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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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 깜둥이 출세6
사념파가 툭툭 끊어졌다. 평생을 함께해도 손님인 사람이 있고 차 한잔 마실 시간에 지우(知友)가 되는 사람이 있다. 깜둥이와 무쌍의 지저 세계 도킹은 겨우 하루 반나절이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간단히 하면 ‘오죽하면!’인데 본인이 직접 당해보면 저절로 상대방의 처지에 공감한다. 댐이 터진 카파루자 계곡에서 치른 곤욕은 실로 끔찍했다.
아득한 세월을 살아온 외로움이련가, 동병상련의 공감이련가,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인연이련가! 혜강이 섭정의 광릉산 한 곡조에 심혼이 흔들렸듯이 사념파에 실린 녀석의 고난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밥은 묵었나?]밥은 무쌍의 삶에서 알파요 오메가다.
[밥?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의미는 느껴진다. 에너지 고갈상태다.] [어허, 심각하구마!]고래 뱃속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면 진짜로 심각한 상황이다. 용암 샤워를 했거나, 수억 톤의 암반 마사지를 받았거나, 바이러스 폭풍에 휩쓸렸거나……자신의 살이 뜯기는 듯 짠했다.
사연은 나중에 들어도 된다. 스스스- 투명한 막이 손을 감쌌다. 단번에 혹등고래 옆구리를 뚫어서 위장을 들어낼 작정이다.
끼이이- 묘한 울음이 들렸다. 막 외피를 찢어발기려던 손이 흠칫했다. 어미 옆에 붙어서 헤엄치던 새끼가 어미 등에 올라타려고 발버둥 쳤다. 크기를 보아하니 젖도 떼지 않은 새끼다.
“휴우, 어쩐다!”
한숨이 나왔다. 당장 깜둥이를 꺼내야 하는데 바동거리는 새끼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어미를 잃은 새끼가 대양에서 삼아남을 확률은 제로다. 친구를 구하려고 어미를 죽이면 저놈은 아홉 살의 무쌍이 된다.
무쌍이 갈등하고 있을 때 어미 혹등고래가 갑자기 속력을 높였다. 몸을 뒤채서 왈칵 쏘아져 나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끼이이- 끼이이- 울음소리에 맹수를 피해 도망치는 초식동물의 다급함이 담겼다.
‘천적이 나타났나?’
아굴라스 해역엔 물개와 상어가 많기로 유명하다. 큰 먹이가 많은 만큼 범고래도 자주 출몰한다. 백상아리는 새끼 혹등고래를 잡아먹고, 범고래는 집단 다구리 전법으로 어미가 지키는 새끼도 잡아먹는다.
두웅- 공간지각력을 풀었다. 100, 200, 300……. 1,500, 육상에서 400~500m가 고작인 지각 범위가 바다에서는 1,500m까지 어렵지 않게 뻗었다.
혹등고래를 표적으로 접근하는 생물체 무리가 감지되었다. 혹등고래 모자가 혼비백산하는 이유가 바로 저놈들이다. 추적 중인 무리에서 들소를 덮치는 사자떼의 광폭함이 느껴졌다.
“범고래!”
추적자는 바다의 프레데터라 불리는 범고래 무리다. 체장 5~8m로 혹등고래를 쫓을 만한 포식자는 백상아리와 범고래가 있다. 백상아리는 동족끼리도 잡아먹는 놈이라 무리를 짓지 않는다. 떼를 지어 달려오는 놈은 범고래다.
푸확- 푸확- 1,000m 후방에서 하얀 물보라가 간단없이 튀었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검은 등과 하얀 배가 눈에 들어왔다. 범고래 무리가 속도를 높이자 혹등고래도 다급히 속력을 높였다.
범고래와 혹등고래의 속도는 시속 30km로 비슷하지만, 새끼가 문제였다. 혹등고래는 새끼와 보조를 맞추느라 계속 주춤거렸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겁을 집어먹은 어미 혹등고래가 우왕좌왕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끈거리는 등판이다. 롤링과 피칭이 거듭되자 무쌍이 짜증 냈다.
