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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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레종 에뜨랑제 5
이름을 모르니 별명을 붙였다. 코끝이 빨간 놈은 딸코,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귀가 찢어진 놈은 짝귀, 이마에 커다란 흉터 있는 놈은 스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말썽부리는 양아치가 있다. 온갖 인간 군상이 모이는 레종 에뜨랑제다. 험악한 놈, 지저분한 놈이 부지기다. 심지어 게이도 몇 놈 있다.
덩치 큰 슬라브계 백인 셋이 건들거리며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은 바른 생활 남자들에게만 제 역할을 한다. 양아치들의 진행 방향에 꾸벅꾸벅 조는 장쒼이 있다.
“저 쉐이들이 사건을 치겠구마.”
몰려다니는 세 놈은 트러블 메이커다. 이미 몇 번 말썽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분위기상 놈들이 장쒼에게 시비를 걸 것 같았다. 무쌍은 요란스럽게 떠드는 백인 덩치들을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봐 일당의 걸음이 장쒼 앞에서 멈추었다. 꾸벅꾸벅 조는 장쒼을 손가락질하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스꼴리꼬 롓, 스꼴리꼬 짐 쉰덕!(어머, 쉰덕 오랜만이에요!)
스카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여자 흉내를 냈다.
“쿨리, 븨 아춈-또 베스빠꼬이쪠씨? 나볘리쪠씨 흐라브로스찌!(쿨리, 걱정거리가 많나 봐. 용기를 가져!)”
딸코가 장쒼의 뒤통수를 퍽퍽 때렸다.
“빠쪠르삐쪠, 예슬리 븨 녜 쁘리끄라찌쪠, 에떠 모쥇 븨찌 아빠스늼.(어이, 건드리지 마. 원숭이 벼룩 옮으면 어떻게 해.)
짝귀가 딸코를 말리는 척하며 장쒼의 귀를 비틀었다. 무쌍은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모른다. 쉰덕(중국오리), 쿨리(중국 노무자), 짱깨(수전노)같은 중국인을 비하하는 용어만 알아들었다.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모여들다 보니 양아치들도 주워들은 모양이다.
실제로 레종 에뜨랑제에 복무하는 중국인은 경멸의 대상이다. 그들 대부분이 전투병을 피하고 취사병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레종 에뜨랑제는 전투부대다. 식당 개업을 목표로 입대하는 중국인들은 백안시당할만했다. 쉰덕은 외인부대에서 중국인을 지칭하는 표준어가 되었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호칭이 짱꼴라다. 짱꼴라는 이곳에서 쓰이지 않는다. 소수의 중국인과 한국인은 우악스러운 백인들 틈에 끼여서 함께 부대끼는 입장이다. 동병상련으로 서로 챙겨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실 짱꼴라라는 비칭도 일본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건너온 단어다. 청나라 시절, 한족 관료가 만주족 황제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노예라 칭했다. 일본인들이 이를 보고 한족을 청국노라 불렀다.
청국노의 중국식 발음 ‘칭궈누’가 일본 발음 ‘찬코로’로 변했고, 찬코로가 현해탄을 건너 한국에 상륙하자 짱꼴라가 되었다. 민족의 자존을 버린 대가가 세세손손 천덕스럽게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한국을 병합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오만방자해졌다. 일본인들은 내지인을 1등 신민, 한국인을 2등 신민, 중국인은 돼지라 불렀다.
중국인이 한국인을 속되게 부르는 방쯔(棒子)도 일본군 때문에 생긴 조어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중국인을 탄압하게 했다. 교활한 일본인답게 한국인과 중국인을 서로 이간질한 것이다.
중국인은 한국인을 고려 몽둥이라는 의미로 가오리방쯔(高麗棒子)라 불렀다. 이래저래 나쁜 이웃을 둔 한국이다. 이웃에 교활한 깡패가 살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한국은 피곤한 나라다.
카스텔노다리에는 일본인 신병이 두 명 있다. 무쌍은 물론 장쒼도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근대사에서 일본은 가해자, 중국과 한국은 같은 피해자다.
