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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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 조율 좀 해주세요1
분석되지 않는 의문이 발터의 뇌를 가득 채웠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 거품, 바르르 떨리는 심장, 뻣뻣해지는 팔다리, 전형적인 중독 증상이다.
랑삼 치어스는 소화기를 통해서 흡수되지 않으면 독효가 없다. 캅셀을 만진 자신은 중독될 이유가 없었다. 발터는 자신이 사프란에 중독되었음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아무리 원인을 찾고 경로를 추적해도 중독된 연유를 알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나는 발터다. 천한 노랑이 원숭이가 아니라 정통 아리안의 후예, 로만 발터란 말이닷.’
발터가 악을 썼지만, 정통 아리안족 타이틀은 사프란의 침습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랑삼 치어스의 동물실험을 마쳤지만, 적당한 임상 대상자(희생자)를 구하지 못했다. 웃기게도 최초 임상시험을 자신의 몸으로 치르게 된 셈이다.
특이하게도 정신이 겨울철 지중해 하늘처럼 맑았다.
‘말짱한 정신으로 죽어가는 몸을 지켜보는 것이 랑삼 치어스의 중독 증상이었군. 흐흐흐, 이거야말로 진정한 독약이 아닌가!’
발터는 분통 터지고 억울한 와중에도 자부심이 느껴졌다. 뇌가 죽어가는 신체를 정확히 인지한다. 그것도 시시각각 변해가는 몸의 상태를 눈으로 들여다보듯이 파악한다. 이거야말로 독의 신세계가 아니던가!
흐려지는 시야에 남은 정신을 털어 넣었다.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는 블랙맘바와 에델이 한순간 또렷이 보였다. 블랙맘바가 부야베스 육수를 숟가락으로 떠먹고 새우를 나이프로 잘라먹는다. 에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든다.
에델이 와인을 마신다. 자신이 랑삼 치어스를 내부에 코팅한 와인잔이다. 백인 중늙은이가 스푼을 부야베스에 슬쩍 담근다. 에델이 째려본다. 중늙은이가 껄껄 웃으며 쌈디라 불린 거한을 올려본다. 거한이 자신의 접시에 부야베스를 덜어서 먹는다. 저놈도 죽었다.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불쌍한 놈, 주인을 잘못 만난 죄다. 젠장 나는 뭐냐고!’
발터의 머리가 테이블에 쿵 떨어졌다. 그의 뇌에 마지막으로 남은 연산은 ‘우리는 바람에 실려온 별들의 먼지를 일구고 빗물 한잔에 든 우주를 마신다.’는 이합 하산의 말이었다.
그렇다. 세상엔 불가사의한 일이 수없이 일어난다. 성공한 삶보다는 평안한 삶이 백배는 어려운 세상살이다. 무쌍을 죽일 기회만 노려온 발터다. 정작 무쌍이 먹고 죽을 부야베스를 자신이 퍼먹고 죽을 줄이야…….
이래서 어느 나라든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에도 사필귀정에 해당하는 격언이 있다. 꼼 옹 폐 쏭 리 옹 스 꾸슈!(아침에 정리한 대로 저녁에 잠자리에 들게 된다!)
발터가 들것에 실려가고, MSF 팀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내빈으로 참석한 발터가 돌연사했지만, 요아 하우스 후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떠들썩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오리피스, 셔니언, 무울소리 교수와 요리사들은 발터가 죽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기즈 박사가 과로 때문에 졸도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뚜바이부르파의 가신들은 죽음의 공포와 싸워온 사람들이다. 의사 한 명이 죽는다고 동요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겐 뚜바이부르파가 중요할 뿐, 그 외의 사건은 그냥 소소한 일상사일 뿐이다.
사건은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따르르- 이브라힘의 품속에 든 무전기가 울렸다. 잠자코 보고를 듣던 이브라힘이 무전기를 단락하고 옴부티를 돌아보았다.
“아클란 크루,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곤란? 죽었던 놈은 살아나고, 멀쩡한 놈이 느닷없이 죽어 나자빠진 판국에 더 곤란한 일이 뭐가 있어?”
옴부티는 심드렁했다. 와킬과 에델 아가씨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옴부티의 기준에 따르면 곤란한 일이 있을 게 없다.
“페슈메르 대대장의 보고입니다. 요아 호수 동안(東岸)에 수천 명의 군중이 모였습니다.”
“수천 명? 여자들이 벌거벗은 차림도 모자라서 콧구멍에 바람 넣으러 호수로 나왔나?”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계속 몰려들고 있답니다. 곧 일만 명을 넘길 듯하답니다.”
“바크리, 집회 신고가 있었소?”
“없었습니다.”
바크리의 얼굴이 곤혹스러워졌다. 딱- 옴부티가 손가락 부싯돌을 쳤다.
“와킬의 귀환이 새나갔다. 그 외엔 주민들이 모일 이유가 없다. 동안에 모인 이유는 뚜바이부르파의 평안을 깨고 싶지 않은 예의다.”
