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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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1
대덕상회를 방문하려면 계단을 턱 막고 있는 굵은 창살 문을 통과해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회색 방화문이 나타나고, 방화문 안쪽의 출입문도 칙칙한 회색 철문이다. 오퍼상을 찾아오는 손님은 출입구부터 별로 유쾌하지 않을 관상이다.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바깥에서 보기와 달리 사무실이 좁다. 50평 남짓한 공간 절반이 사라지고 나머지 공간 절반도 경량 칸막이로 구획된 탓에 사무실은 답답해 보일 정도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 가죽 샘플이 벽면 한쪽을 온통 차지하고, 복사기와 생수통, 타자기가 놓인 책상, 전화기 두 개가 놓인 넓은 상당 테이블은 가죽을 펴서 확인하기에 딱 좋다.
수입 물소 가죽이나 통짜 악어가죽을 확인하려면 넓은 테이블이 필수다. 일반 오퍼상 사무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분위기다. 대덕상회는 실제로 가죽을 수입해서 파는 오퍼상이다. 물론 본업은 따로 있고 알맹이는 사라진 절반의 공간에 있다.
오퍼 사무실과 벽돌벽으로 차단된 별도의 공간, 휑 비어있는 오퍼 사무실과 달리 대여섯 명의 직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경량 칸막이로 차단된 안쪽 사무실, 서류에 코를 박고 있던 인물이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켰다. 쭉 찢어진 핏발선 눈, 툭 튀어나온 광대뼈, 밤송이 수염, 근육질 체격, 도끼만 들면 산적 배역이 딱 어울릴 중년 남자, 대구지부장 이대덕이다.
“장팔수 이 새끼는 거칠기만 하고 대갈빡이 나빠서 틀렸어. 이 새끼에게 맡겼다간 사북사태 짝 나겠어. 무식한 새끼보다는 뺀질거리는 놈이 낫지.”
이대덕이 보고 있던 서류를 휙 집어 던졌다.
장팔수, 농한기에 딸년 등록금을 벌어보겠다고 막장에 들어간 짚은다리 농사꾼 박삼출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다리를 박살 낸 장본인이다.
당시 사북 계엄분소에 파견된 안기부 3인방이 저지른 사건의 파문은 적지 않았다. 비인간적인 고문 행태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받아 챙긴 거액의 뇌물이 내부 감찰에 걸렸다.
공공연히 벌어지는 행사지만, 집권 초기의 전두환 정권은 사북사태의 파장을 잠재울 희생양이 필요했다. 결국, 셋 중 짬밥이 제일 낮은 유영출이 독박쓰고 옷을 벗은 덕분에 장팔수는 안기부에 남았고, 김영노는 경찰로 적을 옮겼다. 그리고 안기부는 비리 직원을 중징계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천망회회 소이부실이라 했다. 장필녀의 개인 운전기사로 재취업한 유영출은 장씨의 사주를 받아 박진보의 유골을 방자하려다 쌈디에게 잡혔다. 분노한 무쌍이 유영출을 그냥 둘리 없다. 유영출은 뼛조각 한 개 남기지 못하고 재가 되어 월송산 깊숙이 묻혔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불구가 된 수백 명 광부의 원념이 굴각, 이올, 죽혼(호질에 나오는 세 마리 귀신으로 범에 빌붙어서 충동질한다.)이 되었을까. 주범격인 장팔수가 또다시 죽음의 천사와 조우할 운명에 처했다.
“정필수!”
목소리마저 산적처럼 우렁우렁했다. 오퍼상 사장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옙!”
40대 후반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지부장실 문을 열고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너 말고 정필수 말이야. 이 새끼들은 이름도 비슷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지랄이야.”
“옙, 불러오겠습니다.”
장팔수는 이유 없이 욕을 먹었지만 번개같이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머리 나쁜 장팔수가 조직에서 살아남은 이유다.
“예, 갑니다. 가요.”
