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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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 깜둥이 출세8(수정)
[행복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다. 내가 겪은 슬픔과 고통은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슬픔을 알았기에 사랑을 알았다. 사랑은 현실이고 현실은 행복이다. 백만 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자는 혹등고래 모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위대한 영혼은 결코 커 보이지 않는다. 커 보이는 자는 세상을 가리는 그림자일 뿐이다.]내면의 무쌍이 수줍게 대답했다. 그렇다. 현실은 영혼의 거울이다. 힘을 얻었다고 시궁창 현실을 원망하며 복수의 이빨을 드러냈으면 살인을 취미로 여기는 오셀롯과 다름없는 사이코패스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은 크고 작은 인연으로 엮여서 돌아간다. 선연과 악연의 씨줄과 날줄이 엉켜서 운명이 짜이고, 숙명이 재단되고, 업이 쌓인다.
아드라스와 에피듐은 1억 5천만 년 전의 지성체인 콘크레투스의 찌꺼기다. 하늘이 사람을 내고, 재주를 줄 때는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 에피듐 박무쌍이 아니라면 어떤 존재가 깜둥이를 살리고 오셀롯을 포획할수 있겠는가.
되살아난 에피듐의 망령이 깽판 친 결과는 참혹했다. 7개월 전, 싱가포르 부두와 스페인의 알메리아 항구에서 오셀롯의 전시실이 발견되었다. 창고 지하에서 발굴된 유골만 450구, 숫자도 숫자지만 살인 수법이 너무나 엽기적이었다. DGSE 검시관은 사체에 적용된 살인 수법이 50가지라고 보고서에 기술했다.
업은 행위와 행위에 따른 결과다. 자신이 에피듐으로 재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오금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깜둥이는 지저 세계에 잠들어 있고, 오셀롯은 홀로코스트 악취미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깜둥이와 오셀롯의 한판 대결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결과는 뻔했다. 아니사키스, 사이스티세르코시스 따위의 기생충도 인간을 조정한다. 고등 생명체인 깜둥이가 오셀롯의 신체를 차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프리카 최남단 아굴라스의 밤이 새벽으로 넘어갔다. 휴프노스의 장막이 장엄한 적막을 감싸 안았다. 용병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우르릉- 인도양과 대서양의 거센 파도가 힘겨루기하는 중이다. 끼이이- 캄캄한 해안에서 구슬픈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천적에게 습격당한 물개일까? 절벽에 떨어진 바분일까? 궁금해하는 순간 지평선 끝자락에 유성우가 우르르 쏟아졌다.
“어머니!”
소원을 말하려 했는데 유성우는 그야말로 유성처럼 사라져 버렸다. 쥐어짜면 하얀 우유가 주르륵 쏟아질 듯한 은하수 가운데 만월이 박혔다. 만월이 어머니 얼굴로 변했다. 환한 얼굴의 어머니가 보름달을 타고 은하수를 흘러갔다.
지난 십수 년간 심상에 떠오른 어머니의 얼굴은 늘 환하고 밝았다. 단 한 번도 찌들고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달 속에서, 강물 속에서, 스쳐 가는 바람속에서 늘 밝고 다정하고 감미로웠다. 그조차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련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진정한 은총은 사랑이다. 슬퍼할 줄 아는 자는 사랑을 안다. 사랑을 아는 자는 희망이 있다. 사랑, 희망, 행복은 삶의 세 꼭짓점이다.
수많은 난민이 노바토피아에 입성하려고 철조망을 넘고 사막을 가로질렀다. 그들의 소원은 한결같았다. 내 자식만은 배부르게 먹고 인간답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리장도 탈출 중에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이지하나가 굳건히 버티는 바탕은 어린 딸이다. 미물인 혹순이도 새끼를 지키려고 백상아리의 이빨에 자신의 몸을 들이밀었다. 조건없는 사랑은 그렇게 행복으로 이어지고 희망을 잉태했다.
별똥별이 하늘을 길게 가로질렀다. 이번에도 소원을 빌지 못했지만, 하늘에 총총한 별만큼이나 행복감이 그득히 차올랐다.
