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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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야마나시 콜렉션 1
황혼의 세기 콘크레투스의 역사는 비루스(작은 것)와의 싸움으로 점철되었다. 콘크레투스는 발달한 과학에 힘입어 인위적인 무균 환경에서 생활했다.
바이러스는 작다. 덩치 큰 광견병 바이러스도 0.1 마이크로에 불과하다. 종류에 따라서는 0.001 마이크로에 불과한 종류도 수없이 많다. 완벽한 차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숙주 세포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존재다. 숙주의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바이러스는 오히려 소수다. 대부분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거나, 면역 저항성을 길러준다. 세포의 구성원으로 정착하는 경우도 있다.
역설적으로 무균 환경이 면역 능력을 지속해서 떨어뜨렸다. 면역체계가 무너진 콘크레투스는 평범한 무독성 바이러스에도 무력해졌다.
콘크레투스는 행성 차원에서 세균과 바이러스 박멸 프로젝트를 수백만 년간 가동했다. 끊임없이 공격당한 바이러스는 필사적으로 변이했다. 형질을 변경하고 단순화하고 크기를 줄였다. 콘크레투스와 바이러스의 대결은 결국 바이러스의 승리로 끝났다. 행성 차원의 지각변동은 콘크레투스 멸종을 약간 앞당겼을 뿐이다.
비세포 생물과 세포 생물의 대결은 비세포 생물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도 호모 콘크레투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베르겐 대학의 외이빈 베르그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해수 1cc에 들어있는 바이러스의 숫자가 2억 5,000만 개였다. 실험치를 근거로 지구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를 한 줄로 이으면 2억 광년이 된다.
지구는 세포 생물이 비세포 생물의 터전을 빌려서 살아가는 행성인 셈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생하는 쪽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이 바이러스의 니치에 침범했다고 봐야 한다.
콘크레투스는 곧 아드라스다. 바이러스 포비아는 깜둥이도 다를 바 없었다. 분자 생물의 특성상 바이러스의 공격을 피할 길이 없었다. 세포의 분자 배열에 이상이 생기면 생체 발전기가 망가진다. 에너지를 얻지 못한 아드라스는 서서히 죽어간다.
깜둥이는 지저 세계에서 무쌍의 피를 마시고, 일 년간 지저 세계의 수직 동굴을 오르내리며 바이러스 내성을 키웠다. 이미 지상의 바이러스에 적응했지만 겁먹은 깜둥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르면 독박쓰고 호갱이 되는 법이다. 잔뜩 겁먹은 깜둥이는 수련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을 착취하고 무지막지한 구타를 감당해야 했다.
천생산에 표범처럼 생긴 크고 아름다운 고양이가 산다는 소문이 근동에 퍼졌다. 고양이가 장작 무더기를 져 나른다는 둥, 도끼를 휘두른다는 둥, 밭을 간다는 둥, 티브이 안테나를 잡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는 둥, 달을 쳐다보며 슬프게 운다는 둥, 온갖 소문이 퍼졌지만, 그냥 소문으로 끝났다. 아무도 믿지 않는 소문은 그냥 소문일 뿐이다.
무쌍은 하동댁에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요아 하우스가 흔들릴 정도로 에델과 붕가붕가를 치른 몸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진순의 얼굴 보기가 민망했다.
진순의 일편단심을 익히 알고 있는 그로선 난감한 노릇이었다. 뒤늦게 들통 나면 홍역을 단단히 치르겠지만, 당장의 민망함을 피하고 싶었다. 천하의 블랙맘바도 한국땅을 밟는 순간 고지식하고 소심한 무쌍으로 돌아갔다.
티브이 안테나를 잡고 용쓰는 고양이의 전설은 사실이었다. 깜둥이가 울력을 도맡는 바람에 무쌍은 할 일이 없었다. 사부의 삼시 세끼를 준비하거나, 영고석에 올라 명상에 잠기거나, 전공 서적을 뒤적이거나, 심지어 종일 안골에서 가재를 잡으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렇게 한가로운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천생산 암자의 하루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새벽 3시 30분에 올리는 아침 예불이 하루의 시작이고, 저녁 8시에 108배를 끝내면 하루의 끝이다.
조공(아침 식사), 사시(점심), 약석(저녁 식사)은 대우선사와 무쌍만의 일과다. 공양 시간이면 깜둥이는 영고석에 올라 불경을 암송하거나 생체 발전기를 가동해서 에너지를 보충했다.
깜둥이가 생체 발전기를 가동하면 암자 주변의 기온이 서늘할 정도로 뚝 떨어졌다. 암자 주변의 나무는 태양의 복사열을 깜둥이에게 뺏기고 시들시들 말랐다. 수십 미터 반경내의 곤충이 떼거리로 동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멀쩡한 생령을 해친 죄로 매타작을 당했음은 불문가지다.
“어허, 오늘은 흑임자 죽이 유난히 까끄랍구나.”
