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35
x 535
제49장 사랑보다 정이라네13
상한은 개천이 흐르는 잔디밭과 대나무 숲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돈을 얼마나 벌었으면 이런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상전벽해, 새옹지마, 고진감래……. 적당한 문자가 없다. 별로 좋지 못한 머리가 자갈 구르는 소리만 냈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조차 예술품 아닌 게 없고, 일상 비품조차 고아한 기품이 흘렀다. 돈 있다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다. 쇼핑백에 든 싸구려 뻐꾸기시계를 내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 굶던 친구는 큰 성공을 거두고, 친구를 도와주던 자신은 자식새끼 분유 한 통 선뜻 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성공한 친구가 고맙고 기뻤지만, 망가진 자신의 모습이 슬펐다.
“상한아, 무쌍이는 니하고 둘도 없는 친구 아이가. 에미가 슬쩍 한마디 던지마~”
“엄마!”
상한이 꽥 소리 질렀다.
“옴마나! 이놈아, 소리는 와 지르노.”
“엄마, 절대 그러지 마요. 친구에게 부담 주는 놈은 친구가 아닌 기라요.”
“이놈아, 니 행핀이 똥오줌을 가릴 때가. 그나마 조금 남은 달구새끼도 절반이나 폐사했삐맀다. 자갈 삶아 묵을 끼가.”
상한이 엄마가 가슴을 쳤다. 무쌍이는 자신이 잘 안다. 어쩌다 큰 부자가 되었는지 연유를 알 수 없지만 어려운 친구를 외면할 아이가 아니다.
“됐심더. 무쌍이는 밥을 굶었지만, 저는 밥을 굶진 않잖아요. 치료비 대느라 포도밭까지 팔아묵은거 죄송함더. 열심히 일해서 꼭 찾아드리겠심더.”
“어이구, 노가다도 못하는 성치 않은 몸으로 뭘 우짤라고 그카노. 내사마 고생하는 며늘아기를 보마 속에 천불이 나는 거라. 쌍이에게 귀띔만 살짝 하자꾸나. 입 꾹 다물고 있다가는 내중에 쌍이 원망들을끼다.”
“하여튼 안돼. 엄마가 쌍이에게 씰데없는 소리하마 콱 죽어삘라요. 그렇게 아시소.”
“아이구, 저놈 새끼 말하는 꼬라지 보소. 사내자식이 대나무 마디처럼 맥혀가지고 설랑 우예 저럴꼬!”
상한이 엄마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비열한 새끼들!’
상한은 분노가 치밀었다. 나라를 위해 총을 든 결과가 이거란 말인가! 울분이 솟구쳤지만, 마땅히 풀 데도 없었다. 보훈처에서는 한 번 더 찾아오면 공무 방해로 집어넣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종주먹을 흔들어봐야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손님,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알리 노인이 찾는 바람에 모자간의 대화가 끊어졌다.
“허, 상한이가 어쩌다가!”
보니파스를 맞이하던 무쌍이 탄식했다. 7년의 세월은 절대 짧지 않았다. 친구도 자신만큼이나 곡절이 많았던 모양이다.
손님들이 연속 도착했다. 에밀과 폴이 도착하고, 보니파스 DGSE 총국장과 아리바 과장이 도착했다. 응심제는 축하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보니파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병풍을 쓰다듬고, 고려청자에 감탄하고, 화문석의 치밀한 조직과 아름다운 문양을 찬양했다.
“동방불패, 귀중한 골동품을 이렇게 내돌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
보니파스가 깔고 앉은 화문석을 쓰다듬었다. 치밀한 조직과 정교한 문양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크리스티앙 디오르, 반 크리드 라펠 같은 명품 브랜드에 없는 깊은 손맛과 시간의 힘이 느껴졌다.
“골동품을 보안 장치가 된 수장고에 집어넣고 문을 잠가두면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내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조상의 혼이 담긴 물건을 직접 보고 느끼기를 바란다.”
“오우, 자부심이 대단하군.”
“한국의 역사는 오천 년이 넘는다. 잦은 전란통에 문화 유산이 불타고 약탈당하지만 않았으면 그리스나 로마가 명함도 못 내민다. 나는 도적들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찾아올 것이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보니파스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골동품을 핑계로 무쌍을 슬쩍 찔렀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프랑스는 영국 다음으로 타국의 문화재를 많이 약탈한 나라다.
프랑스는 각국 정부의 문화재 반환 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문화재반환 요구에도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블랙맘바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문제가 간단치 않게 된다.
“걱정할 것 없다. 외규장각 의궤 외에는 별것 없더군.”
“별것 없다고?”
“당신이 깔고 앉은 화문석, 당신이 들고 있는 찻잔, 눈앞의 서탁은 골동품이 아니다. 공방에 가면 수십 프랑, 수천 프랑이면 살 수 있는 물건이다. 약탈해간 공예품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오우, 골동품이 아니라고!”
보니파스의 입이 벌어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골동품인데 골동품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었다.