메마른 영혼의 피신처로 노바토피아를 열었다. 아니었다. 정작 메마른 영혼은 자신이었다. 우습게도 메마르다 여겼던 수많은 존재가 자신의 메마른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위로하려다 위로받았다. 행복하게 해주려다 행복을 받았다. 노바토피아의 난민들이 준 선물이다. 혹등고래 모자가 주고 간 선물이다.
‘별일 없을까? 범고래나 백상아리의 공격을 받지는 않았을까?’
사람도 아닌 동물에 불과한 고래 모자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발에 익숙해진 신발을 잃어버린 듯 허전했다.
뜨드드- 엉덩이가 부르르 떨렸다. 아니 떨리는 것은 깔고 앉은 관이다. 시간을 확인했다. 깜둥이가 오셀롯의 체내로 침입한 지 일곱 시간이 지났다.
“끝났나?”
[그렇다. 무의식의 심연까지 들어내느라 시간이 걸렸다.]깜둥이의 사념 파에 부쩍 힘이 실렸다. 타자기로 뇌를 치던 느낌이 조각도로 음각하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쓸만하던가?”
[영혼은 쓰레기지만, 신체 조직은 최상이다. 인간 기준으로 이놈이 잘 생겼나? 인간은 일단 잘 생겨야 경쟁에서 유리하다며.]‘그것참,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구마!’
무쌍은 쓴웃음을 지었다. 깜둥이의 사고 체계는 자신의 기억이 베이스다. 끔찍이 싫어하는 용모 지상주의가 무의식에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오셀롯은 아주 잘생겼다. 그렇다고 깜둥이가 놈의 얼굴로 세상을 활보할 수는 없다.
“그놈은 끔찍한 범죄자다. 그놈 얼굴로 인간들과 섞일 수 없다.”
[그래? 꼭 인간들과 섞일 일은 없지만, 친구가 곤란하다면 양보하지. 베이스로 삼을 멋있는 인간의 얼굴을 떠올려라.]하긴 잘 생겨서 나쁠 것은 없다. 무쌍은 자신도 모르게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오마샤리프를 심상에 떠올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20년이나 지난 구닥다리 영화지만 여전히 외인용병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무쌍 본인도 사막의 신기루에서 빠져나오는 오마 샤리프의 포스에 홀딱 반하지 않았던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잘생긴 얼굴, 강렬하지만 온화한 눈빛, 영화 속의 오마샤리프는 상반된 이미지를 잘도 버무린 배우였다. 또 한 명이 떠올랐다. 우수에 잠긴 깊은 눈, 꽉 다문 섬세한 입술이 압권인 프랑스 국민배우 알랭 드롱이다.
[그것이 잘생긴 인간인가? 대충 비벼 보지.]“헛!”
무쌍이 튕기듯이 일어났다. 샤아아아- 티타늄 뚜껑이 모래처럼 잘게 분쇄되었다. 깜둥이의 주 무기인 오리지널 하이 레벨 ELF다. 하마터면 영문도 모르고 신체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헐! 머꼬?”
훤한 달빛 아래 피투성이 곤룡포를 걸친 남자가 둥하고 등장했다. 곤룡포는 오셀롯이 입었던 옷이다. 오셀롯의 얼굴이 있던 자리에 엉뚱한 얼굴이 붙어있다. 변신 능력과 공간이동 스킬이 전설의 고향을 재현했다.
“오마샤리프!”
무쌍이 신음했다. 갈색 콧수염과 균형 잡힌 이목구비, 강인하면서도 온화한 얼굴, 말 타고 장총을 휘두르며 사막을 질주하는 로렌스 판박이다. 자세히 보니 우수에 잠긴 눈과 섬세한 입술, 반 곱슬머리는 알랭 드롱을 닮았다.
‘젠장, 실수다. 기분 나쁘게 잘 생겼다.’
무쌍은 기가 막혔다. 깜둥이는 자신이 떠올린 심상을 완벽히 재현했다. 이 인간, 아니 깜둥이가 명동 시내를 활보했다간 난리 나게 생겼다.
