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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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사라진 두더지 4
모든 전투가 오늘 같기만 하다면 바랄 게 없었다. 몰(포섭된 스파이)로 인해 뒤집어졌던 심사도 잠시 잊어졌다.
“뭐라고?”
깨비텐의 좋은 기분이 급전직하했다. 보고를 하는 에밀도 잔뜩 얼굴이 굳었다.
“블랙이 패잔병을 추적해? 프롤리나트 본부를 지워버린다고? 혼자서?”
“옛썰!”
연속된 의문사에 에밀은 기합이 바짝 들었다.
“씨 쿠아세 보델르!(도대체 이게 뭐냐구!)
깨비텐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독단으로 후퇴한 반군을 추적하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다. 보델레는 적의 본거지다. 3군 사령부의 주둔 병력 규모는 자신도 모른다.
블랙맘바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작전 실패는 물론 팀원들의 생명도 보장받지 못한다. 무사귀환의 키는 블랙맘바가 쥐고 있다.
두들겨 패고 싶지만 눈앞에 없는 놈을 어쩔 것인가. 두들겨 팰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죄 없는 에밀만 잔뜩 갈굼을 당했다.
“네놈은 파트너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엉! 아무리 블랙이라도 적진에 혼자 뛰어들어 어쩌겠다는 거야. 엉!”
깨비텐은 에밀이 블랙맘바인양 언성을 높였다.
“죄송합니다. 블랙이 말린다고 들을 놈이 아니라서~”
“쎄 모베, 입 닥쳐. 네놈은 블랙을 따라가서 함께 죽어.”
화가 난 깨비텐이 에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젠장, 이렇다니까! 그 놈을 누가 말려. 형편없는 놈이란 말까지 듣게 하다니, 망할 놈.’
에밀은 뼈가 울리는 고통을 참으며 파트너를 원망했다.
라텔팀 전체가 난리 났다.
추적도 불가능했다. 탈것이 없을뿐더러 블랙맘바가 없는 야간 이동은 위험천만이다. 적의 매복에 걸리면 바로 삼색기를 두른 관속에 들어가야 한다. 다급해진 이들은 게릴라들이 타고 온 바이크가 수두룩함을 아무도 상기하지 못했다.
‘왜들 저래? 호떡집에 불났나?’
바위 그늘에 편안한 자세로 기대앉은 옴부티만 태연했다.
“옴부티, 안내해 주시오. 나라도 따라가야겠소.”
에밀이 안달했지만 옴부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흐흥, 그분은 신의 전사다. 당신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당신이 블랙을 따라가면 방해만 된다.”
“이익! 블랙이 돌아오지 못하면 당신도 쏴 죽이겠어.”
“그러던가!”
에밀이 성질을 냈지만 옴부티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에밀이 계속 붙들고 늘어지자 옴부티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와킬의 삽탄을 해주느라 진이 빠져 버렸다. 아니, 와킬의 무서운 능력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애송이의 어리광을 받아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옴부티는 눈을 감고 전투를 되새겼다.
토코 툼 전투는 중화기와 스나이퍼의 절묘한 앙상블이었다. 일방적인 전투, 와킬과 용병 여섯이 반군 140명을 전멸시켰다.
이들이야말로 비참한 전투를 예술로 승화시킨 전투 전문가들이다. 자신이 프롤리나트에 대항한 전투는 소꿉장난에 불과했다. 이들이 불침전함이라면 자신이 조직한 민병대는 갈대로 만든 배에 불과했다.
와킬의 저격은 역시나 무시무시했다.
홍수에 쓸려나가는 토담 꼴이 된 프롤리나트 전사들이 눈에 선했다. 원수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았다. 인간이 야시경없이 야간 저격을 할 수 없다. 인간이 총탄이 눈앞에 박히고, 포탄 파편이 덮치는 상황에서 눈도 깜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임모탈 전사, 아즈라일만이 가능하다.
옴부티는 확신했다. 와킬은 임모탈 전사다. 죽음을 내리는 아즈라일의 현신이다. 와킬의 전투에 일조한 자신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아즈라일은 제3천 세하킴을 관장하는 죽음의 천사다. 칠 만개의 다리와 4천 쌍의 날개를 가진 공포의 존재 아즈라일, 살생부를 들고 다니는 아즈라일, 아즈라일이 살생부에 올라있는 이름을 지우는 순간 그 이름을 가진 자는 죽는다.
와킬의 표적이 된 자는 반드시 죽는다.
옴부티는 임모탈 전사 블랙맘바의 생환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마이크 중사는 23시에 암주로 향했다.
