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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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10
귓등으로 들었던 안주인의 말이 번쩍 떠올랐다. 마르주리는 가슴이 벌렁거렸다. 굴베이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이 나타난 신비한 인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수가 따르는 인물, 놀라운 능력을 지닌 측근들이 신으로 모시는 인물이 굴베이그다. 증상을 정확히 안다면 치료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유물론자인 마르주리가 믿는 신은 석유다.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관심 없다. 알라의 가호, 알라의 뜻대로, 하느님의 은총,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따위의 말을 들으면 두드러기가 돋는 인간이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안다. 근래 북해와 마라카이보에서 BP와 텍사코에 밀리고 중동에서는 OPEC이 자원 민족주의를 앞세워 메이저에 대항하고 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후계자를 걱정해야 할 만큼 몸의 상태가 나빠졌다. 출장 시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주치의를 대동하는 실정이다. 과연 심방세동이 호전될 수 있을까?
‘뚜바이부르파의 가호! 어쩌면?’
불현듯 지긋지긋한 지병을 떨칠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기대가 생겼다. 예수 천국이든 알라의 가호든 뚜바이부르파의 가호든 몸뚱이가 10년만 더 견뎌주면 여한이 없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신의 존재를 믿고 싶어졌다.
“마르주리 회장, 먼 길을 힘들게 왔으니 나도 한가지 선물을 주지. 조금 고통스러워도 참기 바란다.”
무쌍이 마르주리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두웅- 공진파가 투입되었다. 인간의 신체 중에 뇌보다 더 예민한 기관은 없다. 뇌혈관은 추골동맥이 뇌교하부에서 합쳐져 뇌저동맥을 형성하고 후뇌동맥과 연결되어 전방 좌·우측의 내경동맥과 연결된다. 이를 윌리스 서클이라 부른다. 윌리스 서클은 뇌의 각 부분이 한쪽 동맥이 막히더라도 다른 쪽 혈관에서 혈액을 공급받기 위해서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문제는 양쪽 통로가 모두 막혔을 때 심각해진다. 마르주리 회장의 상태는 한쪽이 막히고 다른 쪽은 절반쯤 막힌 상태다. 모세혈관은 어차피 서클을 형성하지 못하므로 무조건 뚫어주어야 한다.
무쌍은 솜방망이로 바위를 깨는 심정으로 혈관에 달라붙은 핏덩어리를 공진파로 두들겼다. 뇌혈관은 그물처럼 엉켜있다. 혈전은 가능하면 혈액에 용해되도록 잘게 부수어야 한다. 강약을 조절 못 하면 허약해진 혈관 벽이 터지거나 혈전 덩어리가 혈관을 타고 흘러나가서 다른 곳을 막기 십상이다. 몇 번의 경험이 있지만, 신경이 곤두섰다.
‘아!’
굵은 땀방울을 줄줄 흘리는 굴베이그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다. 마르주리는 돈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중국에서 기공사를 초빙하고 아프리카의 주술사까지 초빙해서 치료받은 경험이 부지기다. 물론 사기 친 놈은 심장에 총알이 박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굴베이그는 차원이 달랐다. 냉정하게 자신을 몰아치던 굴베이그는 사라졌다. 혼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는 뚜바이부르파만 존재했다. 굴베이그와 만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런 접점이 없다. 협상도 끝난 마당에 아쉬울 것 없는 굴베이그가 왜 고생을 사서 할까? 강퍅한 마르주리의 심장이 쩌적 금갔다.
“아이고, 못해 먹겠네!”
무쌍이 마르주리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진땀에 젖은 얼굴을 가제로 닦아냈다. 뇌혈관의 혈전을 말끔히 걷어내는 데 20분이 걸렸다. 아차 하면 멀쩡한 사람을 망치는 시술이다. 후뇌동맥의 혈전을 제거하고 모세혈관 9개를 뚫느라 신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닳았다.
시술 충격으로 반 가사상태에 빠진 마르주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왜 갑자기 변덕이 생겼을까? 방태산과 최도식, 세혼술이 둥하고 의식의 수면으로 떠올랐다.
당시의 처절했던 기억, 따듯이 보살펴준 아침가리 골 어르신들이 줄줄이 기억났다. 그렇다. 변덕이라기보다는 인연이다. 마음 가는 대로 행하는데 이유가 무슨 필요겠는가!
음경 해면체에 연결된 혈관은 쉽게 개통했다. 마르주리는 다른 원인이 없다면 남자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 텐트친 존슨을 보고 무한히 감동먹을 마르주리가 상상이 됐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부처님도 도와주려면 홀딱 벗어주라고 했다. 심방세동의 원인은 노화된 심장이다. 현대의학이 인간의 마음을 심장에서 뇌로 옮겨놓았지만, 심장은 결코 단순한 근육 덩어리가 아니다.
