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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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야마나시 콜렉션 5
“아, 공간전이술!”
선우방나가 해연이 놀랐다.
“그대가 놀랄 만큼 대단한 술법인가?”
“전승이 끊어진 음양술의 최고봉이옵니다. 공간전이술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 축을 가미해서 4차원 공간을 만드는 전설적인 술법 입지요. 저기 속이 드러난 벌건 땅을 보시옵소서. 불도저로 밀기 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수십채 옹기종기 모여있던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이 존재하던 시점에 공간전이술로 시간 대역을 고정하면 결계가 풀리지 않는한 그 시간대의 공간, 즉 마을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오호, 아공간이니 이공간이니 하는 소리가 말짱 헛소리는 아니었군.”
“정확히 말하면 공간 전이가 아니라 시간 고정이지요. 공간전이술의 목적은 장신(藏身)이지만, 요력이 높은 음양술사가 협력하면 대량의 물자를 숨길 때도 유용하옵니다. 공간전이술로 분리된 이공간은 불안정합니다. 계속 유지하려면 결계로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장수혈에 고인 수기를 끌어서 결계를 유지하는 동력으로 썼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천지간의 유일한 진리는 시간입니다. 시간의 흐름에는 그 어떤 강력한 술법도 파훼 됩니다. 수기는 만물생동의 바탕이자 긍정의 에너지입니다. 수기가 빨려 나가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심성이 피폐해지고 수명도 단축된 거죠. 지혈에 박힌 쇠말뚝은 눈에 띄는 대로 제거할 수 있지만 공간전이술은 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암 환자가 많고, 패륜아도 많았나 보군. 비열한 쪽발이다운 악독한 행사다. 진이 쇠말뚝처럼 전국 곳곳에 존재할 가능성도 있나?”
“공간전이술로 이공간을 생성하려면 대음양술사가 있어야 하고 막대한 재물이 소비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건 다행이군. 가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일단 장수혈에 웅거 중인 귀물(鬼物)을 먼저 처리하겠습니다.”
선우방나는 자신만만했다. 노바를 얻는 순간은 세상을 얻는 순간이었다. 노바는 천고의 기물답게 영력을 두 배 세배로 증폭했다. 강력해진 영안이 숨어있는 귀물을 포착했다.
“귀물? 어휴, 이번엔 또 뭐야?”
무쌍은 품속에 든 루스루훼가 생각났다. 귀물이라 함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를 말한다. 도깨비도 귀물의 일종이며 물리력이 없는 영적인 존재를 허깨비라 하다. 무슨 놈의 팔자가 툭하면 이런저런 태클이 걸린다. 집 한 채 짓기도 힘든 팔자에 한숨이 나왔다.
“받는 놈이 있으면 보내는 놈이 있습니다. 장수혈에 고인 수기를 공간전이술로 생성된 이공간으로 매개하는 귀물이 숨어있습니다.”
선우방나가 지남철을 들고 장수혈을 중심으로 왔다 갔다 거리를 측정했다. 잔뜩 긴장한 선우마고가 왼손에 칠성도, 오른손에 노바를 들고 대기했다.
“태수가 삼이요 태목은 칠이다……. 태화가 둘이면 태토는 육……. 태금은 이십팔, 합!”
선우방나가 진언 외기를 마치고 다짜고짜 노바를 땅에 박았다. 끼루루- 장수혈에서 묘한 기음이 들렸다. 땅이 우르르 흔들렸다. 푸왁- 땅속에서 황소만 한 진흙투성이 덩치가 튀어나왔다.
“헐, 별것이 다 있구마.”
거대한 덩치, 바늘처럼 곤두선 털, 이글거리는 묵광, 염화가 타오르는 눈동자, 한눈에 봐도 생령이 아닌 곰 형상의 귀물이다.
쿠억- 주춤하던 귀물이 무쌍을 향해 질풍처럼 돌진했다. 자갈이 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노무 자식, 내가 만만하디?”
발사라를 꺼내서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뾰족한 호통이 터졌다.
“더러운 물건이 감히! 끼욧!”