동양 삼국 간에 맺힌 민족적 감정은 세월이 흘러도 쉬이 풀릴 사안이 아니다. 한국인이 말하는 왜놈은 단순한 욕이 아니다. 그 말속에는 사무치는 원한과 저주, 복수심이 내재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 간에 얽힌 복잡한 애증은 그 역사만큼이나 깊고 넓다. 정치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아아!”
귀가 비틀린 장쒼이 신음했다.
“오 허니, 섹시해. 좀 더 크게 신음해줘.”
장쒼의 찢어진 눈이 파랗게 불타올랐다. 동양인의 눈은 서양인에 비해 작고 가로로 찢어진 형상이다. 장쒼은 그 정도가 심했다.
찢어져 치켜 올라간 눈초리는 비호감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상대방은 째려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위 매를 버는 인상이다.
장쒼이 노려보자 폼스키는 기분이 상했다. 폼스키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전직 레슬러다. 2m가 넘는 키와 120kg의 육중한 체격을 가진 험악한이다.
우월한 하드웨어를 가진 그는 자신을 육식 동물로 여겼다. 상대방이 만만해 보이면 바로 시비를 걸었다. 시비를 걸어 상대방이 움츠러들고, 쩔쩔매는 모습이 무료함 속의 낙이다.
“이봐 쉰덕, 꽥꽥 울어보라고.”
짝귀 폼스키가 장쒼의 뒤통수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때렸다. 장쒼의 머리가 방아깨비처럼 흔들렸다.
“쯧, 쥐가 어디나 있듯이 양아치도 세계 어디나 있구마.”
양아치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괴롭히며 즐기는 부류를 말한다. 짝귀 멤버들이 껄렁대는 짓거리는 국산 양아치가 보이는 행태 그대로였다. 보다 못한 무쌍이 엉덩이를 들었다.
“으억!” 꽈당-
폼스키가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땅바닥에 쿵 떨어졌다. 참다못한 장쒼이 폼스키를 땅바닥에 메어쳤다. 폼스키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가슴 깊숙이 밀어 넣은 어깨를 지렛대 삼아 넘긴 깔끔한 엎어치기다.
전직 레슬러인 폼스키는 맷집이 좋았다. 머리를 몇 번 흔드는 것으로 충격을 털어 냈다.
“수카 빠솔띄어.(개새끼 날려 버린다.)”
짝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왕빠단, 니앙 개 수피.(병신 지랄하네.)”
세계 각지에서 모이니 욕설도 가지가지다. 무쌍도 왕빠단은 알아들었다.
폼스키가 상체를 바짝 숙이고 정면에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딸코와 스카는 후면과 측면에서 합세했다. 마주 뛰쳐나간 장쒼이 폼스키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진각을 밟은 장쒼의 팔꿈치가 휘돌아 폼스키의 옆구리를 때렸다. 팔극권의 단심절이다.
위기를 느낀 폼스키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달려들었다. 단심절은 파괴력 높은 기술이지만 거리가 맞지 않았다. 팔꿈치에 갈비를 찍힌 폼스키의 다리가 휘청 꺾였다. 쓰러지면 장쒼의 허리를 잡고 늘어졌다. 딸코와 짝귀가 가세했다. 덩치 셋에게 붙잡힌 작은 중국인은 보이지도 않았다.
퍽- 퍽- 치고받는 개싸움이 벌어졌다. 장쒼도 만만치 않게 저항했지만, 체격과 힘이 워낙 차이 났다. 그것도 삼대 일이다. 팔극권 고수도 막싸움 다구리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투닥거리다 폼스키에게 하체 태클을 당하더니 거구에 깔려 버렸다.
“으이그, 저 병신!”
무쌍은 혀를 찼다. 팔극권은 단타 위주의 실전 무술이다. 사부도 중국 권법 중에 가장 강맹한 권법이 팔극권이라고 했다.
팔극권의 요체는 진각과 발경이다. 타격은 주로 단타로 이루어지며 짧게 끊어친다. 장쒼이 팔극권의 장점을 살리려면 과감하게 상대의 품속으로 파고들어야 했다. 그야말로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각오를 보여야 했다.
다수를 견제한답시고 어중간하게 거리를 둔 것이 패착이다. 실전 경험 부족이다. 두 놈을 무시하고 폼스키를 먼저 박살 냈으면 상황은 반전 되었을 것이다.
