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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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장 사랑보다 정이라네7 ->여기까지 24권
‘음기가 수기?’
걱정이 불안으로 바뀌었다. 다음에 튀어나올 말은 뻔했다. 사부는 장수혈부터 시작해서 시종일관 화기와 수기를 강조해왔다. 사부가 천방지축인 듯하지만, 본인의 요량은 따로 있다. 어어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할 때가 많다.
“사부님, 저는 아직 학생이고~”
“이놈아, 미리 껄떡대지 말어. 여자가 마누라밖에 없더냐? 진순이 자매는 아껴서 국 끓여 먹을 거냐? 아침가리 골에 맡겨둔 미나는 불알 달았느냐?”
“읔!”
무쌍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쿵 떨어졌다. 입양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바람에 무호형 댁에 맡겨둔 미나를 깜박 잊었다. 아비에게 버림받고, 그 아비가 어미마저 죽이는 바람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된 기구한 아이, 빠빠라 부르며 코알라 새끼처럼 등에 붙어 다니던 불쌍한 것을 잊어버리다니…….
“국민학교 들어가면 내가 찾아간다고 했는데…….”
무쌍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눈 빠지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자 가슴이 저렸다. 무호 형수에게 거액의 양육비를 맡겼지만, 인심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법이다. 강 건너 불을 끄느라 정작 가까운 불을 잊어버렸다.
진순이 오 자매도 그렇다. 나이 든 세 녀석 모두 대구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 방이 썩어 자빠질 만큼 많은데 말만 한 처녀들이 자취하거나 기숙사에 있을 필요가 없다.
“노납이 금년 봄에 슬쩍 다녀왔느니라. 별일은 없지만, 그늘이 있더구나. 에잉, 이 나이에 제자 놈 뒤치다꺼리나 하러 다니는 내 팔자도 알쪼여.”
대우선사가 망연자실한 무쌍을 훔쳐보며 슬쩍 보탰다. 미나는 제자와 별다른 접점이 없는 아이다. 측은지심으로 거두었을 뿐이다.
고딩이 천애 고아를 거두고, 양육비를 벌려고 뼈 빠지게 일한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햇볕은 대지에 고루 쏟아지건만 풀대궁은 길고 짧다. 땡중들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백날 외쳐봐야 저놈의 행동거지 하나만 못하다.
“휴! 지가 그 생각을 못했심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이 나왔다.
“헐헐헐! 그래서 네놈이 하수라는 거다. 네놈이 잘났다고 오두방정을 떨어도 아직 이 사부가 챙겨야 인간 노릇 하는 철딱서니야. 알간?”
“그렇고말고요. 사부님이 흘린 밥풀이 제자가 먹은 공양보다 많다 아임니꺼. 미나는 곧바로 데려오고, 오 자매에게 방을 내주겠심더.”
얼굴이 풀어진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사부가 속세에 관심을 가질수록 성불은 늦어진다. 좋은 현상이다. 계속 띨띨하게 사고를 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지. 후원도 너무 넓지 않으냐?”
“예, 기회를 봐서 고아원이라도 짓지요.”
“선재로다. 남의 눈물을 닦아주다 보면 내 눈물도 닦이는 법이다.”
대우선사의 얼굴이 봄바람처럼 풀어졌다.
“손님들은 언제 오느냐?”
“진순이는 내일 아침에 오고 외국 손님들은 모레쯤 올 듯합니다.”
“머시라! 진순이가 내일 온다고? 에잉, 고것이 말아주는 콩국수 맛 좀 보렸더니 오늘은 틀렸구먼.”
“진순이를 부를까요?”
“냅둬라. 근무 중인 녀석을 불러서 어쩌게. 네놈이 자랑질 하려고 바쁜 사부를 부르지는 않았을 테고…….”
대우선사가 말꼬리를 길게 끌며 무쌍을 노려보았다. 어서 이실직고하라는 압박이다.
