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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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야마나시 콜렉션 7
“야마나시 한조, 아베 노부유끼, 문화재를 잘 보관해줘서 고맙다 잉. 엉아가 잘 쓸게. 니들 후손을 찾아서 인사도 가꺼이 해주꾸마. 싸다구 몇 대 패마 되겄제. 사부는 신통도 하지. 동방불패는 잘났다고 설쳐봐야 땡중 손바닥에서 깨춤 추는 손오공이라네.”
무쌍이 객쩍은 소리를 흥얼거릴 정도로 야마나시 콜렉션의 양과 질이 엄청났다. 프랑스에서 문화재 몇 점을 회수하려다 쪽을 팔았다. 한국 정부의 부실한 문화재 정책과 한국인의 의식 수준을 언급할 때는 얼굴이 뜨끈했다.
야마나시 총독이 애써서 수집하고 아베가 은닉하지 않았으면 이 많은 문화재가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국보급 문화재 수천 점이 일본으로 넘어갔으면 배가 아프다 못해 찢어졌을 것이다.
덤으로 얻는 부수입도 있다. 선우방나가 골동품의 이력을 읽으면 문화재를 상납한 친일파를 찾아낼 수 있다. 적극적인 친일의 대가로 얻은 부동산은 탈탈 털어 마땅하다.
‘흐흐흐,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영력을 얻었으면 약간의 봉사쯤은 해야지.’
무쌍이 선우방나를 돌아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화려한 황후 예복에 정신이 팔려있던 선우방나가 흠칫했다. 큰 무당다운 예지력이 불길함을 감지했지만, 무려 5개월이나 지하실에 갇혀서 골동품을 감별하고 이력을 작성하는 개고생을 할 줄은 몸주 신인 전우치도 몰랐다.
“대신님, 황금입니다.”
수장고 안쪽에서 마고가 소리쳤다.
“황금! 황금이 별거냐?”
심드렁한 반응이다. 국보급 문화재가 지천인 판에 황금 몇 조각이 대수랴.
“좀 많습니다. 확인해 보시지요.”
황금 마다할 인간은 없다. 뒷짐 지고 설렁설렁 수장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고가 들고 있는 사다리꼴 물체가 남포등 불빛을 받아서 황금색으로 빛났다.
금괴에 찍힌 昭和 15年(1940년)과 3,000g 표시가 선명했다. 정교한 나무 상자에 3kg짜리 마름모꼴 금괴 열 개가 들어있다. 동일한 규격의 상자 120개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헐! 뭐가 이렇게 많아! 쪽발이 군자금이군.”
무쌍의 입이 찢어졌다. 패망을 예상한 대본영에서 삼지연, 군산, 대구에 군자금을 은닉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흐흐, 그만두는 게 좋을걸. 네놈이 이 많은 인원을 죽여서 유기하기는 불가능이다. 본가에서 사람이 나오면 이곳은 쑥밭이 돼. 아이들부터 차례로 사라질 거야.]쥐 눈을 굴리며 독기를 피우던 아베 아소타로가 생각났다.
“아베란 놈도 쓸데가 있구먼. 자위대 총감부에 가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 할 텐데…….”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베 아소타로가 위협만 하지 않았어도 인애원을 사들이지 않았다. 놈은 9대 총독 아베 노부유끼의 손자다. 야마나시 콜렉션을 회수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 아베 가문을 생각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 아베란 놈이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지만 않았어도 노예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무쌍의 악감정은 평균적인 한국인 이상으로 격렬한 바가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격이 있어야 하듯이 국가가 국가다우려면 국격이 있어야 한다. 일본은 국격이 없는 나라다.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탓하는 게 아니다. 개인과 사회조직은 법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지만, 국가 간에는 오로지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국가 간의 전쟁 가능성은 상존하고 국력이 약하면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국격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가 일탈 행위를 저지르는 나라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일본의 근대사 100년은 집단광기로 미쳐 돌아간 시간이다. 청일전쟁부터 수백만의 젊은이가 애국과 충성이라는 미명하에 전쟁터로 내몰렸다. 그들은 만주 벌판에서 태평양의 섬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갔다.
아랫도리가 여물지도 않은 미성년자를 전장에 강제로 끌고 가서 정액받이로 써먹는 나라, 강제 징용당한 외국인 정착자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 나라, 이토 히로부미의 면상을 버젓이 최고액 화폐 도안으로 넣는 나라,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 중국인들의 피와 원한이 어린 군함도(하시마 탄광, 지옥도)를 버젓이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하려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자국민에 대해서도 비열한 행위를 예사로 했다. 종군 위안부 동원령은 조선인만이 아니라 자국의 여성도 포함했다. 편도 연료만 주유한 제로센에 자국 조종사를 태워서 자살공격을 강요한 나라가 일본이다.
