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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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장 사랑보다 정이라네12
에델은 후다닥 뛰어가는 이지하나의 뒷등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디노는 자신을 지키려다 죽었건만 자신은 아무것도 못 했다. 아버지가 폭도들에게 화형당할 때 자신은 무엇을 했던가? 목화밭 고랑에 숨어서 떨고 있는 열여덟 살 에델이 스물여덟 살 에델에 오버랩되었다.
자신이 울고 있을 때 진순은 행동했다. 거침없는 박력과 여자답지 않은 완력, 자신은 죽어도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뚜바이와 하룻밤 보내고 죽을뻔한 나약한 몸이다. 다락방에 숨어서 아버지의 마카롱을 기다리던 계집아이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나약했다.
“진순님, 준비되었습니다.”
이지하나가 김이 무럭무럭 솟는 양동이를 들고왔다. 급한 마음에 삶고 있는 갈비짝을 통째로 갈아왔다. 디스포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부어요!”
“옙!”
거침없는 지시에 이지하나가 묽은 고기 죽을 들이부었다. 사아아- 수분과 영양이 디노의 동체로 빨려들고 바짝 마른 찌꺼기가 푸슬푸슬 떨어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던 디노의 신체가 급속히 복구되었다.
놀라운 장면이지만 알고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생태학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녹색식물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녹색식물은 태양에너지를 가공해서 복잡한 탄소분자 형태의 에너지를 보관한다.
초식 동물은 녹색식물이 합성한 열량을 흡수하고,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이 가공한 에너지를 탈취해서 살아간다. 동물에 특정 소화기관이 발달한 이유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공회전할 때보다 고속으로 달릴 때 연료를 엄청나게 소모한다.
동물은 격렬한 움직임만큼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특정 소화기관이 발달했다. 식물이 잎을 통해서 에너지를 흡수하듯이 동물이 피부를 통해서 에너지를 흡수하면 소화기관은 별도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깜둥이가 대표적인 경우다.
디노는 환골탈태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세포를 구성하는 원자가 제올라이트(zeolite)구조로 변했다. 신의 촉매제로 불리는 제올라이트는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나 있는 결정이다. 1g을 펼치면 단면적이 축구장보다 넓어진다.
표면적에 비해 내부 공간이 큰 물질은 흡착력이 있다.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서 석유에서 각종 화학 물질을 뽑아내는 촉매제로 활용하고 오물을 분리 흡착하는 세제 원료로 쓰인다. 수직 벽과 천장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는 도마뱀 발바닥 세포가 제올라이트 구조다.
깜둥이는 제올라이트형 체세포 원자를 직렬 배치해서 필요한 원자를 대기에서 직접 흡수해서 에너지로 가공한다. 디노의 체세포는 병렬배치된 제올라이트 형이다. 직접 가공할 수는 없지만, 가공된 영양을 흡수할 수는 있다.
환골탈태한 현경 고수가 일정 기간 음식을 먹지 않아도 끄떡없이 생존하는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대우선사는 환골탈태를 거치지 않았지만, 외부의 기를 영양 보충제로 흡수하는 경지다. 에너지 가공 진화의 수준으로 보면 깜둥이>식물>대우선사>현경고수>디노의 순서가 된다.
파아아- 디노의 동체가 백광을 뿜었다. 적갈색 털이 우수수 빠지고 신체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에델은 난데없는 변화에 울상이 되었다.
“뚜바이, 디노가 죽으면 어떡해요?”
“걱정할 것 없다. 최적의 신체로 구성 중이다.”
무쌍이 에델의 어깨를 두드렸다. 새옹지마라 했다. 깜둥이에게 떡이 되도록 얻어맞은 디노는 삼 단계의 환혼구타술을 열 차례 시술받은 효과를 보았다. 신체를 재구성하는 와중에 에피듐의 피를 완전히 각성했다.
둥- 백광이 사라진 자리에 타는 듯 붉은 털에 덮인 오브차가 비슷한 생물이 형체를 드러냈다. 최종 진화 형 전투생물 디노의 탄생이다.
디노가 눈을 번쩍 떴다. 총기 있는 눈동자가 에델을 향했다. 끄응- 디노가 긴 혀를 내밀어서 쪼그리고 앉은 에델의 볼을 핥았다.
“디노! 살았어. 디노가 살았어. 흑흑!”
에델이 디노의 목을 부여안고 엉엉 울었다. 겉모습은 변했지만, 디노는 디노다.
[저 여자 바보 아냐? 죽지도 않았는데 뭘 살아.]“조용히 좀 해요. 뭘 잘했다고 그래요.”
진순이 인상을 북 그렸다. 깜둥이의 동그란 눈이 더 커졌다.