“헤헤, 실은 조금 난감한 일이 있어가꼬……. 사부님이 쪼매 힘써 주시지요.”
“엥? 네놈이 난감한 일이 있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대우선사의 눈이 커졌다. 이 땅에서 제자 놈이 난감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고, 돈 위에 권력이고, 권력 위에 폭력이다. 아니할 말로 수틀리면 대통령 목도 오이 꼭지 따듯할 놈인데 뭐가 난감하단 말인가.
“실은 안지랑이에 범우 스님이 운영하는 인애원이라는 고아원이 있는데…….”
무쌍은 인애원의 아이들을 태워 죽이려던 아베 일당과 야마나시 콜렉션에 얽힌 사연을 간단히 설명했다.
“오호, 선재로다. 노납이 예상은 했지만……. 그토록 복잡한 일이 있었다니 놀랄 일이로다. 네놈 성정에 못된 중생들을 그냥 둘리는 없고…….”
대우선사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죽여버렸느냐는 책망의 눈길이다.
“미수범을 죽이기엔 찝찝하고, 감옥에 처넣어봐야 먹고 입히느라 국민 세금만 들어간다 아입니꺼. 노바토피아로 강제 노역 보냈심더. 죽을 때까지 사막에 나무나 심어야지요.”
“잘했다. 인두겁을 쓴 짐승이지만 전장이 아니라면 살겁은 피해야 하느니라. 그러니까 야마나시 콜렉션을 이동하기 곤란하다는 말이렷다.”
“네. 통금은 해제되었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괜한 충돌은 피하고 싶습니다.”
“흠, 많이 인간다워졌구나. 클클클!”
대우선사가 낄낄 웃었다. 깜둥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부님, 동방불패는 본래 인간입니다. 인간다워졌다는 말은 비합리적입니다.”
딱- 여지없이 명아주 지팡이가 반들거리는 머리에 떨어졌다.
“이놈이 흰소리하는 꼬라지를 봉께 아직 인간이 덜되었구먼. 수습 기간을 몇 달 연장해 주랴?”
“으갸갹, 위대한 사부님!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식겁한 깜둥이가 후다닥 달려들어 대우선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영혼을 속박하는 금고아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놈아, 놔라. 비싼 가죽 바지 찢어진다. 그러게 왜 어른 말씀 중에 씰데없이 끼어들어.”
“조심하겠습니다.”
깜둥이는 하릴없이 찌그러졌다.
“지하실을 먼저 보자꾸나. 귀중품을 옮기려면 좌표를 정확히 잡아야 한다.”
“예, 가시지요.”
멀찍이 따라가던 깜둥이가 슬며시 형상을 바꾸었다. 스스스- 공공이 흑표 깜둥이로 변했다.
‘사부님도 너무 하시지. 내가 동네북이야 요사채에 걸린 운판이야.’
깜둥이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시도때도없이 머리통을 얻어맞다 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차라리 본체인 깜둥이가 인간 형태보다 편했다. 덩치 큰 흑표범이 꼬리를 살랑이며 무쌍을 따라갔다.
“허, 운동장이 따로 없구먼.”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본채 기단 아래 축조된 지하실은 200평 남짓했다. 넓은 공간에 항온항습 장치와 발전기, 수련에 필요한 도구만 몇 개 놓여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한 층 더 내려가야 합니다.”
무쌍이 벽을 쓰다듬었다. 지이잉- 벽 일부가 투명해지며 숫자판이 떠올랐다. 암호를 입력하자 벽감에서 기계가 밀려 나왔다. 홍채 인식과 지문 인식을 마치자 바닥이 하강했다.
“허, 이게 다 뭐다냐? 한국에 이런 기술이 있었나?”
“프랑스 기술자를 불러다 만들었심더. 돈깨나 들었지예.”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지잉- 시커먼 강철 문이 열리고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벽면을 쓰다듬자 조명이 주르륵 들어왔다.
