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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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 깜둥이 출세11
깜둥이는 혼란에 빠졌다. 휴먼은 최종 포식자인 콘크레투스 족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휴먼의 역사가 백만 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끔찍한 번식력에 놀랐다.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최상층부는 극소수다. 황혼의 세기에 콘크레투스 족의 숫자는 일만 명에 불과했다.
인간의 번식력은 어마어마했다. 공항이라 불리는 시설물과 도로라 불리는 이동 통로는 물론 지표면 어디든 인간이 개미처럼 바글거렸다.
짧은 진화 역사와 번식력에 이어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단일 종인 인간의 피지컬 편차다. 자연환경이 순해진 탓인지 인간은 너무나 허약했다. 스카우터로 측정된 전투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황혼의 세기 콘크레투스는 인간보다도 허약하지만 아드라스로 육체를 바꾸고, 강화 장비로 신체를 덮었다. 동방불패가 억수갑이라 부르는 물건도 강화 장비의 일종이다. 툭 치면 억하고 죽을 신체로 강화 장비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눈앞의 늙은 인간은 단일 종임에 불구하고 스카우터의 전투력 측정값 한계를 넘어버렸다. 육체를 아드라스로 치환하고 강화 장비로 도배한 콘크레투스 족도 늙은 인간에 비하면 발톱의 때에 불과했다.
인간은 왜 이렇게 편차가 심할까? 더 무서운 점은 평소엔 콘크레투스의 진신(眞身)만큼이나 허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스카우터로 측정된 값도 형편없었다. 바람만 불어도 픽 쓰러질 늙은 인간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힘도 못 쓰고 죽도록 얻어맞았다. 인간을 잘못 건드렸다간 피박 쓴다는 소리다.
겉보기엔 허약한 인간이 무한대의 파워를 발휘하는 지상 세계, 이상하게 변한 지상 세계의 불확실성이 두려웠다. 어쩌다 이런 카오스적인 존재가 지구를 장악했는지……. 인간이 두려워졌다.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없으니 어깨라도 부딪히면 큰일 날 판이다. 깜둥이의 오해는 깊어졌다.
깜둥이는 스카우터로 대우선사를 훔쳐보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게 생겼다. 지저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약한 놈은 무조건 잡아먹힌다. 지상도 마찬가지였다. 허약해지자 온갖 생물이 달려들었다.
아드라스의 죽음은 원소단위로 분해되는 급성 소멸과 바이러스 침입으로 인한 만성 소멸이 있다. 늙은 인간이 어느 쪽을 택하던 표생은 끝났다. 소멸이란 개념을 떠올리는 순간 겁이 더럭 나고 서러움이 치밀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토록 심하게 팬단 말인가! 코를 벌렁거리고 일주문이라 불리는 기둥에 영역 표시 좀 했기로서니 맞아 죽을 죄란 말인가. 이 좋은 세상에서 숨도 몇 번 쉬어보지 못했는데 모진 인간을 만나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니……. 억울했다. 너무 억울했다.
“쿠우우~”
구슬픈 깜둥이의 울음이 천생산을 울렸다.
[이노무 자식, 조용히 못 해! 미물이 재수 없게 대낮부터 울고 자빠졌어.]머릿속이 쩡 울렸다. 놀란 깜둥이가 목을 쑥 집어넣고 입을 닫았다.
“헙!”
딸꾹- 딸꾹- 놀란 나머지 딸꾹질이 나왔다. 황소만 한 표범이 상체를 흔들며 딸꾹질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멍청한 놈, 그러게 세 끝을 조심해야지. 발을 뻗어도 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야지.’
무쌍은 깜둥이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쪼잔한 사부는 암자가 콧구멍만 하다는 말을 무척 듣기 싫어했다. 게다가 표범 주제에 나보다 강한 놈은 없다는 투의 망발까지 했으니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예로부터 남자는 세 끝을 조심하라고 했다. 깜둥이는 일주문 기둥에 오줌을 쌌으니 페니스 끝을 잘못 놀렸다. 말을 함부로 했으니 혀끝을 잘못 놀렸고, 사부에게 대항했으니 손끝을 잘못 놀렸다. 맞을 짓을 세 가지나 했다.
깜둥이는 구명도생(苟命徒生)의 길을 찾았다. ‘옥처럼 부서질지언정 기와로 남지 않는다.’ 따위의 비합리적이고 현학적인 태도는 배부른 인간이나 하는 소리다. 청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육식 동물은 굴복할 때 가장 취약한 부위인 배를 드러낸다.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지만, 그것만은 할 수 없다. 지저 세계의 제왕 깜둥이가 배를 드러내고 발랑 눕다니……. 다행히 변신 능력이 있다.
스스스- 앞발 뒷발이 쭈욱 늘어나고 주둥이가 쑥 들어갔다. 허리가 꼿꼿해지고 머리가 곧추섰다. 흑공단처럼 부드러운 털이 고풍스러운 튜닉으로 변했다.