전투가 벌어지기 한 시간 전이었다. 정찰대를 의식한 그는 픽업 세대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운행시켰다. 에키야 방향으로 이곳저곳 빙빙 돌아다니던 픽업이 24시 정각에 트라이던트 록에 도착했다. 그로인해 파이즈가 이끄는 정찰대는 헛다리를 짚고 에키야를 뒤지고 다녔다.
트라이던트 록은 이름 그 대로 세 개의 바위가 삼지창처럼 솟아 있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이크는 바위 그늘에 픽업을 밀어 넣고, 헬기를 기다렸다.
두두두두-
자정을 10분 넘긴 시각, 치누크의 육중한 로타음이 울렸다. 마이크가 케미칼 라이트 십여 개를 꺾어 착륙 지점을 마킹했다. 벨맨이 강력한 랜턴으로 점멸 신호를 보냈다.
인수인계는 순식간에 끝났다. 보급품은 적재함에 패킹되어 있다. 픽업을 몰고 치누크 후방 램프로 빠져 나오는 것으로 보급이 끝났다. 다량의 장비와 식량을 급히 패킹하느라 은자메나의 보급소대가 땀깨나 흘렸다. 픽업 세 대를 뱉어낸 치누크가 곧바로 돌아갔다.
마이크 등이 보급품을 정리하기도 전에 멀리서 화염이 번쩍이고 폭음이 들렸다.
“젠장, 시작했군. 가자고.”
마이크가 성급히 픽업 시동을 걸자 벨맨이 말렸다.
“깨비텐의 명령을 거부할 셈인가?”
“젠장, 구경이나 하란 말이냐.”
“우리 임무는 보급품 확보요. 전투는 깨비텐과 블랙맘바가 알아서 할 거요.”
“생사투를 벌이는 동료를 구경만 하라고?”
‘이놈이 죽을 때가 되었나?’
벨맨의 표정이 묘해졌다. 트러블 메이커 마이크가 동료를 걱정한다? 낙타가 웃을 일이다.
이놈이 진심인지 핑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블랙맘바는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말했다.
“블랙이 싫어할 텐데.”
벨맨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전부 블랙맘바 추종자군. 뭐 블랙이 싫다면 말아야지.”
눈을 희번뜩 거리던 마이크가 시동을 껐다.
전투 경험이 많은 마이크가 목숨 줄인 보급품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제버릇 개 못 준다고 살인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성정이 발동되었을 뿐이다. 본능도 무치 시바리아게의 두려움에는 고개를 숙였다.
오래지 않아 전투 소음이 멎었다. 드라구노프 발사음만 한 동안 울리더니 그것마저 잠잠해졌다.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지?”
미구엘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가보면 안다.”
마이크가 시동을 걸자 벨멘과 미구엘도 각각 운전석에 올랐다. 픽업 세 대가 북쪽으로 되돌아갔다.
“이게 뭐야!”
마이크 등은 놀람과 안도와 어이상실을 동시에 경험했다.
놀람은 처참한 전장의 모습이다.
안도는 멀쩡한 동료들이다.
어이상실은 블랙맘바의 독단 행동이었다.
당장 블랙맘바를 추적하자고 안달하는 쪽은 저격 중대 외부에서 합류한 팀원들이었다. 벨맨 병장, 후앙 모리스 병장, 샨 미구엘 상병이었다.
“헤드셋을 열어봐.”
“너 바보냐. 헤드셋 통신거리는 1500m 이내다.”
미구엘의 말에 마이크가 성질을 냈다.
“놈들의 타이어 자국을 따라가면 된다.”
벨맨이 주장했다.
“안 돼. 지금은 야간이다. 습지와 사막이 뒤섞인 이 넓은 땅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매복에 걸리면 끝장이다.”
부리머가 반대했다.
기존의 되지엠 랩 대원들은 추적에 회의적이었다. 경이적인 블랙맘바의 추적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실적으로도 곤란했다.
반군과 블랙맘바는 캄캄한 사막으로 빨려 들어갔다. 추적견이 있다면 혈향과 화약 냄새로 추적한다지만 사람은 개가 아니다.
“당신들은 아직도 와킬을 제대로 모르고 있소.”
잠자던 옴부티가 다가와서 참견했다. 시선이 일제히 옴부티에게 쏠렸다.
“와킬은 스나이퍼이기 전에 아즈라일이요. 그분이 하고자 하면 잠든 미테랑의 거웃을 뽑아올 분이요. 쟈칼 무리가 사자를 어찌할 수 없소.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림이요.”