전후 일본의 지식이라 불리는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은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70년 미시마 유키오는 4명의 추종자와 함께 자위대 총감실을 점령하고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지금 일본 혼을 유지하는 것은 자위대뿐이다.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피와 문화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당신들은 사무라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고 있는가? 나를 따를 사람은 없는가?]연설을 마친 미시마 유키오는 단도로 배를 가르고 추종자인 모리다가 장검으로 목을 쳤다. 언론과 정치인은 엽기적인 최후를 미화하고 귀감으로 채색했다. 소설가로서의 명성도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미시마 유키오 같은 미치광이에 열광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중국도 한반도에 못할 짓을 많이 했지만, 일본이 워낙 악독하고 비열한 짓거리를 많이 하는 바람에 중국의 폭거는 묻혀버리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먹으로 때린 놈은 잊을 수 있지만, 껍질을 벗기고 소금을 뿌린 놈은 잊지 못한다는 소리다.
역사 청산에는 시효가 없다. 분란만 일으키는 과거는 덮어놓고 미래로 나가자는 일본 정치인과 언론의 태도는 궤변에 불과하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통로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과거를 덮을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일본 정계에 친한파 정치인도 다수 있다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일본의 대다수 정치인, 언론, 지식인은 대동아공영의 망상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않았다.
친한파라는 부류는 못사는 이웃에 빵 한 조각 던져주는 심정을 가진 자들이다. 한국이 일본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면 즉각 돌멩이를 집어들 자들이다.
일본은 국격은 없는 나라다. 자국의 이익이 된다면 타국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나라다. 무쌍이 내각조사실과 CIA 특수공작부의 빈번한 접촉을 경계하는 이유다.
“대신님, 이게 얼마나 될까요?”
묻는 마고의 음성이 떨렸다. 겨우 이백만 원에 눈이 어두워져 대신의 선친 유골을 음해한 전력이 있는 마고다. 욕심을 털어버렸지만, 눈앞에 번쩍이는 황금의 매력은 엄청났다.
퍼뜩 현실로 돌아온 무쌍이 열심히 암산했다. 30kg짜리 상자 120개면 3,600kg이다. 1985년 런던거래소 시세가 온스당 360 US$였다. ㎏당 국제시세로 대략 12,000,000원, 한국의 시세를 적용하면 18,000,000만 원이다. 졸지에 648억원이란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아니, 아베 노부유끼가 잘 보관했다가 물려주었다.
“650억 원쯤 되겠다.”
무쌍이 무덤덤하니 대답했다. 한계효용의 법칙은 황금에도 적용된다. 648억 원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워낙 큰돈을 만지던 무쌍은 액수 자체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지각 범위 내의 돈은 재물이지만, 지각 범위를 벗어난 돈은 번뇌다.
“뭔 놈의 팔자가 돈을 쓰려고 발버둥 칠수록 쌓이기만 하나!”
무쌍이 만인의 지탄을 받을 재수 없는 말을 뱉었다. 인연의 끈은 참으로 알 수 없다. 대덕식당에서 형동이를 만나고, 인애원을 불태우려는 아베 일당을 때려잡고, 아이들이 불쌍해서 인애원을 사들였다. 범우 스님께 넉넉한 집을 사라고 시세의 두 배가 넘는 이천만 원을 드렸다. 이천만원이 수천배로 새끼쳤다.
“대신님, 이 많은 황금을 어떻게 하죠?”
기가 질린 마고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누군가 돈을 버는 것을 기술이고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했다. 자신만의 노력으로 세상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많아. 고아도 있고, 못 죽어 살아가는 노인도 있고, 어린 나이에 차장으로 공순이 공돌이로 찌들어가는 아이들도 많다. 개천에서 몸부림치는 자, 사회에서 낙오하고 밀려나온 사람들이 2차전을 준비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들 생각이다.”
“이 많은 재물을 몽땅 다요?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사옵니다.”
무쌍이 마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욕만 버리면 대기가 될 텐데 한 가닥 물욕이 그녀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깨달음이란 논리와 시비의 문제가 아니다.
“마고, 그 말은 탐욕에 물든 위정자와 있는 자들의 가증스러운 변명이다. 세상에 내 것은 없다. 재물은 인연따라 내게 머물고 인연따라 흘러간다. 너는 영력을 쌓기만 하느냐? 쌓은 영력으로 범부중생의 어려움을 풀어주지 않느냐. 선생은 자신의 지식을 학생에게 나눠준다. 재물도 그와 같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재물이다.”