대기 중이던 마고가 칠성검을 던졌다. 영력으로 조정하는 신기는 목측이 필요 없다. 공간 이동하듯 번쩍하고 날아간 칠성검이 귀물의 정수리에 박혔다. 쿠우우- 귀물이 벌떡 일어나서 앞발을 휘두르려는 순간 마고가 노바를 휘둘렀다.
번쩍- 노바에서 수레바퀴 같은 빛이 터져 나왔다. 퍽- 대형 애드벌룬 터지는 소리가 났다. 쿠어어- 광검에 격중된 귀물이 퍽 흩어졌다. 땅바닥에 시커먼 재가 쌓였다가 그마저도 땅속으로 주르륵 빨려 들어갔다.
‘헐, 무당이 아니라 아마조네스구마!’
무쌍이 감탄했다. 여자로서 쉽지 않은 대담성, 적절한 공격 타이밍, 정확도, 무엇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단순한 무당이 아니라 흔치 않은 무무(武巫)다.
“벨 거 다 나오는구마. 이건 머꼬?”
“오니구마(Oniguma, 귀웅)입니다. 한국에서 영통한 호랑이가 산신의 수족이 되듯이 일본에서는 수백 년 묵은 곰이 산신의 심부름꾼 역할을 합니다. 자연스레 귀화(鬼化)된 오니구마는 히구마, 음양술사가 의도적으로 만든 오니구마는 쓰키노와구마라 불립니다. 이놈은 쓰키노와구마이옵니다.”
“쓰키노와구마? 욕설을 듣는 기분이구마. 하여튼 쪽발이 시키들의 작명 센스하고는, 그런데 이기 와 여서 깽판 치고 있노?”
“풋! 쓰키노와구마는 수기를 진으로 전이하는 출력 안테나 역할을 합니다.”
선우방나가 웃음을 참으며 설명했다.
“쓰키노와구마인지 새끼노무자식인지 뒈졌으니 이공간은 코드 뽑힌 냉장고가 됐겠구먼. 이공간이 붕괴할 수도 있나?”
“축전지 역할을 하는 매개물이 있습니다. 당분간 지탱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붕괴합니다.”
“그건 안되지. 아이고, 내 보물! 가자!”
무쌍이 익살을 떨며 선우방나 모녀를 가물치 뒷좌석에 태우고 인애원으로 달렸다. 산전수전을 겪은 무쌍으로서는 게임을 즐기는 기분이다.
선우마고가 인애원 지하실 입구에서 멈칫하더니 품속에서 오방기를 꺼냈다. 손가락으로 수인을 맺고 진언을 외웠다.
“시방삼세 오방진언 시무등등주 바하바라바라!”
웅- 지하실 입구에서 기의 유동이 일어났다. 마고가 문설주에 오방기를 콱 꽂았다. 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노약자는 삼혼칠백이 흩어질 만큼 끔찍했다. 문설주에서 푸르스름한 고양이 형상의 연기가 물씬 피어올랐다.
“요망한 것! 왔던 곳으로 돌아가랏.”
마고가 품속에서 노바를 꺼내 휘둘렀다. 퍽- 연기가 폭죽 터지듯 터졌다.
“결계를 지키는 네코마타(고양이 귀신)입니다.”
“마고가 한 수 하는군.”
“마고는 두두리속(豆豆里俗)의 전승자입니다.”
“두두리속?”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두두리속은 신라 시대에 귀신의 왕인 길달을 죽이고 도깨비 왕이 된 비형의 진전을 이은 집단입니다. 도깨비는 돗구(절구)와 아비의 합성어입니다. 절구는 고대에 곡식을 빻는 도구이자 동시에 무기였습니다. 아비는 싸울아비에서 보듯이 건장한 남성을 뜻합니다. 도깨비는 현대어로 각색하면 귀신 잡는 해병인 셈이지요. 마고는 축귀와 방술의 최고수, 도깨비 왕으로 각성했습니다. 네코마타 따위의 일제 귀신은 쨉도 안됩니다.”
“그거 잘 되었군.”
“영력이 늘어나고 신기를 얻은 덕분이옵니다. 이 모두가 대신님의 은혜일 따름입니다.”
