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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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 깜둥이 출세4
깜둥이는 위기감을 느꼈다. 변형된 지자기는 시간이 흐르면 적응되고, 바이러스는 내성을 기르면 된다. 반면에 냉기는 신체 구성 시스템상 극복할 수 없는 핸디캡이다.
블리자드는 초속 50~70m로 빙원을 휩쓴다. 바람의 칼날에 깎인 얼음 알갱이는 유리조각처럼 날카롭다. 얼음조각과 눈을 버무려서 내리치는 바람의 칼날은 동방불패의 충격파만큼이나 부담스러웠다. 물리적 데미지는 별것 아니지만, 뚝뚝 떨어지는 체온이 문제였다. 삵괭이 크기로 신체를 축소했지만, 에너지 손실이 만만치 않았다.
아드라스로 존재할 때는 생존과 소멸의 개념조차 없었다. 자아를 각성하는 순간부터 생사와 의미를 인식하게 되었다. 의미는 존재에 대한 의문이자 개체의 존재 이유다.
네 활개를 펼친 채 얼음 화석이 된 흑표범 한 마리, 볼썽사나운 화석을 발굴한 인간들이 희희낙락하는 모습, 구경거리가 된 흑표범 사체, 해부 테이블에 올려져서 낱낱이 해체되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런 꼴을 당할 수야 없지.’
살쾡이 크기로 변한 깜둥이가 발톱으로 딱 소리를 냈다. 땅속을 생각지 못했다. 남은 에너지는 채 100만 지온에 못 미친다. 최대의 장애물이자 에너지를 깎아 먹는 원인인 칼바람을 피할 곳은 땅속밖에 없다. 깜둥이는 체온 유지에 배분된 에너지를 즉각 ELF에 할당했다.
깜둥이가 입을 쩍 벌렸다. 쿠루루- 초저주파가 빙원을 초고속으로 파고들었다. 콰두두- 화강암만큼이나 단단히 굳은 빙원에 깊이 10m의 구멍이 뚫렸다. 얼음가루 매질은 공기 매질보다 효율이 수십 배 높았다.
효율이 높다는 말은 에너지 소모량이 적다는 말이다. 깜둥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구덩이 속은 안온했다. 블리자드를 피한 것만으로 열 손실이 80%나 감소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깜둥이는 지하 탈출을 결심했다.
스스스- 깜둥이의 외형이 급격히 바뀌었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신체 표면적이 축소되었다. 머리와 다리 꼬리등 돌출된 부위가 몸통에 흡수되고 몸통이 길게 늘어났다.
흑표는 간곳없이 사라지고 묵광이 번들거리는 드릴 비트 한 자루가 얼음에 푹 꽂혔다. 지름 50mm, 길이 500mm 대형 비트다. 신체를 소형화하면 에너지 출력이 대폭 감소하지만, 출력보다는 지구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궁극적 목표는 사는 것이다. 깜둥이는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드릴 비트 말단부, 흑표의 아가리가 쩍 벌어졌다. 콰르르 – 거창한 하울링이 터졌다. 깜둥이의 최고 무기인 하이 레벨 ELF다. 출력 범위를 좁힌 7Hz 대역의 이중 나선형 ELF(초저주파)가 만년빙을 파고들었다. 깜둥이는 단번에 20m를 굴진했다.
콰콰콰- 지름 50mm 드릴이 고속으로 얼음을 파고들었다. 초저주파가 지나간 자리에 기화된 얼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깜둥이 드릴은 초당 1m 속도로 얼음을 뚫고 들어갔다.
스카우터가 100초마다 굴진 심도를 카운터 했다. [1,500, 1,600……. 2,100, 2,300, 2,400, 냉기 방어 모드 해제, 2,500, 2,600…….] 깊이 파고들어 갈수록 기온이 올라갔다. 40분 후 활동 대역인 -20℃까지 온도가 올라갔다. 깜둥이 드릴은 냉기 방어에 할당된 에너지를 회수해서 ELF에 투입했다.
‘뭐야! 끝까지 얼음인 거야?’
