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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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장 사랑보다 정이라네15
“작전요원과 르 몽드 기자가 동네방네 쌍나팔을 불었더군. 국장답지 않은 작전이었어. 요원들의 수준도 낮고 말이야. 미테랑의 코가 쑥 빠졌으니 국장 입지도 흔들렸겠지.”
무쌍이 혀를 찼다. 5년간 죽자고 세상을 뛰어다녔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국제 정세를 보는 눈이 뚫리고 위정자들의 속내를 보는 눈도 생겼다.
“나쇼널 트레조르 신화에 취한 업보라고 해야겠지.”
보니파스가 쓴 입맛을 다셨다. 근래 몇 년간 승승장구한 DGSE 실무진은 자만에 빠졌다. 블랙맘바라는 치트키의 솔루션을 조직의 역량으로 착각했다.
악 소리 나는 수당에 놀란 국가안전회의도 블랙맘바 가동을 꺼렸다. 눈앞의 예산만 보이고 수백 배의 반대급부는 보지 못하는 청어와 청어 대가리의 작태다.
작전은 단순했다. 요원이 그린피스 단원으로 위장 잠입하고, 관광객으로 위장한 정보부 요원이 폭약을 전달한다. 폭약을 배 밑바닥에 장착하고 그린피스 대원을 하선토록 유도한다. 꽝- 그러면 끝이다.
문제는 배가 침몰하고 퇴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요원은 블랙맘바가 아니었다. 항구에서 얼쩡대던 요원이 경찰과 격투 중에 체포되고, 반핵 주의자인 르 몽드 기자가 기사화하는 바람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총체적인 부실 작전이었다.
국방장관이 독박쓰고 물러났지만, 국내외의 압박 수위는 늦춰지지 않았다. 여론도 여론이지만 청어 대가리(미테랑)가 민감한 공작에 블랙맘바를 투입하지 않았다고 성질을 부렸다. 블랙맘바 투입을 꺼릴 땐 언제고 막상 사건이 터지자 정책적 판단을 잘못했다고 난리를 부렸다.
“블랙맘바를 써먹지 않았다고 탄핵당했겠군. 흐흐흐!”
깡마르고 지친 얼굴을 쳐다보던 무쌍이 실실 웃었다. 뻔했다. 조직의 최고 대가리가 앗사리하게 실책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희생자는 정해져 있다.
“차라리 잘된 셈이네. 죽음의 천사가 그딴 의뢰를 받아들일 리도 없고, 나도 의뢰할 생각이 없었네. 흐흐흐!”
보니파스도 실실 웃었다. 청어 대가리는 하나는 알고 둘을 모른다. 블랙맘바는 돈에 움직이는 쓰레기도 아니고, 스위치를 누르면 작동하는 마리오네트도 아니다.
지금까지 수행한 의뢰는 그의 의지와 합치했기 떄문이다. 평화주의자인 그린피스의 배를 폭파하라는 의뢰를 했다가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35년이나 음지에서 놀았다. 국가를 위해서 못 할짓도 많이 했다. 나는 할 만큼 했어.”
보니파스가 중얼거렸다. 내일모레면 육십이다. 동양식으로 말하면 인생 1막이 끝나간다. 인생 2막은 양지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DGSE가 음지라면 노바토피아는 양지다. 사하라 사막에 신기루처럼 등장한 역동적인 나라, 노바토피아를 만들어나가는 운과 기세를 타고난 사나이 동방불패! 동방불패, 노바토피아, 도바 유정의 조합은 신의 한 수다.
운이 따르고 기세를 탄 인간의 행보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 노바토피아는 앞으로 5년이면 독자적인 경제 기반을 갖추게 된다. 거짓말처럼 등장한 도바의 유정이 그때까지 개발 자금을 뒷받침한다. 자신이 할 일은 노바토피아의 무력 구축이다. 보니파스가 팡게를 꺼냈다.
“동방불패, 친구의 일을 처리하기 전에 팡게에 이름부터 주게. 답상이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눈꼴시어서 못 보겠네.”
