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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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13
보복 수단을 궁리할 때 일이 되려고 경비 조장 놈이 전갈에 물렸다. 패혈증 운운하며 잔뜩 겁을 주고 테르페나딘을 던져주었다. 깜둥이 녀석이 죽고 사는 문제는 깜둥이 본인의 심장과 혈관에 달려있다. 건강하면 별일 없을 것이고, 평소 문제가 있으면 나무 코트를 입을 것이다. 녀석이 죽으면 속 시원하고 죽지 않으면 그놈의 복이다.
와잘란은 저택 경비원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일반인이라면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 화가 나더라도 상대를 죽일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발터가 보여주는 일탈 행태는 인격장애가 원인이다.
발터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편집성 성격장애, 즉 B 군, A 군 복합적인 성격장애인이다. 성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작은 일에 분노하고, 억압하는 상대를 미워한다. 억압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평범한 장삼이사는 실질적인 피해를 받지 않은 이상 참고 지나간다. 반면에 성격장애인은 다양한 보복성 반응을 보인다.
성격장애 B 군에 속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인의 행태는 ‘내가 누군데’ ‘나를 감히’ ‘난 너희와 달라.’라는 특권의식과 오만한 행동,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한 철저한 복종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쌍과는 대척점에 서는 인격이다. 한국의 국개의원들 다수가 B 군에 속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인이다.
성격장애 A 군에 속하는 편집성 성격장애인의 행태는 ‘나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불바다를 만들어 주겠어.’ ‘천배 만배 보복할 거야’로 나타난다. 냉담과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네가 잘못했으니 벌준다는 식으로 자신의 폭력적 행위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편집성 성격장애가 결합할 경우 대단히 위험도가 높은 소시오패스가 출현한다. 평소엔 누구도 그 위험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장필녀와 발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룰룰룰♪ 나는 천재 발터님, 누가 이처럼 깔끔하게 처리하겠어. 흐흐흐!”
발터가 낄낄거리며 처방전을 몇 장 빼냈다. 와잘란에게 처방한 이트라코나졸 처방전이다. 처방전은 갈가리 찢겨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독일인답게 증거인멸도 철저했다.
“빌어먹을 놈!”
발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이빨을 갈았다. 깜둥이 따위야 죽든 살든 별것 아니다. 정작 죽여야 했던, 기회만 오면 죽이고 싶은 놈은 따로 있다. 사설탐정을 동원했지만 지난 4년간 종적을 찾지 못한 블랙맘바라는 놈, 사랑하는 에델과 생이별하게 한 놈이 바로 죽이려고 벼르는 놈이다.
피범벅이 되어 동료의 등에 업혀왔던 노랑이 용병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에델이 땟국물 줄줄 흐르는 노랑이를 따라나선 이유는 지금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오늘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반드시 들을 것이다.
발터가 금속제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가지런히 누워있는 궐련 틈에 새끼손가락 두마디 크기의 알루미늄 원통이 들어있다. 원통 내부를 채운 충전제 속에 누에똥을 닮은 지름 3mm짜리 연질 캅셀 두 개가 들어있다. 크기는 보잘것없지만, 내용물은 코끼리 서너 마리를 죽일 수 있는 극독이다. 그것도 2~3개월 후에 죽는 타임 포이즌이다.
동인도 제도에 스트리크노스 눅스 보미카란 학명의 키 작은 상록수가 있다. 오렌지색 열매의 껍질을 벗기면 하얀 젤라틴성 과육 내부에 납작한 씨앗 몇 개가 들어있다. 이 씨앗을 알코올로 끓여서 용액을 증류한 다음 초산을 가하면 한 시대를 풍미한 ‘스트리키니네’가 만들어진다.
스트리키니네 치사량은 0.1g이다. 독성도 대단하지만, 신경과 근육이 위축되는 강직 고통은 상상을 절한다. 고개와 등이 활처럼 뒤로 휘어져서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는다. 입에서는 담즙과 거품이 쏟아지고 팔다리가 뒤틀리며 안구가 튀어나온다.
한국의 사약 재료는 부자, 천남성, 투구꽃 등의 조합 물이다. 죽이더라도 가능하면 고통을 덜어주려 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극도의 고통을 주는 독약을 선호했다. 스트리키니네가 대표적이다. 어차피 죽이는 마당에 인도적이냐 비인도적이냐를 따지는 것도 열적은 일이지만, 백인이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음은 사실이다.
스트리키니네와 달리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지속성 독약으로 큐라레(curare)가 있다. 큐라레는 16세기 아메리카 인디언이 화살에 바르던 독약으로 혈액에 섞였을 때만 말초 운동신경에 작용하는 신경독으로 경구 복용해도 중독되지 않는다.