장쒼의 가슴에 폼스키가 올라탔다. 겨우 60kg 남짓한 장쒼이 120kg짜리 거한에게 깔렸다. 허벌나게 깨질 일만 남은 셈이다.
거구에 눌린 작은 중국인이 버둥대는 장면은 안쓰럽다 못해 코믹했다. 장쒼이 유연한 신체를 이용해 팔꿈치와 손등으로 폼스키를 타격했다. 폼스키는 비린 웃음을 지었다. 팔극권에는 그라운딩 기술이 없다. 하체가 받쳐 주지 못하는 타격에 힘이 실릴 리 없다.
무쌍은 폼스키 일당의 행태가 눈에 거슬렸지만 가능하면 부대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아홉 살 코흘리개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거대 구렁이, 표범과 생사투를 치루고, 온갖 험악한 싸움을 겪다 못해 사람을 여섯이나 죽였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외제 양아치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새끼들은 싸우면서 친해지는 벱이여. 어, 저런!”
웬만하면 끼어들지 않으려 했으나 상황이 웬만하지 않았다. 짝귀가 무자비한 파운딩을 날리기 시작했다. 장쒼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단순한 주먹질 단계를 넘었다. 짝귀의 코에서도 피가 줄줄 흘렀다. 작은 동양인에게 얻어맞은 짝귀는 단단히 열 받았다. 딸코와 스카는 양쪽에서 장쒼의 손발을 눌러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소란이 커졌지만, 훈련 중대의 교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말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훈련병들은 당연히 말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기다.
신 나는 이벤트를 말릴 놈은 아무도 없었다. 훈련병들은 편을 갈라 꽥꽥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다. 심지어 돈을 거는 놈들이 속출했다.
장쒼의 안면은 목불인견의 상태로 변했다. 코가 내려앉고, 입술이 찢어졌다. 중국인이지만 친구로 사귄 놈이다. 더 이상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파악- 무쌍의 몸이 쭈욱 늘어났다. 10m 공간이 한걸음에 단축되었다.
“이 새끼, 넌 죽었어.”
폼스키가 한껏 어깨를 젖혔다. 강력한 파운딩 한방이면 버릇없는 쉰덕 원숭이는 끝장이다.
‘어?’ 잔뜩 힘을 주어 내려친 일격이 슬쩍 밀려났다. 폼스키의 의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뻑- “끄아악!”
무쌍의 손바닥이 도끼 찍듯이 짝귀의 뺨을 후려쳤다. 얼굴이 훽 돌아간 짝귀가 백 블로우를 날렸다. 제법 싸움을 할 줄 아는 놈이다.
퍽- 짝귀의 관자놀이에 무쌍의 장권이 툭 떨어졌다. 장권은 손가락을 말아진 손바닥이다.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다.
“끄으으!”짝귀의 눈이 허옇게 뒤집어졌다. 가벼운 단타 한방에 120kg 덩치가 맥을 놓고 장쒼의 몸 위에 풀썩 널브러졌다.
“폼스키!”
“이새끼 뭐야?”
놀란 딸코와 스카가 벌떡 일어났다. 윙- 회선각이 딸코의 명치를 찍고, 스쿼시 공처럼 되튀었다. 뒤쪽에서 달려들던 스카의 경동맥을 발등이 후려쳤다. 웅거호투 웅장연타세다.
“크악!”
“악!”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명치를 찍힌 놈은 앞으로 고꾸라지고, 경동맥을 차인 놈은 통나무가 쓰러지듯이 모로 쓰러졌다. 두 놈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이다.
무쌍이 벤치에서 튀어 나가 덩치 셋을 눕히기까지 2~3초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순간에 공방이 끝나 버렸다. 싸움판에 일시 정적이 감돌았다.
“우와아!”
한 텀이 지나서 구경꾼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력하고 빠르다. 고도의 실전 무술이다. 외인 용병대에 지원했다는 사실만으로 평범치 않은 세월을 보낸 자들이다. 나름대로 특공 무술이나 스포츠화한 체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결단코 동양인이 보여준 몸놀림을 경험한 적이 없다. 동체 시력이 따라가지도 못했다.