짝퉁 오마샤리프는 감격했다. 하늘에 떠 있는 달, 반짝이는 별, 피부를 스쳐 가는 공기 유동, 발아래 밟히는 자갈의 감촉……. 흑표로 존재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감각과 감정이다. 이것이 진정한 생명이다.
“친구, 이것이 기쁨이란 감정이군.”
깜둥이가 떠듬떠듬 말했다.
“헐, 말까지?”
무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텔레파시가 아니라 고막을 진동하는 음파다.
“구강 구조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곧 익숙해진다. 생명을 주어서 고맙고, 육체를 주어서 고맙다.”
깜둥이가 성큼 다가서서 불문곡직 와락 껴안았다.
“흠흠, 뭘 그걸 가지고.”
무쌍이 헛기침으로 얼버무리며 짝퉁 오마샤리프의 가슴을 밀어냈다. 남자끼리 취하기엔 민망한 포즈인데다 곤룡포에 밴 피 냄새가 너무 역했다.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 그래, 나도 행-복-하-다.”
느끼한 짝퉁 오마샤리프의 목소리에 오한이 들었다. 오셀롯이란 놈은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성폭행했다. 깜둥이가 오셀롯이란 놈의 이상한 취향까지 물려받았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친구, 인간의 시각이 불편하다. 속이 메슥거린다.”
“기계적 작용과 융합적 작용의 차이겠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 결과다. 인간은 시야에 들어온 사물을 극히 일부만 기억한다. 대부분 무심히 지나간다.”
“그렇군. 형상과 색감이 융합되는 작용이 흥미롭긴 하다.”
오셀롯의 몸을 얻은 깜둥이는 한정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들떴다. 질문이 끝없이 이어질 듯한 기세다. 무쌍이 툭 끊었다.
“신체 적응은 시간이 해결하겠지. 상태는 어떤가?”
“질 좋은 재료를 얻은 덕분에 비핵 세포 복구를 끝내고 생체 발전기를 가동했다. 이곳 시간으로 육 개월이면 에너지를 보충하고 진핵 세포 복구할 수 있다.”
“육 개월간 처박혀 있을만한 좋은 장소가 있지. 흐흐흐!”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깜둥이를 천성산 암자에 처박아 놓으면 사부가 알아서 잘 버무려 준다. 쌈디도 죽도록 패서 인간을 만들었다. 짝퉁 오마샤리프의 얼굴에 슬쩍 그늘이 졌다. 뭔가 께름칙했다.
“깜둥이, 이름을 선물하겠다.”
무쌍이 조례사를 읽는 교장처럼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뭔 이름? 내 이름은 깜둥이다.”
깜둥이가 심드렁하니 반응했다.
‘얼래? 이건 아닌데!’
김이 피시시 빠졌다.
“인간 모습으로 깜둥이란 이름을 쓸 수 없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일요일이군. ‘레오빠 디망쉬’ 어때?”
깜둥이가 무쌍을 쳐다보았다. 눈빛에 어이없음이라고 쓰여있다.
“레오빠 디망쉬?(일요일 표범?) 너무 성의 없다.”
무쌍은 움찔했다. 깜둥이도 덥석 받던 녀석이 까다로워졌다. 당연했다. 첫날밤이 충격이지 두 번째는……. 별로는 아니지만, 첫날밤의 충격적인 의미는 대폭 퇴색한다.
“이름은 원래 그렇게 짓는다.”
무쌍이 꿋꿋이 버텼다.
“그렇군! 인간 모습일 때 나는 레오빠 디망쉬다.”
깜둥이는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어차피 인간 모습은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할 생각이다. 레오빠 디망쉬보다 깜둥이가 백배는 정감 있고 혀에 착 붙는 깜둥이다.
깜둥이가 그럴듯한 이름인 레오빠 디망쉬보다 깜둥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쌍 때문이다. 첫사랑에 집착하는 무쌍의 의식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베이스를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었나?”