마음이 심장이라는 등식이 성립될지는 모르지만, 감정 변화에 반응하는 유일한 장기가 심장이다. 분노하면 펄떡거리고, 절망하면 쪼그라든다. 이성에게 필이 꽃힐 때 심장이 벌렁거리지 폐나 간이 벌렁거리지 않는다. 전기 신호든 호르몬 분비든 격렬한 감정에 자주 노출된 심장은 노화가 빨라진다.
심장세동도 마찬가지다. 심장에 부하가 자주 걸리면 방실결절 신경계에 이상이 생긴다. 심방의 혈액이 심실로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뇌에 공급되는 혈액이 부족해진다. 뇌가 아우성을 치며 혈액을 보내라는 신호를 남발한다.
전기 신호를 받은 심장이 정신없이 헐떡이는 현상이 심방세동이다. 심장을 고치지 않으면 어차피 증상은 계속되고 혈전은 다시 쌓인다.
심장노화는 현대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지만, 무쌍은 어린애 팔목 비틀 듯이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공진파로 심장을 세포 단위로 뒤흔들면 세포내외부에 쌓인 노폐물이 빠져나간다. 놀이공원에서 브레이크 댄스나 다람쥐 통을 탈 때 주머니 속의 동전이 튀어나오는 현상을 연상하면 된다.
노폐물이 빠져나가면 미토콘드리아가 재작동한다. 한 마디로 세포가 젊어진다. 심장 세포가 젊어지면 심장은 당연히 좋아진다. 무쌍이 손바닥을 심장에 붙였다.
“마르주리 회장, 뇌 혈전과 페니스 혈관의 혈전은 모두 제거했다. 지금부터 심장을 치료하겠다. 입을 열지 마라.”
두웅- 공진파가 신체 조직을 격하고 심장으로 투사되었다. 우르릉- 파장이 심장에 안개 입자처럼 스며들었다. 컨트롤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분이다. 쭈웅- 쭈웅- 심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검은 액체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응응응!”
시간이 지나자 마르주리가 묘한 앓는 소리를 냈다.
“시술은 곧 끝난다. 참아라.”
“농 농 즈 쒸 하비 꺄도!(아니 아니, 선물이 너무 기분 좋아!)
마르주리 회장의 표정이 마약을 먹은 듯 풀어졌다. 말소리가 고양이 울음처럼 가르릉거렸다. 붉어진 얼굴, 간헐적으로 경련하는 신체, 이마에 배어 나온 진땀, 끈적한 신음…….
‘이 양반이 설마?’
섬뜩해진 무쌍이 손을 떼고 물러났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무쌍이지만 늙은 게이는 무서웠다.
“마르주리 회장, 치료는 잘 끝났다.”
잠시 꿈속을 헤매듯 몽롱한 상태로 있던 마르주리 회장이 눈을 번쩍 떴다.
“아아아아~”
마르주리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무지근하던 머리가 추수감사절 하늘처럼 청명해졌다.
“가슴이, 가슴이 힘차게 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규칙적이고 힘찬 펌프질이 생의 환희로 다가왔다. 늘 신경 쓰이게 하던 가슴의 둔통도 사라졌다. 심장이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가뿐했다.
“느끼는 대로다. 당신의 심장은 다시 태어났다. 30대 젊은이의 심장만큼 건강해졌다. 쓸모없는 제세동기는 제거해도 좋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아~”
말을 잇지 못하던 마르주리가 펄쩍 뛰었다.
“오오, 힘이 돌아온다!”
아랫도리가 뻐근하니 부풀어 올랐다. 삼 년 만에 구경하는 텐트다. 마르주리는 감동의 쓰나미를 주체하지 못했다. 전생에 자신이 지구를 구했는지 우주를 구했는지 머리와 심장에 이어 존슨까지 새 생명을 얻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뇌와 입이 따로 놀았다.
“굴베이그씨, 아니 모두 뚜바이부르파라 부르니 나도 그렇게 부르겠소. 뚜바이부르파,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인간이요? 신이요?”
마르주리 회장은 절이라도 할 기세다.
“마르주리 회장, 내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마음에 통쾌한 일은 지나고 나면 재앙이 된다. 한때의 통쾌함을 백일의 근심과 바꾸지 마라. 당신의 탐욕과 지나친 승부욕이 당신의 심신을 갉아먹었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죽여왔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부모께 물려받은 내 생명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세상의 농토를 다 가져도 내가 먹는 것은 한 덩어리의 빵과 한 토막의 생선이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베풂에 있다. 행복은 마음과 몸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낸다. 당신이 누군가를 미소 짓게 만든 날이 있다면 그날은 당신의 생명력이 강해진 날이다. 메마른 사하라 사막에 수십억 프랑을 쏟아붓는 내가 어리석다 여기는가? 물론 시각에 따라서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아니 어리석어도 좋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바토피아 주민은 종교적, 인종적인 이유로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곳이 마지막 피난처다. 나는 내가 행복하려고 저들과 함께 잘 사는 꿈을 꾼다. 그대는 어떤 꿈을 꾸는가?”