무쌍이 팡게를 받아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답상보다 더 높은 봉우리는 에베레스트밖에 없다.
“초모룽마(에베레스트, 만신의 어머니)라도 받고 싶은가?”
“큰일 날 말씀, 초모룽마는 오늘 낮에 보았네. 에델이 만인의 사랑을 받을 아가씨라면 진순은 만인을 포용할 아가씨더군.”
보니파스가 펄쩍 뛰었다. 보니파스는 정보기관의 수장답게 에델과 진순의 특징을 한마디로 집어냈다. 무쌍이 씩 웃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가가가각- 팡게 손잡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초고리(Chogori), 큰 산이란 뜻으로 답상과 같은 K2 봉을 뜻하는 발티어다.
“보니파스는 초고리를 받으라.”
“고맙네. 이 시간부터 초고리는 노바 멤버로서 노바토피아의 껍질이 되겠네.”
보니파스가 팡게를 두 손으로 받았다.
“우리 사이에 잡설은 필요 없겠지. 초고리가 할 일은 노바토피아의 무력 시스템 구축이다.”
“잘 알고 있네. 당분간 수영장 사장 자리를 지키려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겠지.”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파스가 총국장 자리에 있어야 치장 물자를 원활히 지원받을 수 있다. 이래서 영리한 사람과 일하기 편하다.
“뼈마디가 쑤시도록 부려 먹어주지.”
“늘그막에 밥 빌어먹을 자리를 얻었으니 면피는 해야지.”
보니파스가 비시시 웃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기는 처음이었다.
“초고리, 축하해요.”
에델이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축하는 에델 아가씨가 먼저 받아야죠. 요아 하우스가 흔들렸다는 정보가~”
퍽- 뒤통수에 타격을 받은 보니파스가 방바닥에 코를 박았다.
“억, 디노!”
식겁한 보니파스가 입을 닫았다. 소리 없이 나타난 디노가 앞발을 주먹처럼 쥐고 흔들었다. 한마디 더 했다간 골통이 깨질 판이다. 보스의 측근은 개새끼 한 마리도 평범한 놈이 없다.
“호호, 쌤통!”
에델이 혀를 날름했다. 디노는 시침 뚝 따고 먼 산을 보았다.
“축하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하인이 될 수 있을 거요. 하하하!”
기즈 박사가 껄껄 웃었다. 노바토피아에서 하인은 세상 사람이 말하는 하인이 아니다. 뚜바이부르파를 대리하는 최고의 존재다. 설레발의 지존 오버의 마왕, 옴부티가 만든 규칙이다.
“젠장,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잘 봐달라고.”
보니파스의 강퍅한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상한과 상한이 엄마는 눈만 끔벅거렸다. 빠르게 이어지는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무슨 의미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써버럴, 먼 소리고? 가방끈 짧은 놈 서러워 살겠나.”
상한이 조바심을 냈다.
“오빠, 친구분 일을 마무리해야죠.”
에델이 주의를 환기했다.
“그렇지. 기즈, 수고 좀 해줘. 이놈은 내 불알친구야.”
“자네 친구면 내 친구다. 생체조직의 전기신호 연동은 내가 최고봉이지. 걱정하지 말게.”
기즈가 흔쾌히 수락했다.
“상한아, 엉아가 니 다리를 고쳐주마 니는 엉아에게 뭐 해줄래?”
무쌍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멀찍이 떨어져 앉은 상한이 엄마가 귀를 쫑긋 세웠다. 버럭 달려들어서 진짜냐고 묻고 싶지만, 아들놈이 입을 뻥긋하면 가출한다고 협박했다. 속만 숯처럼 타들어갔다.
“어무이도 이리 오시소.”
“오이야!”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던 상한이 엄마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내사 옛날부터 니 쫄따구 아이가. 내 끼 니끼고 니 끼 내 꺼 아이가. 근데 정말로 고칠 수 있나?”
상한의 음성이 바르르 떨렸다. 무쌍이 대뜸 상한의 다리를 잡았다.
