!”
무심코 손을 맞잡은 발터의 인상이 비틀렸다. 여자 손이 아니라 대형 멍키스패너다.
‘이익!’
발터는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 권투와 테니스로 단련한 몸이다. 여자 따위의 악력에 밀린다면 불알을 떼버려야 한다. 뿌드득- 관절이 비틀리는 소음이 울렸다. 멍키스패너가 바이스로 변했다.
‘끄으윽!’
발터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상대를 제압하기는커녕 손가락이 으깨지는 통증이 신경을 치달려서 대뇌를 후려쳤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지고 입술이 푸들거렸다.
이브라힘이 아이쉐를 향해 슬쩍 눈짓했다. 아이쉐는 한다면 하는 여자다. 그대로 두었다간 발터의 손이 으스러진다. 도박사와 외과의사는 섬세한 손이 생명이다. 손뼈가 부서지면 인생이 망가진다.
“이곳은 요아 하우스입니다. 노바토피아 국민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뚜바이부르파님의 임시궁전이죠. 선생님께서도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경비조장이 실례를 범했다면 규정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아이쉐가 손을 풀고 정중히 말했다. 하얗게 질렸던 발터의 표정이 제 색깔을 찾았다.
“별일 아니오. 나는 에델 선생을 만나러 왔을 뿐이오.”
기가 팍 꺾인 발터가 손을 어루만지며 어물거렸다.
‘찌질한 자슥, 불알을 떼다 개구리에게 먹여라.’
이브라힘은 남자 망신시키는 발터를 속으로 욕했다.
“오호!”
옴부티가 갑자기 땡중 도 터지는 감탄사를 뱉었다. 일행의 눈길이 모이자 옴부티가 별일 아니라는 투로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났다. 저놈은 아띠 MSF에 근무하던 싸가지 의사다. 사헬 작전을 마치고 피투성이가 된 와킬을 메고 찾아든 병원에서 저놈을 만났다. 와킬의 혈액과 피부를 샘플로 채취하려던 놈이 바로 저놈, 독일인 의사다.
당시 에델 아가씨가 짐을 싸서 따라나섰다. 본인은 치료 목적임을 주장했지만 누가 봐도 의사로서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에델을 말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발터를 보고 녀석이 에델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던 발터가 이곳에 나타났다면 놈의 목적은 뻔했다. 보나 마나 에델 아가씨를 어떻게 해보려고 노바토피아에 기어들어왔다.
‘거 웃기는 놈일세!’
옴부티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자살하고 싶으면 아띠에서 피트리 호숫물이나 한 바가지 퍼먹을 것이지 이곳에는 왜 기어들어온단 말인가. 와킬의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다. 놈이 에델 아가씨에게 손톱만치라도 불경하면 사막에 파묻으려고 삽 들고 뛰어올 사람이 오만명이다.
‘그런데 저놈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지?’
옴부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에델 아가씨는 발데그라스 육군병원에서 곧바로 은자메나 와킬 상회로 거처를 옮겼고 이곳 노바토피아로 왔다. 외부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알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발터는 애당초 에델의 마음을 얻으려고 MSF에 머물렀다. 에델이 사라져 버리자 목적을 상실한 그는 이빨을 갈며 본래 근무지인 아헨 병원으로 돌아갔다.
자의식 강한 편집광인 발터가 에델을 포기할 리 없다. 에델이 바다에 빠진 조약돌처럼 사라져버리자 방향을 바꾸어 기즈 박사를 주시했다. 기즈 박사는 에델을 홀려간 용병과 친분이 있는 만큼 언젠가는 에델과 연결될 거라 짐작했다.
발터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기즈 박사가 진료 장소를 옮긴 노바토피아라는 신생국에서 에델의 종적을 발견했다. 그는 쾌재를 부르고 곧바로 짐을 싸서 노바토피아 MSF에 합류했다.
다행히 에델은 독신이었다. 하긴 고귀한 에델과 냄새나는 용병 놈은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둘보다 오셀롯과 페커리가 차라리 어울리는 한 쌍일 것이다.
발터는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노렸지만 틈을 얻지 못했다. 에델이 맡은 산부인과 병동은 본관과 별도의 장소에 있고, 환자가 밀어닥치는 바람에 틈이 없었다. 물론 기즈박사의 교묘한 방해도 한몫했다. 참다못해 불문곡직 에델의 거소를 찾아온 것이다.
“에델 아가씨를 만나러 왔다고요? 와잘란, 어떻게 된 거냐?”
