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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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사필귀정14
어쭙잖은 살기를 느낀 무쌍이 내빈석을 슬쩍 돌아보았다. 키가 멀대처럼 크고 뼈대가 굵은 백인이 눈에 들어왔다. 쌈디를 비롯한 블랙컬처와 디노가 있는 자리에서 살기를 뿌리다니 웃기는 녀석이다.
‘응! 저 친구는 아띠 MSF의 외과의?’
공간지각력은 생물체 고유의 기와 뇌파로 대상을 파악한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싹수없던 의사 녀석이 바로 매칭되었다.
‘저 인간이 왜 사흘 굶은 시에미 행색이지?’
무쌍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질투심인가? 에델을 바라보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기세다. 연예인의 로맨스를 자기 일인 양 분개하고 질투하는 속없는 인간도 많은 세상이다.
짝사랑이 죄는 아니다. 말썽부릴 싹수가 보이면 들어내면 그만이다. 무쌍은 관심을 지우고 시선을 돌렸다. 원래 잘난 놈은 주변인의 피해의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봐, 요리장!”
무쌍이 이지하나를 불렀다.
“헉, 저 말입니까?”
멍때리던 이지하나가 화들짝 놀랐다.
“그럼, 이곳에 이지하나란 요리장이 당신 말고 또 있나? 요리장 노릇이 싫으면 관두고.”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블루아트! 영광입니다.”
이지하나가 바람처럼 달려와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국왕이 보잘것없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다. 아니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에 울컥했다.
“아이쿠, 귀청 떨어지겠네. 나이도 나보다 열 살은 많은 것 같은데 편하게 가자고.”
이지하나는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벌겋게 달아오른 숯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 왕과 요리사가 나이로 순서를 가렸던가! 이지하나는 오히려 얼음기둥이 되었다. 무쌍이 매운탕 국물과 불고기를 맛보았다. 느닷없는 왕의 시식이다. 요리사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무쌍을 주시했다.
‘그런대로 먹을만하네.’
뭔가 부족한 듯하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다. 제대로 된 얼큰하고 입에 짝 붙는 맛을 기대하면 나쁜 놈이다.
“훌륭하다. 나는 요리를 잘 모르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이끌어냈다.”
“와! 감사합니다.”
요리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진심이 깃든 칭찬 한마디에 요리사들이 꺼벅 넘어갔다. 요리는 고된 노동이다.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복잡한 준비가 필요하다. 미묘한 맛을 이끌어 내기 위해 양념을 어떻게 배합할지, 불 조절은 어떻게 할지, 숙성 과정을 거칠지 말지……. 손과 머리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정치인이 거짓말로 먹고살고,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이 요리사는 맛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훌륭하다. 맛있다는 평가를 듣는 순간에 그 모든 노고를 보상받는 직업이 요리사다.
“이지하나 요리장, 고생했다. 졸병들과 한잔해라.”
무쌍이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낸 지폐 뭉치를 이지하나의 손에 쥐여주었다. 부족한 재료로 매운탕, 김치찌개, 불고기, 비빔밥, 잡채까지 만들었다. 요리장의 내공도 내공이지만 정성이 가상했다.
“블루아트!”
이지하나는 엉겁결에 금일봉을 받고 거수경례를 올렸다. 무쌍이 늘어서 있는 요리사들의 어깨를 일일이 두드려주고 칭찬했다.
“만세, 뚜바이부르파여 영원하라!”
요리사들이 두 팔을 번쩍 쳐들고 만세를 불렀다. 이지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가식 없고 소탈한 왕, 아랫사람의 노고를 알아주는 왕, 이런 왕을 위해서라면 한 몸 바쳐서 아까울 것 없다. 이지하나와 요리사들은 한 방에 뚜바이부르파의 신도가 되어버렸다. 아리바 과장이 두려워했던 공감 능력이다.
무쌍이 게스트 테이블로 향했다. 노바토피아에서 가장 부족한 부문이 의료 시스템이다. 치료 체계가 갖추어지기까지 MSF의 조력이 절실했다. 옴부티도 도움이 절실한 만큼 MSF대원을 귀빈 대우했다.
‘저 저놈!’
발터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뻔했다. 호리호리한 신체에 갸름한 얼굴, 선량해 보이는 눈, 왼쪽 뺨에 남아있는 흐릿한 쌍 십자가 형태의 흉터, 에델과 손을 잡고 걸어오는 놈은 찢어 죽일 놈, 용병 블랙맘바가 분명했다. 겔프 아퍼(노란 원숭이)가 노바토피아의 왕이라니! 낙타가 돌려차기할 사건이다.
‘천박한 년, 창녀 같은 년!’
발터의 눈이 돌아갔다. 저년은 자신의 천사가 아니다. 노란 원숭이와 함께 떠나더니 기어코 붙어먹은 잡년이다. 증오로 부들부들하는 발터의 귀에 요리사의 대화가 들렸다.
“이봐, 오늘 메뉴에 부야베스는 없었잖아?”