“임마, 엉아가 살려줄 테니 진정하라고.”
등을 발로 꽝 구르며 고함쳤다. 무지막지한 진각에 거대한 혹등고래도 주춤했다. 끼이이- 고래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안정을 찾았다. 무임승차한 주제에 까다로운 승객이다.
“졸지에 백기사 노릇 하게 생겼네.”
백팩에 거치 된 드라구노프를 뽑아들었다. 야생의 생태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함이 옳지 않지만, 끽끽거리는 새끼가 눈에 밟혔다.
깡- 깡- 깡- 드라구노프가 불을 뿜었다. 총탄이 범고래 전방에 물보라를 튕겼다. 범고래는 인간과 쇼를 할 만큼 영리하고 친숙한 동물이다. 조준 사격을 하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위협사격은 통하지 않았다. 범고래 다섯 마리가 부챗살처럼 산개해서 추적했다. 듣던 대로 영리한 놈들이다. 무쌍은 100m 후방까지 바짝 따라붙은 범고래 무리를 노려보았다.
“착하지. 제발 상어나 물개를 먹으러 가렴.”
가란다고 갈 범고래가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거리를 좁혔다. 몇 대 때려서 쫓을 수밖에 없다. 드라구노프를 거치하고 락샤샤를 뽑아들었다.
“락샤샤!”
공진을 담은 굉량한 고함이 터졌다. 대기가 우르릉 흔들리고 파랑이 일었다. 무쌍은 고래 등에 천주부동세로 버티고 서서 락샤샤를 휘둘렀다.
위이잉- 오랜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락샤샤가 포효했다. 락샤샤는 단번에 음속을 돌파했다. 쿠오오오- 광폭한 보스사우루스가 아수라의 부름에 공명했다. 대기가 몸서리치며 밀려났다.
혹등고래가 움찔하고, 지척에 다가선 범고래들이 대가리를 쳐들었다. 먹이의 등에 붙어있는 생물체가 특별함을 눈치챘다.
음속을 돌파한 락샤샤의 궤적에 걸리면 거대한 범고래도 한방에 썽둥 썰린다. 속도를 크게 감속한 크래커가 대가리를 강타했다.
퍽퍽퍽- 속도를 줄였다지만 1톤에 달하는 타격력이다. 끼웅- 끼웅- 졸지에 화끈한 매질을 당한 범고래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다다다다- 무쌍은 신작로만큼이나 넓은 고래 등을 뛰어다니며 에워싼 범고래를 두들겼다. 끼우웅- 기성이 울렸다. 범고래 떼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놈들 보게!”
몇 대 맞았다고 포기할 범고래가 아니다. 멀찍이 후퇴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범고래 무리가 일자 대형으로 돌진했다. 쏴아아- 물보라가 거세게 일었다.
“허, 성동격서까지!”
무쌍은 흥겨워졌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드는 놈은 세 마리뿐이다. 공간지각력에 수중으로 달려드는 두 마리가 훤히 잡혔다.
푸확- 푸확- 락샤샤가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그리며 음속으로 수면에 떨어졌다. 휩이 수면을 칠 때마다 바다가 크레바스처럼 깊숙이 갈라졌다. 그 깊이가 십 미터를 넘었다.
뻑- 뻑- 락샤샤에 묵직한 부하가 걸렸다. 수중에서 달려들던 놈이 휩에 얻어맞았다. 끼웅- 물 밖으로 솟구친 녀석의 콧등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돌진하던 돌고래 무리가 일제히 멈추어서 대가리를 쳐들었다. 상호 간에 실시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끼우웅-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신호음을 방출했다.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고춧가루가 끼었다.’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먹이가 널렸는데 구태여 위험한 먹이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쏴아아- 돌진하던 놈들이 일제히 방향을 돌려서 멀어졌다. 역시 영리한 놈들이다.
