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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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8
마르주리는 거한이 선보인 야수적 감각과 정교한 신체 통제 능력에 충격을 받았다. 석유 사업은 거의 물밑 협상을 통해서 움직인다.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은 보여주기 연출일 뿐이다. 석유 메이저의 협상 능력엔 무력이 중요한 포션을 차지한다.
무력은 비공식적인 수단인만큼 소수 정예가 움직인다. 그도 보는 눈이 있다. 붉은 피부의 거한은 차원이 다른 고수다. 경호팀과 블루 워터에 쓸만한 놈이 있던가? 고수라 자칭하는 놈들을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평소 거만을 떨던 사바테 명인, 크라브마가 고수, 쿵푸 달인, 격투기 챔피언, 권투 챔피언, 나름대로 한가락 한다는 놈들의 면면이 줄줄이 떠올랐다.
‘쀠텡 메흐!(개똥같은 놈들!), 쓸만한 놈이 없어.’
마르주리가 혀를 찼다. 모두 허수아비다. 최고라던 근접 경호원 다섯이 굴베이그의 부하 두 명에 차단당한 꼴을 보면 개똥은 아무리 잘 먹여도 개똥이다.
나름대로 실력을 갖춘 경호원과 전투원들이 졸지에 개똥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를 만날 때 자기보다 못생긴 친구와 동행하는 법이다.
마르주리가 무쌍을 슬쩍 훔쳐보았다. 하인이 선보인 놀라운 묘기에 불구하고 무덤덤한 표정이다. 별 관심도 없다. 이들에겐 마술이 일상이란 말인가?
아래층에서 만난 한 자루 칼 같은 동양인과 안개 같은 아랍인, 듣도보도 못한 거대한 맹수, 눈앞의 붉은 거인, 만나는 놈마다 평범한 놈이 없다. 굴베이그의 휘하에 이들처럼 강한 자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를 일이다.
시내를 거쳐오며 놓쳤던 풍경이 떠올랐다. 절도 있고 예의 바른 군인들, 활기찬 주민들, 무지막지하게 벌여놓은 공사판, 빈곤과 무기력에 빠져있는 아프리카 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나라다. 아프리카인은 수동적이고 게으르다. 엉덩이를 걷어차서 활력을 끌어낸 굴베이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란 소리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괴짜, 휘하에 고수와 괴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를 실력자, 사하라 오지에 이런 미지의 인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사하라 촌놈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마르주리는 스바르드 굴베이그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유전 주인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동양인치고는 큰 키에 여성처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진 평범한(?) 젊은이다. 호수처럼 맑고 깊은 눈과 대면할 때부터 미동 없이 꼿꼿한 자세가 정력이 강한 인간임을 말해줄 뿐 특별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마르주리는 메이저 석유그룹을 이끄는 보스다. 욕심이 눈을 가렸지만 사람 보는 눈이 있다. 동물의 세계든 인간의 세계든 약자가 강자를 아래에 둘 수 없다. 강자를 거느린 굴베이그가 허접한 인물이라면 삶은 호박에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소리다.
선한 얼굴에 곱상한 손을 가졌지만, 눈앞의 인물은 강자다. 원시시대는 무력이 강자의 기준이지만 현대는 권력과 돈이 강자의 기준이다. 주먹 세고 총질 잘해봐야 권력자나 부자의 개가 된다. 눈앞의 인물이 억만장자라더니 인재를 잘도 수집해 놓았다.
‘돈이라면 나도 밀릴 이유가 없지.’
석유 협상은 협상이고 인재는 인재다. 마르주리는 욕심이 불같이 일었다. 마르주리가 블랙컬처를 스카우트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마르주리가 현실적인 협상안을 내놓지 않고 어깃장을 부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굴베이그가 경험 없는 젊은이라는 점, 자신이 보유한 블루 워터 바탈리언이 보유한 무력이다. 석유업계는 웬만한 멘탈로는 버티기 힘든 거친 세계다.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고 협상할 때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석유가 인류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19세기부터 석유 메이저는 자체 무력을 보유했다. 자신도 마적이나 무장 반군을 가장해서 이해 관계자를 쓸어버린 작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날로 먹을지 현실적인 협상안을 내놓을지 고민하던 마르주리는 결론을 내렸다. 상대는 젊지만 만만치 않은 인물인데다 휘하의 무장들이 너무 강했다. 실력자들을 거느린 굴베이그를 건드리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블루 워터로 밀어붙이다간 레드 워터가 되겠어.’