대우선사가 발우를 닦아낸 물김치 한 조각을 날름 입에 넣고 상을 밀어냈다. 대우선사는 큰 발우에 담긴 흑임자 죽을 꽁지 발우(찬을 담는 제일 작은 그릇)에 덜어서 병아리 눈물만큼 먹고 공양을 끝냈다.
“사부님, 조금 더 드시지요.”
무쌍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청했다.
“무아야, 이제 갈 때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곡기가 부담스럽구나.”
“헉, 안됩니다.”
무쌍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놈아, 없는 애 떨어지겠다. 내가 니놈 새끼를 보겠다고 저승사자와 밤마다 맞짱뜨는 거 알제?”
“그러셨어요? 그럼 제자가 새끼를 까면 안 되겠네요. 사손을 보면 성불하실 거죠?”
무쌍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시늉을 했다.
“떽, 성불은 무슨 얼어 죽을 성불이냐. 백을 천지에 흩고 육신은 땅으로 돌리는 거지. 어젯밤에 감재사자 녀석과 협상해서 말미를 이년 얻었느니라. 이년 내에 사손이 태어나면 사손이 성년이 되는 날에 직부사자를 따라나서고, 이년 안에 사손을 보지 못하면 이 년째 되는날 두말않고 직부사자를 따라나서기로 했느니라.”
‘헐, 이런 행패가!’
무쌍은 기가 막혔다. 사부의 말인즉슨 2년 안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라는 억지다. 결국, 본인의 뜻에 따라 일년 이내에 결혼하면 20년 뒤에 성불하고 그렇지 않으면 2년만 살고 성불하겠다는 협박이다.
“사부님,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염라왕이나 풍도왕과 협상했다면 몰라도 감재사자든 직부사자든 사부님 콧방귀 한 번이면 날아갈 존재인데 무슨 협상입니까. 구라치지 마시소.”
“어허, 모르는 소리! 감재사자, 직부사자, 강림차사 셋은 직급이 낮아도 염라왕의 심복이다. 오죽하면 이들을 염라왕의 문고리 3인방이라 부르겠느냐. 노납도 문고리 3인방을 통해야 염라왕과 소통할 수 있느니라.”
“헐, 근래 죽어야 할 놈은 떵떵거리며 살고, 엉뚱한 사람만 저승사자에게 잡혀가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구마요. 저승과 이승은 둘이자 하나인데 물이 흐려져서 큰일이군요.”
“흠흠, 그건 염라왕의 사정이고, 니놈 일이나 아귀를 맺자꾸나. 한번 물꼬를 텄는데 두 번 세 번은 못 하겠느냐. 과부도 한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팔달문이 아니더냐. 두말할 것 없이 일단 진순이를 꽉 눌러라.”
대우선사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비죽이 웃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깜짝 놀란 무쌍이 반문했다.
“흠, 붕가붕가를 하긴 했구나. 루드리 에델이라는 영국 귀족 아가씨겠지?”
“어이구!”
넘겨짚기에 당한 무쌍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이놈아, 노납이 열반송을 불러야 장가를 가려느냐? 솔직히 말해서 니놈의 바탕은 달마대사를 찜쪄먹을 불기여. 요상한 인연으로 엇나간 니놈을 생각하면 속이 썩는다 썩어. 고래로 용이 용을 낳고,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는 법이다. 니놈의 자식에게 내 진전을 남기려고 왕산을 미루는 사부가 불쌍하지도 않으냐.”
대우선사가 장난기를 버리고 하소연했다. 무쌍은 쭈글쭈글한 스승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백 년 묵은 고목나무나 진배없다.
레코드판 나선 홈 속에 애절한 유행가 가사가 숨어있듯이 얼기설기 주름마다 제자를 사랑하는 자애로움이 깃들어있다. 울컥한 무쌍이 벌떡 일어나서 절하고 아뢰었다.
“사부님, 철없이 군 제자를 용서하십시오. 이른 시일 내에 손자를 까서 사부님 슬하에 맡기겠습니다.”
대우선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선재 선재로다. 나무아미타불!”
‘요놈아, 내가 흘린 밥알이 니놈이 먹은 공양보다 열 배는 많으니라.’
슬쩍 외면한 대우선사의 얼굴이 득의함으로 가득 찼다.
“가자, 너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대우선사가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탕 열어젖혔다.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하던 노친네의 근력이 장정을 능가했다. 스스스- 깜둥이가 땅에서 솟아난 듯이 나타났다.
깜둥이는 콧등에 별이 그려진 흰 고무신을 댓돌 위에 올려놓고 공손히 시립했다. 스님들은 여름이면 흰 고무신을 신고 겨울이면 털신을 신는다. 신발을 구분하려고 신발 콧등에 별, 달, 해 등을 그려넣는다. 숫자나 법명은 구분 의식을 저어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딱- 명아주 지팡이가 깜둥이 정수리에 떨어졌다.
“이놈 공공아, 복중(伏中)에 고무신을 신고 운전하면 클러치를 밟을 때마다 땀에 젖은 발이 미끄러진단 말이다. 무아가 사온 샌들은 아꼈다가 국 끓여 먹으려느냐.”