“어, 이놈 보게!”
끼이이- 범고래 무리가 사라지자 혹등고래 새끼가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어루만져주자 강아지처럼 끽끽 소리를 냈다. 커다란 눈에 감정이 담겼다. 무쌍과 새끼가 스킨십을 하자 어미가 제자리에 멈추었다.
억수갑이 거친 주둥이를 쓰다듬었다. 주둥이에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와 이름 모를 커다란 기생충들이 한 번에 쓸려나갔다. 끼이- 끼이- 새끼가 좋아라. 소리쳤다.
“헐, 이게 고래여 강아지여! 그래, 니는 혹돌이다. 니 에미는 혹순이다. 알았제?”
무쌍의 형편없는 작명 센스는 아프리카 최남단 인도양에서도 빛을 발했다.
“아차, 깜둥이를 꺼내야지. 임마, 나중에 놀자.”
무쌍은 새끼 혹등고래의 대가리를 강아지 쓰다듬듯이 두드려주고 콧등으로 이동했다.
“임마, 주둥이 벌려!”
거대한 눈이 끔벅거렸다. 마음이 급해진 무쌍이 위턱과 아래턱을 잡고 벌렸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끈 힘을 쓰자 고래가 머리를 흔들었다. 억지로 아가리를 벌리면 상하악골 관절이 부서질 것 같았다.
“니가 내 말을 알아들으면 사람이지 고래겠냐!”
투덜거리며 상의 포켓에서 아미 로프를 꺼내 들었다. 혹등고래는 빗처럼 생긴 거대한 수염으로 크릴새우를 걸러 먹는다. 자세히 보니 위턱과 아래턱 사이에 아미 로프를 쑤셔 넣을 틈이 보였다.
웅- 염동력으로 아미 로프를 꼿꼿이 세웠다. 하늘이 재주를 내릴 때는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공교롭게도 염동력을 얻자 사용처가 나타났다. 아미(ami)는 불어로 친구다. 에밀이 선물할 때 이름을 아미라고 붙이더니 깜둥이를 구하게 생겼다.
아미 로프를 쑤셔 넣으려는 순간 혹순이가 입을 쩍 벌렸다. 무쌍은 동굴 같은 입에 기가 질렸다. 이런 힘과 덩치를 지닌 놈이 겨우 50mm에 불과한 크릴새우를 먹고 산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작업은 혹순이가 협조해준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미 로프가 위내시경 삽관하듯이 식도를 거쳐서 위장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아미 로프는 지름 2mm에 불과하다. 혹등고래는 삽입되는 이물질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공간지각력으로 해파리 좌표를 잡고, 염동력으로 아미 로프를 접근시켰다. 위장에 침입한 아미 로프가 해파리를 쿡쿡 찔렀다.
[친구, 잡을 수 있나?] [니미 조또, 움직일 수 있으면 쪽팔리게 이러고 있겠냐!]걸쭉한 욕설이 돌아왔다.
“헐!”
기다리느라 짜증이 난 모양이다. 자신이 지저 세계에서 니미 조또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할 말이 없었다. 욕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는 언어다.
[미안하다. 금방 꺼내줄게.]아미 로프가 해파리를 휘리릭 감았다. 염동력과 공간지각력을 동시에 컨트롤해야 하는 작업이다. 정신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적출은 그냥 당기면 된다. 작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마에 진득이 밴 땀을 소매로 닦아내고 아미 로프를 살살 당겼다. 다행히 혹등고래는 깜둥이를 끌어낼 때까지 협조했다.
“임마, 끝났다.”
손으로 콧등을 탁 치자 입을 다물고 낑낑 울었다.
“이야, 이놈도 디노처럼 영물이 되려나. 내가 영물 메이커인가? 크크크!”
마음이 가벼워진 무쌍이 낄낄거렸다.