“아, 뚜바이부르파님 자리의 부야베스 말인가? 아가씨가 직접 만들었을 거야. 어제저녁에 요리장님이 재료를 준비해서 하우스로 거셨거든.”
“오, 천사가 만든 부야베스라니! 뚜바이부르파님은 얼마나 행복하실까.”
“아가씨가 뚜바이부르파님을 그만큼 사랑하는 거지.”
“두 분이 너무 잘 어울려. 위대한 분이 이토록 소탈할 줄은 몰랐어.”
“나는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천박한 겔프 아퍼가 위대하고 소탈한 왕이라고? 발터는 자신의 귀를 뜯어내고 싶었다. 부야베스는 단순해 보이는 요리지만, 육수를 제대로 내려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한다. 에델이 더러운 용병 놈이 먹을 음식을 손수 요리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억장이 무너졌다. 분하고 억울한 심장에 기름이 부어졌다.
‘더러운 년놈, 한꺼번에 죽여주지.’
발터는 과묵한 아리아인의 피를 이어받은 정통 독일인이다. 분노를 삭이고 품속에 들어있는 담배 케이스를 꺼내서 코히바지골로를 물었다. 케이스 구석에 들어있는 알루미늄 원통이 분노로 달아오른 머리를 식혀주었다.
“뚜바이부르파를 찬양하라.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즈 박사가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눈앞의 거인이 기억을 잃고 눈 덮인 산중에서 살던 어린 친구다. 한국의 방태산에서 불알을 내놓고 함께 사우나를 했던 어린 친구가 나라를 만들고 왕이 되었다.
기즈의 눈에 대견함과 따뜻한 정이 가득했다. 무쌍이 섬전처럼 다가서서 기즈의 허리를 들어 올리고 손을 꽉 잡았다.
“나는 명망 높은 기즈 박사님이 허리를 숙일 만큼 잘 난 사람이 아니다.”
“노바토피아의 국왕이 이렇게 젊은 분이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만나뵈어서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기즈 박사님과 여러분들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무쌍이 MSF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친구, 나중에 조용히 회포를 풀자고.]가느다란 소리가 기즈의 고막을 두드렸다. 무쌍과 기즈가 눈짓을 교환하고 미소를 지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초청에 감사드립니다. 블루아트 블루아트 러 데제!”
일제히 허리를 숙여서 예를 표하는 MSF 팀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뜨악했다. 소문도 틀리고 추측도 틀렸다. 노바토피아의 왕은 아랍 왕자도 아니고, 유태계 부호도 아니고, 아프리카 부족장도 아니고, 대 주술사도 아니었다. 평범한 동양인, 그것도 잘생긴 젊은이다. 호기심에 번득이는 수십 쌍의 눈이 무쌍과 에델의 피부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무쌍이 발터를 돌아보았다. 죽일 듯이 노려보던 발터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표정한 본연의 얼굴로 돌아갔다. 적수 앞에서 적의를 드러낼 만큼 발터의 내공이 낮지 않았다.
‘그놈이었군!’
아띠에서 치료를 거부했던 외과의 로만 발터다. 경고해줄까 하던 무쌍이 고개를 돌렸다. 일일이 신경 쓰기엔 그의 신경이 지나치게 굵었다.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무쌍이 손을 흔들고 주빈석으로 걸어갔다. 발터는 또 한 번 속이 뒤집혔다. 자신은 몇 년간 앙앙불락 했는데 놈은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무쌍의 뒷등에 독기어린 시선이 꽂혔다. 발터류의 성격장애인은 무시당하면 절대로 참지 못한다.
“모두 죽을 둥 살 둥 일했구먼!”
“뚜바이부르파님의 나라고,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니까요.”
아이쉐가 방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쉐, 사하라의 자외선은 살인적이다. 보기는 좋다만 피부 관리에 신경 써야겠다.”
무쌍이 훤히 드러난 아이쉐의 팔다리를 쳐다보며 혀를 찼다. 희던 아이쉐의 피부가 석탄처럼 까맣게 탔다. 날마다 훈련장에서 자경대를 굴린 업보다.
“농 쁘라블렘! 저희는 뚜바이부르파님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에요. [예쁜 얼굴과 몸매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름다움은 만인이 즐겨야 한다.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은 죄악이다.]라고 말씀하셨죠. 누가 감히 뚜바이부르파의 뜻을 어기겠어요. 노바토피아 여성은 감히 뚜바이부르파님의 금언을 어길 간담이 없답니다. 노바토피아에서 부르카와 니깝은 자취를 감추었어요. 히잡과 차도르를 착용하는 일부 여성들도 강요가 아니라 전통을 버리기 싫어서죠. 시내에 나가면 팔다리를 훤히 드러낸 여자가 넘쳐날 거예요.”
아이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변을 토했다.
‘아이쿠!’
무쌍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에델이 민망할세라 무심코 했던 말이 사도의 금언으로 탈바꿈했다. 가슴을 내놓고 다니라고 했으면 가슴을 내놓고 다닐 인간들이다. 뚜바이부르파가 노바토피아 주민들에게 선지자, 사도로 각인되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좋아?”
