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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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야마나시 콜렉션 6
여유는 강자의 특권이다. 사자는 먹고 남은 사냥감을 리카온이나 하이에나에게 넘겨주고 유유히 떠난다. 반면에 리카온, 하이에나, 표범 등은 포획한 사냥감을 다른 포식자에게 넘겨주는 법이 없다. 배터지게 먹어도 남은 먹이를 숨기거나 서식지로 물고 간다. 다음에도 사냥감을 제압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데미지를 입은 음양진이 살아있는 생물체인 양 대응했다. 짜자작- 금속 봉에서 방전이 일어났다. 뿌연 막이 봉과 돌탑을 감쌌다.
“끼요옷!”
마고가 노바를 휘둘렀다. 번쩍하고 날아간 초승달 빛이 뿌연 막을 갈랐다.
“가랏!”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선우방나가 오방살진의 빛 기둥을 유도해서 금속 봉을 때렸다. 푸스스- 금속 봉이 바스러졌다. 영락없이 오니가 튀어나와 무쌍을 덮쳤다. 마고가 노바를 휘둘렀다. 영검에 두 쪽 난 오니는 허무하게 소멸했다.
음양진은 동력 매개물인 금속 봉을 수은으로 연결해서 진을 한 덩어리로 묶은 집단진이다. 공텐 굴삭기 뿌레카로 두드려도 끄떡없을 진이 선우 모녀의 영력에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음양진이 맥을 못 추고 각개 격파당한 원인은 노바에 있다. 바이러스를 바이러스 백신으로 격퇴하듯이 증폭된 이질적인 영력이 집단진의 영적 연결고리를 끊는 바람에 본래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진을 설치한 음양술사가 지하에서 땅을 칠 노릇이다.
방공호는 번쩍이는 빛과 기합소리, 오니가 소멸당할 때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무쌍은 아예 자리를 잡고 퍼질러 앉아서 한판의 푸닥거리를 감상했다.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음양진의 축을 이룬 금속 봉 스무 개가 말끔히 분쇄되었다. 우웅- 공간이 요동쳤다. 돌탑이 공간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공간을 보호하려는 음양진의 마지막 발악이다.
쿠두둥- 건물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시멘트 조각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무쌍이 락샤샤 핸들을 잡아챘다. 위잉- 락샤샤가 허공을 휘돌아 가속도를 받았다. 선우방나가 공간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돌탑을 가리키며 다급히 외쳤다.
“대신님, 벽 쪽으로 물러나십시오. 위험합니다. 아악!”
우지직-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십 제곱미터의 천장이 내려앉았다. 외침은 비명으로 마감되었다.
“아악, 대신님, 살려주세요!”
마고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담대한 아마조네스도 감당하지 못할 위험에 직면하자 여성 본색이 튀어나왔다. 슈아앙- 방원 20m가 락샤샤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초음속 폭풍이 떨어지는 천장을 휘감았다.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가 산산이 으깨지고 다져졌다.
쉭쉭쉭- 락샤샤가 자욱한 먹지를 함지에 밀가루 반죽하듯 뭉쳤다. 콰쾅- 거대한 시멘트 경단이 지하실 한쪽에 처박혔다. 말도 안 되는 거창한 퍼포먼스에 선우 모녀는 넋이 빠졌다. 대신의 화신은 스케일이 달랐다.
“망할 새끼들, 마지막까지 꼼수를 부렸구먼.”
무쌍이 뻥 뚫린 지름 7~8m 구멍을 올려보며 이빨을 갈았다. 결계가 강제로 풀어지면 천장이 무너지도록 트랩을 걸어놓았다. 정을 줄래야 줄 수 없는 인간들이다.
스스스- 그 와중에 마지막 돌탑이 공간으로 사라졌다. 흔들리던 지하실이 딱 정지했다. 번쩍- 눈이 멀 정도로 환한 빛이 터졌다.
“헐!”
무쌍이 눈을 비볐다. 새로운 공간, 시커먼 구멍이 삼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계단이다. 무쌍은 계단이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눈앞의 계단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신의 감각을 속이는 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역시 세상일은 장담할 바가 못 된다. 선우 모녀가 없었더라면 사부를 모셔오지 않는 한 대책이 없을뻔했다. 물론 세사에 초탈한 사부가 보물찾기에 나설 리 만무했다.
“대신님, 요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결계가 모두 해체되었사옵니다.”
“별거 아니군. 그럼 야마나시 콜렉션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해볼까?”
무쌍이 뒷짐 지고 느긋하니 계단을 내려갔다. 높낮이가 다른 계단을 내려가자 시커먼 철문이 방문객을 완강히 거부했다. 주먹으로 두드리자 통통하고 경박한 울림이 났다. 일반 방화문이다.
웬만한 철판은 발사라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억수갑이 철판을 종이짝 찢듯이 찢고 들어갔다. 마닐라삼을 꼰 듯 잘게 다져진 근육이 꿈틀했다. 우쩍- 철문이 통째로 뜯겨 나왔다.
