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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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사라진 두더지 5
초소 바닥에서 스윽 손이 올라왔다.
초소 벽에 기대어 졸던 초병은 앗하는 순간 목젖을 틀어 잡혔다.
“끄윽!”
무지막지한 악력이 기도와 식도를 한꺼번에 뜯어냈다. 초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죽음의 천사다운 잔인한 집행이었다.
서치라이트를 잡고 있던 초병은 어이없게도 화닥닥 물러서며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카 칸마(귀신)!”
슉- 그 순간 쿠크리가 번쩍 빛을 반사했다. 목을 잘린 초병도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미안타! 개인적인 유감은 없다. 우야노. 니가 이해해라.”
죽은 초병의 옷에 쿠크리를 문질러 닦으며 블랙맘바가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비명에 죽은 자에게 할말이 아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심문이 불가능하니 깨끗이 지울 수밖에 없었다.
반 평 넓이의 초소는 야자나무로 제법 튼튼히 만들어져 있었다. 초소 위에서 병영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초소도 한 눈에 들어왔다.
“선물을 주기에 딱 좋네.”
블랙맘바는 초소를 내려가서 수류탄 박스를 메고 다시 초소로 올랐다.
프랑스군의 제식 수류탄은 나토 공통 E07수류탄이다.
세열 수류탄은 850그램, 연막탄과 소이탄은 510그램이다. 24개가 든 탄 박스 무게는 대략 20kg인 셈이다.
블랙맘바는 수류탄 박스를 개봉해놓고 연설을 했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여유가 늘어난 블랙맘바다.
“자, 프롤리나트 제군들, 쇼타임이다. 농구공을 잡은 지 오래일세. 클린 슛이 아니더라도 야유를 하지 말게나.”
수류탄 한 개가 우측 초소로 총알같이 날아갔다. 150m를 비행한 수류탄이 정확히 초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좌측 초소로 또 한 개가 날아갔다.
꽝- 좌우 초소가 불덩어리가 되어 무너졌다.
폭압에 튕겨져 나가는 보초가 선명히 보였다. 지근거리에서 수류탄이 폭발하면 열상을 당하지 않아도 폭압에 장이 찢어진다.
나머지 3개 초소에도 수류탄이 배달되었다. 가장 먼 초소가 400m다.
‘이거 가능하려나?’
400미터 거리까지 수류탄을 던져 본 경험이 없다. 수류탄 지연 신관은 4초 내외, 초속 100m로 던지면 착탄과 동시에 폭발한다.
블랙맘바는 단흡장호 호흡으로 공진을 일으켰다.
우웅- 심상에 느껴지는 떨림이 임맥과 독맥을 한차례 휘돌았다.
쒱- 수류탄이 직사포처럼 맞은편 초소로 날아갔다. 꽝- 초소에 착탄과 동시에 폭발했다. 몸에 불이 붙은 초병들의 비명이 아스라이 들렸다. 초소 6개를 박살내기까지 딱 10초가 소요되었다.
병영이 죽 끓듯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델라뚠(적이다)”
“하리-끄!(불이야!)”
“입타이드 비쑤르아(빨리 피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가 난무했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애들을 왜 죽여 망할 놈들아.”
블랙맘바는 투덜거리며 세열 수류탄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막사당 두 개씩 선사했다.
300m이상 떨어진 막사도 예외가 없었다.
신체 내부가 발전기를 돌리는 듯 웅웅거렸다. 숨을 들이켜고 근육을 한껏 응축했다가 팽창시키자 서늘한 기운이 손끝으로 빠져 나갔다. 총알같이 날아간 수류탄은 300m를 넉넉하게 비행했다.
마지막으로 두발의 소이 수류탄도 본부로 보이는 건물에 선사했다. 본부 막사가 거센 불길에 휩싸였다. 세열 수류탄을 배달받은 병영 막사도 화재가 발생했다. 프롤리나트 제3군 사령부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병영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퍼펑- 유류저장고에서 유폭이 일어났다.
“하리-끄!(불이야!)”
“입타이드 비쑤르아(빨리 피해라)”
막사에서 뛰쳐나온 병사들이 아우성을 쳤다. 몸에 불이 붙어 허우적거리는 병사만 십여 명이 넘었다.
“엄마가 불장난 하마 오줌 싼다 켔는데, 너무 심한 거 아인가 몰라. 근데 인간이 와이래 없노?”
일만 평은 넉넉할 넓은 병영이다. 규모치고는 병력이 별로 없었다.
하비브군의 병력 절반은 마쿰보군을 추적중이다. 라텔팀과 교전으로 축차 소모된 병력이 400명을 넘었다. 정찰 나간 병력과 북부 주둔군을 빼면 사령부에는 경비병과 패잔병만 남았다. 물론 블랙맘바가 세세한 사정을 알 리 없었다.