“세상엔 보이는 게 다가 아이다. 쪼매 아플끼다. 참아라.”
둥- 공진파가 투사되었다. 염증으로 부식된 뼈 조직이 사포로 갈 듯이 분해되었다. 우르르- 뼈 조직에 스며든 공진파가 세포를 흔들어서 활력을 깨웠다.
협착된 모세혈관이 살아나고 미토콘드리아가 활동을 개시했다. 이 정도면 조골세포가 뼈를 재생한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할 일이다.
무쌍이 추력을 흡력으로 바꾸고 정강이와 대퇴부를 쓰다듬었다. 뼈와 근육에 박혀있던 자잘한 파편이 흡공파에 빨려 나왔다.
“끄으으!”
상한이 이빨을 악물었다. 다리 곳곳에서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무쌍이 손을 떼자 준비하고 있던 에델이 피투성이가 된 다리를 거즈로 닦아내고 소독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상한이 엄마가 숨을 들이켰다.
무쌍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기즈 박사와 에델의 눈이 커졌다. 손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깨알 같은 금속 파편 수십 개가 후두둑 떨어졌다. 에델은 익숙한 장면이지만 보니파스와 기즈의 놀라움은 컸다.
“보스의 이적 중 한 가지군.”
보니파스가 감탄했다.
“쌍아, 이기 다 머꼬?”
상한이 엄마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장기와 뼈에 박혀있던 미세한 파편입니다. 상한이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아이구, 이놈아! 소 같은 놈아!”
상한이 엄마가 아들을 잡고 울었다. 몸에 흉물스런 파편이 수십 개나 박혀있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아들이 겪었을 고통에 억장이 무너지고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아프다 카디마는 벨거 아이네.”
이마에 진땀이 밴 상한이 큰소리를 쳤다. 중딩 때부터 독종으로 소문난 놈다웠다.
“기분이 어떠노?”
“시원하구마. 우예된 기고? 흡성대법이제?”
무쌍이 빙긋이 웃었다. 단순무식한 혈갈다웠다. 무협소설 마니아 아니랄까 봐 흡성대법 타령하는 녀석이다. 흡공파로 뽑아냈으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상한아, 잘 들어라. 니는 오늘 날짜로 주한 프랑스 대사관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그기 먼 소리고?”
상한이 얼음에 나자빠진 소처럼 눈을 끔벅였다.
“임마,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기다.”
무쌍이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상한의 표정이 꿈을 꾸듯 몽롱해졌다. 대장! 얼마나 그립고 아련한 호칭인가. 중고딩 때 혈갈이라 불리며 함께 보낸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거다.
“니는 외교관 신분으로 기즈 박사님과 함께 출국해서 비밀 장소에서 수술받는다. 간단히 말하면 스텐스로 뼈를 보강하고 인공 근육과 인공 힘줄을 부착한다. 재료도 극비고, 수술법도 극비다. 수술이 제대로 되면 너는 100m를 6초에 뛰고, 말 달리는 속도로 한 시간을 달릴 수 있다.”
“지 진짜가? 내가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되는 기가?”
“시끄럽고. 수술 비용은 우리 돈으로 50억쯤 들어간다.”
“50억?”
상한과 상한이 엄마의 얼굴이 꺼멓게 죽었다.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50억이란 금액만이 고막을 앵앵 울렸다.
“혈갈 이상한이 50억 가꼬 죽상이가. 홍도야 울지마라. 엉아가 있다. 너는 그냥 치료만 받으면 된다. 나머지는 엉아가 알아서 한다. 수술과 재활까지 삼 개월쯤 걸린다. 너는 오늘부터 입이 없다. 무슨 뜻인지 알제?”
“알았다. 죽을 때까지 입을 닫을게.”
“힘을 내보여서도 안 돼. 기양 평범하게 살아야 한데이. 약속할 수 있겠나?”
“당연하지. 약속한다.”
“어어!”
상한이 엄마는 갑작스러운 전개에 넋이 빠졌다. 어어 소리만 연발했다.