아래층에서 대답이 들리고 계단을 우당탕 뛰어 올라오는 소음이 울렸다.
“부르셨습니까!”
정필수가 씨근거렸다. 상의 유니폼에 매달린 하얀 커피숍 명찰이 거친 호흡을 따라서 달랑거렸다. 이대덕은 성질이 불같았다. 어물쩍거리다간 정강이뼈를 헌상해야 한다.
“불렀으니까 왔지. 파닥파닥 못 뛰어. 대리 달았다꼬 군기가 쪽 빠지삤나?”
이대덕이 불퉁하니 내질렀다.
“아이고 사장님, 이보다 더 빨리 올 수는 없습니다. 인터폰은 뒀다가 국 끓여 드실 겁니까.”
“시끄럽고. 그노마 정체는 알아봤나?”
“주민등록상의 이름은 박무쌍, 나이는 26세, 현재 주한 프랑스 대사관 문화 참사관입니다.”
“머시라! 문화참사관?”
이대덕의 째진 눈이 더욱 길게 째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참사관은 고위 외교관이다. 한국 외무부로 말하면 이삼 급 공무원이다.
물론 참사관 감투를 쓰고 스파이질 하는 놈도 많고, 젊은 놈이 특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스물여섯 살짜리 애송이, 그것도 한국인이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중 국적이가?”
“예, 이중 국적입니다. 프랑스 이름은 스바르드 굴베이그입니다.”
“지랄해라. 우리나라도 마이 국제화 되었구마. 요즘은 개나 소나 이중국적이야. 높은 놈 자식새끼가?”
이대덕의 눈에 적개심이 담겼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은 자식새끼를 군대 보내지 않으려고 별별 호작질을 다했다.
외교관이나 안기부 대가리들이 잘 써먹는 수단이 이중국적인 자식새끼를 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밀어 넣는 수법이다. 국가 기밀이 술술 새나가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높은 놈 자식은커녕 맨땅에 헤딩하는 따라지 인생입니다.”
정필수가 픽 웃었다.
“이 새끼야, 따라지가 그 나이에 어떻게 참사관 감투를 써노? 내가 스물여섯 살 때는 남산에서 커피 끓이고 필경했었다구.”
이대덕이 버럭 했다.
“그냥 끌고 올까요?”
“관둬 임마! 이름이 비슷하다꼬 하는 짓도 닮을라카나. 프랑스는 콩고나 가봉이 아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란 말이다. 프랑스 참사관이면 부장님도 조심해야 해. 글구 코쟁이 손님이 잔뜩 와 있다메?”
“예, 집들이랍니다.”
“니미 조또, 언놈은 돌멩이 던진 코흘리개 새끼나 족치고 있는데, 언놈은 팔자 좋게 코쟁이 불러서 집들이하고 지랄이야. 장팔수 이새꺄, 애를 잡냐? 대충해 새꺄!”
이대덕이 버럭 했다. 안쪽 방에서 들리던 돼지 멱따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에이, 저 새끼를 짜르던지 해야지. 신경 거슬리는 판에 저 새끼까지 승질 나게 하네. 족보를 읊어 봐.”
“따라지는 따라진데 묘한 따라지입니다. 아버지 박진보는 여덟 살에 사망, 어머니 김말순은 실종 상태, 후견인은 백부인 박인보, 열세 살에 절도 기록이 있고, 백부 집에서 쫓겨나서 숏빠지게 고학, 고딩 졸업반일 때 강간치사로 입건, 6개월 구치소에 처박혀있다가 집행유예로 출소, 나이트에서 7개월 삐끼질, 땡중 노릇 13개월, 21세에 프랑스로 넘어갔습니다.”
정필수는 한 달간 틈틈이 조사한 무쌍의 행적을 간단히 풀어놓았다.
“허, 눈물 나는 인생 유전이구만. 근데 별까지 단 고아 새끼가 무슨 연줄로 출국이 되었제?”
이대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과자는 안기부의 신원 조회를 거치지 않으면 출국할 수 없다. 신원조회 이력이 남아있으면 정필수가 모를 리 없다.
