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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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장 사랑보다 정이라네8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남의 주머니에서 돈 꺼내기는 배고픔을 참는 것 다음으로 힘들다. 격주 일요일에 쉬고 꼬박 12시간 일해서 받는 월급이 16만 원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큰돈을 벌려면 큰 댓가를 치러야 한다.
오빠가 용병으로 나선지 햇수로 6년, 장대한 한옥은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고 마음이 으스러진 대가다. 우탁이네서 노예 생활을 할 때보다 결코 낫다고 볼 수 없는 시간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진순의 가슴에 비가 내렸다.
“오빠, 월급이 얼마라요?”
“궁금해?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대충 2천만 원쯤 될걸.”
“에이, 농담!”
“어, 진짠데.”
“말도 안 돼!”
“오빠는 허풍쟁이!”
말순이와 우순이가 찧고 까불었다.
“와, 이 이 자식들 바라. 정직한 오빠 말을 디기 안 믿네.”
무쌍이 잔뜩 억울하다는 듯 방방 뛰었다. 연순과 계순은 대학생, 말순은 고등학생, 우순은 아직 중학생이다. 무쌍은 기꺼이 사춘기 계집애들의 활달함에 동참했다.
“믿을 말을 해야 믿죠. 봉급이 아파트 열 채라는 게 말이 돼요?”
“끄끄끄, 맞아.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돼.”
“그렇죠 그렇죠? 말이 안 돼 말이!”
우순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들이밀고 수다를 떨었다. 무쌍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입꼬리에서 시작해서 잉크 번지듯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미소다. 가족은 별 의미없는 대화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관계다. 이래서 가족이 좋다.
“와킬은 길모하람(위대한 스승)과 말씀 중이십니다. 소인이 안내하겠습니다.”
알리 노인이 하동댁 일행을 데리고 안채로 올라갔다. 본채의 방은 여섯 개다. 방마다 전실을 갖추고 드레스룸과 화장실이 별도로 딸려있다. 한국은 한옥이든 아파트든 전실 구조가 없다. 전실은 프랑스풍이다. 무쌍은 설계 단계에서 대목장들을 이해시키느라 꽤 애먹었다.
30평 대청을 중심으로 이중 창호로 구분된 방은 전부 넓은 전실을 갖추었다. 각 방은 독립된 공간인 동시에 대청과 전실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 알리 노인이 앞뒤의 통창을 열어젖히자 바람이 휭휭 통했다.
“우와!”
처녀 다섯의 눈이 뒤집혔다. 한옥이되 한옥이 아니다. 툭 터진 공간에 놀라고, 고풍스러운 실내장식에 놀라고, 현대적인 편리함에 놀랐다. 호텔 스위트 룸이 따로 없다. 오자매는 정신없이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에구, 목침만 베고 누우면 잠이 절로 오겠네. 언니, 오데갔노? 아들이 성공해서 고대광실을 지어놓았구먼. 오데가서 흔적이 없노.”
하동댁이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진순님, 이 문은 후원으로 통합니다. 와킬께서 후원은 진순님이 직접 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원을 직접 관리하라고? 비밀의 화원인가!’
진순은 쪽문 열쇠를 받아들며 갸우뚱했다. 오빠에게 특별한 장소라는 이야기다. 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순간 진순은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복숭아밭이다.
“아, 오빠!”
얼마나 그리웠으면 이 넓은 땅에 복숭아나무를 심었을까. 작년에 새로 뻗은 가지마다 싹이 트기 시작했다. 보름만 지나면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게 된다. 어머니를 그리는 오빠의 심정을 알고도 남았다. 눈물이 차올랐다.
“으아악!”
“괴물이다!”
별채 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무쌍이 난감한 얼굴로 대우선사를 쳐다보았다. 깜둥이가 본신을 드러낸 채 낮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쯧, 조심하지. 어떻게 한다?”
하동댁과 진순이 동생들은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 깜둥이의 존재를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차라리 잘됐다. 그놈이 좀 잘생겼냐. 고양이로 지내는 게 낫겠다. 내 평생 사람을 대상으로 법술을 쓴 적이 없건만. 끌끌.”
대우선사가 혀를 찼다.
“특정 기억의 재인(再認) 과정만 살짝 덮으면 문제없지 않을까요?”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기억은 자아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여. 허나 깜둥이 녀석으로 인해 벌어질 혼란을 방지하려면 별수 없지.”
“그 새끼는 디져도 지랄이여.”
무쌍이 투덜거렸다. 오셀롯의 면상이 워낙 우월하다 보니 별것이 다 말썽이다. 진순의 동생들은 한창 물오른 처녀고 사춘기 소녀다. 알랭 들롱과 오마샤리프의 장점을 합친 레오빠 디망쉬가 등장하면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잘 생긴 도우너를 제공하고 오마샤리프를 오마주 한 무쌍의 잘못이다. 이래저래 육체를 헌상하고 영혼이 말살된 오셀롯만 서러웠다.