깜둥이는 진절머리가 났다. 아니 기진맥진했다.
[……3,900, 4,000, 4,100] 스카우터가 4,100을 찍는 순간 깜둥이가 비명을 질렀다.“크앙?”
허방이다. 첨벙- 부하(負荷)가 사라지는 동시에 공간에 팽개쳐지고 물에 떨어졌다. 깜둥이는 빙원을 굴진 해 들어간 지 70분만에 만년빙 4,100m를 돌파해서 보스토크 호수에 빠졌다. 지저 세계의 호수에 떨어진 무쌍과 비슷한 과정을 겪는 깜둥이다.
호숫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인간이라면 심장마비가 걸렸겠지만, 깜둥이는 심장이 없다. 비트가 무서운 속도로 호숫물을 가르고 하강했다.
‘지구 반대쪽으로 나가주지.’
깜둥이는 별 영양가 없는 승부욕을 불태웠다. 보스토크 호수의 깊이는 평균 400m다. 순식간에 바닥에 도달한 깜둥이는 묘한 물흐름을 느꼈다. 죽은 호수에 살아있는 수류는 외부와 연결된다는 의미다.
지잉- 스카우터가 호수바닥을 스캔했다. 멀지 않은 곳에 호숫물이 세차게 빠져나가는 좁은 수중 동굴이 있다. 스스스- 깜둥이의 외형이 상자해파리 형태로 변형되었다. 해파리는 해파리답지 않은 날렵한 유영으로 바위 슬롯에 불과한 수중 동굴에 뛰어들었다.
해파리 아닌 해파리 한 마리가 세찬 물흐름을 타고 흘러갔다. 무쌍이 댐이 터진 호수 물살에 휩쓸려 지저 호수에 떨어진 반면 깜둥이는 물살을 타고 지저 호수를 탈출했다. 친구는 뭐가 같아도 같은 부분이 있는 법이다.
48시간 후 깜둥이는 남극 동부의 웨델해로 빠져나왔다. 기진맥진한 깜둥이는 진짜 해파리처럼 해면을 부유했다. 냉기를 피해서 빙원을 탈출했지만, 바다도 다를 것 없었다. 차라리 빙원 아래의 호수가 견딜만 했다. 바다로 빠져나오자말자 혹독한 냉기가 덮쳤다.
‘이곳은 어디?’
충전된 에너지는 동났다. 생존 모드를 유지하기에도 벅찼다. 스카우터 가동이 멈추자 방어기제도 무력화되었다. 께엑- 해면에 부유하는 해파리를 발견한 도둑 갈매기가 급강하했다. 날카로운 부리가 앗 하는 사이에 신체 일부를 뜯어갔다.
공유 결속이 풀어진 채로 방심 상태에 있던 깜둥이는 속절없이 신체 일부를 헌상했다. 끼욱- 끼욱- 한 마리가 먹이를 얻자 수십 마리가 깜둥이를 향해서 급강하했다.
쿠르르- 식겁한 깜둥이가 ELF를 방출했다. 썩어도 준치다. 몸통에 구멍이 뚫린 도둑 갈매기가 추풍낙엽으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간당거리던 에너지가 바닥났다. 깜둥이는 황급히 물속으로 잠수했다. 천하의 깜둥이가 갈매기를 피해서 잠수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깜둥이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바다표범이 달려들었다. 한 마리가 달려들자 대여섯 마리가 경쟁하듯 덤벼들었다. 콰득- 끼우- 해파리 갓을 한 입 물어뜯은 바다표범이 비명을 질렀다. 옆구리에 작은 구멍이 펑 뚫렸다. 퍽- 퍽- 퍽- 세 마리의 머리와 몸통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형편없이 약해진 ELF지만 연약한 가죽을 뚫기엔 차고 넘쳤다. 바다표범 두 마리는 쏜살같이 도주하고, 네 마리가 피를 쏟으며 가라앉았다.
어쩌랴! 용도 개울에 떨어지면 미꾸라지와 피라미의 희롱을 당한다. 수사자도 병들고 힘 빠지면 하이에나와 리카온 무리의 먹이가 된다.