“가격 정책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에르메스, 루이비통,같은 도둑놈들의 물건과는 격이 틀리지. 흐흐흐!”
“음~”
보니파스의 심중이 복잡했다. 자국의 전통과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틀림없이 애국자다. 나쇼널 트레조르 대우에 불구하고 블랙맘바의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
보니파스는 품속에 들어있는 팡게를 슬쩍 쓰다듬었다. 블랙맘바가 초능력으로 다듬은 천하무쌍의 단검, 팡게를 받는 순간 그는 동방불패의 식솔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블랙맘바는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협력자지만, 동방불패는 심정적인 보스로 각인된 존재다. 보니파스는 보스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협력자가 프랑스를 위해서 계속 현역으로 뛰었으면 하는 애국심 사이에서 방황했다.
“와킬, 마르주리 회장이 도착했습니다.”
알리 노인의 전언이 보니파스의 상념을 잘랐다.
“거물이 왔군! 마르주리 회장까지 집들이를 오다니 한국의 국격이 동방불패의 인격만 못하구먼.”
자존심이 상해있던 보니파스가 이죽거렸다.
“새알이 새 둥지보다 큰 법은 없다.”
무쌍이 무덤덤하니 대꾸했다. 보니파스는 감히 대꾸하지 모했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한 떼의 인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억, 자베르 회장!”
보니파스가 벌떡 일어났다. 마르주리 회장과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는 초로의 신사는 아레바사의 자베르 회장이다. 블랙맘바를 소개해 달라는 청을 냉정히 거절했더니 직접 나타날 줄이야.
무쌍을 발견한 마르주리 회장의 걸음이 빨라졌다. 댓돌 아래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뚜바이부르파님, 답상이 인사 올립니다. 축하합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건강해 보이니 좋다.”
무쌍이 반절로 맞이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인생을 재시동해서 새 삶을 사는 기분입니다.”
“좋은 일이다. 육신이 건강하면 정신도 강해진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업의 경과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 친구가 미쳤나?’
자베르 회장은 똘마니 행세를 하는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 다시 없을 선지자인 양 극찬하더니 아예 주인을 모시는 노예 행세다. 젊은 동양인이 사이비 종교 교주로 보였다.
“동행하신 분은?”
“아레바 사의 보통 자베르 회장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마르주리 회장이 멍하니 서 있는 자베르 회장의 옆구리를 찔렀다. 자베르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었다.
“보통 자베르요. 노바토피아의 주인이신 뚜바이부르파님을 만나고 싶어서 감히 불청객이 되었소.”
“환영한다. 내 집은 응심제다. 불어로 표현하면 르 뵈프 드 라 발레 느 꼬네 빠 레 수프헝스 뒤 뵈프 드 라 꼴린느(계곡에 사는 소는 언덕에 사는 소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와 르 쏠레이 뤼 뿌흐 뚤 르 몽드(태양은 만인을 비춘다.)를 합친 의미쯤 되겠지. 마음이 가는 대로 오고 마음이 가는 대로 갈 수 있다.”
“불청객을 환영해 주셔서 고맙소. 마르주리 회장의 말을 듣고 꼭 만나보고 싶었소.”
“만나면 알만한 사람이고, 알고 보면 친구가 된다. 편히 쉬기 바란다.”
깊은 눈빛을 받은 자베르는 흠칫했다.
‘사이비 교주는 아닌데…….’
자베르는 의아했다. 이십 대 중반의 동양인 젊은이는 현자처럼 고아했지만, 딱 그 정도다. 마르주리는 무엇 때문에 꼭 만나보라고 권했을까?
“자베르 회장 안녕하시오?”
“여어, 수영장 사장님이 웬일이시오?”
보니파스를 보고도 못 본 체하던 자베르가 환하게 웃었다.
‘너구리가 따로 없구먼.’
보니파스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수영장 사장은 자신의 별명과 DGSE를 한꺼번에 비꼬는 말이다.
“노바토피아는 프랑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자치정부요. 본인이 왕을 찾아올만하지요. 회장은 웬일이시오?”
“나야 친구 따라 유람왔지요.”
자베르는 유들유들했다.
“천하의 자베르 회장이 뜯어먹을 것 없는 극동 구석의 작은 나라에 유람차 왔다고? 진담이면 내일 르 몽드 일면에 실릴 사건이고 농담이면 다른 속셈이 있겠지?”
“하하하, 보니파스 사장님이 보는 세상은 음모와 속임수로 가득 차 있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인간과 우라늄밖에 없소. 아직도 블랙맘바를 소개해 줄 결심이 서지 않았소?”
“블랙맘바는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요. 그는 현상금 일억 프랑을 희생된 군인들의 위로금으로 내놓고 흔적없이 사라졌소.”
“억, 그럴 수가!”
자베르가 펄쩍 뛰었다.
“그는 단순한 능력자가 아니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재단하기 힘든 기인이오.”
“호오! 일억 프랑을 던져버리다니 대단한 인간이군. 지난번에는 꼭 부탁할 일이 있었지만, 이젠 인간적으로 만나고 싶어졌소.”