깜둥이의 털이 어떻게 옷으로 바뀌었을까? 알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깜둥이의 흑모는 색소가 아니라 특정 빛을 반사하는 광결정으로 덮여있다. (작가 주:색소가 아닌 광결정으로 색을 구현하는 동물에는 비단벌레, 공작, 모포나비 등이 있다.)
광결정은 특정 빛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통과시킨다. 우리 눈은 물체의 표면이 반사하는 특정 파장의 색을 본다. 깜둥이는 광결정 분자를 재배열해서 모든 형태의 질감과 색을 구현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비키니를 입은 해변의 육감녀로도 변신할 수 있다는 소리다.
둥- 흑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레오빠 디망쉬가 나타났다.
“요물이로다!”
대우선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도통한 고승의 턱이 툭 떨어질 만큼 깜둥이의 변신 능력은 고명했다.
“무아야, 도대체 저 물건의 정체가 무엇이더냐? 서양 구미호더냐? 어째 주워오는 물건마다 요상한 물건인고?”
“그 그게 말임다.”
무쌍이 버벅거렸다. 깜둥이의 정체를 말 몇 마디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초고대 종족인 콘크레투스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지저 세계까지 설명하려면 2박 3일도 부족하다.
“마스터!”
무쌍이 머뭇거릴 때 레오빠 디망쉬, 아니 깜둥이가 대우선사 앞에 털썩 엎드렸다.
“이것이 무슨 뜻인고?”
“마스터, 살려만 주십시오. 잘하겠습니다.”
대우선사의 눈이 커졌다. 갈수록 가관이다. 산으로 눌러도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나는 희한한 놈이 인간으로 변신해서 대뜸 잘하겠단다. 도깨비 같은 놈의 도깨비놀음이다.
“잘?”
“넵, 잘하겠습니다. 쫓아내지 말고 밥만 먹여주십시오.”
“밥값이 만만치 않을 텐데~”
대우선사는 역시 대우선사다. 말꼬리를 늘이며 삐딱한 눈으로 깜둥이를 내려다보았다.
“보기보다 재주가 많습니다.”
딱한 모습을 보다 못한 무쌍이 역성들었다.
“그래? 티브이 안테나도 잘 조정하나?”
‘아이고!’
무쌍이 이마를 치고 깜둥이는 다급해졌다. 보아하니 살려줄 것 같다. 무조건 마스터의 마음에 들어야 살 수 있다. 깜둥이의 눈이 노르스름해졌다. 마스터의 기억에 사념파를 접속하면 티브이 안테나가 뭔지 알 수 있다.
‘이거 왜 이래?’
방출된 사념파가 기억의 바다에 접속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사아아아- 깜둥이가 출력을 올렸다. 노르스름한 눈이 샛노랗게 변했다. 딱- 명아주 지팡이가 머리통에 떨어졌다.
“켕!”
엉겁결에 인간의 비명이 아닌 흑표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놈 자식, 눈깔아. 못된 짓만 배웠구먼. 무아야 저놈의 약점이 무엇이더냐?”
“바이러스에 취약합니다.”
무쌍은 사실대로 아뢰었다. 사부에겐 오로지 진실 박치기만 통한다. 잘못하면 긴고주를 덮어쓰는 불상사가 생긴다. 화들짝 놀란 깜둥이가 머리를 조아렸다.
“티브이 안테나가 뭔지 알고 싶어서…….
“흠, 능력이 있다고 타인의 기억을 훔쳐보는 행위는 도둑질보다 더 나쁘다. 바위에 갇혀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더냐?”
“마스터 나쁜 짓인 줄 몰랐습니다. 다시는 인간의 기억을 훔쳐보지 않겠습니다.”
깜둥이가 펄쩍 뛰었다.
“무아야, 저놈에게 티브이 안테나 맞추는 법을 알려주거라. 망할 놈의 안테나가 철 이른 태풍에 돌아갔는지 칙칙거리기만 하는 기라. 쭉쭉빵빵한 젊은 처자의 다리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에잉!”
“알겠심더!”
무쌍은 안쓰러운 눈으로 깜둥이를 쳐다보았다.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불문곡직 300m 떨어진 산 능선에 올라가야 한다.
졸참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잘 보입니까?’ ‘됐어요?’ 고함쳐야 할 깜둥이의 고단한 신세가 눈에 선했다.
그것뿐이랴. 중이 선방에 앉아서 좌선하고 목탁이나 치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중도 먹고살아야 한다. 새벽 3시면 일어나서 아침 예불을 올리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산나물과 약초를 채집하고, 공양을 준비하고, 밭을 일구고, 장작을 패고……. 울력(의식주 해결을 위한 사찰 막노동)이 끝이 없다.
천하의 깜둥이 아니라 우주의 깜둥이라도 사부에겐 미물일 뿐이다. 사부는 약한 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강한 자에겐 한없이 강하다. 깜둥이의 내구성(?)을 확인한 사부가 쌈디 찜쪄먹을 정도로 굴릴 게 뻔했다.
“흠, 밥만 먹여주면 무엇이든 한다고?”
“넵, 사실은 밥도 먹지 않습니다.”
당당한 선언에 대우선사의 허연 눈썹이 올라갔다.
