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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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야마나시 콜렉션 4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 훗날 한류라 불리는 대중문화 수출의 시작은 선우방나 모녀의 굿거리장단과 강신무, 작두타기였다. 특히 부두교와 토착 샤머니즘 추종자들이 열광했다.
각양각색의 인종과 민족이 화려한 성줏굿 풀이 한마당에 입이 쩍 벌어지고, 작두타기 한 방에 눈알이 튀어나왔다. 굿판은 국민 축제장으로 바뀌고, 굿거리장단은 국민 음악이 되었다. 한류의 씨앗은 1990년 후반의 드라마 수출이 아니라 1980년대 굿판 수출이었다.
무쌍이 백 팩에서 사르코수쿠스 이빨을 꺼냈다. 사부께 선물하려고 챙겨왔지만, 정작 사부는 시큰둥했다. 이물(異物)에 의지하는 덜떨어진 놈이라는 둥, 겉멋만 잔뜩 들었다는 둥, 욕만 실컷 들었다.
“헉, 그것은 아득한 상고 시대 교룡의 어금니!”
“오오, 어찌 저런 귀물이!”
경악한 무당 모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진짜 무당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한눈에 사르코수쿠스 이빨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란 말이다.’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두웅- 쓰쓰쓰- 공간지각력과 공진파가 발동되었다. 빠가각- 하얀 뼛가루가 휘날리고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거대한 이빨은 순식간에 날렵한 한 자루 단검의 형상을 갖추었다. 염력을 곁들이자 3D 프린터가 따로없다.
선우방나 모녀는 멍하니 기상천외한 야검술을 바라보았다. 휘이잉- 한줄기 미풍이 비산 뼛가루를 쓸어갔다. 무쌍의 손에 들린 유백색의 노바가 요요로운 빛을 뿜었다. 보는 사람이 꺼벅 죽을 수밖에 없는 퍼포먼스다.
“선우방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만인을 섬길 준비가 되었는가?”
묵직한 바리톤 음성이 둥 울렸다. 현란한 퍼포먼스에 이어서 심혼을 흔드는 간섭장이다. 대우선사 수준에서 겉멋만 든 덜떨어진 놈이라는 평을 할 만했다.
“선우방나는 대신님의 뜻을 받들 준비가 되었사옵니다.”
선우방나가 목이 터져라 복명했다.
“이 칼의 이름은 노바, 진신은 상고시대 교룡의 이빨이다. 노바는 나 동방불패의 가족임을 증명하는 신물이다.”
무쌍이 노바를 손에서 놓았다. 노바가 느릿하니 허공을 가로질러 선우방나의 손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오오, 이런 엄청난 신기라니!”
노바를 손에 쥐고 공수 합장하는 선우방나의 몸에서 서기가 뿜어졌다. 노바는 일반인에게 희대의 컬렉션일 뿐이지만, 선우방나와 같은 영매술사는 꿈에나 그리는 천상의 보물이다.
신기(神器)는 영매술사의 영통(靈通) 능력을 증폭한다. 오래 묵은 물건일수록, 자연기를 많이 함축한 물건일수록 효험이 좋다. 같은 신기라도 무신의 등급에 따라 그 효험은 천양지차다. 최고위급 무신(巫神)인 옥황상제의 신기는 하급 장군신의 신기보다 강력한 신력을 부여한다.
아수라는 등급외 대신이다. 사르코수쿠스는 일억 년 전의 교룡이다. 노바는 인세에 다시없을 강력한 신물일 수밖에 없었다.
“오오, 보인다. 보인다!”
선우방나가 길길이 날뛰었다. 무엇이 보이는지 모르지만, 무사가 신검을 얻은 이상으로 흥분했다.
“선우마고, 그대는 툇마루 아래 놓인 섬돌이 되고, 개울에 놓인 징검돌이 되겠느냐?”
“예, 소녀의 몸주신에 걸고 맹세합니다. 마고는 기꺼이 가장 낮은 곳에서 대신님의 디딤돌이 되고 칼이 되고 망치가 되겠사옵니다.”
“나 동방불패의 신물을 받아라.”
“오오, 대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노바를 받는 순간 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마고의 영력이 노바에 부여된 무쌍의 영력과 일억 년이라는 세월의 무게에 감응했다. 마고가 놓칠세라 노바를 꽉 움켜잡았다. 드드드- 눈동자가 뒤집히고 학질 걸린 듯 부들거렸다. 일순간에 트랜스에 빠져든 상태다.
따다다닥- 마고의 신체에서 콩 튀는 소리가 울렸다. 구부정하던 허리가 꼿꼿이 펴졌다. 정맥이 툭툭 불거진 손등이 매끈하게 변했다. 백발이 갈색으로 다시 흑발로 변했다. 누런 이빨이 하얗게 변하고 거무죽죽하던 입술이 붉어졌다. 굵은 주름이 사라지고 얼굴이 팽팽해졌다. 마고는 순식간에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40대 아줌마로 변했다.
“허, 영력이 각성의 턱에 차 있었구먼!”