“지하 1층은 일반적인 지하실입니다. 이곳은 지하 20m입니다. 처음엔 방공호 개념으로 만들었는데 이곳을 문화제 수장고로 쓸 생각입니다.”
무쌍은 보니파스의 협력을 받고, 공진파로 굴진했다는 따위의 복잡한 사정은 생략했다. 사부는 현상을 보면 이면을 짐작하는 분이다.
“화약 냄새가 난다.”
깜둥이가 코를 킁킁거렸다.
“개 코구먼. 표범이라 당연한 건가!”
무쌍이 벽면을 쓰다듬자 벽이 스르르 갈라졌다. 벽감속에 진열된 각종 무기류가 음산한 묵광을 뿜었다. 드라구노프 두 정, MP5sd3 다섯 정, 글록 5정, 미니미 경기관총, 유탄포, M2 중기관총, 차곡차곡 쌓인 탄약과 전투복, 거대한 채찍……
“이게 다 머시여? 나라를 뒤집어엎으려는 겨.”
대우선사가 입을 쩍 벌렸다. 한국은 총기 관리가 엄격하기로 세계 최고인 나라다. 소총은커녕 엽총도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하고, 사냥철 외에는 경찰에 보관해야 한다. 저격총과 중기관총은 말도 안 된다.
“만사 불여튼튼 아닙니까.”
무쌍이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그리피나 실드를 치고 싶었다. 고향에서 깽판 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한국은 미국의 안마당이다. 행여나 충돌이 벌어지면 나 잡아가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휴! 너는 정부를 믿지 않는구나.”
“믿을 걸 믿어야지요. 정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핵과 개발 중인 미사일 자료 일체를 넘겨준 사이비들입니다. 제자는 미국과 다소 껄끄러운 사이입니다. 단도리해놓고 왔지만, 세상사는 알 수 없지요.”
“으음!”
대우선사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자의 성정에 먼저 사건을 치지는 않겠지만, 가족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을 놈도 아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도시를 초토화한 강성 지도자와 일인 군단 제자가 부딪히면 답이 없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친구, 저 채찍에서 고향 냄새가 난다.”
깜둥이가 발사라를 가리켰다.
“당연하지. 보스사우루스 힘줄이 주재료다.”
무쌍이 발사라를 집어들었다. 위잉- 거대한 채찍이 공간을 휘돌았다. 슈앙- 음속을 돌파한 크래커가 벽면을 때렸다. 콰다당- 벽면에 깊은 흠집이 파였다.
“허, 반자는 되겠구먼!”
대우선사가 감탄했다. 제자의 능력이야 놀랄 것 없지만, 강철 벽의 두께가 놀라웠다.
“외벽은 콘크리트 1,000mm, 내벽은 아연도 강판 200mm입니다. 벙커 버스트도 못 뚫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사부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양키가 51구역에서 만들어 낸 유전자 변형 생체병기는 가공합니다. 프레데터의 전투력은 탱크나 전투기를 능가합니다. 놈들이 휴먼형 프레데터를 투입하면…….”
무쌍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응앵가에서 박살 낸 휴먼형 그렌델이나 사이킥 혼터를 막으려면 이 정도의 방호력은 되어야 한다.
“흠,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야마나시 콜렉션을 통째로 이동해 달라는 말이렷다.”
대우선사가 말꼬리를 돌렸다. 제자의 일은 제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초월자가 되어서 세속 잡사에 관여함은 옳지 못하다.
“예, 진열 선반까지 이동해 주십시오.”
“노가다 일당은 주냐?”
“가물치로 퉁 치지요.”
“예끼 놈, 돈도 많은 놈이 사부에게 쫀쫀히 굴래?”
“텔레비를 대형 화면으로 바꿔드리겠심더.”
“흐흥, 어여 앞장서거라.”
그날 저녁, 앞산 일대에 진도 3의 가벼운 지진이 발생했다. 인애원 지하실의 야마나시 콜렉션 2,570점과 황금 360kg, 진열 선반이 공간째로 불로동의 응심제 지하 수장고로 이동되었다.