[내가 잘못했다고? 이해할 수 없다. 합리적이지 않아.]깜둥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은근히 생각해서 버릇없는 짐승을 혼냈더니 인제 와서 타박이다. 디노를 쥐어팰 때 진순의 뇌에서 아드레날린, 엔돌핀, 도파민이 대량으로 분비되었다. 지금은 코티솔이 분비되고 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뒤죽박죽이다.
부처님도 일순간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깜둥이가 진순의 변덕을 이해하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디노가 벌떡 일어났다. 쿠루루- 깜둥이를 발견한 디노가 털을 곤두세우고 이빨을 갈았다.
[킁! 저놈이 조금 더 세졌다고 겁을 상실했나?]깜둥이가 적의를 뿜는 디노를 노려보았다. 몸통에 바람구멍을 뚫어줄까. 세포 단위로 분해할까 고민에 잠겼다.
“디노, 그만해! 다치면 싫어.”
에델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에구, 고마워라!] 디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투 의지는 꺾이지 않았지만 까만 짐승이 노려보는 순간 신경과 근육이 얼어붙었다. 억울하지만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은 저놈의 상대가 못된다.
“디노, 이리 와.”
우웡- 디노가 무쌍의 면전에 넙죽 엎드렸다. 스스스- 억수갑이 솟아나와 손을 감았다.
“버텨봐라.”
뿌악- 억수갑이 디노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쑤셨다. 끼잉- 디노가 비명을 지르고 튕겨 나갔다. 내동댕이쳐진 디노가 벌떡 일어나서 제자리로 돌아와서 넙죽 엎드렸다. 기합받는 신병의 자세다.
“헐, 그걸 견뎌!”
타격 부위를 확인한 무쌍이 감탄했다. 디노의 가죽은 2인치쯤 찢어졌지만, 진피가 뚫리지 않았다. 7.62mm 탄자의 운동량을 버텨낸 셈이다. 이 정도면 51구역에서 만들어낸 키메라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오빠, 겨우 살아난 불쌍한 디노는 왜 때려요. 에델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요?”
진순이 호랑이처럼 으르릉거렸다. 무쌍이 찔끔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두 여자가 공동전선을 형성하게 생겼다.
“임마, 오빠가 테스트한 기라. 디노는 두 배 강해졌다. 이제 쌈디가 디노에게 얻어맞게 생겼어.”
쿠쿠쿠- 디노가 실실 웃으며 쌈디를 쓱 돌아보았다. 쌈디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지고, 선우현의 눈이 번쩍 빛났다. 힘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선우현이다. 깜둥이를 쳐다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두 배 강해졌다고? 내래 변태 고양이 새끼에게 맞아야 겠슴메.”
인간처럼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가 선우현을 노려보았다.
[가지가지 하는 인간이다. 변태 고양이가 원 없이 때려주지.]선우현은 깜둥이가 혼잣말을 고스란히 들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언니, 고마워요.”
에델이 배시시 웃었다.
‘엥! 언니?’
진순은 난데없는 언니 드립에 흠칫했다. 누가 나이 많은지 확인도 하지 않고 언니라니?
진순의 속마음을 짐작한 듯 에델이 말을 이었다.
“나이는 상관없어요. 내 마음이 진순님을 언니라 부르네요. 나는 신데렐라가 아녜요. 그리고 신데렐라를 싫어해요.”
‘신데렐라가 아니라고!’
진순은 울컥했다. 공감이다. 자신도 신데렐라가 싫다. 설명할 필요없이 에델의 마음이 전해졌다. 에델의 말인즉슨 무임승차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언젠가 오빠도 신데렐라가 싫다고 했다.
무쌍과 진순이 왜 신데렐라를 싫어할까? 세상에 퍼져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일천 종에 가깝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신분상승이다. 신데렐라는 자력갱생을 하지 못했다. 대모 요정이 나타나서 마법을 부리지 않았으면 평생 재투성이로 살아갈 존재다.
비천한 존재인 쥐, 생쥐, 호박, 넝마는 마법을 거쳐서 마부, 말, 마차, 화려한 옷으로 변신한다. 신데렐라 본인의 노력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모가 자신의 두 딸을 꾸며서 파티장에 데리고 갔을 때 신데렐라는 흐느끼며 숲으로 달려간다. ‘나는 이제 파티에 갈 수 없어!’ 한마디로 의지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존재다.
또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포인트는 성적 매력의 역설이다. 유리구두로 상징된 성적매력이 왕자의 마음을 잡아끈다. 성적매력이 없었으면 신데렐라는 재투성이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진순의 머릿속에 든 신데렐라는 성적 매력을 앞세워서 무임승차하려는 민폐 캐릭이다.
“나는 에델의 언니가 될 만큼 큰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오빠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잡초에 불과하답니다.”
진순이 고개를 흔들었다. 오빠가 없었으면 백화점에서 넥타이를 팔거나 염색공단에서 악취 나는 물과 씨름하고 있을 자신이다.