본부 막사에서 눈을 붙이던 아무드가 벌떡 일어났다.
“부관 부관!”
고함치던 그는 부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제기랄!”
구라디에서 부관이 저격을 당하고, 두 번째 부관 무함마도 야간 습격시 머리통이 터졌다.
막사에서 뛰쳐나온 그는 정신이 아찔했다.
부하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장면이 눈에 콱 틀어박혔다.
“칸마, 그놈이다.”
저격총을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놈, 바로 그놈이다.
사령부 막사와 초소는 이미 불덩이가 되었다. 사령부에 남아있는 전투 인원은 기껏해야 100명이다. 승산 없는 전투다.
공포가 분노를 눌렀다. 가슴이 서늘해진 아무드는 곧바로 지하 쉘터로 달렸다. 아무드는 지하 쉘터에서 정비중인BTR152 운전석으로 피신했다.
수류탄 박스에 연막탄 두 개만 남았다. 아쉬운 듯 내려다보던 블랙맘바는 연막탄 안전핀을 뽑지 않고 돌멩이 던지듯 집어 던졌다. 권총을 들고 고함을 질러 대던 지휘관과 RPG를 들고튀어 나오던 놈의 머리가 터졌다.
블랙맘바는 드라구노프를 초소 벽에 걸치고 여유 있게 저격을 시작했다.
껑껑껑- 일발필사의 저격이 이어졌다.
불을 끄던 병사, 침입자를 수색하는 병사 가릴 것 없이 우수수 무너졌다. 눈치 빠르게 저격 위치를 파악한 병사는 여지없이 저격당했다. 막사를 뛰쳐나온 게릴라들이 우르르 엄폐물을 찾아 흩어졌다.
드넓은 연병장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불타오르는 막사와 땅바닥에 널린 시체가 괴괴한 정적을 연출했다. 연병장에 흩어진 사체는 40여구, 40초도 채 걸리지 않아 벌어진 참극이다. 쏟아져 나온 피가 느릿느릿 흙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정적은 오래지 않아 깨어졌다.
생존자들이 초소를 향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캉캉캉- AK의 메마른 총성이 연신 울렸다.
“이제야 정신들 차렸나!”
블랙맘바는 초소에서 흘쩍 뛰어 내렸다.
지상에 가볍게 착지한 그는 드라구노프를 백팩에 거치하고 AK를 손에 들었다.
약하면 죽는다. 방태산에서 최도식의 부하들과 싸우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생사관이다. 발본색원, 애초에 불개미 집을 통째로 지워버리려 했다.
블랙맘바는 망설임 없이 불타는 막사로 뛰어들었다.
개머리판이 쉭하고 얼굴로 날아들었다. 깔끔한 돌려치기다. 블랙맘마의 고개가 90도로 툭 꺾였다.
퍽- AK총신이 무지막지한 역도로 상대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카 칸마! 전능하신 알라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총신에 가슴을 관통당한 중년 게릴라가 쥐어짜듯이 말을 뱉었다.
“이 자식아, 알라가 니놈들부터 용서하지 않을 끼다.”
블랙맘바는 총목을 쥔 손을 놓아 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AK를 더 이상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채집 판에 꽂힌 곤충 꼴이 된 게릴라를 내려다보는 블랙맘바의 눈빛은 싸늘했다. 생명을 끊었다는 저어함보다는 길이 든 총기가 아까웠다.
‘두 놈?’
블랙맘바가 끈으로 잡아당기듯이 솟구쳤다. 깡깡깡- 블랙맘바가 있던 자리에 총탄이 쏟아졌다.
쉬익 꽝- 몸을 날린 블랙맘바가 쿠크리를 투척하고 침상을 내리 밟았다.
“젠장!”
뿌드득- 침상 밑에 은신한 게릴라는 가슴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뼈와 살이 뭉개지는 느낌이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에 그대로 전해졌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다행히 예전처럼 살육의 충동에 빠지지 않았다.
쿠크리는 담요와 18mm합판을 뚫고 손잡이까지 박혔다.
침상 아래로 피가 흥건히 흘러 나왔다. 블랙맘바는 침상 밑을 확인도 않고 쿠크리를 뽑아냈다.
블랙맘바는 불붙은 막사를 차례로 방문해서 잔당을 소탕했다. 블랙맘바의 기감을 피할 존재는 없다. 땅속에 들어간 게릴라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좋은 물건이 있었군. 크크크”
줄지어 늘어선 바이크를 발견한 블랙맘바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콰직- 쿠크리를 연료통에 쑤셔 박았다. 흘러나온 가솔린에 불을 붙였다. 그는 불덩이가 된 바이크를 번쩍 들어서 막사를 향해 집어 던졌다.