[공공아!]쉬익- 대우선사의 부름에 별채에서 검은 선이 죽 그어졌다.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흑표범이 실시간에 나타나서 척 엎드렸다.
“이놈아, 불렀으니 네놈이 왔지. 넌 그냥 표범으로 살아야겠다.”
“소승은 본래 표범이었사옵니다.”
깜둥이는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대우선사를 쳐다보았다.
“너는 이제부터 고양이다. 몸체를 십 분의 일로 줄여. 아니 사십 분의 일로 줄여라.”
보통의 고양이는 2kg~5kg, 대형 종도 8kg을 넘지 못한다. 깜둥이가 고양이처럼 보이려면 사십 분의 일로 신체를 축소해야 한다.
“형태도 고양이라는 동물로 바꿔야 합니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고양이를 몇십 배 확대하면 표범이다.”
“알겠습니다.”
스스스- 거대한 신체가 구멍 뚫린 풍선처럼 순식간에 5kg 남짓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이 정도 크기면 되겠습니까?”
“임마, 말도 하지 마. 말하는 고양이가 어딨어.”
대우선사가 눈을 부라렸다.
[헙, 알겠사옵니다.]식겁한 깜둥이가 입을 닫았다.
‘깜둥아, 미안하다.’
무쌍은 짠했다. 천방지축 계집애들 때문에 죄 없는 깜둥이가 고양이로 살아가게 되었다. 정작 깜둥이는 별 유감이 없었다. 인간이든 표범이든 고양이든 나무든 상관없다. 표범 형태가 가장 편안했을 뿐이다.
하동댁과 말순, 우순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오빠, 별채에 까만 괴물이 있어.”
“황소보다 더 커.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괴물? 까만 고양이 말이니?”
무쌍이 깜둥이를 가리켰다.
“우와, 귀엽다.”
단순한 우순이가 대뜸 깜둥이를 안아 들었다. 외형은 고양이가 아니라 표범이지만 크기가 고양이면 고양이다.
“아니야, 저건 아니야. 사자보다 더 큰 까만 괴물이었어!”
말순이 법석을 떨었다.
“나도 봤네. 고양이보다 백배는 더 큰 고양이 귀신이었네.”
하동댁까지 나섰다. 하동댁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떠들기 시작했다. 진순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대우선사가 소매를 휘저었다.
하동댁, 말순, 우순의 눈이 잠깐 흐려졌다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인지된 깜둥이가 기억에서 휘발하고 그 자리에 축소된 깜둥이가 도치되었다.
“어험! 말순아, 자세히 보거라. 네가 봤다는 괴물이 이 녀석 아니더냐?”
세 사람이 갑자기 손뼉을 쳤다.
“맞아요. 예를 보고 놀랐네.”
“스님 할부지, 소란을 피워서 죄송해요.”
말순과 우순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녀석은 봄베이 종으로 이름은 깜둥이다. 오랫동안 사부님께 도를 배운 영물이다. 잘 지내도록 해라. 말을 듣지 않으면 사부님에게 일러라. 버릇을 고쳐 줄 거다.”
마지막 말에 깜둥이가 움찔했다.
“정말 똑똑해요?”
“그러엄. 직접 보여주지. 깜둥아, 지금부터 내 말이 맞으면 오른쪽 발, 틀리면 왼쪽 발을 들어라.”
“야옹!”
“진순이는 예쁘다.”
깜둥이가 오른쪽 발을 척 들었다.
“진순이는 여자다.”
깜둥이가 오른쪽 발을 척 들었다.
“우와!”
여자애들이 환성을 질렀다.
“깜둥아, 해는 서쪽에서 뜬다.”
우순이 소리쳤다. 깜둥이가 왼발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고 빙글빙글 돌렸다.
“우와!”
“까르르!”
함성과 웃음이 터졌다. 오자매는 귀여운 외모에 사람만큼이나 똑똑한 깜둥이에 열광했다. 깜둥이는 귀여운 동물에 집착하는 여자아이들의 성향을 간과했다. 극성에 견디다 못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탈출을 시도했다.
‘내가 몬 산다. 몬 살아!’
진순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깜둥이가 어떤 존재인지 이미 알고 있다. 고양이가 아무리 똑똑해도 비교 분석력이 있을 리 없다. 깜둥이가 똑똑한 동물이라 믿는 동생들은 깜둥이보다 아이큐가 낮은 셈이다.
지난번에 만난 쌈디 아저씨도 인간이 아니었다. 오빠 주위엔 특이한 존재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오빠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모르는 부분이 많아졌다.
“집사님, 내일 방문할 손님은 몇 명인가요?”
“진순님, 에델 아가씨의 요리장이 식재료를 공수해 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에델? 누구인가요?”
진순의 눈이 번쩍했다.
‘헙, 스펀찌!(이런 병신!)’
알리 노인은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알리 노인은 귀족가 집사 경력이 20년이다. 여자들의 촉이 얼마나 좋은지, 시앗 싸움이 얼마나 살벌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아, 예. 뚜바이부르파님의 시녀입니다.”
‘에델 아가씨, 이렇게 말하는 소인을 용서하십시오.’