“어머머!”
“엄마야!”
선우 모녀의 눈이 몽롱해졌다. 젊고 강한 수컷은 모든 암컷의 로망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포장하더라도 암수의 호감도는 성적인 매력이 최우선이다. 늙어도 여자는 여자고 남자는 남자다. 수컷의 향기에 엑시터시를 느끼는 선우 모녀를 탓하는 자는 인생을 모르는 자다.
거대한 채찍이 수 톤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촌각에 분해하는 장면은 오히려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인지 범위를 벗어난 이적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행사로 여겨진다.
무쌍은 뒷등이 섬뜩했다. 삼십 대로 보이지만 두 사람은 팔십 대, 육십 대 할머니다. 할머니가 예쁜 척 저런 교성을 뱉어도 된단 말인가. 여자를 알고 인생을 알기엔 무쌍의 연륜이 얕았다.
철문을 걷어차고 들어서자 위층 지하실의 열 배도 넘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별다른 시설물은 보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야전 침상과 모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남포등(방풍 유리가 있는 등유 램프)과 기름통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시간이 정지되었기 때문일까. 물품은 모두 새것처럼 깔끔했다.
“방공호?”
태평양전쟁 당시에 만든 방공호가 분명했다. 전쟁 말기에 패배를 직감한 대본영은 조선땅에도 방공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고가 남포등 심지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등유냄새가 퍼지며 어둠이 동그랗게 물러났다. 야마나시 콜렉션은커녕 깨진 사금파리 한 조각 보이지 않았다.
무쌍의 공간지각력과 공진파는 숨긴 물건을 찾기에 최고의 스킬이다. 두웅- 공진파가 사방 벽과 기둥, 바닥을 지뢰탐지기처럼 더듬었다.
“뒤가 구린 놈들이 하는 짓은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선우마고 뒤쪽의 벽돌벽 안쪽에 밀도가 다른 물체가 있다.
“마고, 비켜라!”
스스스- 투명한 막이 손을 한 겹 덮었다. 손날이 벽돌을 두부처럼 뚫고 들어갔다. 떵- 손끝에 강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예상대로 안쪽은 철판이다. 손을 벽에 박은 채로 확 긁어내렷다. 벽돌벽이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묵광이 번들거리는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나!”
마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안으로 샅샅이 뒤졌던 벽이다. 지하실 한 면 전체를 벽으로 쌓아서 철문을 숨겼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쪼잔한 놈들, 생긴 대로 노는구마!”
일본인의 성격 그대로다. 지하실 아래 방공호를 만들고, 비밀 장소를 벽돌벽으로 위장한 것도 모자라서 공간전이술로 공간 자체를 숨겼다.
억수갑으로 벽을 이리저리 긁어내렷다. 벽돌이 우르르 떨어지고 철문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통보다 더 큰 자물통 세 개가 떡 버티고 있다. 당연히 열쇠가 없다. 두께를 확인했다. 떵떵- 묵직한 소리가 났다. 적어도 200mm 이상이다.
무쌍은 억수갑에 공진을 일으켜 찢어발기려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모험물 시나리오나 판타지 소설을 보면 비밀기지나 던전에 들어간 주인공은 늘 마지막 단계에서 이해 불가능한 실수를 하거나 방심한다. 그 결과 트랩이 발동하고 안 해도 될 고생을 바가지로 한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발사라를 문틈으로 밀어 넣고 내리그었다. 사아아- 빗장이 저항 없이 잘렸다. 무쌍이 뒤돌아 보고 씩 웃었다. 선우 모녀가 두 팔을 번쩍들고 머리 위에 하트를 만들었다. 힘자랑은 유치하지만 수컷의 본능이다.
그응- 두께가 두 뼘도 넘는 육중한 강철 문이 강제로 벌어졌다. 40년간 밀폐된 공간의 공기가 밀려 나왔다. 퀴퀴한 곰팡내 대신 향내가 코를 찔렀다.
“허! 대단하군!”
입이 쩍 벌어졌다. 실내 공간은 대략 100평, 5단으로 줄지어 늘어선 향나무 선반에 크고 작은 나무 상자가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일별하기에도 선반에 보관된 상자는 무려 이천 개가 넘었다. 바닥에 놓인 커다란 상자도 백여 개가 넘었다. 척 하면 삼천리다.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포장 작업을 끝내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세상에!”
“옴마나!”
선우 모녀가 기함했다. 설마하니 이공간에 이런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을 줄이야. 대신이 직접 나선 이유를 알만했다.
“대신님, 노다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내 물건이 아니다. 이 땅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다.”
“소녀의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선우방나가 고개를 숙였다.
“대신님이 찾아내지 않았으면 사라져 버렸거나 쪽발이가 찾아갔을 보물입니다. 당연히 대신님의 재물입니다.”
마고가 반박했다.
“논어에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다. 재물이 많다고 하루 열 끼를 먹고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많은 재물은 일이고 번뇌다. 큰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 이미 쓰임새가 정해져 있는 법이다.”