“은혜는 무슨 은혜, 조폭도 똘마니에게 연장은 준다. 흠, 카무게와 한판 붙으면 볼만하겠군!”
무쌍이 빙긋 웃었다.
“들어가시지요.”
선우방나 모녀가 앞장서서 지하실로 들어갔다. 지하실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다. 선우마고가 품에서 탱자 크기의 방울 두 개를 꺼내서 흔들었다. 방울이 짤랑거릴 때마다 불빛이 밝아졌다.
“어둠을 밝혀랏!”
방울 두 개가 천정에 철썩 달라붙어서 푸르스름한 빛을 뿜었다.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개물이 있어야 술법이 발동되는 좌도방은 역시 마이너 리그다.
“흠, 달라졌군!”
무쌍이 지하실을 둘러보고 침음했다. 붉은빛을 뿜는 다섯 자 높이의 돌탑 열 기, 뿌옇게 빛나는 오리알 굵기의 금속 봉 20개, 돌탑과 금속 봉을 연결해서 시냇물처럼 흐르는 하얗게 빛나는 물체, 판타지 공간이 따로 없다. 안배태 일당을 가둘 때는 아무것도 없이 휑했던 지하실이다.
“네코마타가 소멸하면서 은폐되었던 진이 드러났습니다. 금속 봉은 전이된 수기를 받아서 이공간에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봉의 재질은 순은, 봉과 돌탑을 연결한 바닥의 물체는 수은입니다. 대단합니다. 음양술사의 요력도 요력이지만 돈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선우방나가 거듭 감탄했다. 지하에 이만한 진을 설치하려면 억만금이 들어간다.
“야마나시 한조란 놈은 배금장군이라 불릴 만큼 돈에 환장한 인간이었다. 조선 총독으로 재직할 때 오죽 구린 짓을 많이 했겠나. 돌탑은 뭔가?”
“진을 유지하는 결계 축입니다.”
“물리력으로 제거할 수 있나?”
“백만 관의 힘을 일시에 쏟아부으면 파괴할 수 있지만, 억지로 파괴하면 이공간이 사라져버립니다.”
“쩝, 뭐가 이래 복잡해. 쪼잔한 놈들!”
락샤샤 손잡이를 잡아채던 무쌍이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내가 못 가지면 아무도 못 가지게 하겠다는 심뽀다. 무쌍은 치사한 행태에 혀를 찼다.
“소녀와 딸년이 해결하겠습니다.”
선우방나 모녀가 메고 있던 바랑을 내려서 주섬주섬 물품을 꺼냈다. 흑 전립, 붉은 저고리, 녹색 치마, 검은 괘자, 오방기(흑, 적, 청, 백, 녹), 칠성도, 도리 봉이 꾸역꾸역 나왔다. 별로 크지도 않은 바랑에 많이도 챙겨 넣었다.
“푸닥거리할 참인가?”
“그러하옵니다. 진을 유지하는 축마다 오니(일본 도깨비)가 버티고 있습니다. 진의 연결고리를 끊고 놈을 끌어내려면 굿을 벌여야 하지만, 노바 덕분에 푸닥거리로 충분합니다.”
선우방나가 지남철을 꺼내서 방위를 잡았다. 천지간의 힘과 흐름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술법은 시간과 방위를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면 단순한 푸닥거리로 끝난다.
무속의례에는 비손, 푸닥거리, 굿이 있다. 비손은 무당 혼자서 축원하는 의례, 푸닥거리는 2~3명의 무당이 타악기와 춤을 동원해서 잡귀를 쫓는 의례, 굿은 음식, 술, 지전 등의 제물을 벌려놓고 전문 무악사(巫樂士)와 다수의 무당이 합동으로 행하는 종합 의례다.
그래서 구타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푸닥거리는 구분해야 한다. 한 명이 때리면 비손질, 두세 명이 때리면 푸닥거리, 집단 구타는 난리 굿이라 해야 맞다.
일반적인 무당의 경우 비손이든 푸닥거리든 굿이든 사자와 망자의 기복(祈福), 축사(逐邪)가 목적이다. 의례의 순서도 청신(신을 청함)-오신(신을 기쁘게 함)-송신(신을 배웅함)으로 진행된다.