신체 절반을 잃은 해파리, 아니 깜둥이는 기가 막혔다. 금속성 이빨을 가진 공룡의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신체를 허접한 동물에게 잃었다. 신체 절반을 잃는 바람에 변신도 불가능했다. 해파리 상태로 허약해 빠진 지상 생물에 잡아먹히게 생겼다.
슈욱- 촉수 한 가닥이 뻗어 나갔다. 가라앉던 바다표범이 해파리의 품으로 끌려들어 갔다. 아드득- 빠드득- 바다표범이 산산이 짓뭉개졌다. 분자로 분해된 바다표범이 깜둥이에게 흡수되었다.
‘비핵세포 1%도 복구 못 하는군.’
깜둥이는 생물 흡수를 포기했다. 효율이 너무 낮았다. 진핵 세포를 복구할 수 없을뿐더러 생물을 포획해서 흡수하는 과정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더 많았다. 신체를 복구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생체 발전기를 가동할 태양이 있어야 한다.
‘아드라스 망신을 통으로 시키네. 그런데 태양이 있기는 할까?’
회의가 들었다. 태양이 존재하면 지구 온도가 이처럼 낮을 수 없다. 깜둥이의 지식은 극히 비대칭적이다. 지상계의 정보는 백지 상태다. 불완전하게 읽은 동방불패의 기억이 전부다.
‘친구의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군.’
남은 에너지는 겨우 5%, 동면 상태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해파리 상태를 바꿀 에너지도 부족했다. 생소한 세계에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데 의식을 닫을 수는 없다.
깜둥이는 생체 시스템을 생존 모드로 변형했다. 남은 에너지 전부를 방어용으로 돌려서 신체를 경화했다. 적어도 허접한 생물에게 물어뜯기는 상황은 피해야 했다.
반 가사 상태에 빠져든 깜둥이는 에너지를 에네르기파로 변형해서 사념파를 방출했다. 다행히 친구의 피를 잔뜩 흡수한 덕분에 텔레파시 연결이 가능했다. 수신 여부는 동방불패의 능력에 달려있다. 지상에서 지저 세계까지 돌파해온 에피듐이라면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친구, 나 좀 도와줘] [동방불패!] [임마, 친구는 힘들 때 필요한 거라며.]남극 웨델해를 둥둥 떠다니는 볼썽사나운 해파리가 강력한 사념파를 끊임없이 방출했다. 남극 추위는 위대한 콘크레투스 종족이 탄생시킨 생체공학의 총아 아드라스를 무력화했다.
쿠르르- 빙하 사이로 거대한 바다 생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쏴아아- 수면 위로 뛰어오른 혹등고래가 철썩 떨어졌다. 새끼 혹등고래도 어미를 따라서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놀이에 재미 들렸다.
혹등고래 어미는 크릴새우를 입안에 쓸어담는 중이다. 2m에 달하는 거대한 입을 벌리고 솟아오를 때마다 수십킬로그램의 크릴 새우가 목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혹등고래는 매년 겨울이 되면 남태평양에서 낳은 새끼를 데리고 희망봉을 돌아서 남극 바다에 진입한다. 혹등고래가 새끼를 데리고 멀고 먼 남극을 찾는 이유는 크릴에 풍부한 오메가3을 얻기 위해서라는 학설이 통설이다.
쿠르르- 혹등고래가 입을 한껏 벌리고 물을 빨아들였다. 수면에 떠 있던 깜둥이도 크릴떼와 함께 속절없이 거대한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겨울 초입에 남극 바다에 진입했던 혹등고래 어미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유유히 웨델해의 유빙을 빠져나가서 고향인 남태평양으로 향했다.
[동방불패, 친구는 필요할 때 손을 내민다며!]간절한 사념파가 쉼 없이 발산되었다.
콰우우- 팰컨이 니제르 상공을 가로질렀다. 레옹 기장은 리비아의 대공 미사일 망이 마음에 걸렸다. 미친 카다피의 추종자들은 서방 항공기라면 이를 갈고 있다. 그는 니제르와 알제리를 거쳐서 지중해를 횡단하는 비행 계획을 잡았다.