“그래도 대신님이 고생해서 얻었는데…….”
마고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하하, 돈이라면 썩어 자빠질 만큼 있다. 어디 진짜 보물인지 확인해볼까.”
무쌍이 손에 잡히는 대로 상자를 집었다. 밀랍을 걷어내고 뚜껑을 열자 충전제에 싸인 20cm 높이의 청자 향로가 몸체를 드러냈다. 상부의 투각 연꽃봉오리를 거북이 네 마리가 받치고 있는 비취색 청자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흠 하나 없이 영롱한 비취색을 뿜는 향로는 뭔가 있어 보였다.
“선우방나, 이 물건을 알아보겠나?”
“봉행하겠사옵니다.”
선우방나가 두 손으로 향로를 잡고 눈을 감았다. 영매술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자다. 물건의 이력을 파악하는 능력은 그 어떤 영능력자도 따르지 못한다.
“어허, 겁살, 재살, 천살, 지살, 년살, 월살, 망신살, 장성살, 반안살, 역마살, 육해살, 화개살, 잡귀 잡신은 물렀거라. 어허이! 서답찬 년, 불알이 여물지 못한 애새끼도 물렀거라. 조군신, 성주신께 물어보자. 어허! 오래도 되었구나. 남쪽의 흙과 북쪽의 장작이 675년 전에 만났구나. 나라님께 올라가는구나. 칼차고 힘센놈이 얻어가는구나. 한양도성으로 들어가네. 갓쓴놈들이 주고받네. 허, 여기는 안동 하회마을이구나. 총 끝에 칼꽂은 순사 두놈이 안방으로 들어가네. 어이쿠 저런! 갓쓴 양반이 개머리판에 맞아서 엎어지는구나. 향로를 받아든 제복 입은 대머리 중늙은이가 입이 찢어져라 웃네. 어허! 사연도 많은지고~”
선우방나가 향료의 이력을 줄줄 읊었다.
“오오, 대박! 대박!”
무쌍이 손뼉을 쳤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고려청자 한 점이 수천만 불에 거래된다. 아베 노부유끼가 공간전이술로 봉인한 덕분에 물건의 보관상태는 최상이다. 온전한 형태에 스토리가 붙은 골동품은 부르는 게 값이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선우 모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두 사람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수다.
박수 소리에 몰입이 깨진 선우방나가 고개를 숙였다.
“675년 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입니다. 일본 순사가 빚이 어쩌고 하면서 강탈해 가더군요. 만들어진 장소는 염사해서 지도와 대조하면 밝혀질 듯합니다.”
“호오, 돈 좀 되겠어!”
무쌍의 입이 찢어졌다.
“그러믄요. 몇 점만 경매에 내놓아도…….”
무쌍이 마고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우리 문화재를 거둬들여도 시원찮을 판에 해외로 보낼 수야 없지.”
“그럼, 돈이 된다는 말씀은?”
“국내외 전문가의 감정을 받아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정부에 넘길 생각이다.”
“아이고! 대신님, 턱도 없는 순진한 생각이십니다. 도굴범으로 몰려서 구속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요.”
선우방나가 펄쩍 뛰었다. 잘해야 쥐꼬리 보상받고 보물은 문화재청으로 들어간다. 선우방나는 젊은 주인이 순진하다 여기지만 기우다. 무쌍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장돌뱅이다.
“흐흐흐, 그건 두고 봐야지. 몇 개 더 확인해 볼까나.”
무쌍은 악법과 선법의 경계가 적용대상의 힘에 달려있음을 느구보다 잘 아는 인간이다. 수틀리면 규칙을 바꿀 놈이다.
추가로 개봉한 상자에서 청자, 백자, 청동기, 무기와 생활용품, 두루마리 그림, 서책이 쏟아졌다. 선우 모녀의 감정에 의하면 고려 시대, 삼국시대 물건도 부지기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이곳은 야마나시 한조의 진품 콜렉션 수장고다.
일제 강점기에 다수의 일본인이 도굴, 강탈, 매입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 문화재를 수집했다. 문화재 가치를 모르는 어리숙한 한국인은 수집상의 밥이었다.
일인 권력자의 문화재 수집을 도운 매국노 관료도 많았고, 유택을 도굴하고 사찰 문화재를 훔쳐서 일인에게 파는 잡배도 많았다. 나라가 고난에 처하면 본색이 드러나는 법이다.
일인 수집상의 정점은 오구라 다케노스케와 야마나시 한조다. 눈치 빠른 오구라는 태평양전쟁에 패한 직후 미 군정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수집품을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오구라 콜렉션은 1,000점이 넘는다고 알려졌을 뿐, 한국 정부는 현황도 파악하지 못했다.
야마나시는 독직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콜렉션을 반출할 기회를 놓쳤다. 수십 년간 존재 여부를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야마나시 콜렉션이 이런저런 인연의 중첩으로 무쌍의 손에 떨어졌다. 세상이 조용하든 어수선하든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