대우선사가 필요 이상으로 버럭 했다. 깜둥이로서는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사부가 운전할지, 탁발 나갈지 어찌 안단 말인가.
깜둥이가 뒷발로 일어서서 앞발 두 개를 번쩍 들었다. 발음이 쉽지 않은 구강구조에 불구하고 절절한 찬양이 튀어나왔다.
“마스터, 아니 사부님이여 영원하라! 덕이 하늘에 닿고 신통이 인세를 덮은 우리 사부님, 날마다 우매한 제자를 일깨워주시고 가르쳐주시니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얼굴이 뜨끈할 찬양을 쏟아놓고 즉시 샌들을 대령했다. 상식과 도를 넘어선 행태다. 천하의 깜둥이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매 앞에 장사 없다. 대우선사는 은근히 자존망대한 깜둥이를 무지막지한 매로 다스렸다. 매라고 말하지만, 집채 크기의 바위와 아름드리 참나무, 몸통 굵기의 청동 당간지주가 물리력 투사 재료다. 게다가 기를 투사해서 방어 기제를 무력화했다. 깜둥이로서는 당할 재간이 없다.
지성체가 감당하지 못할 폭행(학대)을 당하면 단계적인 반응을 보인다. 첫째 단계는 반항과 회피다.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하고, 지시를 듣지 않고, 덤벼들고, 도망간다. 두 번째 단계는 순응이다. 포기하고 묵묵히 지시를 이행한다. 세 번째 단계는 감사의 단계다. 얻어맞고 혹사당해도 은혜에 감사한다.
네 번째 단계는 찬양의 단계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학대자를 찬양한다. 배급받은 식은밥 한 덩이를 들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황당한 짓거리를 한다.
마지막 단계는 무심의 단계다. 때리든 학대하든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학대자도 본인도 인식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단계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도통한 선승이나 도인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의 길은 험난했다. 깜둥이는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통해서 인간의 길을 걸어 도(道)의 입문 단계라는 4단계에 진입했다. 무쌍은 망가진 깜둥이의 모습에 헛웃음만 나왔다. 사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친구가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
대우선사는 대뜸 피아트 판다의 시동을 걸었다. 무쌍이 행선지를 물어도 웃기만 했다. 어리벙벙한 무쌍과 말 잘 듣는 깜둥이를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냅다 달렸다.
판다는 북대구 나들목에서 시내로 접어들었다. 금호강을 건너서 909번 국도를 거쳐 불로동 고분군 입구에서 멈추었다. 대우선사는 휘적휘적 고샅을 올라가서 마당이 넓은 전형적인 농가 주택으로 쑥 들어갔다.
스무 칸쯤 되어 보이는 기역 기와집이다. 퇴락한 기와지붕에 잡초가 무성하고, 마당에도 풀이 수북했다. 오래도록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이다.
“무아야, 네가 살 집이다.”
“넹?”
무쌍의 눈이 커졌다. 이거야 도깨비에게 홀려서 무논에 끌려 들어간 술 취한 농투산이 꼴이다.
“사부님이 사셨습니까?”
“당연하지. 사고무친한 네놈에게 사부 말고 집사줄 친지가 있느냐? 두억시니 같은 제자 놈과 좁은 절간에 함께 살려니 콧구멍이 답답했느니라. 마침 듬직한 불목하니가 생긴 참에 엉덩이를 걷어차서 내보내련다.”
“사부님이 무슨 돈으로?”
무쌍은 의아했다. 쌀 한 자루도 암자에 저장하는 법이 없는 사부다. 자리만 비우면 공양간 동솥에 거미줄이 쳐지는 판에 돈이 있을 턱이 없다.
“헐헐헐, 네놈이 고기 사 먹으라고 열심히 돈을 보내주지 않았느냐. 옜다, 이제 필요 없구나.”
대우선사가 바랑을 뒤져서 통장을 꺼내 던졌다. 무쌍의 눈이 커졌다. 매달 사부에게 보내드린 생활비 통장이다. 출금은 단 두 번이었다. 42만 원은 자신의 입학금, 2백만 원은 농가 구입대금이다. 나머지 2백 8십만원이 고스란히 잔고로 남아있다.
“사부님, 이기 멈니까! 돈이라면 제자가 얼마든지 드릴 텐데……. 공양도 안하시고~”
울컥한 무쌍이 말을 잇지 못했다. 사부는 4년간 매달 생활비로 보내드린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가 제자를 위해서만 지출했다.
“시끄럽고! 늙은 땡중이 돈 쓸 일이 무에 있겠느냐. 돈이 다 같은 돈이 아니니라. 제자가 피 흘려 번 돈을 내 어찌 허투루 쓸 수 있겠느냐. 니놈의 잔소리 듣기 싫어서 집을 샀으니 나머지는 니놈이 알아서 하거라. 헐헐헐!”
“사부님!”
“너무 감격하지 마라. 늙은 중의 쉰내가 넌더리나지도 않더냐. 이 땅은 금환낙지(金環落地)다. 내 탁발 중에 니놈이 살만한 집을 눈여겨보고 다녔느니라.”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땅이라고요? 사부님도 풍수를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