“언니, 진짜 큰 사람은 커 보이지 않아요. 커 보이는 사람은 세상을 가리는 그림자일 뿐이랍니다. 나는 오랫동안 지옥에서 살았어요. 사랑하는 사람 없고 신뢰할 사람 없는 세상이 지옥이랍니다. 나는 언니를 만나서 너무 기뻐요.”
에델의 벽안이 반짝반짝 빛났다. 굳건하고 가슴이 넓은 진순과 함께하고 싶은 열망이 심장을 달구었다.
“당신은 오빠께 필요한 사람이네요. 내 영혼은 이십 년을 오빠와 함께하면서 풍요로웠어요. 당신의 영혼을 가져오세요. 둘이서 풍요로웠는데 셋이면 더 풍요로운 삶이 되지 않겠어요.”
에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순의 눈에 부드러움이 가득 들어찼다. 이 여자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동반자다.
“으흑흑! 언니, 고마워요. 십 년 만에 가족이 생겼어요.”
에델이 진순을 왈칵 껴안았다. 이렇게 마음이 넓고 따뜻한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열여덟 살에 아버지가 비명에 죽고 어머니와 의절하다시피 살아온 세월이 십 년이다. 외롭게 힘들게 살아온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진순이 에델의 등을 토닥였다. 여기 상처 입은 영혼이 있다. 이 세상에 상처 입고 메마르지 않은 영혼이 있을까.
진순이 노래를 불렀다.
[캄캄한 월송산 산모퉁이 돌아갈 때 굳게 잡은 험한 손이 내 영혼의 이정표였다네. 세찬 개울을 건널 때 시큼한 땀 냄새나는 넓은 등이 내가 살아갈 터전이었다네. 세상을 다 가진들 임의 한조각 사랑만 할까. 만인의 칭송을 받은들 임의 속삭임만 할까. 뿌리에 정(精)을 간직한 뒤뜰의 오동나무는 봄이 오면 무성히 꽃피우고, 심장에 정(情)을 키운 여자는 임의 영혼을 위로하네. 나는 이 자리에 뿌리박고 내 갈 길을 간다네. 눈보라도 폭풍우도 두렵지 않네. 목숨을 다해도 임께 미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라네.]맑고 고운 노랫가락이 고즈넉이 퍼져나갔다. 무쌍은 가슴이 저릿했다. 원호문은 안구사(雁丘詞)에서 ‘정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생과 사를 같이하게 하는가!’라고 울부짖었다. 진순은 한술 더 떴다. 목숨을 다해도 부족할까 두렵다는 말에 오한이 들렸다.
‘으으!’
선우현은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각박하게 살아온 그로서는 들어봐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요.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다. 자신과는 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다. 통역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옴부티가 눈살을 찌푸렸다. 선우현이 움찔했다. ‘저 자식은 뭘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어.’ 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가요, 손님을 맞이할 요리를 만들어야 해요.”
진순이 에델의 손을 잡았다.
“요리!”
에델은 흠칫했다. 사프란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요리치임을 깨달았다. 하마터면 뚜바이와 블랙컬처를 독살할 뻔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요리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언니, 난 요리를 할 줄 몰라요.”
에델이 대답에 힘이 쭉 빠졌다. 그동안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준 뚜바이는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지 못하다니……. 에델의 가슴에 비가 내렸다.
“요리는 사랑이지 스킬이 아니에요.”
“그 그렇죠. 요리는 사랑이죠.”
에델은 용기가 불끈 솟았다. 진순과 함께하면 요리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한국산 암호랑이와 서양 구미호가 손을 잡고 안채로 향했다.
진순과 에델의 만남은 디노 구타 사건으로 인해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진순은 졸지에 세 살이나 많은 동생을 얻었고, 에델은 외로운 어깨를 기댈 동기를 얻었다. 무쌍은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었다. 디노는 죽도록 얻어맞은 덕분에 전투 생물로 재생했고, 때린 깜둥이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주역에 운종룡 풍종호라는 구절이 있다. 변화는 바람과 구름에서 시작된다. 풍운아라는 말도 이 구절에서 나왔다. 바람과 구름, 진순과 에델의 만남이 무쌍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갈지 두고 볼 일이다.
“상한아, 쌍이가 외국에서 일한다 카디마는 돈을 엄청나게 벌긴 벌었나 보다.”
“글게요. 지지리 고생했던 놈인데 잘 되었지요.”
상한이 서재를 돌아보았다. 여자 없이 지내는 사내새끼의 방은 대충 뻔하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엉킨 덩어리가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굴러다닌다. 윗목에 두루마리 휴지 벌크가 있고, 도색스런 페이지를 접어둔 외설스런 잡지가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다. 뭣하면 미군 캠프에서 흘러나온 펜트하우스나 플레이보이도 한자리 차지한다. 그게 혼자 사는 사내새끼들이 서식하는 공간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스무 평이 넘는 방에 머리카락 한 개 떨어져 있지 않고,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청소를 깨끗이 한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