옴부티의 단정적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P4 지휘 지프가 후원에 들어섰다. 황갈색 군복을 입은 건장한 중년 남자가 뛰어내렸다.
“블루아트! 총독님, 뚜바이부르파님이 요아 하우스에 머무른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주민들이 호수로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하다트, 뚜바이부르파님이 친림하셨다.”
“네?”
중년군인이 펄쩍 뛰었다. 주빈석에 에델과 나란히 앉아있는 무쌍을 발견한 하다트가 털썩 엎드렸다.
“뚜바이부르파를 찬양하라. 페슈메르 대대장 알 하다트입니다.”
“하다트, 일어나라. 군인은 언제든 거수경례로 예를 표하라. 너는 즉시 동안에 모인 국민들께 전하라. 한 시간 후 내가 가겠다.”
“블루아트!”
하다트는 곧바로 지프를 타고 사라졌다.
“와킬, 군중 앞에 존체를 드러내도 문제없겠습니까? 불순분자의 책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옴부티가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노바토피아 주민은 각양각색의 인종, 민족, 종교가 섞여 있다. 지금은 살기 바빠서 정신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열이 일어난다. 초월적인 국가의 구심점이 존재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뚜바이부르파가 구름 속에 숨은 달이라면, 이제부터는 만인이 보고 느끼는 태양이 되어야 할 때다.”
“알라 후 악바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인들이 모시겠습니다.”
“아니다. 그대들은 무대를 준비하라. 건설 현장의 모든 조명을 동원해서 호숫가를 대낮처럼 밝혀라.”
“와킬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식사는 이것으로 끝내자. 밥 한 끼 먹기 참 힘들다.”
무쌍이 농담 반 진담 반 불평을 던졌다.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만찬이다.
“송구합니다.!”
옴부티 등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힘든 일을 마치고 귀환한 주인께 편한 밥 한 끼 대접 못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뚜바이, 미안해요!”
에델이 울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번처럼 단둘이 식사를 즐겼으면 얼마나 좋아. 마음속에 꽁꽁 묻어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이게 뭐람. 하지만 뚜바이는 자신만의 뚜바이가 아니다. 노바토피아의 뚜바이고, 불쌍한 사람들의 뚜바이다. 자신의 욕심을 줄일 수밖에.
요아 호수는 적어도 5,000만 년 전에 생성된 태고의 호수로 추정된다. 폭 800m, 길이 3.2km로 사막의 염수호로는 가장 큰 호수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이처럼 큰 호수가 존재하는 배경에 사하라 대수층이 있다.
사하라 사막 지하에는 수천만 년 동안 축적된 대수층이 알제리에서 수단까지 흐른다. 대수층의 깊이는 평균 1,000m로 추정되며 가장 깊은 곳은 4,000m로 추정된다. 깊이 수천 미터의 강이 사하라 지하를 흐른다는 소리다.
요아 호수는 대수층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덕분에 급격한 증발에 불구하고 호수를 유지하고 있다. 평지인 호수 서안에 요아 하우스가 있고, 호수 동안은 바위투성이 경사면을 올라야 한다.
자갈 사막인 레그를 오르면 연분홍 에르그가 탁 펼쳐지며 남색 호수가 신기루처럼 등장한다. 오리피스가 최고의 관광자원이라 할만했다. 인간이 제아무리 애를 써서 꾸며도 자연의 신비를 따라갈 수 없다.
호수 동안은 도떼기시장이 되었다.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있고, 강력한 건설용 서치라이트 수백 개가 호수를 대낮처럼 밝혔다. 한 시간 만에 동원된 서치라이트 숫자가 노바토피아의 역동성을 웅변했다. 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방불케 하는 노바토피아다.
호숫가 에르그에 모인 주민은 20,000명을 웃돌았다. 그럼에도 경사면을 오르는 행렬은 끝이 없었다. 타격대와 자경대가 군중을 통제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남녀노소 주민은 서로 호숫가 자리를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주민 대부분은 긴장된 얼굴로 노바의 주인을 기다렸지만, 토론이 벌어지고 언성이 높이는 주민도 부지기다.
무쌍은 오랫동안 노바토피아의 통합 아젠다를 고민했다. 노바토피아는 인종, 민족, 종교의 전시장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가짐이 다른 법이다. 이 땅의 주민은 하나같이 삶의 막다른 골목을 경험한 난민이다. 지금은 통제에 잘 따르고 강하게 결속되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내재한 시한폭탄이 터지고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하다. 역사적으로 다문화 정책이 성공한 예는 없었다.
여기서 잠시 하물숭배(荷物崇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하물숭배는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가 남태평양의 섬들을 식민지로 지배할 당시에 발생한 원주민들의 신흥종교다.