“출국 당시의 신원 보증인이 해밀턴 영국 영사였습니다.”
“해밀턴 영사!”
이대덕의 눈이 커졌다. 해밀턴 영사는 한국통으로 대사보다 영향력이 오히려 큰 사람이다. 찌끄레기 인간과 해밀턴 영사의 접점이라니, 호랑이가 고양이와 살림 차렸다는 말보다 더 현실성없는 이야기다.
“썩은 새끼줄도 없는 고아 새끼가 무신 수로 영국 영사와 연결되었노?”
“해밀턴 영사가 참사관일 때 구미 시장에서 양아치들에게 린치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하, 기억난다. 영국 대사가 각하께 강력히 항의하는 바람에 애꿎은 대구 지방청장과 구미 서장의 모가지가 날아갔었지.”
이대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에게 욕을 먹은 경찰청장이 구미 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차리고 일대의 양아치를 깡그리 잡아들였던 사건이다. 정통성이 부족한 현 정권은 외국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강대국의 외교관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박무쌍이란 놈도 프랑스 참사관 감투가 없었으면 정필수가 달랑 잡아왔을 것이다. 지하실에 처박아 놓고 짬뽕 국물 한 주전자만 먹이면 똘똘이 잡고 장난친 횟수까지 나온다.
“예, 한동안 시끄러웠죠. 당시에 웬 땡중이 양아치들을 때려눕히고 영사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박무쌍이 중질하던 절이 천생산입니다. 그때 접점이 있었을 겁니다.”
“해밀턴 영사가 보답했다? 왜 영국으로 안가고 프랑스로 갔제?”
“그거야 엿장수 마음이지요.”
“엿장수 마음?”
이대덕의 눈썹이 올라갔다. 위기를 느낀 정필수가 잽싸게 말을 붙였다.
“박무쌍은 레종 에뜨랑제입니다.”
“레졸 아그랑제! 거기 머꼬?”
‘지부장이나 되는 양반이 레종 에뜨랑제도 모르나?’
정필수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이대덕은 정보기관에서 30년을 굴러먹은 베테랑이다. 지부장쯤 되면 쫄따구 눈빛만 봐도 속이 훤히 보인다.
정필수의 눈빛은 그것도 모르느냐는 의미다. 상사의 무지를 틈타서 쪼그라든 자존심을 채우려는 비틀린 보상 심리다. 이대덕이 책상 위에 놓인 놋쇠 문진을 냅다 집어던졌다.
뻑- 문진은 정필수의 정강이를 정확히 가격했다.
“아이고!”
정필수가 깨금발로 맴돌았다.
“이 자식이 죽을라꼬 쌕 쓰고 지랄이여.”
“프랑스 외인부대 용병을 그렇게 부릅니다. 영국 외인부대는 구르카 족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정필수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아놔 이 자식아, 레졸 아그랑제? 그렇게 혓바닥을 굴리면 있어 보이냐? 그서 머하는데?”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인간이 할 짓은 뻔하지요. 총질이지요.”
“거참, 중놈과 용병이라~ 인생 더럽게 풀리는 놈이네.”
“더럽게 잘 풀린 놈이죠. 그놈 계급이 마죠르입니다.”
““마죠르가 뭐여?”
“우리나라 육군에는 없는 계급입니다. 하사관 대빵으로 주임상사 역할을 하는 준위라고 보면 됩니다.
“그것도 이상하네. 차라리 장교라면 몰라도 새파란 놈이 무신 하사관 대빵이고. 우리나라도 주임 상사는 전부 노털 아이가.”
이대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들 압니까. 외인부대는 밥 먹고 하는 일이 전투니까 전공을 세웠겠지요.”
“전들 압니까? 이 자식아, 그걸 말이라고 해? 월급 도둑놈 새끼야, 그걸 알아오는 기 니 일이여. 세웠겠지요. 카는 불분명한 말도 쓰지 말라 안 캤나.”