무당 중에 무무(巫武)와 무경(巫經)을 집중적으로 전수받은 부류는 따로 법사라 불린다. 이들은 춤, 타령, 놀이 보다는 축사에 전문화되어 있다. 선우방나는 단순한 무당이 아니라 법사에 가까웠다. 비형의 진전을 이은 선우마고는 말할 것도 없이 법사다.
“북방의 사명은 태수(太水)요. 그 다스림이 흑이다. 현묘진원!”
“현묘진원!”
선우마고가 복창하고 흑색 기를 지정된 위치에 꽂았다. 벽조목 깃대가 돌 바닥을 진흙처럼 푹 파고들었다.
“동방의 사명은 태목(太木)요. 그 다스림이 청이다. 동인호생!”
“동인호생!”
선우마고가 청색 기를 꽂았다.
“남방의 사명은 태화(太火)요. 그 다스림이 적이다. 성광보명!”
“성광보명!”
선우마고가 적색 기를 꽂았다.
“서방의 사명은 태금(太火)이요. 그 다스림이 백이다. 청정견허!”
“청정견허!”
선우마고가 백색 기를 꽂았다.
“중방의 사명은 태토(太土)요. 그 다스림이 황이다. 중상유구!”
“중상유구!”
선우마고가 황색 기를 꽂았다.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한인 대길상 대웅 대광명 포희 대안정 치우 대희리 왕검 대예락!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주문을 마친 선우방나가 털썩 주저앉았다. 진땀을 줄줄 흘리는 폼이 제법 영력을 많이 소모한 듯했다.
‘큭!’
무쌍은 그 와중에 웃을 뻔했다. 무속이 판테온은 판테온이다. 예불을 올리기 전에 입을 청정히 하는 정구업진언이 주문 시동어로 쓰일 줄은 몰랐다. 아프리카에 가면 아멘이나 아브라카타브라로 바뀔지도 몰랐다.
파아아- 오방기의 깃발이 일제히 빳빳이 일어섰다. 중방 태토의 중상유구가 빛을 뿜었다. 웅웅- 지하실이 울렸다. 연필심처럼 가늘던 빛 기둥이 차츰 굵어졌다.
종내 팔뚝만큼 굵어진 빛 기둥이 웅웅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막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선우방나가 노바로 좌측 첫 번째 금속 봉을 가리켰다.
“가랏!”
빛 기둥이 금속 봉을 덮었다. 샤아아- 금속 봉이 모래알처럼 잘게 쪼개져서 내려앉았다. 키익- 금속 봉이 있던 자리에서 정수리에 외뿔이 돋은 괴물이 튀어나왔다.
“허, 어릴 때 그림책에서 본 일본 도깨비일세.”
무쌍이 감탄했다. 외뿔에 징 박힌 쇠몽둥이를 든 모습이 딱 일본 도깨비다. 어릴 때는 도깨비가 그렇게 생긴 줄만 알았다. 영혼없는 교육의 폐해다. 괴물이 선우방나에게 덤벼들었다. 선우방나가 슬쩍 피하자 철퇴가 바닥을 때렸다. 꽝- 폭음과 불꽃이 튀었다.
“헐! 물리력이 있네!”
무쌍이 깜짝 놀라는 순간 마고가 성큼 뛰어들며 노바를 휘둘렀다. 쉬익- 퍼런 달무리가 외뿔 도깨비를 둘로 쪼갰다. 퍽- 도깨비가 풍선 터지듯 터졌다.
“비형의 진전을 이은 도깨비 여왕답군!”
“오니는 만만치 않은 귀물인데 딸년이 쉽게 처리하는군요.”
선우방나가 은근히 자랑질 했다.
“오니는 시궁창 찌꺼기가 오니다.”
무쌍은 귀물이 튀어나오든 오니가 튀어나오든 심드렁했다. 이따위 저급한 영은 루스루훼나 카무게가 주술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괴물에 비하면 발가락의 때 수준이다.
“호호호, 오니는 일본 요괴의 총칭입니다.”
소위 부장급 농담에 선우방나가 깔깔 웃었다. 나이 어리지만, 대신의 화신은 역시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