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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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야마나시 콜렉션 3
한국군 직업 군인들의 대우와 급료는 비참한 수준이었다. 영관급과 장성급은 밥 먹고 살만했을지 모르지만, 직접적인 전력인 위관급과 하사관의 처우는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했다. 짬밥 이십 년의 상사 연봉이 신입 행원만도 못하고, 박봉에다 근무지가 자주 바뀌는 군인의 세간은 변변한 농짝하나 없었다.
징병 입대한 병사의 상태는 언급하기도 눈물겹다. 전장의 관록이 역력한 수통에는 Made in USA 1945. 5. 15와 대검으로 새긴 David. junior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군화는 새끼발가락이 삐져나오는 갑피와 접착제가 떨어진 창을 철사로 얼기설기 얽어서 신는 형편이다. 월남전에 사용된 플라스틱 식판은 허옇게 보풀이 일어나고 퀴퀴한 악취까지 났다.
짬밥도 슬프다. 5년 보관 후 군에 보급되는 통일 쌀은 퍼석하고 구릿한 냄새가 난다. 색깔도 누리끼리하다. 국은 무와 근대를 썰어 넣은 소금국이 대종을 이룬다. 간혹 이면수나 양미리국이 나오고 주말엔 돼지비계 기름이 둥둥 뜬 고깃국이 나온다. 이등병은 돼지비계 국이 나온 날이면 빨래비누로 식판을 닦느라 근육통이 생긴다.
차라리 훈련을 나가면 신관이 편하다. 내무 생활은 공포와 긴장의 연속이다.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은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한다. 월급은 더욱 눈물 난다. 30개월 만기 제대를 앞둔 병장의 월급이 4,700원이다, 소설책 두 권사고 새우깡 한 봉지 사 먹으면 딱 맞다.
애국심은 자부심과 긍지에서 나온다. 상대적 박탈감과 생활고에 찌든 위관급과 하사관, 열악한 의식주와 학대받는 병사가 군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까?
쥐꼬리 봉급에 생명수당 몇 푼을 받아 입에 풀칠하는 군인이 애국심에 불탈까? 천만의 말씀이다. 전투력의 핵심인 위관급과 하사관은 매너리즘에 빠지고, 틈만 나면 군용품을 빼돌린다.
물론 비리의 온상은 애국 애족을 부르짖는 영관급과 장성이다. 이들은 민간 납품업자와 결탁해서 거액의 뇌물을 챙기고, 군용품의 질을 떨어뜨린다. 심지어 병사들이 먹을 부식까지 잘라 먹는다.
국방 비리가 만연하지만, 외부에 노출되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폐쇄적인 조직의 특징인 서로 봐주기 때문이다. 다 같이 썩었으니 발본색원은커녕 숨기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국익과 애국 애족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동안 부정부패로 인한 손실 비용은 합리적 처우개선 비용을 넘어서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비를 늘려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무쌍의 개인적인 소원 세 가지는 행랑채 딸린 기와집에서 고깃국에 밥 말아 먹기, 넓은 사랑방에 책을 일만 권 채워놓고 뒹굴 거리며 읽기, 뒤뜰에 과수원을 만들어서 복숭아, 사과, 배, 감, 대추, 포도를 가꾸기다. 전부 한옥과 관련된 소원이다.
문짝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백부댁 행랑방에서 밤마다 벽틈으로 기어들어온 빈대와 벼룩에 뜯긴 트라우마가 너무나 컸다.
사실 한옥도 주방과 화장실 적절히 개수하고 열 손실만 잡으면 그리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건강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또한, 이웃과 쉽게 소통할 수 있어 정신적으로도 좋다. 한옥이 화재에 취약하지만, 사부가 화재는 걱정 없다고 했다.
7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아파트 광풍은 서울과 대도시를 콘크리트로 뒤덮었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편리한 아파트에 열광했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순식간에 주거 문화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무쌍은 콘크리트 닭장에 별 관심이 없었다. 벌집 같은 아파트를 볼 때마다 상한이네 양계장 케이지가 생각났다. 좁디좁은 공간에 갇힌 닭은 두 가지 활동만 할 수 있다. 먹이를 먹고 달걀을 낳는 일이다.
인간이 닭처럼 살 수는 없다. 또한, 사부님이 말씀한 영기풍수론에 의하면 아파트는 최악이다. 콘크리트로 단절되고 허공에 붕 뜬 상태에서 지기와 접촉할 수도 없고, 신체에 유익한 원소를 받아들일 수도 없다.
무쌍은 흔적만 남은 고분 기단석에 앉아서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고샅을 중심으로 왼쪽엔 시골 농가가 이십여 채 들어서 있고 오른쪽엔 대지 조성이 끝난 자신의 집터만 벌건 속살을 드러냈다.
국제 규격 축구장보다 36평이 더 넓은 2,200평 대지는 넓긴 오질 나게 넓었다. 있는 놈이 돈 지랄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넓었다.