이대덕이 눈을 부라렸다. 똘똘한 놈인데 서울놈 아니랄까 봐 빤질빤질하기가 기름칠한 미꾸라지다.
“쥐꼬리 정보비로 전들 어쩝니까.”
“화따, 이 새끼 보게. 짬밥 좀 먹었다고 엉기네. 정보비는 적당히 뜯어내면 되잖아 임마.”
“이놈 저놈 다 먹고살기 힘들다는데 삥 뜯기가 미안해서요.”
“지랄터네. 대리 월급 받아서 차는 우예 샀노?”
“열심히 저축했지요.”
정필수는 당당했다. 다른 요원들의 활동에 비하면 자신은 양반이다.
“어이구 뺀질이 새끼야, 박무쌍은 대사관을 냅뚜고 와 대구에 내려와 있노. 무지막지하게 큰 건물을 지었다메?”
“불로동 건물은 박무쌍 소유지만, 용도는 불란서 문화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래? 우회 매입했구먼. 하긴 외국인이 우리나라 부동산을 취득하기가 쉽진 않지. 목적은 정보 수집이가?”
“글쎄요. 불란서 영사관에 근무하는 친구도 더 이상 자료는 없다고 했습니다.”
장필수가 파일을 덮었다.
“희한한 놈일세. 3호 대상으로 올리고 니가 맡아.”
박무쌍이든 스바르드 굴베이그든 강대국의 외교관을 건드려서 좋을 것 없다. 3호 대상은 정체가 모호한 인사로 지속적인 주변 탐문을 요하는 대상을 말한다.
“지부장님!”
“이 새꺄, 사장이야 사장!”
“사장님, 저는 대학교 사찰만 해도 손이 모자라는데요.”
“도청기를 설치하든 장팔수를 보내든 니가 알아서 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조심해.”
이대덕은 관심을 끊었다.
“알겠습니다.”
커피숍 사장으로 돌아온 정필수는 고민에 빠졌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정보를 가져오라는 말은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흔히 듣던 소리다.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정보를 가져오되 문제가 발생하면 독박 쓰라는 소리다.
“아 몰랑! 장팔수를 미행 붙이고, 도청기나 몇 개 심어야겠어.”
정필수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지하 빠로 내려갔다. 정필수는 지하 빠로 내려가는 길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꿈에도 몰랐다.
진순이 밤참으로 족발과 해파리 냉채, 수박 화채를 돌려서 한참 인기를 얻는 중이다. 장쒼이 질세라 오향장육과 양장피 냉채를 내고 이지하나가 소르베와 콩소메를 냈지만, 진순에게 밀렸다.
술은 인종과 민족이 다른 만큼 열 종류가 넘게 나왔다. 막걸리, 금복주, 샴페인, 씨아까렐로, 각종 맥주, 심지어 데낄라와 아크라까지 등장했다. 풍성한 요리와 풍성한 술이 어울려서 풍성한 밤이 깊어갔다.
“상한아, 마이 묵어라. 내가 예전에 너거집 포도를 결딴냈다 아이가.”
무쌍이 수박 화채 보울을 상한에게 밀었다.
“포도만 묵었나. 내가 일주일에 달가리(계란)를 한 판씩 배달했다 아이가.”
상한이 비시시 웃었다. 희망에 들뜬 상한은 예전의 자신감과 여유를 찾았다. 활짝 밝아진 아들을 보는 상한이 엄마의 얼굴은 더욱 밝았다.
“어이구 이 자식이 생색내네. 일주일에 한판씩 2년쯤 얻어 묵었제? 닭장도 포도밭에 있응께 계속 얻어 묵을라카마 포도밭이 있어야제. 얼매고?”
“머가?”
어리벙벙해진 상한이 되물었다.
“지뢰 밟은 니 다리가 잡아묵은 포도밭 말이다. 데부로 살라카마 얼마고?”
“우예 알았노? 니 작두까지 타나?”
상한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