마르주리는 블루 워터를 깨끗이 포기했다. 거대 그룹을 이끌려면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마르주리의 순간적인 판단이 블랙맘바의 현신을 피했다. 그는 코앞에 다가선 토탈의 파멸을 피했음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무쌍은 수시로 급변하는 마르주리 회장의 뇌파와 혈류 흐름, 세로토닌 분비량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하고 있었다. 시냅스가 과열되도록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시냇가의 자갈처럼 와글거렸다. 역시 인간은 가진 것이 많은 자일수록 탐욕스러웠다.
마르주리의 심사가 복잡하든 말든 자신이 신경 쓸 이유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마르주리에 미안한 이야기지만 무쌍은 테이블에 놓인 커피가 뿜는 심상치 않은 향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에델은 좋은 재료로 독을 만들어내는 대단한 재주가 있다. 그녀가 만든 요리도 대단하지만 조제한 커피도 만만치 않다. 명칭은 커피지만 내용물은 독극물인 음료에 식겁한 경험이 수차례다. 무쌍은 독특한 커피 향에 살짝 긴장한 상태다.
예가체프는 노바토피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중요한 상업작물이다. 엔네디 고원에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고 있다. 주인으로서 소홀할 수 없는 중요한 작목이다. 무쌍은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커피 향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얼래, 에델이 제법이네!’
무쌍의 후각은 개보다는 못하지만, 호랑이보다는 예민하다. 미세한 냄새 분자도 가려낼 수 있다. 잡냄새 없는 부드럽고 짙은 향이 후각 기관을 흐뭇하게 만들고 폐를 가득 채웠다. 폐에 가득한 향기가 신체 구석구석으로 퍼져갔다. 아카시아꽃과 라벤더의 향기를 섞으면 이런 향이 나올까.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가 꿀꺽 삼켰다. 아프웨르키가 커피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렇게 먹으라고 했다.
“이게 뭐야!”
무쌍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입안에 바람이 인다. 아니 몸 전체가 떨린다. 잔잔한 파랑이는 지중해의 부드러움이 밀려온다. 애잔한 월송산 소쩍새 울음이 들린다. 아버지 무덤 앞에 핀 할미꽃이 눈앞을 스쳐 갔다. 아련한 향은 혜영의 페로몬, 달콤한 신맛은 에델의 향기다.
무쌍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커피 한 잔에 이처럼 복잡한 맛과 향을 담을 수 있다니! 이건 대박이다. 어쩌면 석유 이상으로 대박을 칠 수 있는 작목이다. 탄 맛, 쓴맛, 신맛이 어우러진 독약을 예상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쌈디, 내 생애 최고의 커피다. 아니, 커피가 아니라 인생이고 행복이고 사랑이었다. 에델에게 고맙다고 전해라.”
무쌍의 음성이 떨렸다. 커피 한잔에 이 많은 의미가 담겼음은 단순한 바리스타의 솜씨만은 아니다.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와킬의 말씀 그대로 전한다. 에델 아가씨가 기뻐서 죽으면 어떡하지!”
쌈디의 입이 찢어졌다. 자신이 칭찬들은 것보다 더 기뻐했다. 문을 나서던 쌈디가 돌아서서 덧붙였다.
“주인, 에델 아가씨가 말하기를 멀리서 온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면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찬스다!’
멍하니 커피잔을 내려다보던 마르주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갈지 난감하던 차에 안주인이 퇴로를 열어주었다. 그는 그제야 커피잔을 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안주인은 대단한 바리스타요. 나도 이처럼 훌륭한 커피는 마셔본 적이 없소. 예쁜 여자는 많아도 미녀는 별로 없소. 똑똑한 여자는 더러 있어도 현명한 여자는 별로 없소. 요리 잘하는 여자는 있어도 커피 잘 타는 여자는 별로 없소. 나는 오늘 커피를 잘 타는 현명한 미녀를 대면하는 행운을 누렸소. 정말 부럽소! 굴베이그씨는 세상의 행운이란 행운은 다 가진 분이오.”
무쌍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단술(식혜)을 잘 담그는 최고의 마누라라며 엄마의 엉덩이를 치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쌈디가 남긴 한 마디가 딱딱한 분위기를 풀었다.
“칭찬 고맙다. 나는 내 말을 뒤집어 본 적이 없는데 에델이 난처하게 만드는군.”
무쌍이 커피를 훌쩍 마시고 말을 이었다.
“협상은 서로의 신뢰에서 출발한다. 신뢰는 떨어졌지만, 사하라의 오지까지 걸음 한 수고를 생각해서 내 생각을 말하겠다. 당신이 계산한 투자비는 전통적인 수직시추 방법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사용하는 수평시추와 수압파쇄 기술을 도바 유전에 대입해서 뽑은 계산이다. 사마리아 광구는 분출 광구다. 마라카이보의 일부 광구 외에는 구경도 할 수 없게 된 노다지 분유정이다. 생산확률은 P1, 아니 100%다. 내가 뽑은 투자개발 비용은 3억 달러, 가채 매장량은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50억 배럴, 적극적으로 계산하면 100억 배럴이다. 내 눈에는 당신이 3억 달러를 투자해서 775억 달러를 삼키려는 협잡꾼으로 보인다. 내 말이 심한가?”