쾅- 연료통이 폭발하며 유일하게 불붙지 않은 막사가 불타올랐다.
퍽퍽퍽- 막사에서 튀어나온 게릴라 셋이 동시에 뒹굴었다. 블랙맘바의 더블텝은 실전을 거치며 쓰리텝의 경지에 이르렀다.
펑- 펑- 이곳저곳에서 유폭이 계속 일어났다. 탄약고나 유류고일 것이다. 병영을 한 바퀴 돌았다.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기감을 펼쳐도 불안정한 대기 탓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살타는 냄새에 머리만 띵했다.
블랙맘바는 마지막으로 불타는 본부 막사로 들어갔다.
인적 없는 막사 내부에 커다란 깃발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샴시르와 AK를 엇갈려서 자수 놓은 화려한 깃발이다.
“깃발 하나는 뽀대 나네.”
블랙맘바는 깃발을 전리품으로 챙겨서 발걸음을 돌렸다.
생존자 몇이 기감에 잡혔지만 무시했다. 끓어오르던 투쟁심
이 가라앉자 언제나처럼 인자한 스승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블랙맘바는 합장하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악어의 눈물이지만 하룻밤사이에 너무 많은 생명을 끊었다. 마음이 눅눅했다.
새벽 1시 30분, 죽음의 천사의 손길은 가혹했다.
단 30분 만에 프롤리나트 제3군 코로뭉가 사령부는 군사적인 전멸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끝장났다.
프롤리나트 3군 사령부를 빠져 나온 블랙맘바는 불타는 사령부를 물끄러미 돌아보았다. 대략 백여 명이 아즈라일의 명부에서 지워졌다.
상주 인원이 적어서 다행이었다. 용병이란 직업을 택했을 때 살육의 업보는 이미 짊어졌으니 어찌하랴.
사람은 각자 쓰임이 있다.
천재적인 수학적 두뇌가 있어도 농사를 짓고 살면 쓸모가 없다. 사무실에 앉아 숫자를 맞추고 있으면 역발산의 기운이 무슨 소용이랴! 자신의 본래 쓰임새가 전장의 악마일지도…….
블랙맘바는 불덩어리가 된 사령부를 뒤로 두고 돌아섰다.
깨비텐과 동료들이 펄펄 뛰겠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죽음의 천사가 떠난 30분 뒤, 지하 쉘터에서 아무드가 기어 나왔다. 그는 쉘터 입구에서 불타는 사령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부하들이 수류탄 파편을 뒤집어쓰고, 오징어처럼 말려 들어가며 불탔지만 그는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았다.
블랙맘바가 복귀하자 라텔팀은 곧바로 줄행랑을 쳤다. 깨비텐은 블랙맘바를 문책할 정신도 없이 트라이던트 록으로 내달렸다. 전장 이탈은 특공대의 제 1수칙이고 만수무강의 지름길이다. 보급품을 수습한 즉시 꽁지에 불붙은 듯 전투 지역인 토코 툼을 이탈했다.
라텔팀은 날이 샐 무렵 에키야 남쪽 15km지점 사암 계곡에 도착했다.
그때서야 깨비텐과 블랙맘바가 얼굴을 마주했다.
“으윽, 냄새”
어지간한 깨비텐도 블랙맘바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에 코를 싸쥐었다. 피비린내, 땀내, 매캐한 그을음 냄새가 뒤섞여서 요상한 악취를 풍겼다.
“일단 보고를 듣자.”
“옛썰, 코로뭉가 오아시스에 놈들의 3군 사령부가 있었다. 대형 막사가 12개인 큰 병영이다. 클리어하고 잿더미로 만들었다.”
“으윽! 이게 뭔 소리야?”
깨비텐은 입을 딱 벌렸다. 이놈은 툭하면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른다.
“싹 밀어버렸다 이거지. 블랙답게 간단하구먼.”
부리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몇이나 죽였나?”
“정확히 모른다. 수류탄 22개를 막사에 고루 까 넣었다. 직접 사살한 놈은 대충 60명쯤 된다.”
“허얼!”
“허이구!”
깨비텐과 부리머는 감탄사만 뱉었다.
“블랙, 너는 명령 불복종에 적전 이탈했다. 인정하나?”
작전 중의 독단적인 행동은 즉결 처형감이다. 물론 콜네임 블랙맘바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깨비텐이 은근슬쩍 못을 박아두려는 의도다.
“퉁치자.”
블랙맘바는 프롤리나트 사령부에서 가져온 깃발을 깨비텐에게 던져 주었다.
깨비텐과 부리머는 당연히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