“그럼요. 니깝이나 부르카에서 해방된 여자들이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뚜바이부르파님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연인이 되었답니다. 시선 처리에 애를 먹는 남자들도 뚜바이부르파님을 찬양하고 있을 거예요. 저도 뚜바이부르파님의 팬이에요. 호호호!”
“모두 좋아한다니 다행이군!”
무쌍은 속으로 비지땀을 흘렸다.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할 위치가 되어버렸다. 노출은 여자의 본능이다. 순진한 그는 여자들이 사도의 금언을 핑계로 너도나도 노출광이 되었음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뚜바이, 고맙네. 엉겁결에 시작했지만, 인생 후반이 이처럼 빛날 줄은 몰랐네. 건배하세.”
오리피스가 새카맣게 탄 얼굴을 들이밀었다.
“죽도록 혹사당하면서 고맙다는 변태가 한둘이 아니구먼.”
무쌍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떠올랐다.
“우리의 왕이야말로 진짜 변태지. 죽으라고 번 돈을 사막에 몽땅 털어 넣고, 우리 같은 퇴물을 먹여 살려야 하니 말일세.”
“와하하!”
오리피스의 반격에 웃음이 터졌다.
“저걸 보게. 눈물 날만큼 아름답지 않나? 지푼다리의 석양만으로 나는 넘치는 보상을 받았네.”
셔니언이 주홍색과 연푸른색으로 휘도는 지평선을 가리켰다. 우뚝우뚝 솟은 거대한 사암괴와 붉은 대지, 호수가 불타는 석양과 어울린 풍경은 가히 일절이었다.
“지구의 풍경이 아니다. 허브 역할을 할 인공 오아시스 조성이 끝나면 노바토피아의 국민은 관광 수입만으로도 밥 굶을 일은 없다.”
오리피스가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숨 막히는 도시 생활이 싫어서 이곳에 뿌리박았다. 땅은 이용하기 나름이다. 관광 인프라만 갖춰지면 도시 문명에 지친 유럽인들이 물밀 듯이 몰려오게 되어 있다.
“녹화 사업과 건설 사업 진척도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나도 여러분이 이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자세한 보고는 내일 듣기로 하고 건배하자고. 블루아트!”
“블루아트!”
원샷한 노바토피아 산 아크라가 찌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크라 때문이 아니다. 갈 곳 없는 난민을 받아들여서 사막을 녹화하고, 살만한 나라를 만든다. 이거야말로 사나이로 태어나서 해볼 만한 사업이 아니던가!
‘응?’
흐뭇한 기분에 젖어있던 무쌍이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공간지각력에 불안해진 뇌파와 급격히 떨어지는 생명 반응이 잡혔다.
“아이쉐, 후원 입구에 누가 있나?”
“3조 경비조장 와잘란의 경비 구역입니다.”
“문제가 생겼다. 확인하라.”
무쌍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후원 입구가 소란해졌다. 아이쉐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입구로 뛰었다. 소란이 점점 커졌다. 누군가가 소리높여 닥터를 불렀다.
무쌍이 청각을 개방했다. 300m 떨어진 저택 입구의 소음이 고스란히 들렸다. 간호원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소리, 제세동기를 가져오라는 외침, 누군가의 한숨 소리, 와잘란이 죽었다는 소리가 뒤섞였다. 무쌍이 번쩍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유 없이 심장이 정지했네. 연근육이 경직되었으면 심폐소생술이 효과적이겠지만, 내 소견으로는 심장근육이 이완되어 버렸어. 소용없을 것 같네.”
기즈 박사가 와잘란의 가슴에 걸터앉아 가슴이 빠개지라고 압박하는 간호사를 가리키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쉐, 기즈 박사님만 남기고 모두 물려라.”
“블루아트!”
자경대 십여 명이 중인을 몰아내고 둥근 차폐벽을 쳤다. 무쌍이 손바닥을 와잘란의 가슴에 붙였다. 두웅- 공간지각력을 발휘했다. 뚜렷한 증상이 보이지 않고 심장이 정지해 있을 뿐이다.
와잘란의 상태는 이트라코나졸로 인해 강화된 테르페나딘의 독성이 심장 연근육의 칼슘 통로를 차단한 상태다. 비정상적인 심장 전위차로 인해 심장근육과 연근육이 해파리처럼 풀어져 버렸다.
약물로 자극하고 심장을 압박한다고 수축력을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이 없는 무쌍은 이러한 기전을 알지 못한다.
웅- 식어가는 와잘란의 신체가 진동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무지막지한 공진파가 심장에 밀려들어 갔다. 쏴아아- 심장제세동기는 비교도 안 될 강력한 진동이 와잘란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심장 세포에 누적된 노폐물이 우르르 씻겨나가고, 테르페나딘의 독성도 홍수에 휩쓸리는 흙담처럼 쓸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