[다행히 태양이 있군!]사념파가 둥 울렸다.
“헐, 깜둥이 맞아?”
무쌍은 적출물을 확인하고 화들짝 했다. 만신창이로 물어뜯겨 몸통 절반만 남은 상자해파리, 이것이 정녕 위대한 콘크레투스의 생체공학 생물 아드라스, 깜둥이란 말인가!
[친구 반갑다. 쪽팔리지만 내가 나다.]“풉, 재생 방법은?”
내가 나다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동물도 식물도 아닌 깜둥이는 몸통 절반이 사라졌다고 죽지 않는다.
[진핵 세포가 반이나 소실되었다. 어쩔 수 없이 재생 에너지를 소모했다. 의미를 전달하기도 힘들다. 친구, 나를 접촉해라.]널브러진 해파리를 보자니 마음이 아팠다. 해파리를 집어들어서 머리에 접촉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쥐어박았지만, 깜둥이의 사념파가 선명해졌다.
[대기 조성이 달라졌나? 태양이 늙었나? 현 상태의 태양 에너지라면 지구가 40,000번 자전해야 본래의 몸을 찾을 수 있다.]“헉, 100년씩이나?”
식겁한 무쌍이 소리 질렀다. 늙어 죽은 후에나 친구가 정신을 차린다는 소리다.
[뭘 놀라나. 에피듐 수명은 일천 년이다. 유전자 특성이 흐려져도 오백 년은 너끈히 산다. 백 년은 별것 아니다.]“임마, 너하고 나는 시간관념이 틀려. 백 년이면 무지 긴 세월이야. 왜 그렇게 오래 걸리지?”
[현 세계의 햇볕은 약하다. 생체 발전기의 효율이 떨어진다. 진핵 세포를 복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에피듐 육체를 이용하면?”
무쌍이 불쑥 물었다. 한 텀이 지나서 대답이 돌아왔다.
[햇볕 아래 살고 싶지만, 친구를 희생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오, 쓰임새는 있다는 말이네. 불량 에피듐이 있다.”
반색한 무쌍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까마득한 상공에 팰컨이 선회하고 있다.
[오오, 에피듐 신체가 있다고? 친구 기억에 의하면 이럴 때 땡 잡았다고 해야 하는군. 에피듐의 신체 조직을 활용하면 즉시 움직일 수 있다. 1년이면 조직을 완전히 복구하고 외형을 재디자인할 수 있다.]깜둥이가 기뻐하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재디자인은 무슨 뜻이냐?”
[흑표가 되는 바람에 형상 변화에 제약이 생겼다. 에피듐 조직을 얻으면 역 전사를 통해서 에피듐을 껍질로 사용할 수 있다. 재생 과정을 거칠 필요 없다. 게다가 본질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생물과 무생물을 넘나드는 변신이 가능해진다.]“이럴 수가! 하늘은 참으로 쓸모없는 물건을 내지 않는구나!”
무쌍은 진실로 감탄했다.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오셀롯을 끌고 다닌 보상을 받았다. 무쌍은 지체없이 위성전화기를 꺼냈다. 고래 등에 안테나를 펼치고 주파수를 맞추었다.
“레옹, 화물창에 실린 티타늄 상자와 구명 부이를 투하해라.”
-넵, 패러슈트를 붙여서 투하하겠습니다.
“농, 저공 비행해서 즉시 투하하라.”
-위!
콰우우- 팰컨이 구름 사이로 동체를 드러냈다. 횡전해서 손에 잡힐 듯이 고도를 낮추더니 화물창에서 은빛 물체가 투하되었다. 철썩- 물속에 잠겼던 티타늄 관이 스킵 봄버(항공기 투하 어뢰)처럼 불쑥 솟아올랐다.
레옹은 헬기도 아닌 제트기로 50m 떨어진 지점에 관을 투하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뒤이어 말발굽 모양의 오렌지색 구명 부이가 철썩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