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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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 조율 좀 해주세요6
행자승이든 사미승이든 중노릇을 하려면 불경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놈의 불경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범어를 번역한 경은 말할 것도 없고 한문 주해서도 한학자 수준의 학식과 무량수의 불법 이해가 있어야 한다.
장님 문고리 잡듯이 의미를 더듬자면 머리에 쥐난다. 오죽하면 선승들이 불경을 집어던지고 화두를 타파한답시고 동구불출(洞口不出)하겠는가!
화두 타파는 불경을 들입다 파지 않고 깨달음 한방으로 불법을 깨치려는 무지막지한 수련법이다. 선종이 육조 혜능 이후로 대세가 되었지만, 깨달음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성철스님은 깨달음을 얻는 단계를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 세 단계로 구분했다.
동정일여는 참선할 때나 걷거나 일하거나 밥 먹을 때를 불문하고 화두가 머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잠들지 않는 한 정신이 오로지 한 길에 집중된 상태다.
사실 동정일여 수준만도 대단한 경지다. 동정일여의 정신력이라면 아무리 돌머리라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제비는 접이불루(接而不漏)의 경지를 성취하고 남는다.
몽중일여는 세속의 꿈 대신에 화두를 꿈꾸는 경지다. 오매일여는 숙면에 들었을 때 생시와 동일하게 화두가 생생히 들리는 경지다. 이러한 경지에 들기도 지난하지만 한 마디로 정상인이 아니라 미친 인간이란 소리다.
깨달음은 이처럼 제대로 미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신기루다. 한강에 빠뜨린 바늘 한 개를 찾기가 차라리 쉽다. (작가 주:누군가 슬며시 다가와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주먹으로 콧잔등을 때려주고 ‘이것이 도다.’라고 말하기 바란다. 화를 낸다면 어설프게 미친 사이비다.)
‘허어~ 사부님은 진정 도를 깨친 분이셨구나!’
장탄식이 나왔다. 사부는 호풍환우 능력을 얻었음에도 납자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탁발 다니고, 시전 양아치에게 주머니를 털렸다. 깨달음이란 그와 같은 것이다.
스승께 받은 법호인 무아(無我)가 바로 화두였다. 무아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구현이다. 타인의 인식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허상을 벗어나라는 말씀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과도 통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라에 물린 놈이 솥뚜껑 보고 놀라는 행태는 경험 때문이다. 경험하지도 않은 죽음을 왜 두려워할까? 남들이 무섭다고 하니까 자신도 무서워한다. 장에 가는 친구 따라 지게 지고 장에 가는 꼴이다. 지옥? 천국?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무아(無我)는 직간접적으로 얻은 나의 경험에 타인의 지식이 덧붙여져서 만들어진 ‘경험의 오류’를 벗어나라는 화두였다.
인식의 반전이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지식이 있기에 오히려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다.
지식과 물리적 힘은 한계가 있지만, 지혜와 깨달음은 한계가 없다. 사부가 왜 좌도방 이능을 경계했는지 깨달았다. 스승의 경지가 더욱 까마득하게 여겨졌다.
[이놈아, 몸 쓰는 것 일 푼만 머리를 써보거라. 머리마저 못 박는 데 쓸 놈일세.] 스승이 명아주 지팡이로 머리를 두드리며 꾸짖곤 했던 말씀이다. 후딱 암자로 돌아가서 사부의 칭찬을 받고 싶었다.‘저럴 수가!’
이지하나의 눈이 커졌다. 커피잔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뚜바이부르파는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명상에 빠져있다. 대주술사나 마법사가 손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인다는 말은 들었지만,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경악한 이지하나는 행여나 뚜바이부르파의 적정을 깰세라 숨을 죽였다.
커피잔이 허공에 머물러있음은 동정일여 정신력 때문이다. 무쌍은 일시간 경험의 오류를 벗어나서 참된 자신을 자각했다. 커피잔이 그곳에 있다는 순수한 정신력이 거울에 비친 실상이 아니라 실상 그 자체를 관하고 있음이다.
커피잔을 손이 아니라 정신이 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지하나는 작은 소리라도 낼세라 손가락 한 개 까딱하지 못했지만, 파탄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띠리리- 무전기가 울렸다.
‘저 저런, 망할 것!’
이지하나가 무전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이건 무전기 울리는 소리?’
무쌍이 거울에 비친 실상을 인식하는 순간, 적정이 깨어졌다. 허공에 떠 있던 커피잔이 추락했다. 그의 정신력은 허상의 거울에서 실상을 유지할 만큼 굳건하지 못했다.
“아, 저런!”
이지하나가 경호성을 발했다. 바닥에 떨어진 도자기 잔이 산산이 조각나는 그림이 선연히 그려졌다. 무쌍이 손바닥을 밀었다가 슬쩍 뒤집었다. 떨어지던 커피잔이 솟아올라 트레이에 얌전히 얹혔다.