아이쉐가 와잘란을 돌아보았다.
“아가씨께 연락했지만 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는데요?”
아이쉐가 발터를 빤히 쳐다보았다. 삽질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의미가 눈빛에 듬뿍 담겼다.
‘빌어먹을, 이놈이나 이년이나!’
발터가 불끈했지만, 감히 발작하지 못했다. 여자라고 깔봤다가 손이 부서질 뻔한 두려움이 험한 말을 막았다.
“나는 꼭 만나야겠소.”
“발터 선생님, 자중하세요. 노바토피아는 자유국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상대의 의지에 반한 강제적인 행동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처벌을 받습니다.”
“뭐가 이리 빡빡하나. 나는 같은 동료로서 그녀를 만나고 싶을 뿐이오.”
발터가 뻗대자 아이쉐가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오후 세시군요. 잠시 후면 노바토피아의 주인께서 오십니다. 세 시간 후 만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 그래요?”
발터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MSF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노바토피아의 주인인 뚜바이부르파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해했다.
중동 석유 부국의 왕족이라는 설과 아프리카를 삼키려는 소비에트연방의 괴뢰 정권이라는 설, 양키가 아프리카의 공산화를 막으려고 세운 위성국가라는 설 등이 난무했다. 병원장인 기즈 박사는 알고 있는 눈치지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만찬에 우리의 친구인 MSF 선생님들을 초청했습니다. 장소는 요아 하우스 후원입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참석해야죠.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터의 말투가 달라졌다. 에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반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또한, 이들은 노바토피아의 실세다. 노바토피아는 신생국이지만 질서가 잡혀있고 규율이 엄한 나라다. 지도자들의 의지에 반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건방진 아랍인 경비조장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친구,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다. 얼굴을 보니 독충에 물린 것 같은데?”
“군화 속에 들어온 레드 스콜피온에 물렸습니다.”
와잘란이 두드러기가 돋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재수 없이 레드 스콜피온에 물리는 바람에 온몸에 발진이 돋았다.
전갈이나 거미, 독사에 물리는 일이야 다반사다. 데스 스토커, 방울뱀, 뿔살모사 같은 독한 놈이 아니면 별로 신경도 안 쓴다. 작열감과 소양(가려움)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정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노바토피아 군인의 자격이 없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패혈증이 생기면 큰일이다.”
발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발진을 살폈다.
“독이 약한 놈이라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겁니다.”
“말도 안 돼. 레드 스콜피온 독은 혈액 독이다. 혈전이 하지정맥을 막으면 고자가 된다.”
겁나는 소리에 와잘란이 움찔했다.
“항히스타민제다. 지금 세 알을 먹고 저녁에 다시 세 알을 먹어라.”
발터가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서 와잘란에게 던졌다.
“감사합니다. 역시 의사 선생님은 다르군요.”
와잘란은 상대의 대인배적인 처신에 깊숙이 고개 숙였다. 성질은 별로 좋지 않지만, 의사는 역시 의사였다.
“암,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를 어찌 의사라 할 수 있겠나.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하하하!”
발터가 껄껄 웃었다. 과연 이름 높은 의사답게 싹수 있는 사고를 하는 대인이다. 발터가 선심을 쓰고 멀어지자 옴부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놈이 죽을 때가 되었나?”
아띠에서 본 발터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와는 거리가 먼 놈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바뀌기 어렵다는 사실은 쫄따구 선우현을 보면 확실하다. 옴부티는 뭔가 찜찜했지만, 선심 쓴 놈에게 뭐라할 수도 없었다.
‘흐흐흐! 지난번에 경구 무좀약을 대량으로 구해갔었지. 어디 맛 좀 봐라.’
병원으로 발길을 돌린 발터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소가지가 좁다는 면에서 같지만, 블랙맘바가 자신에 대해 속 좁은 반면 발터는 타인에 대해 속 좁은 인간이다. 발길을 가로막은 천박한 아랍놈과 깜둥이 따위를 그냥 내버려 둘 발터가 아니다.
아이쉐가 와잘란을 야단쳤다.
“멍충아, 저딴 발정 난 개자슥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우리 아가씨가 스트레스를 받게 한단 말이냐. 적당히 돌려보낼 것이지 연락은 왜 해.”
“죄송합니다. 에델 아가씨와 친구라고 해서…….”
“친구는 개뿔이, 에델 아가씨가 어떤 분인데 저딴 놈을 친구로 삼는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상부에서 MSF 관계자는 귀중한 손님이니 잘 챙기라고 해서…….”