선우 모녀의 좀비 노역 결과물인 문화재 색인본 60권과 친일 명단도 함께 이동했다. 웃기게도 색인본에는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도 30점이 들어있었다.
이튿날 아침, 고즈넉하던 응심제 입구가 소란해졌다. 여자 여섯이 택시에서 우르르 내렸다. 여자 여섯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택시 기사가 엉뚱한 곳에 내려준 것 같았다.
시야를 가득 채운 장대한 건물, 홍예문과 석축 위에 올라앉은 누각은 궁궐 정문을 연상케 하고, 높은 화강석 담벼락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집들이 왔지 궁궐을 보려고 오지는 않았다. 진순의 눈도 잔뜩 커졌다. 수차례 말은 들었지만 듣는 것과 보는 것은 천양지차다.
“언니야, 잘못 찾아온 거 아이가?”
연순이 미심쩍은 눈으로 진순을 돌아보았다.
“오빠 집 맞다.”
“정말?”
“진짜?”
“저분에게 물어볼까?”
계순이 정문 앞에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외국인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더운 날씨에 까만 연미복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맨 폼이 조금 이상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다.
“어서 오십시오. 진순님과 가족분들을 환영합니다.”
아랍인 노신사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바크리 자디르의 아비인 알리 자디르 노인이다. 능숙한 한국어 인사에 하동댁 식구들의 눈이 잔뜩 커졌다.
“옴마야, 우리를 아시네.”
“진짜 오빠 집인가 봐.
“이기 머꼬!”
하동댁과 동생들 입이 쩍 벌어졌다.
“안녕하세요. 어르신은 누구 신가요?”
진순이 나서서 물었다.
“반갑습니다. 뚜바이님을 모시는 집사 알리 바크리입니다. 알리라 불러주십시오.”
“어떻게 할아버지 이름을 불러요?”
“진순님은 자격이 있으십니다.”
알리가 빙그레 웃었다. 알리는 젊은 시절을 요르단 귀족의 집사로 보냈다. 와킬의 말 몇 마디만으로 눈앞의 아가씨가 왕후 후보임을 짐작했다.
“들어가시지요.”
지이잉-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와!”
환성이 터졌다. 운동장처럼 넓은 잔디밭, 폭넓은 돌 구유를 따라 찰찰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시냇물, 바람에 와수수 흔들리는 무성한 대나무 숲, 무릎 높이 석축 위에 그림같이 서 있는 거대한 한옥……. 그림엽서에서나 볼법한 전경이 펼쳐졌다.
“진순아, 이기 우예 된 기고?”
하동댁이 진순을 돌아보았다.
“내도 자세히 모린다. 오빠가 축구장만큼 넓다 카디마는 진짜네.”
“어, 저기 오빠다.”
“스님 할부지도 계시네.”
대우선사와 무쌍을 발견한 자매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오빠, 나 왔어.”
우순이 팔짝 뛰어서 무쌍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매미처럼 매달렸다. 하체가 약했으면 뒤로 나자빠질 만큼 과격한 세레모니다.
“아이고, 저년 보게.”
하동댁이 질색했지만 우순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스님 할아부지, 안녕하세요.”
“아이고, 예쁜이들 왔는강!”
대우선사가 만면에 웃음을 지었지만, 곧바로 외면당했다. 처녀들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무쌍에게 달라붙었다.
“오빠, 도깨비 맞제?”
“오빠, 반지 속에 지니 키우제?”
“아이다, 요술 램프가 있을끼다.”
“이거 진짜 오빠 집 맞나?”
무쌍은 정신이 쑥 빠졌다. 자매들의 수다를 들어 주느니 부두교 광신도를 상대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았다. 진순의 표정은 동생들과 달리 그리 밝지 않았다. 주춧돌 한 개, 기왓장 한 개가 모두 핏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