원주민들은 유럽인이 배에서 내리는 특별한 하물, 그들이 듣도보도 못한 통조림, 머스켓 장총, 라디오, 럼주 등을 그들의 조상신이 보낸 특별한 물건이라 여겼다. 원주민들은 백인이 조상신의 하물을 가로챘다고 여겼다. 조상신의 하물을 강탈당했지만, 힘이 부족해서 되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나무와 흙으로 백인들의 물건을 본떠서 안테나, 자동차, 총을 만들어서 항구에 세워놓고 조상신이 하물을 싣고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부두교는 이러한 하물숭배가 토착 샤머니즘과 결합한 형태로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역사를 일일이 분석해 볼 필요도 없이 결단코 칸트 형의 이성적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면 동시에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종교인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유는 종교로 통한다. 무신론자인 인간도 무신론이라는 강력한 종교적 신념을 지닌 자다.
우리는 하물 숭배를 비웃지 못한다. 형태가 다를 뿐 현대인도 하물 숭배자다. 아이돌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 열광하는 사람, SNS에 매몰된 사람, 인터넷상에서 1번이니 2번이니 베틀을 벌이는 부류, 레고에 빠진 어른, 여자가 입었던 팬티를 수집하는 일본의 중년 남……. 하물 숭배자의 예는 끝없이 들 수 있다.
무쌍은 노바토피아에 몰린 난민을 하물 숭배자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예수와 석가의 위대함은 하물 숭배를 부정하고 보편적 가치를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의식의 뿌리를 흔드는 강력한 충격파만이 하물 숭배를 엎어버릴 수 있다.
무쌍이 준비한 통합 아젠다는 강력한 구심점과 열린 종교를 통한 용광로 전략이었다. 무쌍은 예수의 행적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예수는 서기 32년 3월 21일 토요일 새벽 3시에 갈릴리 호숫물 위를 걸었다. 예수가 할 일이 없어서 달밤에 체조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대제사장 법복을 걸치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메시아임을 연출했다.
무쌍은 예수를 본떠서 달밤에 요아 호수를 걷기로 했다. 땅을 파고들 때처럼 용천혈을 통해서 공진파를 뿜으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수심이 깊을수록 효율이 떨어지고 장시간 시전할 수도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퍼포먼스다.
다행히 요아 호수의 수심은 평균 7m에 불과하다. 가장자리는 더 얕다. 그 정도 깊이라면 200~300m는 걸을 수 있다.
“디노, 너 오늘 밥값 좀 해야겠다.”
꾸웅- 힘든 일을 시키려는 주인의 의지가 느껴졌다.
‘밥값? 나는 고기를 먹는데?’
디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통한 디노도 비유적인 말까지 알아들을 수는 없다.
“따라오면 알아.”
무쌍은 디노를 끌고 호수로 향했다. 동방불패가 모양 빠지게 달밤에 호수를 헤엄쳐서 건널 수는 없지 않은가. 머뭇거리는 디노를 호수에 밀어 넣고 등에 올라탔다. 그는 자신이 이미 놀라운 탈것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은 물을 좋아한다. 재규어는 강이나 호수 지역을 영역으로 삼는다. 거침없이 물에 뛰어들어 악어를 사냥하기도 한다. 호랑이는 시속 20km를 웃도는 수영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꾸웡- 거대한 울림통에서 하울링이 터졌다. 우르르- 음파가 호숫물에 파랑을 일으키며 동안으로 밀려갔다. 난데없는 포효에 동안의 군중이 일시지간 숨을 죽였다.
현생 대형 고양잇과 동물 중에 디노와 가장 유사한 동물은 재규어다. 잠시 버벅대던 디노가 놀라운 수영 실력을 발휘했다. 대들보처럼 두툼한 앞발로 물을 휘젓고 뒷발로 강력한 킥을 구사했다.
무쌍은 청성산 계곡에 띄워놓은 팔목 굵기의 나뭇가지와 회초리 같은 대나무 꼭대기에서 중심 수련을 했다. 꿈틀대는 디노의 등은 안방과 진배없다.
디노는 보름달이 둥실 떠 있는 요아 호수를 모터보트를 방불케하는 속도로 가로질렀다. 디노의 등에 올라탄 무쌍의 간두라 자락이 하르마탄에 펄럭였다. 호수를 일직선으로 쪼개듯 가로지르는 거대한 이수와 등에 꼿꼿이 서서 달을 올려보는 인간, 제법 그림이 나왔다.
무쌍은 육지를 300m 남긴 지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허실생동의 묘리를 살려서 몸을 가볍게 하고 용천혈로 공진파를 뿜어냈다. 무릎까지 쑥 잠겼던 다리가 불쑥 솟았다. 공진파가 호수를 투과해서 지지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수면에 표면장력을 형성해서 몸을 받쳤다.
“서치라이트를 호수로!”
호수를 건너오는 주인의 기척을 감지한 쌈디가 소리쳤다. 수백 개의 서치라이트가 일제히 호수로 향했다. 보름달 아래 흰색 간두라를 펄럭이며 수면을 밟고 유유히 다가서는 인영이 훤히 드러났다. 세기말적 공황이 군중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