“어무이, 저기 진짜 축구장입니다. 장가 놈들 종갓집은 쨉도 안 되지요. 우리나라에서 젤로 큰 집을 지어드리겠심더. 장 씨에게 마음껏 자랑하시소. 뒤뜰에 넓은 복숭아밭도 만들겠심더. 그때처럼 잘 익은 복숭아를 손에 들고 민망한 웃음 지으시소. 어무이 엉덩이처럼 이쁘다고 놀릴 아부지가 없네예. 어무이가 아들 엉덩짝이라고 놀리시소.”
야릇한 모양의 복숭아를 들고 장난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쌍아, 배고프제. 퍼뜩 먹거라.]정이 듬뿍 실린 환청이 들렸다. 볼 위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사부님, 사부님이 때가 가까웠다고 하셨지예. 제자는 사부님만 믿습니데이. 구라 치마 주먹질을 할 낍니더. 제자 주먹에 눈텡이 물들고 싶지 않으마 단디 하이소,”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자애로운 어머님 손에 있는 실은)
遊子身上衣(유자신상의, 떠날 자식 저고리를 손보는 손길)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바늘 자국이 이리도 촘촘하심은)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늦게 돌아올 자식 걱정이시네)
誰言寸草心(수언촌초심, 한치 풀잎 같은 보잘것없는 마음이)
報得三春暉(보득삼춘휘, 봄볕 같은 정을 어찌 보답하리오.)
호롱불 켜놓고 밤늦게 양말 깁던 어머니, 잠 깨서 얼굴 찡그리면 꼭 안아주던 부드러운 가슴이 철판보다 단단한 가슴을 찢었다. 맹교의 유자음(遊子吟)을 읊는 무쌍의 볼에 물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무쌍은 대지 조성이 끝나자 곧바로 대목장을 불러서 개량 한옥 견적을 뽑고 공사에 들어갔다. 시골 농가의 집터는 대지로 등록된 경우가 별로 없다. 대부분 농지나 임야다.
7,000평 중 임야와 농지 5,000평을 후원으로 돌리고, 전면의 2,000평만 대지로 합필했다. 대지 2,000평에 건폐율 40%와 용적률 80%를 적용하면 바닥면적 800평, 건축면적 1,600평의 한옥을 지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건축할 생각은 없었다. 한옥은 불교적 공(空)과 도교적 허(虛)사상이 건축 베이스다. 웅장하고 화려하기보다 소박한 채 양식이 대종을 이룬다. 채와 채의 공간이 한옥의 특징이자 여유로움이다.
건축은 대목장 다섯이 협력해서 도면을 만들고 공사를 진행했다. 각 채의 방은 독립적으로 배치하되 툇마루로 관통해서 통합되었다. 건물은 모두 기단에 올리고 자재는 자연 재료만 사용했다. 쇠못도 불가피한 공정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무쌍은 흐뭇한 눈으로 바삐 돌아가는 현장을 바라보았다. 돈의 힘은 위대했다. 장비와 인부가 벌떼처럼 달라붙은 현장은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오후가 오전과 달랐다.
“어무이, 묘연거(杳然去, 이백의 산중문답에 나오는 별유천지)를 만들어서 선녀를 데려다 놓을까요? 아방궁을 만들어서 별채마다 오대양·육대주의 미인을 데려다 놓을까요? 잡놈이라고요? 사부님은 아니라고 하던디요. 열 여자 마다하지 말고 꽉꽉 눌러서 우월한 유전자를 팍팍 뿌리라고 하던디요. 손자를 한 다스 만들까요. 손녀를 한 접 만들까요. 이것저것 구분 말고 쑹덩쑹덩 만들까요. 묘연거~ 묘연거~별유천지 묘연거로다. 응! 묘연거?”
객쩍은 소리를 흥얼거리던 무쌍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묘연거는 대구에서 유명한 곰탕집이다. 묘연거가 떠오르자 대덕 식당이 연상되고 인애원이 따라왔다.
앞산 안지랑이의 인애원을 매입하고는 까맣게 잊었다. 항공기에 실어서 옴부티에게 보낸 안배태, 아니 쪽발이 아베 일당과 양아치 열다섯 명도 까맣게 잊었다. 인애원 지하의 야마나시 한조 콜렉션을 빼내려고 원생 42명을 산채로 태우려던 악독한 놈들을 잊어버리다니!
“망할 놈의 세혼술 때문에 전두측두치매에 걸렸나?”
무쌍은 은근히 걱정되었다. 전두측두치매 증상은 인지기능저하지만, 약물 과다 복용으로 나타난 증상은 해리성 기억상실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약물은 아니지만 두 뺨이나 되는 은침이 뇌를 수십 번 헤집었다. 에피듐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북망산에 갔을 것이다.
배금장군이라 불린 야마나시 한조 콜렉션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왕실 옥새, 서화, 서적 등이 수천 점이고 국보급 문화재도 백여 점이 넘는다고 했다.
이투리 정글 출장 전에 사들인 인애원은 텅 비어있을 것이다. 범우 스님은 어린아이들을 귀기 서린 공간에 방치할 분이 아니다.
“국내에 남아있는 골동품보다 일본에 건너건 골동품이 더 많다는데…….”