“쯧! 띨띨한 자식.”
무쌍은 혀를 차고 장쒼을 업었다. 장쒼의 얼굴은 피투성이다. 어린아이 머리통 크기의 주먹에 파운딩을 당했다. 안면이 멀쩡할 리 없다. 무쌍은 반쯤 정신을 놓은 장쒼을 업고 의무실로 달렸다.
한바탕 활극이 종료되자 훈련병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동양인 훈련병이 보인 체술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다. 태권도, 가라데, 무예타이, 쿵푸, 사바테, 크라브마가등등 온갖 무술이 거론되었다. 땅바닥에 엎어진 양아치 셋을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흐흐, 넌 이제 내 물건이다.”
훈련중대장 삐에프는 본부 막사 3층에서 느끼한 웃음을 흘렸다. EV들이 벌이는 소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놀라운 물건이 들어왔다. 인간이 제자리에서 10m를 건너뛸 수는 없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매끄러운 타격이 환상이다. 말로만 들었던 동양고대 무예를 익힌 놈이다. 콜렉터 삐에프 대위의 느끼한 눈길이 무쌍을 쫓았다. 본격적인 훈련 스케줄이 시작되기도 전이다.
장쒼의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갈비뼈와 코뼈 골절, 광대뼈 함몰, 앞니 세 개가 부러졌다. 전치 8주 진단을 받은 장쒼은 훈련 기수가 두 달이나 늦어지게 생겼다.
“빌 거 아이구마. 내같으마 입원도 안 할낀데 말이야.”
장쒼이 들었으면 피를 토할 말을 태연하게 했다. 자신만의 기준이다. 그가 생각하는 부상이란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머리가 박살나거나,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 수준이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기준이다.
에콜은 세계 각처에서 각양각색의 혈기 왕성한 놈들이 모인 곳이다. 훈련도 없이 무료하게 기다리다 보니 별의 별 사건이 발생했다. 주먹다짐은 일상이고, 강간 사건도 벌어졌다. 무쌍은 수컷 간에 법적인 강간이 성립되는지 아리송했다. 훈련소 측은 큰 물의만 일으키지 않으면 가벼운 벌칙 정도로 사건을 정리하곤 했다.
사건을 벌인 폼스키 일당은 공개 사과, 일주일 영창, 대기 수당 말소 처분을 받았다. 무쌍이 받은 벌칙은 화장실 청소 이틀이다. 한국이었으면 몽땅 군법 회의에 회부되었을 사건이다.
무쌍은 유명인이 되었다. ‘플라잉 바이퍼’라는 별명이 붙었다. 생각지 않은 부작용도 생겼다. 왕따가 되었다. 폼스키 일당은 물론 다른 훈련병들도 한국인 팍을 슬슬 피해 다녔다. 덩치 셋을 한 호흡에 박살 내는 터프가이다. 나름 거친 인간들도 플라잉 바이퍼는 두려워했다.
에콜의 4주간 EV 기초 군사 훈련이 시작되었다. 1단계 기초 군사 훈련은 말 그대로 기초 교육이다. 외인부대의 기본 시스템 숙지, 사격, 제식, 격투기, 총검술, 개인화기 조작, 각개 전투 등의 훈련과 행군이 전부다. 무쌍은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오금공과 오금연노법 수련에 비하면 찬물에 밥 말아 먹고 낮잠 자기다.
훈련장에서 부대로 귀환하는 50km 행군을 끝으로 1단계 기초 군사훈련이 끝났다. EV는 케피 블랑이라 불리는 병사용 흰색 모자를 받았다. 케피 블랑을 받으면 정식 레종 에뜨랑제 대원이다.
중대장 삐에프가 케피 블랑을 쒸워주었다.
“메흐씨 드 부 도네 떵 드 뻰느.(고생 많았다.)
“위, 메흐씨!”
무쌍은 감격했다. 학교에서 쫓겨난 지 3년 만에 사회 속의 구성원 지위를 얻었다. 한국인은 유난히 혈연, 학연, 지연 등 각종 관계를 중시한다. 온갖 이유를 붙여서 모임을 만든다. 무쌍 역시 한국인의 피를 받았다. 소속되지 못한 자의 허전함이 메워졌다.