두웅- 마고는 벼락을 맞은 듯 아찔했다. 대신의 말씀이 육십 년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마고가 그 자리에 털썩 꿇어앉아 명상에 잠겼다. 선우방나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무쌍은 난감했다. 이공간이 파훼 된 이상 골동품은 습기와 온도의 영향을 받게 된다. 옮길 곳도 마땅찮고 상자 수천 개를 옮기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방법은 이곳을 폐쇄하고 불로동에 수장고를 짓는 수밖에 없다.
“선우방나,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결계를 칠 수 있나?”
“죄송합니다. 술식을 알지 못합니다. 건물을 숨기거나 침입자를 방어하는 수준의 결계는 가능하옵니다.”
“좋아, 당장 결계를 쳐서 지하실을 숨기고 인애원으로 거처를 옮겨라. 너희 모녀는 노바토피아로 떠나기 전까지 골동품 이력을 작성하라. 친일파 명단도 작성하고.”
“윽! 이, 이걸 전부 말씀입니까?”
선우방나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딸과 함께 작업해도 최소 육 개월은 코피 터지도록 영력을 소모하게 생겼다. 강해진 영력을 써먹을 꿈에 부풀었는데 졸지에 지하실에 갇혀서 과로에 시달리게 생겼다. 국가 문화재를 찾아냈다는 기쁨이 싸늘하게 식었다.
“왜? 싫어?”
“처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가치 있는 과업입니까! 소녀는 즐겁습니다. 진짜 즐겁습니다.”
선우방나가 식은땀을 흘렸다. 대신이 워낙 격의 없이 대하는 바람에 자신의 본문을 잠시 망각했다. 마고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대신이 쇠몽둥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어라! 해도 즐겁기만 할 것 같았다.
우우웅- 가물치가 기와집과 슬래브집, 슬레이트집이 혼재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허, 이 자식들은 시도때도없이 파 젖히네!”
작년에 포석을 깐 골목이 온통 뒤집혔다. 예산을 따내려고 멀쩡한 도로를 개비하는 행태는 고쳐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물치를 도로에 세웠다.
무쌍은 세월의 더께가 앉은 시커먼 돌 담장 사립문을 젖히고 쑥 들어갔다. 집안에 인적이 없다. 늘상 짓무른 눈을 끔벅거리며 진순이 오래비 왔는강? 하던 할매도 보이지 않았다.
“퇴근 시간은 넘었는데. 응?”
뒤뜰에서 인기척이 잡혔다. 뒤뜰로 돌아들어 간 무쌍이 숨을 죽였다. 하얀 모시 적삼과 치마를 입은 진순이다. 몸매가 늘씬하니 한복도 썩 잘 어울렸다.
담쟁이와 머루 덩굴이 엉겨붙은 돌담 아래 펼쳐진 개다리소반, 개다리소반에 얹혀진 겨우살이 한 묶음, 정한수 한 사발. 진순이 성주풀이하듯 사설을 늘어놓고 있다.
[임이여, 가고 가고 또 가고 또 떠나시네. 어찌 만남은 짧고 이별은 이다지도 길던가. 당신은 지구 저쪽에 나는 이곳에 있네. 멀고 험한 길 무섭지 않지만, 님이 번거러울까 두려울뿐. 내 마음 바람에 실어보낼까 파도에 실어 보낼까. 겨우살이 열매는 영글어 가는데 내 가슴은 헛헛하기만 하네. 꽃봉오리 벌어지면 벌 나비 날아들고, 겨우살이 열매 영글면 산새가 날아오건만. 이 가슴이 농익어도 야속한 임은 쳐다보지 않네. 엉덩이가 벌어져도 임은 두드릴줄 모르네. 마음대로 하세요. 그 나무에 그 겨우살이 아시나요? 각오하세요. 겨우살이 뿌리박듯 빨대 깊숙이 꽂고 남은 세월 바가지로 채울테요……]‘헉! 조때다!’
무쌍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사설이 갈수록 야시꾸리해졌다. 겨우살이를 정한수와 함께 올려놓은 진순의 옹골찬 각오에 가슴이 서늘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네 가지 좋은 아내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같은 아내, 친구같은 아내, 하녀같은 아내다. 죽을때까지 뿌리박고 잔소리 퍼붓겠다는 아내는 없었다.
‘그 나무에 그 겨우살이’는 자신이 지난겨울에 진순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겨우살이는 상록기생 관목으로 사시사철 푸르다. 겨울에 잎이 떨어져서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그래서 정절을 의미한다.
겨우살이는 단짝이 정해져 있다. 참나무 겨우살이는 참나무에만 붙어살고, 동백 겨우살이는 동백나무에만 붙어산다. 밤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겨우살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궁합 맞는 부부를 겨우살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어린나무는 겨우살이에 과도하게 양분을 뺏긴 나머지 말라죽기도 한다. 겨우살이도 당연히 죽는다. 그래서 백년해로하는 부부를 상징한다.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의 남녀가 겨우살이 아래서 청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