텅- 뒤쪽 화물칸에서 소음이 들렸다. 무쌍이 마시던 커피잔을 놓고 일어났다. 즉각적인 반응이다. 인간 행태는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진자처럼 움직인다.
축구장 3배 크기의 갑판을 보유한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위용에 감탄하지만, 중요 구성 요소인 볼트와 리벳에는 관심 없다. 반면에 왕만두를 먹을 때는 입안을 가득 채운 구수한 만두속보다 깨알처럼 작은 모래알에 신경이 잔뜩 곤두선다. 오셀롯은 작은 모래알이었다.
고박된 티타늄 관을 노려보던 무쌍이 공간지각력을 발동했다. 관속에 들어있는 물건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이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MRI처럼 내용물을 스캔했다. 복합 골절된 수십 개의 뼈와 끊어진 힘줄이 거의 원상 복구되었다. 에피듐의 신체는 역시 대단했다.
프랑스로 항로를 잡은 이유는 오셀롯 때문이었다. 무쌍은 번거로움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는 오셀롯을 보니파스에게 떠맡길 작정이었다.
오셀롯은 노바토피아에 보관하기엔 너무 위험한 물건이다. 놈이 신체를 복구하면 두께 20mm 티타늄 관은 얇은 합판에 불과하다.
분노한 놈이 탈출했을 때 발생할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노바토피아 주민은 물론이고 대기 중인 수십만의 원주민들까지 떼죽음 당한다.
쌈디가 이투리 정글에서 오셀롯을 제압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오셀롯이 반 수 앞선다. 쌈디 몰래 공진파로 오셀롯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십중팔구 쌈디가 패했다. 쌈디와 디노가 연합하면 오셀롯을 잡을 수 있겠지만, 그 와중에 지푼다리는 초토화된다.
“니놈 인생도 거지 같구먼.”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내려왔다. 오셀롯은 계륵 중의 계륵이었다. 애써 사로잡은 놈을 폐기하자니 아깝고, 관리하자니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놈이 만신창이가 된 채 티타늄 관에 감금한 지 21일째다. 아무리 에피듐이라도 먹어야 산다. 유기물과 물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팍팍해도 에피듐 아귀를 만들 수야 없지.”
띡띡띡- 암호를 입력하고 관뚜껑을 열었다. 사부가 말씀하기를 살아있는 것을 굶겨 죽이는 행위가 가장 큰 죄악이라 했다.
크악- 오셀롯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피골이 상접했지만, 외형은 멀쩡했다. 뻑- 우당탕- 가슴에 일격을 얻어맞은 오셀롯이 관속에 처박혔다. 무쌍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일격에 가슴뼈가 푹 내려앉았다.
“끄으으~ 빌어먹을 놈!”
오셀롯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악의와 분노가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밥이나 처먹어라.”
전투식량 열 개를 던져주었다. 오셀롯의 눈이 번쩍했다. 21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오죽하랴. 미친 듯이 포장지를 뜯어서 입에 쓸어 넣었다. 전투식량 열 개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컥컥!”
“물도 먹어야지.”
가슴을 두드리는 오셀롯에게 5ℓ짜리 수통을 던져주었다. 수통을 받아든 오셀롯이 숨도 쉬지 않고 물통을 비웠다. 푹 꺼진 가슴뼈는 어느새 제자리를 잡았다. 무쌍이 머리를 흔들었다. 끔찍한 재생 능력이다.
“왜 죽이지 않았나?”
“죽고 싶나?”
“……”
오셀롯이 말없이 살기 어린 눈으로 쏘아보았다.
“새꺄, 죽고 싶지 않으면 국으로 처박혀 있어.”
무쌍이 버럭 했다. 취미로 인간을 죽이는 놈, 인간을 고양이나 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놈이다. 놈의 면상만 봐도 짜증이 솟았다.
“나를 어쩔거냐?”
“나도 모르겠다.”
“나를 풀어 줘!”
“풀어주면?”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오셀롯의 얼굴이 환히 피어났다.
“착하게 살겠다. 아니 부하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