제2단계 훈련은 실전 사격 훈련, 무기 조작 훈련, 암벽 등반, 레펠 훈련이다. 암벽 등반과 레펠 훈련은 피레네 산맥에 있는 제4 외인 용병연대의 산악 훈련장에서 실시되었다. 험준한 피레네 산맥은 천혜의 유격 훈련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외인부대의 제식 소총은 파무스(FAMAS)라 불리는 불펍식 돌격소총이다. 파무스는 1978년부터 프랑스 정규군과 외인부대에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었다.
불펍식은 한국의 엠계열 소총과 달리 탄창이 방아쇠와 그립 뒤쪽에 있다. 구조상 급탄과 송탄 기관부가 개머리판 속에 내장된 형태의 시스템이다.
불펍식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총열의 길이를 유지하면서도 전체 소총의 길이를 줄일 수 있다. 총의 길이가 짧아지면 휴대및 보관이 용이해진다. 특수군이나 야전 군인에게는 큰 장점이다.
둘째는 사격시 전후 반동이 약하다. 사격시 반동이 약하면 사격 통제가 용이하고, 연발 사격시 표적 집중 효과가 우월해진다.
단점도 있다. 조준선이 짧아 오픈 사이트(조준기를 별도 부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명중률이 떨어진다. 탄피 배출구가 얼굴에 가까워 튀어 나오는 탄피에 화상을 입을 위험이 따른다. 총신이 짧아 백병전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사격 반동이 약하지만 상하 반동이 크다.
무쌍은 파무스를 몸에서 떼지 않았다. 식사할 때도 왼손에 파무스를 들고 먹었다.
[선비는 책을 몸에서 떼지 말아야 하고, 나무꾼은 도끼를 몸에서 떼지 말아야 한다. 땡중은 염불과 불경을 몸에서 떼지 말아야 한다. 능인이 되고, 도통하고자 한다면 그 도구를 진심으로 아끼고 한 몸으로 여겨야 하느니라.]사부의 말씀에 무쌍이 이죽거렸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이소. 사부님은 불상은 패서 군불 때고, 두꺼운 불경은 베게로 쓴다 아입니꺼. 말씸이 벨로 마음에 와 닿지 않심다.”
“이놈아, 그러니 내가 땡중이 아니냐. 스승이 바담풍이라고 해도 니놈은 바람풍이라고 알아들어야지. 컬컬컬!”
인자한 사부의 웃음이 귀에 들렸다.
무사는 칼을 몸에서 떼 놓는 법이 없다. 군인이 되었고, 군인은 현대판 무사다. 총은 무사의 칼이다. 스님의 목탁이요, 수도승의 십자가다. 차가운 금속이 자신의 피부로 느껴질 때까지 총을 놓지 않았다.
카스텔노다리 신병 훈련 프로그램상 실사격은 삼일에 한번이다. 사격시 탄환 제한이 없다. 한국 보병은 실사격을 하는 일이 드물다. 날마다 PRI만 죽도록 한다. 오죽하면 현역병들이 피가 나고 알이 배기고 이가 갈린다겠는가.
에콜의 사격 훈련은 빡세다. 하루 동안 200발 사격을 하는 날도 있다. 사격 훈련 200발은 엄청난 심력 소모와 체력 소모를 동반한다.
세 발 영점 사격 후 표적지 확인, 세 발 삼 점사 3회후 표적지 확인, 열 발 연발 사격 후 표적지 확인, 그리고 PRI훈련이 이어진다. 프로세스가 10회 이상 거듭되면 어지간한 강골도 탈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한국군은 몇 달에 한 번 실사격을 한다. 그것도 삼 점 영점 사격 3회가 고작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탄피를 찾아 사대를 헤맨다. 에콜의 사격 훈련은 한국군이 입을 떡 벌릴 수준이다. 총탄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통상 사격 훈련시 표적지 거리는 25m, 100m, 250m다. 특수군 외에는 유효 사거리를 벗어난 기록 사격을 하지 않는다.
