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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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장 사랑보다 정이라네2
“허이고, 지가 홀랑 벗으라고 하고서는…….”
무쌍이 구시렁거리며 팬티를 올렸다.
‘아 안돼! 미친년, 굴러들어온 호박을 걷어차도 유분수지!’
진순이 절규했지만, 에쿠스 존슨은 이미 모습을 감추었다. 강변 고추밭 이랑 틈에 한 줄 심어둔 개량 가지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올망졸망한 새파란 고추 틈에 자리 잡은 우람한 자주색 가지는 묘한 외설스러움과 연결된다. 팬티 속으로 사라진 자주색 가지가 몹시도 아쉬웠다. 몽롱해진 눈이 일렁이는 잔상을 쫓았다.
‘가능할까? 아기도 낳는데…. 설마 궁합을 못 맞추겠어?’
침이 입안 가득히 고이고, 아랫도리가 비비 꼬였다. 꼴깍- 침 넘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침 넘기는 소리에 지레 놀라서 화들짝 했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
진순은 심호흡하고 눈을 깜박였다. 흔들리던 시야가 겨우 제자리를 잡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커튼콜을 외쳤다간 진짜 미친년이 된다.
“오빠땜에 내가 몬산다 몬살아! 일부러 그랬제?”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쉬움, 미련, 후회 온갖 감정이 어색함으로 버무려졌다. 숫처녀의 자존심이다.
“머라카노. 내가 바바리 맨이가!”
무쌍이 펄쩍 뛰었다.
“흐흥, 여덟 살 때 다리미로 우리 집 요강을 박살 낸 거 기억나?”
“별걸 다 기억하네. 요강과 다리미 중에 어느 쪽이 센지 알고 싶었거든.”
“고모가 야단치려고 하자 갑자기 고추를 불쑥 내놨잖아. 얼척 없어진 엄마와 고모가 야단도 못 치고 막 웃었거든. 오늘도 그 작전을 써먹은 거제?”
“그랬었나? 행복한 때였지.”
무쌍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영혼이 오염되지 않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진순의 마음은 알고도 남았다. 얼마나 걱정되었으면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하겠는가?
무쌍이 팔을 벌리자 진순이 네오디뮴 자석처럼 착 끌려왔다. 육중한 유방이 기분 좋은 압박감을 선사했다. 건강한 처녀의 체향을 맡은 존슨이 꿈틀했다.
‘흐흥, 에델보다 더 크네!’
무쌍이 도둑놈 생각에 잠겨있을 때 진순의 세상은 칠채색으로 뒤엉켜 돌아갔다. 눈이 기능을 잃자 촉각, 후각, 청각이 활짝 열렸다. 해인사 법고처럼 둥둥 울리는 두 개의 심장 고동이 영혼을 난타했다.
진한 수컷의 향기와 안온한 오빠의 향기가 둑 터진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안전하고 편안한 가슴이 있을까! 진순은 자신도 모르게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잔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단 몇 분 전에 무채색 지옥이었던 세상이 순식간에 무지갯빛 천당으로 바뀌었다. 진순의 인식체계는 간단명료했다. 무쌍이 존재하는 세상은 천당이고, 무쌍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지옥이다.
“진순아, 걱정말거라. 오빠는 긁힌 자국도 없다. 우주적 비밀을 한가지 알려줄까?”
“뭔데?”
진순이 말끄러미 올려보았다.
“오빠는 불사신이다.”
“하아!”
진순이 긴 한숨을 쉬었다.
“한숨은 만다꼬 쉬노?”
“오빠가 펑하고 승천할까 봐 겁나서 그런다.”
“잉! 그기 무신 소리고?”
“불사신이란 말이 여사로 들리지 않아서 그란다. 땀구멍도 보이지 않는 피부가 신의 몸이지 사람의 몸이가. 흉터도 다 사라졌삣네.”
진순이 떨리는 손으로 흐릿하게 남은 왼쪽 뺨의 흉터를 어루만졌다. 뺨이 이지러질 정도로 깊이 파였던 쌍 십자 흉터가 흐릿했다.