“무아야,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
“깜둥이는 햇볕을 직접 흡수해서 대기 중의 원소를 에너지로 가공합니다. 그냥 광합성 미토콘드리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허, 이런 기사가 있나! 깜둥아, 너는 인간이냐?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이냐?”
“마스터, 나 깜둥이의 인격 기반은 친구인 동방불패의 인격입니다. 동방불패가 인간이라면 나 역시도 인간입니다.”
“오호, 선재, 선재로다. 깜둥아, 네가 인간이라면 너는 무엇으로 살아가려느냐?”
“마스터, 동방불패는 고래 위장 속의 나를 꺼낼 때 고래 옆구리를 찢으려다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고래를 죽이지 않고 입을 벌리게 해서 로프로 끌어냈습니다. 동방불패가 생각을 바꾼 이유는 고래 새끼 때문이었습니다. 동방불패의 영혼에서 느낀 감정은 사랑이었습니다. 동방불패와 텔레파시로 연결되어있던 나는 그 상황을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피듐의 육체를 선물 받았습니다. 동방불패는 인간이 인간의 굴레를 벗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정의라는 개념이 전해졌습니다. 동방불패는 나 깜둥이의 친구이자 주인입니다. 나 인간 깜둥이는 동방불패와 함께 사랑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살겠습니다.”
‘저 저녀석 이빨 보게! 사이비 교주는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이구마.’
무쌍의 눈이 둥그레졌다. 깜둥이가 저렇게 좔좔 말을 잘할 줄 몰랐다. 1억년 이상을 묵은 영물답게 학습능력이 경이적이다.
“오호, 사랑과 정의라! 선재 선재, 불기(佛器)로다. 깜둥아, 내 너를 공공(空空)으로 부를 것이니라.”
대우선사가 무릎을 탁 치고 즉석에서 법명을 내렸다. 이로써 깜둥이는 인간으로 인정받았다.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공공이 마스터를 뵙습니다.”
레오빠 디망쉬, 깜둥이가 머리를 조아렸다. 드디어 살았다. 더해서 최강의 인간으로부터 이름까지 얻었다.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오냐, 내 기꺼이 너의 메마른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리라.”
대우선사가 깜둥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헐!”
무쌍은 사부의 이중성에 학을 뗐다. 천생산이 무너지라고 두들길 때는 언제고, 저 봄바람 같은 온화함은 뭐란 말인가. 깜둥이 저놈도 그렇다. 언제 사부를 봤다고 고양이처럼 알랑거린단 말인가. 뒈지도록 얻어터진 게 은혜라면 두 번만 은혜를 받았으면 원자 단위로 분해될 판이다.
“너는 짐승의 모습으로 지내려느냐 인간의 모습으로 지내려느냐?”
“마스터 공공의 본성은 흑표입니다. 손상된 신체를 복구하고, 소실된 에너지를 보충하려면 본질인 흑표의 형태를 취해야 합니다.”
“어쩐다? 끌끌끌!”
대우선사가 혀를 찼다. 황소만 한 흑표범이 경내에 어슬렁거리면 말이 퍼지고, 번잡해질 염려가 있다. 암자가 궁벽한 위치에 있지만, 찾아오는 신도가 있고 등산객이 있다.
스스스스- 깜둥이가 대우선사의 고민을 알아차린 듯 형태를 바꾸었다. 레오빠 디망쉬가 사라지고 살쾡이만 한 커다란 고양이가 그 자리에 남았다. 깜둥이는 분자를 재배열하지 않고, 광결정 조작과 광학미체를 응용해서 착시를 일으켰다.
“흠, 일종의 장안술이구나!”
대우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안통에 비친 깜둥이는 여전히 흑표다.
그렇게 깜둥이의 암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과는 쌈디와 다르지 않았다.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쌈디는 무지막지하게 밥을 퍼먹었지만, 깜둥이는 밥을 축내지 않았다.
깜둥이는 밥값 대신에 맷값을 해야 했다. 대우선사가 인간을 만든다는 핑계로 날마다 관음장과 고장술로 환혼구타술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깜둥이는 얻어맞은 대가로 온갖 울력을 감당하는 기막힌 신세가 되었다.
대우선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첫째는 강도 높은 울력과 매서운 불법 강론, 둘째는 환혼구타술이었다. 대우선사는 깜둥이의 망가진 신체를 복구하는 방편으로 환혼구타술을 시전했다. 깜둥이의 영혼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참지 못해서 흘리는 눈물로 촉촉이 젖었다.
무쌍에게 의발을 물려줄 수 없게 된 대우선사는 쌈디와 깜둥이를 기명 제자 후보로 낙점했다. 깜둥이가 쌈디처럼 혹독한 절간 생활을 하게 된 이유다.
인간 아닌 존재를 기명 제자로 두어야 하는 대우선사의 입장도 딱했다. 궁여지책의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깜둥이가 대우선사에게 꼼짝 못 하는 이유는 강자에게 복종하는 동물의 본성도 있지만, 특이한 바이러스 포비아 때문이었다. 깜둥이는 공간 이동 실패와 변신 실패 시 세포에 끼어든 기를 바이러스로 착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