“어무이도 들었지요? 상한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수술을 받습니다. 어무이도 비밀을 지켜야 합니데이.”
“하모. 늙은이는 입이 없따. 상한이가 다리를 찾을 수만 있으마 내가 먼 짓을 못하겠노. 근데 엄청난 수술비를 우야노.”
상한이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걱정으로 꺼멓게 변했다.
“아무 걱정 마시소. 잘 될 낍니더.”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보니파스는 황홀했다. 바로 저 미소다. 세상을 오시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자신을 믿는 자부심에 찬 미소, 진정한 사나이의 미소다.
“상한아, 집들이 선물을 가져왔으면 내놔야지.”
“어, 그게 말이다. 이게 아닌데…….”
상한이 쇼핑백을 등 뒤로 감추었다. 상한이 엄마의 눈이 바르르 떨렸다. 난감해 하는 아들의 심정이 올올이 느껴졌다. 가슴이 턱 막혔다.
“임마, 엉아가 50억을 쓰겠다는데 쩨쩨하게 굴래.”
쇼핑백을 홱 가로채서 내용물을 꺼냈다.
“야, 잘됐다. 요즘 유행하는 뻐꾸기 아이가!”
무쌍이 들고 있던 커피 스푼을 황토벽에 대고 꾹 눌렀다. 스푼이 쇠같이 굳은 벽을 소리 없이 파고들었다. 시계를 벽에 척 걸어놓고 호들갑을 떨었다.
“루드리, 어때?”
“오빠, 값진 선물이네요. 잘 어울려요.”
에델이 눈물을 살짝 찍어냈다. 보니파스와 기즈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합판으로 대충 만든 싸구려 시계다. 고풍스러운 서재에 어울릴 물건이 아니다. 보스의 따뜻한 마음이 난로 열기처럼 밀려왔다.
“대장!”
상한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장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울리는 재주가 있다. 상한이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옷 매무시를 가다듬고 큰절을 올렸다.
“어무이요 와 이캅니꺼!”
놀란 무쌍이 옷깃을 잡았지만, 상한이 엄마가 기어코 세 번 절을 하고서야 일어났다.
“무지한 촌것이라 눈이 있어도 불보살님을 알아보지 못했심더. 첫 번째 절은 자식을 살려주는 분에게 감사하는 에미의 절입니다. 두 번째 절은 온갖 간난신고를 극복하고 큰 사람이 된 진짜 사나이에게 드리는 존경입니더. 세 번째 절은 주변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불보살님께 드리는 절입니더.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흑흑흑!”
상한이 엄마가 눈물을 쏟았다.
‘화따! 우리 엄마가 원래 말을 저렇게 잘했나? 씨바, 내 대가리는 아부지 닮았구마.’
상한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늘 조용히 일만 하던 어머니가 아니다. 상한은 세상 모든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라면 초인이 된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다.
“어무이, 이카마 안됩니다. 저는 어무이가 잘 알 듯이 외로운 사람입니다. 제게는 친구가 필요하고 친구의 엄마, 어무이가 필요합니다. 돈은 벌면 되고 재산은 모으면 됩니다. 사람이 뭘로 삽니까? 정으로 산다 아임니꺼. 대문을 불쑥 열고 들어서면 반겨 맞아주고, 식은밥에 열무김치 한 상 차려주는 어무이가 소중한 기라요. 제 말을 이해하지요?”
“흐흐흑, 알다마다! 박복한 년이 전생에 뭔 덕을 쌓아서 이런 복을 받는지.”
상한이 엄마가 무쌍을 부여안고 엉엉 울었다.
“엠무소뚜 이생기띰!(응무소주 이생기심!)”
보니파스가 혀짧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동성로 뒷골목에 위치한 안기부 대구지부, 간판이 무질서하게 걸린 3층 건물의 외관은 주변 건물과 다를 바 없이 허름했다. 지하는 빠, 1층은 문구점, 2층은 커피숍, 3층은 대덕상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