무쌍이 감탄했다. 물이 가득한 컵에 물 한방만 떨어져도 넘친다. 노바가 방아쇠 역할을 했다. 노화는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의 세대교체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270종 60조 개의 세포로 형성된 유기물이다. 인간이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는 바탕에 줄기세포가 있다.
줄기세포가 끊임없이 분화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고 오래된 세포는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각 기관의 형체가 유지되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세포의 분화 속도가 유지된다면 인간은 노화로부터 해방된다.
영원은 떨어져 나간 다리를 재생한다. 도마뱀은 꼬리를 재생한다. 플라나리아를 자르면 몸통은 머리를 재생하고, 머리는 몸통을 재생한다. 이러한 재생 능력은 만능줄기세포가 계속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쇠퇴한 만능줄기세포를 배아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폭발적인 세포 분화를 거쳐 노화를 되돌릴 수 있다.
무예 고수가 경지에 이르면 신체가 젊어지고, 깨달음을 얻은 도인이 반로환동하고, 영력이 극에 이른 큰 무당이 젊어지는 배경엔 농축된 기와 영력이 있다. 기운 빠진 줄기세포가 재활함으로써 노화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게 된다. 만류귀종이다.
여자에게 젊음보다 더 큰 선물이 있겠는가. 선우마고는 젊어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엑시터시로 돌입했다. 노바를 들고 미친년 널 뛰듯이 훌훌 뛰었다. 날이면 날마다 작두를 타고 굿거리를 하던 몸이니 오죽 잘 뛰겠는가!
선우방나의 두눈에 눈물이 고였다. 딸년의 영력이 미천한 탓에 자식을 먼저 북망산에 보낼 판이었다. 포원이 풀리자 세상이 밝아졌다.
“대신이시여,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염량(炎涼)이 서지 않사옵니다.”
한차례 소동이 끝나자 모녀가 나란히 엎드렸다.
“마음에 두지 마라. 그대 또한 사부대중의 맺힌 원을 풀어주는 무당이 아니던가. 마음에 거리낌 없이 베풀도록 하라. 응무소주 이생기심!”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오, 대가를 생각도 않는 저 모습, 대신이 그냥 대신이 아니로다!’
선우방나는 눈이 부셨다. 영매자와 무속신의 관계는 철저히 주고받는 관계다. 대가 없이 영능력을 빌릴 수 없다. 무속이 개인 기복에 머물고 보편적인 종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열과 성을 다해서 대신님의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그대들은 내 뜻을 받들지 말고, 사부대중의 뜻을 받들라.”
무쌍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듯 대신의 위엄을 유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선우방나가 흠칫했다.
“사부대중은 호랑이와 같고 너구리와 같습니다. 본인의 정성 부족과 업장은 생각지 않고 신령의 영험함을 부정하고 타박합니다. 본인의 부정함으로 인해 신령의 은덕을 입지 못했음에도 무당을 탓하고 신을 원망합니다.”
“선우방나, 그대는 아직도 낮은 곳에 임할 준비가 되지 못했구나. 오죽 답답했으면 무당을 찾아오겠느냐. 다급한 사람, 의지처를 찾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없기 마련이다. 불평불만을 할 수밖에 없다. 너는 사람이 아닌 나무토막이나 바위 덩어리가 굿을 하러 오기를 바라느냐? 역지사지를 우리말로 바꾸면 ‘오죽하면!’ 이다. 종교인이 오만하면 신이 떠난다.
“아!”
선우방나가 가느다란 신음을 뱉고 생각에 잠겼다. 나무토막과 바윗덩이가 굿을 하러 찾아오겠느냐는 말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 선우방나가 허리를 숙였다.
“소녀는 대신님의 수족이 되고 싶사옵니다.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놈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대를 인도하겠나. 무속도 사업에 걸림돌이 많은가 보지?”
“송구하옵니다. 대신님의 후원에 불구하고 지지부진입니다.”
선우방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신께서 무려 십만 프랑이란 거금을 희사했음에도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
“허, 발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지?”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금전을 지원했지만 쉬울 리가 없다. 무속인의 성향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소녀가 물정 모르고 자존망대한 탓입니다. 이 땅에서 무속도(巫俗道)를 일으키기에는 이미 늦은 듯하옵니다. 영매자들은 재물의 노예로 전락했고, 편견에 빠진 사부대중은 무속을 미신으로만 봅니다.”
“무속인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틀에 갇혀있는 무리가 대부분이다. 통합적 세계관을 용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한 걸음을 외면하고 나만의 열 걸음을 고집하는 자들이 어찌 사부대중을 이끌 수 있겠는가!”
“그러하옵니다. 물에 빠진 자에게 썩은 새끼줄을 던지는 처사로 연명하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지은 죄가 있는 선우마고가 슬며시 에미의 등위로 숨었다.
“안타깝군. 굿거리는 공동체에 내재한 질투심을 해소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용광로가 될 수 있을 텐데……. 무속인의 탐욕이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구나.”