알리 노인이 죄를 빌 때 카운터 펀치가 날아왔다.
“노바토피아에서는 시녀도 요리장을 두나요?”
‘헙,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해.’
거듭 실수한 알리 노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태를 수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에델 아가씨가 천사처럼 착하다면 진순 아가씨는 위엄이 있다. 엉겁결에 숨기려다 보니 대형 사고를 쳤다.
“집사님, 곤란한 질문을 던져서 죄송해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알리 노인은 마음에 두지 말라는 말이 더 무서웠다.
“한국에 오신 손님은 한국의 풍습에 따라야지요. 한국 가정의 안주인은 손님들께 간에 기별이 갈 정도로 음식을 대접한답니다. 해부학적으로 간과 위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안주인은 자신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이다. 한편 간과 위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말에서 뼈가 느껴졌다.
“내일 방문할 손님은 약 50명입니다. 수행원을 대동하는 경우엔 70명까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한 시간 후에 손님 명단과 체류 기간, 오빠와 관계, 개인별 성향을 간단히 정리해서 가져오세요.”
딱 부러지는 지시에 알리 노인은 섬뜩했다. 와킬의 위엄을 연상케 하는 만만치 않은 아가씨다.
‘에델 아가씨가 밀리겠어.’
알리 노인의 표정에 그늘이 끼었다.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부대끼고, 겪어온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하동댁과 연순은 시트로앵 BX에 동승해서 칠성시장에 나가고 진순은 동생들을 데리고 집안 정리에 들어갔다. 오자매는 모두 손끝이 맵다. 집안은 순식간에 제자리를 잡아갔다. 하우스가 홈이 되려면 가족의 눈과 손길이 필요한 법이다.
알리 노인의 얼굴 그늘이 짙어졌다. 에델 아가씨는 의사다. 의사는 훌륭한 직업이지만, 안주인의 역할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만인의 칭송을 받아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꽝이다.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도 에델 아가씨 쪽의 저울이 올라갔다.
하동댁과 진순은 순식간에 16인석 대리석 식탁을 온갖 요리로 가득 채웠다. 하동댁의 손도 맵지만, 진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삶고, 지지고, 볶고, 굽고, 데치고, 식재료를 다루는 손이 물처럼 부드럽고 바람같이 빨랐다.
알리 집사는 멍하니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태어난 이래 이처럼 다양한 요리가 차려진 식탁은 듣도보도 못했다. 귀족가의 식탁도 눈앞의 산해진미에 비하면 빈민의 식탁이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처럼 다채로운 요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알리는 입안의 혀처럼 와킬을 시중드는 아가씨를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대우선사는 빙그레 웃고, 하동댁은 못 본 척했다.
알리 노인은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솔직히 에델 아가씨의 요리 실력은 참담한 수준이다. 아랍 속담에 요리 잘하는 아내는 모든 잘못이 용서된다는 말이 있다. 두 분 모두 아름답고 기품있지만, 저울추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기울었다.
“쌍아, 내 살다 살다 이런 집은 처음 본 기라. 와이래 크게 지었노.”
하동댁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대궐 같은 집을 유지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는가. 갈비를 뜯던 무쌍이 뒤통수를 긁었다.
“그기요, 우짜다 보이끼네 이래 됐심더.”
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정신없이 불고기를 욱여넣던 우순이 젓가락을 멈추었다. 어린 그녀도 나름 걱정되었다.
“오빠, 내가 다 세어봤거든. 방이 본채에 여섯 개, 별채에 사십 두 개, 행랑채에 네 개, 전부 오십 두 개더라. 우얄라꼬 이리 크게 지었노. 부도 안 났나?”
“부도? 하하하! 오빠 집은 별거 아이다. 외국에는 방이 수백 개인 집도 있능 기라. 별채와 행랑채는 일하는 사람과 손님용이다. 본채는 아지메하고 니들이 살아갈 집이다.”
순간 하동댁 식구들의 동작이 딱 멈췄다. 얼어붙은 눈동자 여섯 쌍이 일제히 무쌍을 향했다.
“나는 사랑채의 서재를 사용하면 된다. 나머지 방은 니들이 적당히 골라잡아라.”
추가적인 설명에도 얼음은 여전히 녹지 않았다.
“그기 무신 말이고?”
하동댁이 어눌하게 물었다.
“넓은 내 집 두고 머할라꼬 남의 집에 말만 한 가시나들 살게 합니까. 연순이, 계순이는 퍼뜩 짐 챙겨서 들어오니라. 말순이는 곧 졸업하니까 방을 찜해 놨다가 들어오고, 우순이는 오빠 집에서 핵교를 다녀라.”
무쌍이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박력에 밀린 하동댁은 우짜꼬 소리만 연발했다.
“우와와!”
“오빠 최고!”
숟가락을 내동댕이친 자매들이 우루루 방으로 달려갔다. 서로 방을 골라잡는다고 난리 법석이 벌어졌다.
“허이고, 갑자기 이기 무신 일이고.”
하동댁은 어찌해야 할지 요량이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