“총알도 오빠를 비끼간다. 너무 걱정말거라.”
“내사마 좋고도 걱정되는 기라. 내는 원하는 사람은 인간인 오빠지 불사신이 아이거던.”
진순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차라리 오빠가 평범한 셀러리맨이나 통닭집 주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못해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팔아도 용병보다는 좋을 것 같았다.
“씰데없는 소리, 펑하고 승천할 분은 사부지 내가 아이다. 불로동에 땅을 사서 공사를 시작했다. 땅을 사서 집 짓는 신 봤나? ”
“땅? 진짜! 얼마나 넓은데?”
진순의 눈이 커졌다. 마당 넓은 기와집과 쌀밥, 고깃국은 오빠의 로망이었다. 물론 자신의 로망이기도 했다. 기뻤다. 드디어 오빠가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앙큼한 여심은 그 와중에도 빈틈을 찾았다.
“축구장보다 훠얼씬 넓다.”
“축구장? 수사적인 표현이가?”
“아이다. 동네 하나를 통째로 사들이가꼬 축구장 넓이로 만들었지.”
“옴마나, 세상에! 집터는 다 닦았나?”
“그러엄. 대지 정리는 벌써 끝난 기라. 대목장들이 설계도에 맞춰서 목재를 준비 중이다.”
무쌍이 생각 없이 설렁설렁 대답했다.
“머라꼬! 며칠 전에 귀국했다며? 스님 할부지를 먼저 찾아뵌 건 당연해. 그런데 며칠 만에 집을 여러 채 사들이고, 축구장만 한 집터를 닦고, 설계도를 만들고, 건축허가까지 받았다고? 오빠가 전두환이가? 도깨비 왕이가?”
진순의 눈이 새초롬해졌다.
“……”
유도 심문에 걸려든 무쌍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진순의 기분을 풀어주려다 너무 나가 버렸다.
“솔직히 말해. 언제 귀국했어?”
닦달당하는 무쌍의 눈앞에 겨우살이가 아른거렸다.
“한 달!”
눈을 꾹 감고 실토했다.
“한 다알?”
진순이 말꼬리를 길게 뽑았다. 무쌍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차별로 날아올 펀치 세례를 감당해야 할 시간이다.
“하아! 한 달이라~ 내가 이해할만한 스토리가 있을까?”
진순이 삐딱한 눈으로 무쌍을 쳐다보았다. 앞차기와 스트레이트가 날아올 기세다.
“에잉, 띨띨한 놈! 입에 들어온 밥도 삼키지 못하는 저런 쪼다가 내 제자라니…….”
천생산 법당 밖으로 탄식이 새나왔다. 명상에 잠겨있던 대우선사가 죽비를 탁 때리고 깨어났다. 제자 놈이 듬직한 물건을 꺼내고, 껴안고 비빌 때는 곧 안개가 끼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쪼다 제자 놈이 산통을 깼다. 속에 천불이 나는 바람에 천안통이 깨져버렸다. 천의무봉한 대우선사도 제자에 관해서는 초탈하지 못했다.
“자알한다. 자알해! 아끼면 똥 된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게야. 에잉, 성치 않은 깜둥이 놈까지 보냈건만……. 쯧쯧!”
대우선사는 답답했다. 다른 일은 귀신같이 알아서 처리하는 놈이 여자 문제만은 도대체 손방이다. 부처님도 한 구멍에 씨앗을 세 개씩 넣으라고 했다.
진순이 밭이 보통 좋은 밭인가. 씨앗을 한 개만 넣어도 충분하다. 띨띨한 제자는 구멍에 씨앗을 넣기는커녕 기름진 밭을 갈 생각도 않는다. 계속 훔쳐보다가는 복장 터져서 죽을 판이다. 이래서야 죽기 전에 의발 제자를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허허, 중이 제 머리 못 깎으면 남이 깎아줘야지. 무산신녀운우지락공이라도 써야 하나.”