표적지 거리는 탄도학에 따른 표적거리다. 공기 저항을 받는 탄환은 아래위 진폭을 가진 포물선으로 비행한다. 탄도 포물선과 총구는 25m와 250m에서 일치한다. 조준선 정렬용 표적지가 25m와 250m인 이유다.
100m 표적은 대부분의 실전 총격 거리가 100m 내외에서 이루어진다는 통계적 자료에 근거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 국가가 25m, 100m, 250m 표적 거리를 채용한다.
유효 사거리는 기계적 특성이 허용하는 상한선을 먼저 가정한다. 그 상한선에서 예측 가능한 탄도의 탄환이 적을 살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다. 즉, 적을 살상할 수 있는 최대 사거리다. 물론 유효 사거리 밖에서 피격당하면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효 사거리 밖에서 주요 부위를 피격당하면 사망 확률이 높다.
실전 돌격은 100m 이내다. 100 미터를 넘어선 사격 거리는 의도적인 살상 거리가 아니라 견제적 의미가 강하다. 총기회사가 돌격 소총의 유효 사거리 연장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다.
인간의 눈은 다른 동물에 비해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다. 어떤 동물도 인간만큼 정확히 입체적으로 사물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시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돌격 소총의 영점 사격 거리를 25m로 잡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5m 지점의 탄도가 총구와 일치하는 이유도 있지만, 실제 돌격 전투가 단거리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 실전 경험과 과학적인 계산을 통해서 25m와 100m가 중요한 표적 거리가 되었다.
카스텔노다리 신병 훈련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다. 무쌍은 우월한 신체가 그 강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 뿐 호락호락한 수준이 아니다. 훈련 도중에 탈락하는 훈련병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자위대 출신이라는 두 명의 일본인은 1차 훈련에서 탈락했다. 자위대에 비하면 너무 힘들다나. 탈락자는 당연히 귀향 차비를 받고 보따리를 싸야 한다.
마지막 사격조가 사로를 내려갔다. 콩 볶듯 요란하게 울리던 총성이 뚝 그쳤다. 총연이 자욱한 사격장에 갑자기 찾아든 적막함이 긴장을 높였다.
훈련병들이 모두 빠져 나간 사로에 단 한명의 훈련병이 올라섰다. 플라잉 바이퍼라 불리는 꼬레앙 팍이다. 조교가 파무스 유효 사거리인 300m 지점에 3m간격으로 다섯 개의 표적지를 설치했다. 훈련용인 250m표적은 더 이상 변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로에 올라선 무쌍이 엎드려 쏴 자세를 잡았다. 표적을 겨냥한 파무스는 네이키드 건이다. 도트 사이트나 광학 조준경이 없는 그야말로 알 총이다.
동양인 팍의 단독 사격 테스트는 삐에프 대위의 지시로 이루어졌다.
‘꼬레앙 팍, 소문이 자자한 네 실력을 보여 봐라.’
그는 사격 통제소에서 기대에 찬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삐에프는 두 달 전 오바뉴의 콜롱 준위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particularité(특별)주기가 된 훈련병 입소는 딱 삼 년 만이다. 인재 수집벽이 발동된 그는 즉각 동양인 팍을 자신의 제1훈련 중대로 배속시켰다.
에콜의 신병 훈련은 4단계 총 17주 훈련이다. 1단계 기초 군사 훈련, 2단계 실전 훈련, 3단계 전술 훈련, 4단계 평가 및 테스트로 진행된다. 4단계에서 개개인의 능력을 검증하고, 희망에 따른 보직을 부여한다.
삐에프는 그때까지 기다릴 만큼 인내심이 높지 못했다. 십여 명의 사관과 준사관들이 테스트를 지켜보았다. 그들도 꼬레앙 팍의 경인할 실력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귀신도 울고 간다는 사격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사대 후면에 집결한 120여 명의 훈련병들도 숨을 죽이고 사대를 주시했다.
무쌍은 근육을 이완시키고 가늠자에 밀착된 오른쪽 눈에 집중했다. 눈은 뇌의 연장이다. 사부님께 처절히 훈련받은 관법의 요체가 뇌로 보는 것이다.
아드레날린이 펌핑되어 신체 각 부분이 활성화되었다.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대량으로 분비되어 집중력을 극도로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