“송구합니다. 소녀의 그릇이 부족한 탓입니다. 소녀는 전우치 조사님이 이끄신 대로 새로운 땅에서 무속도를 펼쳐보고 싶사옵니다.”
무쌍이 서늘한 눈으로 선우방나 모녀를 직시했다. 7호 장과 디노가 버티고 있는 노바토피아의 무력은 강고하다. 문제는 어딘가에서 이빨을 갈고 있을 카무게 같은 놈이다. 부두교 호웅간의 주술력은 허구가 아니다. 선우방나 모녀라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
“흠,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어찌 아귀 지옥이겠느냐. 벌써 용화세상이 되었겠지. 노바토피아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 이슬람교, 부두교, 토착 샤머니즘까지 뒤섞인 판테온이다. 나는 종교가 종교에 머무는 한 관여하지 않는다. 무속의 장점은 어울림과 공감이다. 판테온을 통합할 수 있는 동력과 매력이 충분하다. 그대는 거친 땅에서 낯선 이방인들과 함께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기꺼이 따르겠사옵니다.”
“흠, 떠날 준비가 되면 연락하라. 그건 그렇고 이곳은 어쩐 일인가? 내가 이곳에 있다고 전우치가 알려주던가?”
“사조께서 고위 산신이지만 감히 대신의 행사를 엿보지 못합니다. 소녀는 석연찮은 현상을 확인하고자 출장 나왔사옵니다.”
“호오! 그래?”
무쌍은 흥미를 느꼈다. 일가를 이룬 좌도방 술사라면 고분 마을의 흉사에 관심을 가질만했다.
“이 마을은 금환낙지로 예로부터 풍수가와 큰 무당들이 관심을 가졌던 길지입니다. 나라를 이끌 큰 인물이 나고, 국민을 먹여 살릴 천재가 나와야 마땅한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천륜과 인륜을 어긴 짐승 같은 자가 속출하고 마을이 융성하기는커녕 갈수록 퇴락했습니다.”
“오호! 그래서?”
무쌍이 무릎을 탁 쳤다. 역시 영험한 무당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뜻있는 자사들이 방방곡곡에 박힌 쇠말뚝을 찾아서 제거하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쇠말뚝이 아닙니다. 간교한 니혼진 방술사들은 진을 설치해서 이 땅의 풍수혈에서 생기를 뽑아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소녀는 금환낙지에 모인 팔공산의 정기가 어딘가로 전이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혈을 확인차 나왔사옵니다. 대지는 생령의 고향입니다. 땅이 피폐해지면 국민이 고단해지고 국민이 고단하면 나라가 피폐해집니다.”
“훌륭하다. 얼빠진 정치인들이 그대의 마음을 반푼이라도 닮았더라면 나라 꼴이 어찌 이 모양이겠나.”
무쌍이 손날로 높이 솟은 왕대를 툭 쳤다. 팔뚝 굵기의 왕대가 매끈하니 잘렸다. 윙- 허공을 가로지른 왕대가 집터 한 지점에 콱 틀어박혔다. 대우선사가 서클을 그렸던 장수혈 중심이다.
“힘들게 찾을 것 없다. 바로 저곳이다.”
“오오, 대신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소녀가 확인하고 오겠사옵니다.”
놀라운 퍼포먼스에 불구하고 선우방나 모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대신의 이적은 경배의 대상이지 놀람의 대상이 아니다. 선우방나 모녀가 언덕을 내려갔다.
“가르침은 개뿔이!”
무쌍이 혀를 찼다. 자신의 주특기는 두들기고 박살 내는 파괴의 장이다. 사부님이 아니면 그곳이 장수혈인지 쫄따구혈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선우마고가 장수혈을 빙빙 돌았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종내에는 뿌연 먼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키히히!”
정신 사납게 빙빙 돌던 선우마고가 괴성을 지르고 풀썩 쓰러졌다. 트랜스에서 포제션으로 넘어갔다. 무쌍 본인이라도 그만큼 맴을 돌면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선우방나가 딸의 손을 잡았다.
“젖었군!”
선우마고의 한복이 흠뻑 젖었다. 푹 젖은 한복에서 증기가 외줄기로 피어올랐다. 무쌍은 진짜 무당의 퍼포먼스를 본 적이 없다. 호기심에 찬 눈으로 모녀의 행태를 관찰했다.
증기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선우방나의 정수리에서도 김이 올랐다. 십여 분이 지나서 선우방나 모녀가 언덕을 올랐다.
“대신이시여, 생기가 빠져나가는 곳은 지형으로 짐작건대 대명동 앞산 부근인가 하옵니다. 송구하게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사옵니다.”
“인애원? 음흉한 영감 탕구! 어쩐지 이상한 말씀을 하더니만.”
무쌍이 이마를 쳤다. 잘 보관하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화재를 염려 말라는 말씀은 집이 아니라 야마나시 콜렉션이었다. 사부는 이미 내막을 알고서 은근슬쩍 일거리를 떠맡겼다. 어쨌든 어머니를 모실 집인데 생기가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대는 음양술사가 펼친 공간전이술을 격파할 수 있는가?”
선우방나가 흠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