두둥-
신랄한 비난에 아리바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마르주리 회장의 주름진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유정 상황과 향후의 프로세스까지 파악한 상대 앞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셈이다.
스바르드 굴베이그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잘못 건드리면 큰코다친다는 보니파스의 경고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마르주리는 욕심이 목까지 찬 인물이지만, 물러설 때를 안다는 장점이 있다.
상대는 작아도 일국의 군주다. 기라성같은 부하들이 버티고 있음에도 직접 협상에 나섰다는 점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뻗대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그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미안하오. 내가 굴베이그씨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소. 사과하겠소.”
마르주리가 일어나서 동양식으로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말없이 마르주리를 바라보던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사과를 받아들이겠다.”
“회계사를 불러주겠나?”
“그러지!”
무쌍이 인터폰을 눌러서 회계사를 불렀다. 마르주리는 회계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다음 입을 열었다.
“광구 탐사와 개발은 토탈사에서 전적으로 진행하겠소. 토탈은 도바 광구의 지분 1%당 매수 대금으로 3억 달러를 지급할 용의가 있소. 50% 지분에 150억 달러면 어떻소? 매수 대금은 10년 분할 지급으로 하겠소. 일일 생산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굴베이그씨가 10년간 벌어들이는 달러는 석유 판매 대금과 지분 매수 대금을 합쳐서 최소 300억 달러 이상이 될 거요.”
마르주리는 최초의 제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배팅을 던지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300억 달러는 석유 메이저만이 언급할 수 있는 숫자다.
‘눈이 뒤집히지? 얼른 미끼를 물어, 깊숙이 삼키라고!’
번들거리는 눈이 생각에 잠긴 무쌍의 표정을 요리조리 살폈다. 세계적으로 분유정의 시대는 끝났다. 20세기 후반에 혜성처럼 등장한 도바 분유정의 가치는 계산을 뽑기 힘들다. 개발비용도 대폭 절약되지만 가채 매장량 100억 배럴의 초대형 광구일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의 유정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와르 유정이 토해내는 오일이 일산 500만 배럴이다. LNG와 황화가스까지 감안하면 하루 2억 달러가 아람코의 수중에 떨어진다. 단일 유정이 년 매출 73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이 석유의 파괴력을 보여준다.
그것만이 아니다. 어차피 유전은 말라가고 유가는 올라가게 되어있다. 유가가 두 배로 올라가면 가와르 유정은 연간 1,4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오일 머니를 벌어들이게 된다.
도바 유전이 일산 100만 배럴만 산출되어도 LNG를 합하면 4,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이 발생한다. 연간 146억 달러 50년간 벌어들이면 7,300억 달러다. 굴베이그에 10년간 지급할 150억 달러는 껌값이다.
‘300억 달러?’
어지간한 무쌍도 순간적으로 아찔했다. 300억 달러면 한화로 26조 원이다. 한국 지폐 두께는 0.11mm다. 26조 원을 만 원짜리로 쌓아올리면 286,000m다. 에베레스트 산 높이의 32배다. 현실적인 숫자가 아니다.
관광나이트클럽 보스에서 보조 웨이터 노릇 할 때 용돈으로 5,000원을 받았다. 막장에서 생명을 담보로 석탄을 캘 때 43,000원을 받았다. 용병 의뢰를 수행하면서 억 단위를 만져보았지만, 조 단위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다.
1984년 한국의 총수출액이 292억 달러다. 일개 기업이 한국의 연간 수출 물량을 우습게 보는 배팅을 했다. 석유의 위력에 몸서리쳐지고,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에 한숨이 나왔다.
충격은 충격이고 계산은 계산이다. 애초 마르주리 회장이 제시한 조건은 지분 50%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석유 판매 수익 50억 달러를 제시했다. 졸지에 배팅이 6배로 올라가고 10년 후의 석유 판매 수익까지 붙은 셈이다.
“배팅이 너무 크지 않은가?”
무쌍은 본인의 계산을 마치고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석유개발 사업은 어차피 도박이다. 솔직히 이번만큼 승률 높은 패는 없었소. 초기 투자비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사과하는 의미에서 내가 손해를 보도록 하지.”
무쌍은 마르주리의 생색에 쓴웃음을 지었다. 결혼하고 싶지 않은 노처녀도 있고, 세상 그만 살고 싶은 노인은 있지만, 손해 보는 장사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