대우선사가 투덜거리며 고무신을 탈탈 털어 신고 법당을 내려갔다.
‘끄끄끄!’
방 한구석 공간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잘난체하는 친구가 인간 암컷에게 마구 당하고 있다. 깜둥이는 1억 5천만 년 묵은 체증이 쑥 빠지는 기분이었다. 친구는 친구고 재미는 재미다.
‘응?’
파리 날갯짓 수준의 공기 유동이지만 무쌍의 감각을 속이지 못했다. 쒜액- 칼날 같은 경기가 공간을 잘랐다. 뻐억- 컥- 격타음과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억수갑 급습을 받은 깜둥이는 피할 틈도 없이 대가리를 얻어맞았다.
“머 머꼬?”
진순이 다듬잇방망이를 집어들고 방구석에 바짝 붙었다. 진순은 산짐승이 울부짖는 야밤에 고산골에서 약수를 떠 올 만큼 깡이 세다. 귀신이든 도깨비든 때려잡을 태세다.
“임마, 에너지 충전이 급하다면서 이게 뭣 하는 짓이여.”
무쌍이 버럭 했다. 방 한쪽의 공간이 일렁거렸다. 스스스- 깜둥이가 본신을 드러냈다. 레오빠 디망쉬의 형태로는 빛을 투과하지 못한다. 은신 상태에서는 본신을 유지해야 한다.
공간 속에서 거대한 앞발이 슬며시 삐져나왔다. 뒤이어 대가리와 몸통이 스윽 빠져나왔다. 둥- 텅 빈 공간에 거짓말처럼 등장한 거대한 흑표, 어둠의 한 조각을 뚝 떼놓은 듯이 검은 몸체에 흑백이 분명한 눈만 하얗게 빛났다.
“악, 귀 귀신!”
식겁한 진순이 무쌍의 등 뒤에 숨었다. 놀라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놀랄 것 없다. 오빠 친구다.”
무쌍이 진순의 어깨를 토닥였다.
“친구우? 세상에!”
진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쌈디 아저씨도 놀라운 존재지만 그래도 인간이다. 호랑이보다 큰 흑표범이 친구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친구,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하다. 난 마스터가 하라는 대로만 했다.”
깜둥이가 무쌍의 눈치를 보며 변명했다. 지저 세계의 공룡도 교미할 때 방해받으면 무지하게 화낸다. 교미 작업을 방해했으니 맞아도 싸다.
진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말하는 표범이라니! 갈수록 태산이다. 표범의 구강 구조로 인간의 언어가 가능하단 말인가?
“사부님이 시켰다고?”
“그렇다. 새끼를 까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으윽, 망할 영감탕구!’
무쌍은 사부의 주책에 뒷목을 움켜잡았다. 변태라는 말이 입술 끝에 달랑거렸다. 한편으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부 연치가 구순이다. 의발을 물려줄 제자가 이 모양이니 대가 끊어질 판이다. 오죽하면 깜둥이를 보냈겠는가.
“임마, 인간은 프라이버시가 있어. 훔쳐보는 짓은 나쁜 거야.”
“나도 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바위로 꼼짝 못 하게 눌러놓는데 난들 어떡하나. 사라질 테니 하던 일을 계속해라.”
“일은 무슨 일! 진순이는 내 동생이야.”
무쌍이 버럭 했다.
“거짓말이다. 인간 여자에게서 노르아드레날린, 옥시토신, 에스트로젠이 다량 분비되고 있다. 친구도 옥시토신이 대량 분비되었다. 인간 남매 사이에 있을 수 없는 반응이다.”
“아이구!”
무쌍이 뒷목을 움켜잡았다. 진순이 머리를 빼꼼히 내밀었다.
“흑표님 말이 맞아요. 내 이름은 조진순, 아내될 사람이랍니다.”