큐라레는 소비에트연방에 추락한 U-2기의 조종사 소지품에서 발견되면서 다시 세간에 알려졌다. 미군 조종사가 자살용으로 소지할 만큼 고통 없는 독약이 큐라레다.
발터는 스크리키니네를 클로로폼으로 용해하고 큐라레를 첨가해서 타임 포이즌인 ‘랑삼 치어스 기프트’(천천히 안녕 독약)를 만들었다.
‘랑삼 치어스(천천히 안녕)’는 큐라레가 체내에 흡수될 때까지 스트리키니네의 독성을 억제한다. 희생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1~2개월 후 큐라레가 사라지면 스트리키니네 독효가 발동된다.
희생자는 스트리키니네 특유의 강직 고통에 시달리며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자기애성, 편집성 성격장애인인 발터의 성격에 딱 맞는 독약이다.
발터가 랑삼 치어스 캅셀을 두 개 만든 이유가 있다. 에델이 끝내 자신을 거부하면 지옥의 고통에 밀어 넣고 감상할 작정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따위의 순정은 발터류의 인간과는 공존 불가능이다.
보툴리누스 톡신을 해독하는 무쌍이 랑삼 치어스 따위에 타격받을 일이야 없지만, 에델은 사정이 다르다. 설사 무쌍이 없더라도 성격장애인인 발터의 사랑을 받아줄 리 만무다.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 셈이다.
요아 하우스 후원, 종려나무로 짜 맞춘 긴 테이블에 손님들이 속속 자리 잡았다. 손님은 블랙컬처와 MSF가 전부다. 다섯 명의 요리사가 테이블과 야외 조리대를 바쁘게 오갔다.
초청 손님은 로렌 기즈와 로만 발터를 비롯한 MSF 의사 5명과 간호사 및 보조인력 20명이 전부다. 옴부티는 블랙컬처만 모여서 해후를 즐기고 싶었지만, 에델이 국경없는의사회를 초청했다.
블랙컬처는 14명으로 노바토피아의 개발과 행정을 맡은 문관 7명, 치안을 맡은 전사 7명이다. 이들 14인이 노바토피아를 견인하는 기관차다.
문관은 알 아만 옴부티, 호크 오리피스, 보팔 셔니언, 미셀 무울소리, 빨레 아프웨르키, 바크리 자디르, 모하메드 자디르다. 전사는 쌈디 부르파, 선우현, 자말 아무드, 아흐마드 마르완, 아이쉐 부르파, 압둘 이브라힘, 네제마 부르파다.
바크리, 모하메드, 자말, 아흐마드 등이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명망 있는 아랍계 가문이기 때문이다. 아랍 가문의 풀네임은 대략 8개로 구성된다. 존칭, 이름, 누구의 아들, 누구의 손자, 성이 붙기 때문에 풀네임을 부르다간 날 샌다. 같은 항렬의 사람이 많다 보니 성을 부르면 구분할 수 없어진다. 자디르 일족만도 120명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름있는 가문은 사람을 부를 때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참석자는 39명에 불과했지만, 후원은 왁자지껄했다. 블랙컬처의 테이블은 뚜바이의 행보, 노바토피아 개발, 유전 개발 등등 화제가 넘치고, 게스트들은 뚜바이부르파의 정체를 추정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아클란 크루, 와킬은 이참에 양지로 나올 생각인가요?”
아이쉐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마도……. 공식 석상에 존안을 드러내는 걸로 봐서는 컨설팅을 접기로 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쉐의 질문에 옴부티가 뜨뜻미지근하니 응답했다.
“그건 아닐 거요. 내 생각엔 와킬이 주된 인격과 종된 인격을 바꾸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뚜바이부르파라는 명칭도 오늘을 위해서 준비했을 거요.”
“쉽게 이야기해봐요. 모하메드 아저씨와 교수님들은 말을 너무 어렵게 하거든요.”
아이쉐가 모하메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투덜거렸다. 블랙컬처의 눈이 일제히 모하메드의 입을 향했다. 모하메드는 정보 수장으로서 날카로운 눈과 통찰력이 있다.
“와킬은 죽음의 천사다. 와킬의 존재는 수차례의 컨설팅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강대국의 시선을 끌었다고 봐야한다. DGSE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와킬은 죽음의 천사에서 뚜바이부르파로 탈바꿈하셨다. 컨설턴트에서 초월적 지도자로, 죽음의 천사에서 노바토피아의 왕으로 탈바꿈했다. 와킬과 교감한 DGSE는 스바르드 굴베이그라는 세탁된 신분을 준비했다. 와킬이 불가피하게 컨설팅에 나서야 할 때는 변신~”
“모하메드, 그만하게! 아무리 우리끼리지만 하인이 주인의 행적을 예단함은 바람직하지 않네.”
옴부티가 손을 들어서 모하메드의 말을 막았다.