“뚜바이부르파시여, 영원하소서!”
이지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축원했다. 무쌍이 쓴웃음을 짓고 무전기를 들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엉뚱한 염동력을 얻었다.
“허어~”
탄식이 절로 나왔다.
‘깨달음은 휘발하고 좌도방 능력만 또 늘었구마. 이러니 불기가 아니라는 질책을 듣지.’
염동력을 얻었지만, 완전히 깨치지 못한 화두가 안타까웠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지만, 놓친 고기가 커 보이는 법이다. 지부티 호텔에서 지풍을 얻고 지푼다리에서 염동력을 얻었다. 깨달음은 아득한데 좌도방 능력만 자꾸 늘었다.
-와킬, 좋은 밤 보내셨습니까?”
통신을 개방하자 모하메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음, 무슨 일인가?”
-발터가 간밤에 사망했습니다.
“아직 젊은 사람인데 안 됐군!”
무쌍이 백 살 난 노인처럼 무덤덤하니 반응했다. 찌질한 놈이 어설픈 살기를 피우더니 황당한 죽음을 맞았다. 죽지 않았으면 쌈디의 손에 죽었을 놈이다. 들것에 실려나갈 때 심장이 멈춘 상태는 아니었는데 MSF가 숨을 되돌리는 데 실패한 모양이다.
“발터가 죽은 원인은?”
죽고 사는 거야 운명이지만, 건장한 의사의 급사는 흔한 일이 아니다.
-약물 중독입니다. 최초 중독 증상으로부터 30초 후 빈맥이 발생하고 60초 후에 심장 박동이 정지했습니다. 내빈석의 의사들이 손쓸 틈도 없었습니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해서 산소호흡기와 인공심폐기(에크모)를 부착했지만 15분 후 심장이 정지했습니다.
“약물 중독으로 죽었다고?”
무쌍은 어리둥절했다. 난데없이 약물중독이라니…….
-넵, 사망 원인은 사프란입니다.
“사프란?”
-기즈 박사의 소견에 의하면 사프란에 함유된 크로신 과다 흡수로 심장 근육이 늘어지고, 폭증한 사이토카인이 면역체계를 박살 냈답니다.
“향신료가 극독이 될 수 있다니 놀랍군.”
무쌍은 소름이 쭉 끼쳤다. 어쩐지 부야베스에서 금속성 꿀 향기가 강하게 나고 쓴맛이 강하다고 했다. 첨가된 해산물도 황금색이 지나치게 강했다.
무쌍이 멀쩡한 이유는 크로신(crocin)이 최음제이기 때문이다. 장필녀가 남편에게 사용한 돼지 발정제가 쓰레기 최음제라면 사프란은 최고급 최음제다. 저급이든 고급이든 과다한 최음제 사용은 복상사의 지름길이다.
보툴리누스 톡신을 5분 만에 분해하는 에피듐의 강건한 신체가 최음제 따위에 영향받을 리 없다. 건장한 남자를 골로 보낼 양을 먹었으니 붕가붕가후에도 찌뿌둥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쌈디가 유난히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 이유도 사프란이 든 부야베스를 먹었기 때문이다.
통신을 듣고 있던 이지하나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초청 손님이 독살당했다. 자신이라도 요리사를 맨 먼저 의심할 것이다. 이제야 인간다운 삶을 찾고, 뚜바이부르파의 식구로 인정받았는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요리장, 부야베스 외에 사프란을 사용한 요리가 있나?”
이지하나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사프란이 중세에 독살용으로 오용되었음을 스승에게서 들었지만 실제로 사건이 벌어질 줄이야!
“와킬, 사프란은 황금보다 비싼 향신료입니다. 소인은 함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요리에 많이 넣으면 쓴맛이 강해져서 요리를 망치게 됩니다. 밥과 매운탕, 파에야(스페인식 볶음밥)에 미량 사용했습니다. 만찬장에 준비된 케밥, 매운탕, 파에야를 소인이 몽땅 먹어도 이상 없는 양입니다.”
이지하나는 변명 없이 사실만 대답했다. 그가 살아온 방식이다. 무쌍이 머리를 끄덕이고 부드러운 어조로 이지하나를 안심시켰다.
“요리장을 탓하려는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할 사항이 있었을 뿐이다.”
범인은 뻔했다.
‘휴! 독극물 수준의 요리를 만들더니 기어코 진짜 독극물을 만들었군!’
결국, 에델이 만든 부야베스가 문제라는 소리다. 에델은 미맹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먹었다. 자신이 보통 사람이었으면 꼼짝없이 죽었다. 덤으로 다른 가신들까지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에델이 자신의 요리를 먹고 발터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되면 기절하고 남을 일이다. 그렇다고 비밀에 부치면 계속 에델의 요리를 먹어야 한다. 독극물 요리를 만드는 사랑스러운 천사라니……한숨이 나왔다.