“오, 인간 여자답지 않게 침착하고 표현도 정확하군. 내 본신의 이름은 깜둥이, 인간 형태의 이름은 레오빠 디망쉬, 마스터가 붙인 이름은 공공이다. 아무렇게 불러도 좋다.”
“깜둥이라 부를게요. 만나서 반가워요.”
“반갑다는 의미를 모르지만, 좋은 느낌이다. 나는 일억 오천삼백칠십육만 삼천이백이십오 년을 존재했지만 별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좋다.”
헉하고 놀란 진순이 무쌍을 돌아보았다.
“깜둥이 말이 맞다. 깜둥이는 나이가 많다.”
“세상에!”
기가 막힌 진순은 말을 잊었다. 오빠가 다른 세상에 산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깜둥이가 앞발을 척 내밀었다.
“진순, 마음에 든다. 친구의 아내는 내 친구다.”
“아니라니까. 동생이야 동생!”
무쌍이 아우성쳤지만, 깜둥이는 들은 척도 않았다. 진순이 거대한 앞발을 잡았다. 순간 진순의 손목에서 피가 쭉 솟았다. 츠츠츠- 피가 기화하듯이 깜둥이의 콧구멍으로 스며들었다. 진순이 놀랄 틈도 없이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렀다.
영문을 모르는 진순이 무쌍을 쳐다보았다. 무쌍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너는 오늘 땡잡았다.”
진순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스스스- 깜둥이의 신체가 흐려졌다.
“마스터, 아니 사부님이 부른다. 동방불패, 여자 눈물 흘리게 하는 놈은 사나이가 아니라고 마스터가 말씀하셨다.”
“우와, 깜둥이님 진짜 마음에 든다. 다음에 만나면 맛있는 요리해줄게요.”
진순이 손을 흔들었다. 적응력만큼은 최강인 진순이다. 깜둥이의 눈에 흐릿한 감정이 떠올랐다.
“아직 유기물을 직접 흡수할 수는 없지만, 말만 들어도 고맙다. 진순, 인간의 감정은 너무 복잡하고 급하게 변한다. 나는 동방불패를 만나기까지 긴 세월을 어둠 속에서 보냈다. 자아가 없었기 때문이지. 자아있는 존재는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
묘한 말을 남기고 깜둥이가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도깨비처럼 나타나서 도깨비처럼 사라졌다. 진순은 텅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철 오빠가 쌈디 아저씨를 도깨비라고 하더니 깜둥이야말로 진짜 도깨비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을 까뒤집고 혼절할 상황이지만, 진순은 금방 적응했다. 역시 멘탈 강하기로는 갑인 진순이다.
“갔네!”
무쌍이 심드렁하니 중얼거렸다.
“오빠!”
진순이 빽 소리 질렀다.
“와카노?”
“와카노? 이기 와카노로 끝날 문제가?”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너는 오빠가 사는 세상을 알 필요 없다.”
“땡잡았다는 말은 뭐야? 내 피는 왜 빨아먹은 거야?”
“깜둥이는 텔레파시와 공간이동 능력이 있다. 네 피를 흡수한 것은 염파 연결을 위한 매개물이 필요해서다. 네가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 정신을 집중해서 머릿속으로 깜둥이를 불러라. 전달 거리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깜둥이가 도와줄 거다.”
“그럴 수가! 내가 위험할 때 부르면 슈퍼맨처럼 나타난다는 소리네.”
“그렇지.”
“깜둥이가 오빠보다 더 세?”
“비슷할 거야.”
“진짜? 우와아!”
진순이 손뼉을 치고 좋아 날뛰었다. 오빠만큼 강한 존재가 자신을 지켜준다면 세상에 무서울 일이 없다. 최강의 뒷배도 좋지만, 오빠가 사는 세계에 접속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라고?”
진순이 중얼거렸다. 깜둥이가 남긴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뭔가 머릿속에서 번쩍했다.
“오빠, 내 쪼매 나갔다 오께. 옆집 아래채가 비어있거든.”
진순이 대뜸 방문을 열고 나겠다. 무쌍은 어리벙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