자베르가 눈을 반짝였다.
“인연이 닿으면 저절로 만나게 될 거요. 당신이 그를 만나고 싶다면 수행원 숫자부터 줄여야 할거요.”
보니파스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블랙맘바가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베르 회장이 고소했다.
“수행원 숫자?”
자베르가 마르주리를 쳐다보았다. 마르주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주리 회장은 통역사 한 명만 대동했지만, 자베르 회장의 수행원은 열명이 넘는다. 노바의 주인이 위세를 부리는 인간을 좋아할 리 없다.
“친구, 시간은 많아.”
마르주리 회장은 자베르 회장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기회를 주었으니 인연을 얻고 못 얻는 것은 본인의 복과 눈에 달렸다.
“오길비, 통역만 남기고 모두 귀국하라.”
“위!”
오길비라 불린 중년 남자가 두말하지 않고 일행을 지휘해서 돌아섰다.
‘호, 제법이네. 직원을 구하려고 현상금 일억 프랑을 걸만한 인물이군.’
무쌍은 살짝 감탄했다. 아랫사람이 보스의 상식 밖의 지시를 두말하지 않고 따르려면 상호간에 굳건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무지막지한 독재자다.
이지하나가 요리사와 경호원들을 지휘해서 후원에 연회장을 준비했다. 필요한 집기와 조리도구, 식재료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차량과 함께 지원받았다.
한켠에서는 장쒼이 화덕을 걸고 가스봄베를 연결했다. 안채 주방에서는 진순과 하동댁이 짚은다리 아줌마 다섯을 지휘해서 지지고 볶기 시작했다. 응심제가 가지각색의 요리 냄새로 가득 찼다.
이지하나는 불란서 요리와 아랍식 요리를 만들고, 장쒼은 중화요리를, 진순은 한식을 만들어냈다. 메인 요리는 불고기와 갈비, 장어구이 같은 한식이 오뜨 뀌진과 경합하고, 디저트는 냉면과 팥빙수가 장쒼의 하가우(새우 교자), 바다제비 수프, 해파리 냉채와 경합했다. 넓은 후원에 그야말로 국제적인 만한전석(滿漢全席)이 베풀어졌다.
술은 샴페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보니파스는 고급 샴페인 돔 페리뇽을 무한 공급했다. 샴페인의 본래 이름은 ‘상파뉴’다.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이 샴페인이다. 타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이란 이름을 쓰지 못한다.
한국인은 독특한 외국의 요리를 즐기고, 외국인은 한국 전통 음식에 열광했다. 기즈 박사는 입이 한 개밖에 없는 진화 경로를 원망하고, 선우현은 위가 네 개인 소를 부러워했다.
하동댁이 놉으로 부른 짚은다리 아줌마들은 넋이 빠졌다. 상상도 못 해본 엄청난 저택에 질리고, 몰려든 온갖 외국인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외출했다.
“화따, 내 살다살다 이렇게 돈이 썩어 자빠지는 부잣집은 첨 보네잉.”
“하이고메, 손님들이 마카 코쟁이구마. 까맣고, 하얗고, 빨갛고 정신이 하나도 없구마잉.”
“저 사람은 그 머시고 아랍 사람인갑다. 눈이 십 리는 푹 들어가고 코가 엄청나게 크구마. 호호홋!”
“그케! 그래서 요상한 양고기가 배달되었는갑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손도 바쁘고 입도 바빴다.
“하동댁 보레이, 저 젊은 양반이 주인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영동댁이 물었다. 무쌍이 짚은다리를 떠난 지 십삼 년이 지났다. 소가 닭보듯이 지냈던 사이다. 인물이 훤한 건장한 청년과 피골이 상접한 새까만 소년을 연결짓기엔 공통분모가 부족했다.
“잘 생깄지러?”
하동댁이 시침을 뚝 따고 반문했다.
“하이고메, 내 생전에 저렇게 체격 좋고, 잘생긴 남정네는 첨 보는구마. 장가는 갔을라나. 내 딸 영순이 나이가 꽉 찼는데 우짜꼬!”
“찌랄한다. 이런 부잣집 주인이 머가 답답해서 영순이를 돌아보겠노.”
“머라카노. 내 딸이 어때서.”
뜬금없이 영동댁과 북삼댁의 말다툼이 벌어졌다.
“마카 시끄럽다. 하동댁, 무신 수로 이런 부잣집에 턱을 걸었노?”
매촌댁이 정수리를 바투 들이밀었다. 하동댁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엄마, 오빠가 부른다.”
연순이 주방에 들어와서 하동댁을 찾았다.
“와?”
“손님들께 인사해야 된다꼬 퍼뜩 오라 칸다.”
“옹야, 귀한 손님들이 기다리마 클 나제.”
하동댁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행주치마를 벗어던지고, 치마를 털털 털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짚은다리 여자들을 불렀다. 하동댁도 동네 여자들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다. 김말순을 편들고, 무쌍을 챙기다보니 저절로 왕따가 되었다. 하동댁도 뒤끝이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