문득 자신의 자리에 떠돌던 담배 냄새와 외인 잔에 코팅된 이물질이 생각났다.
“모하메드, 발터가 코히바지골로를 즐기나?”
-그렇습니다.
‘와인잔에 야료를 부린 놈이 그놈이었군.’
발터가 자신의 부야베스를 퍼먹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놈은 에델과 자신을 죽이려 했다. 그렇다면 부야베스에도 야료를 부려놓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알았다. 블랙컬처를 모두 불러라.”
-넵, 30분 후 찾아뵙겠습니다.
무쌍은 무전기를 단락하고 전날 발터의 행적을 더듬었다. 부야베스와 매운탕이 뒤섞인 이유도 알만했다. 부야베스 육수를 퍼먹고 매운탕 국물을 채워놓았다.
놈은 와잘란 때문에 만찬장이 빈틈을 타서 와인잔과 부야베스에 야료를 부렸다. 부야베스의 얼큰한 매운탕 국물에 취해서 이물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독극물이 자신에겐 독특한 양념에 불과하지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두웅- 마음이 움직이자 공간지각력이 절로 발동되었다. 신체 내부가 뇌리에 훤히 투영되었다. 예전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의념을 끌어내는 단계가 필요 없어졌다. 깨달음의 한 끄트머리를 얻은 덕분이다.
위 점막에 눌어붙은 묘한 물질이 느껴졌다. 점성이 있는 젤 성 물질이 코팅하듯 위벽에 붙어있다. 공진파로 기분 나쁜 물질을 떼어내서 식도로 역류시켰다. 컥- 랑삼 치어스 덩어리가 가래와 섞여서 튀어나왔다.
발터가 만든 랑삼 치어스는 위장에 들어가면 위액과 혼합된다. 콜탈같은 점성이 생긴 독약은 위벽에 눌어붙는다. 시간이 흘러서 큐라레가 녹으면 스트리키니네가 이빨을 드러낸다.
“망할 놈이네!”
무쌍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척 보기에도 회색 덩어리는 독이다.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란 놈이 독살을 기도하다니 쓰레기다. 무쌍은 새삼 인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짐승이 된 놈이 많음을 실감했다. 다행히 부야베스를 먹은 사람은 쌈디가 유일했다.
‘좀비가 독에 당할 일이야 있을라고.’
신경을 뚝 껐다. 염산 원액을 한 바가지 들이키면 타격을 받을까, 신경독, 혈액독, 용혈독 등은 좀비에게 별 소용이 없다.
“아크라, 식구들을 일층 거실에 모아라.”
“네, 뚜바이부르파님!”
문앞에 서 있던 소녀가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소녀는 사마리아 농장에서 선우현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아크라다. 약속대로 에델의 수하에서 간호사 수업을 받는 중이다.
사프란이 독이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하우스 고용인이 부야베스를 맛보았다면 큰일이다. 에델은 걱정할 것 없다. 설사 독을 흡입했더라도 깡그리 타버렸으니 말이다.
“요리장, 와인잔과 부야베스 잔반을 보관 중인가?”
“넵, 와킬의 지시대로 냉동고에 보관 중입니다.”
“고용인 중에 부야베스를 맛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가져오라.”
“넵!”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바짝 언 이지하나가 급히 방을 나갔다.
“디노, 쥐 몇 마리를 산 채로 잡아와.”
디노가 응접실을 뒤져서 뚜껑 있는 바구니를 물고 나갔다. 무쌍은 슬며시 짜증이 치밀었다. 별 시답지 않은 일로 좋은 기분을 망쳐버렸다.
디노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바구니를 물고 돌아왔다. 뚜껑을 열어 속을 들여다본 무쌍이 인상을 찌푸렸다. 악취가 진동했다. 분홍색 털 없는 동물 세 마리를 쥐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했다.
무쌍은 사하라 사막에 서식하는 설치류인 ‘벌거숭이두더지쥐’(Naked mole rat)를 알지 못했다. 두더지쥐는 뜨거운 열기를 피해서 깊은 땅굴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지만 디노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요리장이 바셀을 데리고 올라왔다.
“와킬, 바셀이 부야베스의 간을 보았다고 합니다.”
“뚜바이부르파님, 저는 죽는 건가요?”
얼굴이 하얗게 된 바셀이 와들와들 떨었다.
“바셀, 나는 뚜바이부르파다.”
“아!”
위엄있는 한 마디에 바셀이 평정을 찾았다. 바셀의 명문혈에 손바닥을 붙이고 공간지각력으로 내부를 살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사프란은 독약이 아니라 향신료다. 간을 본 정도로는 이상이 있을 리 없다.
“바셀, 너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걱정하지 말고 각자 하던 일을 해라.”
“뚜바이부르파님을 찬양하라!”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바셀이 절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무쌍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용인들의 안전을 확인했으니 남은 일은 예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