“아니다. 본질은 흑표다. 한번 정해진 개념은 변경될 수 없다. 인간처럼 복잡한 형태를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대량 소모된다.”
스스스- 깜둥이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두둥- 수사자보다 한 둘레 큰 거대한 흑표가 나타났다. 지저 세계에서 조우했던 그 모습이다.
“크르르!”
묵직한 하울링이 좍 퍼져나갔다. 만월을 배경으로 우뚝 버티고 선 흑표의 자태는 아름답고 장엄했다. 디노도 막강한 포스를 풍기지만 흑표에 비하면 달빛과 반딧불이다.
“재수 없게 인간형도 멋있고 흑표도 멋있군.”
무쌍이 투덜거렸다.
“질투라는 감정인가?”
“질투는 무슨 얼어 죽을 질투, 웬만하면 흑표로 지내라. 니놈이 인간형으로 싸돌아다니면 속없는 여자들이 미친다. 미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본질이 동일한데 여자가 왜 미치나? 이해할 수 있게 정신을 열어줘라.”
“됐어 임마, 말이 통하는데 대갈통 속은 왜 훔쳐 봐. 형태나 바꿔. 헬기가 온다.”
“알았다.”
스스스- 흑표가 순식간에 레오빠 디망쉬로 변신했다. 쉬아아- 피에 절은 곤룡포가 새것처럼 변했다. 초진동이 섬유 조직과 결합한 혈액을 원소 단위로 분해했다. 투투투투- 대사관이 야밤에 긴급 수배한 소방용 헬기가 아굴라스 해안에 내려앉았다. 헬기는 기묘한 승객 둘을 태우고 케이프타운 공항으로 날아갔다.
DGSE는 초특급으로 깜둥이의 신원을 만들었다. 아리바 과장은 단 하루 만에 레오빠 디망쉬의 출생부터 현재까지 24년 삶의 이력을 창조했다. 에리트레아에서 탈출한 프랑스계 아랍인, 지중해에서 표류하는 동안 열사병 후유증으로 기억 일부를 잃은 미남자가 깜둥이의 이력이다.
아리바 과장은 느긋한 공무원들을 족치느라 진이 쭉 빠졌다. 툭하면 이상한 인물을 주워와서 들볶는 블랙맘바에게 질려버렸다.
첫 번째 인간은 살벌한 면상의 난쟁이 똥자루 동양인, 두 번째 인간은 전설의 타이탄족을 닮은 거구의 흑인, 이번엔 영화배우를 찜쪄먹을 아랍계 미남자다. 다음엔 진짜 악마나 천사를 주워올지도 몰랐다.
1985년 7월 5일, 무쌍과 깜둥이는 한국행 에어 프랑스에 몸을 실었다. 5월 20일에 한국을 떠났으니 열흘 예정의 출장이 45일로 늘어난 셈이다. 초과 근무 수당을 넘칠 만큼 챙겼지만 결국 기말고사를 망치고 말았다.
암자는 늘 그렇듯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아니 쥐와 다람쥐만 넘쳐났다. 법당 마루, 요사채, 새로 지은 객사, 공양간 할 것 없이 작은 설치류가 제 세상을 만난 듯 쫓고 쫓겼다. 무쌍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사부가 하동댁 아지메와 덕산댁 아지메의 발걸음을 막았을 게 뻔했다. 삼출 아재는 농사지을 몸이 아니고, 하동 아지메는 과부다.
농사일에 치여 사는 아지메들이 사부의 공양을 날마다 챙기기가 만만치 않다. 사정을 뻔히 아는 사부가 아지메들을 공양주로 쓸 리 만무했다.
“동방불패, 이곳이 친구의 서식처인가?”
거대한 흑표범이 긴 꼬리를 살랑거렸다. 인간처럼 흑백이 분명한 눈만 빼면 전신이 칠흑처럼 검은 깜둥이다. 무쌍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곳이다. 산소가 넘쳐난다. 그런데 서식지가 콧구멍보다 작다. 답답해서 어떻게 살지?”
깜둥이가 거만하게 코를 치켜들고 공기를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