무쌍은 신외지물에 별로 관심 없다. 지저 세계에서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다이아몬드도 거들떠보지 않았었다. 욕심은 없지만, 문화재를 언제까지 이공간에 방치할 수는 없다. 문제는 결계다. 자신은 결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부웅- 자동차 엔진음이 들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무쌍이 고샅을 내려다보았다. 택시에서 내린 한복 차림의 여자 둘이 고샅을 올라왔다.
“얼래, 선우방나 모녀가 웬일이래?”
공간지각력은 겉모양이 아니라 고유의 뇌파를 읽는다. 한번 본 인물은 절대 착오하지 않는다. 맑지도 탁하지도 않은 기운은 진짜배기 무속인의 기운이다. 서늘한 기운은 선우방나, 거친 기운은 선우마고다.
“대신이시여, 강녕하셨사옵니까. 소녀가 인사 올립니다.”
삼십 대로 보이는 선우방나가 이마에 송골송골 한 땀을 닦을 틈도 없이 땅바닥에 털썩 엎드렸다. 팔십 먹은 할머니가 넉살도 좋았다.
“천세 천세 천천세! 은인이신 신인을 뵙습니다.”
환갑은 넘어 보이는 선우마고가 한 걸음 뒤에서 대례를 올렸다. 모녀간임에도 사제의 예가 칼같이 엄했다.
“퍼뜩 일 나라. 고운 옷 베리거러 땅바닥에는 와 엎드리고 법석이고.”
무쌍이 손사래를 쳤다.
“대신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나이가 뒤바뀐 두 무당이 옷자락을 수습하고 시립했다.
“아버지는 잘 모시고 있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딸년이 매일매일 축원하고 유택을 규혈술(窺穴術)로 확인하고 있사옵니다. 평안히 계시니 염려 놓으시옵소서.”
마고가 허리를 꺾어지라 숙였다.
“고맙군. 여기는 어쩐 일인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뻘인 두 사람의 극경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무당의 세계는 몸주 신의 등급에 따른 상하가 엄격하다.
“한 달 전에 전우치 조사께서 강림하셨사옵니다.”
“강림! 포제션인가?”
강림과 빙의는 구분 없이 사용되지만, 차이가 있다. 강림은 신에게 신체를 강탈당한 상태, 빙의는 잡귀에게 신체의 통제권만 잃은 상태다. 포제션은 강림을 뜻하며 숙주의 자아는 신의 의지와 함께한다.
“그러하옵니다. 조사님께서 소녀를 끌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대양을 건너고 산맥을 넘었사옵니다. 모래바람이 천지를 뒤덮는 거대한 사막, 기기묘묘한 바위와 깊은 계곡이 있는 고원이 나타났습니다.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상서로운 기운이 어린 푸른 땅덩이가 보였습니다. 곳곳에서 지하수가 솟고, 수목이 울창한 복지였습니다.”
“헐, 그런 일이!”
“갑자기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습니다. 거대한 영혼이 나타나서 맨발로 호수를 건넜습니다. 사부대중 수만 명이 엎드려서 [뚜바이부르파여 영원하라!]를 외쳤습니다. 언령에 담긴 진심과 굳건한 믿음에 놀란 조사님이 영력을 잃고 추락하셨습니다. 깨어난 소녀는 거대한 영혼이 대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그놈의 영원하라에 경기 들겠군. 전우치가 생전에 대궐에 나타나서 분탕질 쳤다더니만 먹을 것도 없는 사하라 사막까지 와서 껄떡대고 지랄이여.’
무쌍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소녀는 참오 끝에 조사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조사님은 소녀가 대신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이여?’
무쌍이 멀뚱멀뚱 선우방나를 쳐다보았다.
“소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무당은 몸주 신의 명령을 거역하면 영혼이 파괴됩니다. 통촉해 주시옵소서!”
선우방나 모녀가 방아깨비처럼 허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
“허허, 이거 참! 내가 전우치를 쫓아내 주랴?”
무쌍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헉, 전우치 님은 소녀의 선조이십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선우방나 모녀가 화들짝 놀랐다.
“그대가 영대를 열어서 본 세계는 사하라 사막이다. 녹음이 우거진 땅은 내가 건국한 땅으로 노바토피아라 불린다. 그곳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거친 땅이다. 세상에서 내쳐진 온갖 민족이 뒤섞여서 삶의 터전을 개척하는 땅이다. 그대는 평안을 버리고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수하겠는가?”
“오오, 위대한 신인이여! 소녀는 기꺼이 따르겠사옵니다.”
선우방나가 허물어지듯 엎드렸다.
“그대를 내 가족으로 인정하노라. 그대와 마고는 나의 신물을 받아라.”
“천세 천세 천천세!”
선우방나 모녀가 무릎을 꿇었다.
사기도 치는 놈이 치고 연기도 하면 는다고 했다. 무쌍은 사이비 교주의 틀이 잡혔다. 어쩌랴. 무속엔 무속의 길이 있다. 국내에서 어렵다면 아프리카 땅에 한국의 무속도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소위 문화 수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