와잘란이 어물거렸다. 똥 밟았지만 귀중한 약을 통째로 내준 의사를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에 가르쳐 준 암수는 어쩌고 써먹지 않았나. 미는척하면서 왼쪽 젖꼭지 아래 일 인치 지점을 엄지로 찍으란 말이다. 아니면 총구를 발등에 슬쩍 떨어뜨리거나.”
“죄송합니다.”
“하긴 네가 무슨 죄가 있겠어. 주제도 모르고 껄떡대는 저놈이 문제지.”
아이쉐가 휭하니 저택으로 들어갔다. 개자슥에 대해서는 이틀 전 에델 아가씨에게 들었다. 뚜바이부르파의 여자에게 껄떡대는 놈이라니 자기 손으로 관을 짜는 놈이다.
“허허, 아이쉐가 많이 컸구먼.”
옴부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부쩍 성장한 아이쉐가 흐뭇하고, 악어 아가리를 용케 벗어난 줄도 모르는 발터가 불쌍했다.
“어머나, 옴부티 아저씨가 낮에 오시다니 별일이네요. 이브라힘 아저씨와 아이쉐 언니도 오셨네. 웬일이래요?”
에델이 반색했다. 영국의 극작가 노엘 카워드가 말하길 [햇살이 강한 여름 한낮에 바깥에 나가는 발 달린 물건은 미친개와 영국인뿐이다.]라고 했다.
카워드는 틀렸다. 노바토피아 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낮에도 블루아트를 외치며 뛰어다닌다. 씨에스타(남유럽의 낮잠 시간)와 카이롤라(아랍의 낮잠 시간)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행정청에서 ‘꼬부라지는 시간’이란 이상한 이름으로 한낮의 휴식을 강제했지만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일에 미친 인간이 노바토피아 인이다.
“그냥 집안일이에요. 아가씨가 만든 예가체프(에티오피아 원산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잠시 들렀어요.”
아이쉐의 말에 에델이 코웃음 쳤다.
“피이, 노바에서 제일 바쁜 분들이 이 시간에 한가하게 차를 마시러 왔다는 말을 믿으란 말인가요. 저먼 셰퍼드는 갔나요? 조용하네요.”
“저먼 셰퍼드? 아하 발터 선생 말이군요. 갔어요.”
“으으 지겨워!”
에델이 몸서리쳤다. 신체 부위를 핥듯이 응시하는 발터의 삼백안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빠졌다.
“아가씨, 추방해 버릴까요?”
“안 돼요! 발터는 아헨 병원의 수석 연구원이에요. 그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노바토피아의 평판이 시궁창에 처박히게 돼요. 현실적으로 그는 총창 수술 부문에서 세계 정상급이에요. 노바토피아에 꼭 필요한 인재죠.”
아이쉐의 말에 에델이 펄쩍 뛰었다. MSF를 추방하다니 말도 안 된다. 그들은 때로 정부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신생 노바토피아는 평판이 나빠지면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꼴이 된다. 자신이 조금 귀찮으면 될 일인데 쓸데없는 시빗거리를 만들 이유가 없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에델의 속내를 짐작한 옴부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아프리카의 제 부족이 독립적인 지위를 얻을 때 투아레그족은 외면당했다. 복면의 전사, 약탈민족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평판은 그만큼 중요하다.
미녀는 머리가 나쁘다는 속설은 틀렸다. 에델은 명석한데다 생각도 깊은 여자다. 왕비 감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가인(佳人)은 없다. 어차피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흔적없이 처리할 방법은 백 가지도 넘는다.
“솔직히 말해봐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와킬께서 도바에서 전용기로 출발하셨습니다. 사십 분 후 도착합니다.”
이브라힘이 빙글빙글 웃으며 보고했다.
“뚜바이가 온다고요? 사십 분? 안 돼!”
에델의 얼굴이 사프란만큼이나 노랗게 변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 이곳저곳에 화덕 그을음 묻고, 밀가루 반죽이 튀었다. 주방은 엉망진창이고 침실엔 벗어 던진 속옷도 널려있다.
“걱정도 팔잡니다. 아가씨는 세수만 하면 돼요.”
“언니, 한가한 소리 하지 마요. 요리장님도 없는데 어떡해. 옴부티 아저씨 못됐어. 일부러 늦게 알려준 거죠.”
에델이 옴부티에 눈을 흘기고 더듬이 떨어진 개미처럼 허둥지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