“아클란 크루의 말씀이 옳습니다. 내가 너무 나갔습니다.”
모하메드가 고개를 숙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피를 나눈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나쳤다.
“한마디로 슈퍼맨이 삼각팬티를 입고 클락 켄트의 양복을 걸치느냐 클락 켄트가 양복을 입고 삼각팬티를 걸치느냐의 문제군요.”
아이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불감청 고소원이다. 한 나라를 책임진 국왕이 히트맨 노릇을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지금까지는 수많은 난민 때문이라 하지만 석유가 개발된 마당에 무리할 이유가 없다. 모두 도시락 싸서 따라다니며 주인을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왕의 귀환을 위하여!”
아이쉐가 아크라 잔을 들었다.
“뚜바이부르파를 위하여!”
나머지 사람이 일제히 후창했다.
“꿀 보직을 왜 그만두지? 한번 움직이면 수억 프랑이 쏟아지는데.”
듣고만 있던 선우현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열세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선우현의 얼굴에 꽂혔다.
“내가 못할 말 했슴메?”
시선에 눌린 선우현이 어물어물했다. 사마리아 농장에서 실패한 후로 나미르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개나 소나 무시하려 든다.
“인간아, 머리는 못 박는 망치로 쓸겨? 와킬은 노바토피아의 왕이다. 왕이 카이트(연, 일선 공작원) 노릇을 하란 말이냐. 신상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쩔 겨? 생각 좀 하고 말해라.”
선우현 킬러인 쌈디가 가차 없이 공박했다.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기요. 공격 헬기를 격추하고 땅끄를 박살 내는 와킬을 누가 죽일 거임메. 죽을 염려도 없는데 벌 수 있을 때 왕창 벌어야디.”
선우현은 꿋꿋이 버텼다. 자말과 아흐마드의 얼굴에 냉기가 흘렀다. 선우현의 말에 나쁜 뜻은 없지만, 왕을 대하는 태도로는 상당히 문제 있는 발언이다. 삐이이- 아흐마드가 막 일어서려는 순간 옴부티의 무전기가 울렸다. 바셀의 신호다.
“오신다.”
옴부티의 한마디에 장내의 소란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아이쉐가 손을 흔들자 후원을 둘러싼 나트륨등이 주르륵 켜졌다. 블랙컬처와 요리사들이 부동자세로 대기했다. 게스트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핫팬츠와 나시 티를 걸친 늘씬한 미녀가 나타났다. 뒤이어 흰색 간두라를 걸친 동양인 청년과 금발 미녀가 손을 잡고 입장했다. 금발 미녀의 뒤를 거대한 적갈색 짐승이 따라 들어왔다. 무쌍의 명령을 받은 디노는 에델로부터 10m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블루아트 블루아트 러 데제! 뚜바이부르파를 찬양하라. 노바토피아여 영원하라.”
우렁찬 함성이 석양을 흔들었다.
“이것 참, 얼굴이 뜨끈해지네.”
무쌍이 뒤통수를 긁었다. 에델이 손바닥을 꼬집었다.
“답례하셔야죠.”
“블루아트! 열심히 먹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싸자!”
“우와! 뚜바이 뚜바이!”
블랙컬쳐 회원들이 고함을 지르고 포크로 쟁반을 두드렸다. 무쌍과 함께 사선을 넘고 구른 옴부티 등은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파격적인 주인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반면에 게스트와 요리사들은 벙찐 표정으로 노바토피아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이건 광신도인지 유명 연예인의 팬인지 헷갈렸다.
이지하나가 요리사들을 지휘해서 음식을 내기 시작했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김치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이지하나의 최대 관심사는 뚜바이부르파다. 뚜바이부르파가 이처럼 젊은 사람일 줄 몰랐다. 그는 키크고 잘생긴 젊은 동양인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놀란 사람은 발터다. 에델이 다른 남자와 다정히 손잡고 나타날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상상도 못 했던 장면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으으~”
발터가 이빨을 물고 신음했다. 식탁 아래 움켜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의 에델이 왜 노바토피아의 왕과 손을 잡고 나타난단 말인가. 타격대가 경호하는 집에 거주하는 에델이 이상하긴 했지만, 별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MSF 의사들의 주거지는 모두 타격대의 경호를 받으니 말이다.
‘안돼, 그러면 안 되지! 너는 그럴 수 없어!’
발터는 피눈물을 삼켰다. 그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에델에 어울리는 남자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만이 에델을 차지할 수 있고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노바토피아의 왕? 이까짓 사하라 사막의 추장 따위가 무슨 왕이란 말인가! 그런데 저건 뭔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 남자를 쳐다보는 얼굴에 담뿍 담긴 미소는 뭐란 말인가? 발터의 눈이 질투로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