두웅- 거대한 무엇이 뇌리를 휩쓸었다. 마르주리 회장이 망연한 눈으로 무쌍을 쳐다보았다. ‘그대는 어떤 꿈을 꾸는가?’ 마지막 물음이 메아리치듯 고막을 쟁쟁 울렸다.
“아아! 나는 여태 무엇을 위해서 살았던가?”
마르주리 회장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살아온 62년 세월이 허깨비 같고, 비누 거품 같았다. 제왕처럼 살았지만,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나를 위해 산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 산 것도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망가진 육체와 메마른 정신만 남아있다.
마르주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주름진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었다. 무쌍은 울고 있는 마르주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각성의 씨앗을 가지고 있지만 각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백이 혼탁해지면 각성의 씨앗은 묻혀버린다. 마르주리가 선한 인간이든 악한 인간이든 순수한 삶을 살아왔다는 방증이다.
‘저 인간도 갔네! 갔어. 어허, 아리바도 갔구먼.’
다과를 들고 응접실에 들어서던 쌈디가 비시시 웃었다. 쌈디의 뒤에서 에델이 눈물을 훔쳤다. 바로 저 모습이 뚜바이의 진정한 모습이다. 의지할 곳 없는 작고 여린 영혼이 찾아드는 큰 영혼, 마르주리 회장도 자신처럼 큰 영혼에 끌려들어 왔다.
마르주리 회장이 벌떡 일어났다. 무쌍의 앞에 무릎을 쿵 꿇었다.
“뚜바이부르파를 찬양하라. 세상이 좁다고 큰소리쳤지만, 놀이공원에서 엄마 손을 놓친 아이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현명한 사람을 따르라 했습니다. 소인은 뚜바이부르파님이 꾸는 꿈을 함께 꾸고 싶습니다. 소인을 받아주십시오.”
마르주리 회장의 말투부터 달라졌다. 냉랭하던 회색 눈이 열정으로 번쩍거렸다. 마르주리를 찬찬히 살피던 무쌍이 쌈디를 불렀다.
“쌈디, 이빨을 가져오라.”
거대한 사르코수쿠스 이빨을 받아든 무쌍이 공진을 휘돌렸다. 사사사삭- 억수갑이 사르코수쿠스 이빨을 쓰다듬었다. 하얀 뼛가루가 자욱이 날리고 불똥이 튀었다. 이빨은 순식간에 한 자루 단검으로 변해갔다.
“헐, 저 저게 뭔가?”
놀란 마르주리가 벌떡 일어나서 쌈디에게 물었다. 저 거대한 이빨 모양은 무엇이며 인간의 손이 물체와 마찰해서 불똥이 튈 정도로 단단한 물건이던가?
“쉿, 당신은 오늘 운수대통한 거요. 당신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지만, 주인께서 식구로 받아들일 모양이오.”
쌈디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마르주리는 어리둥절했지만 대충 상황을 알아차렸다. 굴베이그, 아니 뚜바이부르파가 자신의 바람을 들어줄 결심을 했나 보다. 달라질 자신의 삶이 어떤 모습일까?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둥- 작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무쌍의 손에 유백색으로 빛나는 각검(角劍)한 자루가 들렸다. 보니파스에게 지급한 나이프와 동일한 형태다.
마르주리가 홀린 듯이 나이프와 무쌍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손잡이에 구멍을 뚫을 때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불꽃이 일며 저절로 구멍이 뚫렸다. 초능력이라 하기엔 너무나 신비한 능력이다.
“마르주리 회장, 무릎을 꿇어라.”
쌈디가 목소리를 착 깔았다. 마르주리는 홀린 듯이 무릎을 꿇었다. 무쌍이 각검으로 마르주리의 어깨를 세 번 쳤다.
“마르주리, 당신은 나 뚜바이부르파의 식구가 되었다. 증표로 노바를 하사한다. 당신은 외부인으로 두 번째 노바가 되었다. 당신의 이름은 답상(Dapsang)이다. 답상은 앞으로 나를 와킬이라 불러라.”
무쌍이 억수갑으로 노바 손잡이를 훑었다. 바바바바- 불꽃이 튀며 각검 손잡이에 Dapsang이 새겨졌다. 마르주리는 반쯤 혼이 나간 상태로 답상을 받았다.
“노바! 답상!”
마르주리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노바는 신세계, 답상은 티베트 현지인이 히말라야 제2봉인 K2 봉을 부르는 명칭으로 큰 산이란 뜻이다.
뚜바이부르파의 인정을 받았다. 자신은 이제 피에르 마르주리인 동시에 답상 노바다. 가슴 밑바닥에서 원인 모를 충족감이 솟아올랐다. 불속에 들어간 듯 몸이 뜨거워졌다. 답상을 불끈쥐고 소리쳤다.“와킬, 소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니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답상, 십일조라도 내고 싶은가? 재산이라도 헌납하고 싶나? 아서라. 당신은 뚜바이부르파의 가족이자 노바토피아의 일원이 되었다.”
무쌍이 말을 멈추고 마르주리를 응시했다. 얼굴에 미소가 슬쩍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