옴부티를 향해 있던 시선이 일제히 깨비텐의 입을 향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블랙맘바를 믿어 보자구. 어설프게 추적하다간 길을 잃거나 역습을 받기 십상이다.”
깨비텐이 갑론을박을 잠재웠다.
그는 일단 블랙맘바의 능력을 믿기로 했다. 블랙맘바의 경이적인 근접 전투력을 이미 목격했다. 이해하기 힘든 추적과 은신능력까지 겸비한 블랙맘바다. 몰래 숨어들어 암살을 한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블랙맘바다.
그는 블랙맘바가 적의 본부를 지워버리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하비브군의 머리가 잘리면 라텔팀의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된다.
아무드와 살아남은 독전 친위대 7명은 정신없이 스로틀을 당겼다. 머리만 골라서 박살내는 스나이퍼는 공포 그 자체였다.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악마에게 뒷덜미를 잡아채일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패잔병들은 미친 듯이 본부로 달렸다.
아무드가 전투지역인 토코 툼(Toko Doum)을 벗어나 코로 뭉가(Koro Mojanga)본부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였다. 부하들을 이끌고 기세 좋게 튀어 나간 지 단 두 시간만이다.
프롤리나트 제3군 사령부는 비상이 걸렸다.
사령부는 막사 건물만 십여 동이 넘는다. 일천 명이 넘게 머물던 넓은 병영에 남은 인원이 별로 없었다. 경비 중대 병력 108명이 전부다.
아무드가 패잔병을 끌고 코로뭉가 사령부에 도착한지 15분후, 죽음의 천사도 뒤따라 도착했다.
블랙맘바는 3km후방에 바이크를 은닉시켰다. 25km나 되는 거리를 야간에 마라톤으로 귀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달밤에 산책이라도 하듯이 느긋하니 반군 주둔지로 향했다.
블랙맘바의 추적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그는 프롤리나트의 집요한 추적과 공격에 잔뜩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였다. 샤트르의 부상, 정확히는 어린 소년마저 자살 폭탄으로 만든 더러운 인간들을 향한 분노와 짜증이 사신의 등을 밀었다.
백부댁의 헙수룩한 행랑방은 온갖 벌레가 기어들었다. 특히 불개미가 제일 성가셨다. 좁쌀보다 작은 놈에게 물리면 간지럽고 긁으면 화농이 생겼다.
참다못해 불개미가 나올만한 구멍을 찾아서 휘발유를 부어넣고 불을 질렀다. 블랙맘바가 보기에 프롤리나트는 불개미와 다를 바 없는 놈들이다. 불개미가 자꾸 기어 나오면 개미집을 박살내면 된다. 그는 놈들의 본부를 지워버릴 작정이었다.
주둔 병력이 감당 못할 만큼 많으면 한바탕 휘젓고 튀면 그만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한 몸을 빼낼 자신이 있었다. 최도식 같은 인간을 만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상현달이 푸르게 빛나는 밤, 황량한 대지에 하얀 미소를 띤 사신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생명의 서에 적힌 이름을 지울 필기구는 백팩에 거치된 드라구노프와 서슬 퍼런 쿠크리다.
프롤리나트 제3군 사령부는 주변보다 지대가 높았다.
병영 울타리밖 200m까지 깔끔하게 사계 청소가 되어 있었다. 경계를 서기에 대단히 유리한 지형이었다.
쉭- 블랙맘바의 신체가 중력을 무시하고 솟아올랐다. 10미터 높이의 유칼립스 가지에 올라선 그는 느긋하니 적진을 관측했다. 불놀이를 하기에 밤도 길고 재료도 충분했다.
300m 전방에 엉성하게 만들어진 목재 초소가 보였다. 150m간격으로 전부 6개다. 지상 십 미터 높이의 초소는 서치라이트까지 갖췄다.
서치라이트가 외곽을 교차해서 훑고 지나갔다.
“거지새끼들이 갖출 건 다 갖추었네.”
그는 서치라이트 간격을 계산하고 피식 웃었다. 조명 텀이 1분 이상이다. 1분이면 굼벵이라도 300미터쯤은 주파한다. 그는 20초면 충분했다.
소리 없는 살육자, 블랙맘바가 움직였다.
케찰코아틀처럼 우아하게 유칼립스를 떠난 사신이 번개처럼 어둠을 가로질렀다. 서치라이트는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블랙맘바는 3m높이의 선형 철조망을 훌쩍 뛰어 넘었다. 어깨에 수류탄 박스를 메고 있었지만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초소 그늘 속으로 스며든 그가 기둥을 슬슬 기어 올라갔다. 영락없이 제비 알을 훔쳐 먹으려고 처마를 타고 오르는 구렁이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