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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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6
“그러엄, 니는 예쁘게 자라기만 하면 되는 기라. 이 언니가 우주 최강의 도시락을 싸줄게.”
“미나야, 빠빠는 진짜 왕이야. 미나는 공주가 된 거라고.”
오 자매가 언제 울었느냐는 듯 와글거리기 시작했다. 미나는 어린애답게 금방 울음을 그치고 오 자매와 어울렸다.
무호의 아내, 교동 댁은 후회막급이었다. 삼촌이 이렇게 부자일 줄 알았으면 당연히 미나를 잘 챙겼다. 당당히 한 몫을 챙길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에 익모초를 한입 씹은 듯 쓴 물이 올라왔다.
“언니, 우리는 후식 먹으러 가요.”
“후식?”
무호의 아내가 수박, 참외와 이름도 모를 과일이 널린 식탁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방에 가면 세계 각국에서 보낸 온갖 과일과 과자가 많아요. 오빠는 외국인 친구들이 딥따 많거든요. 오빠가 우리나라 과일만 좋아해서 식탁에 내지 않고 우리만 배터지게 먹어요. 호호호!”
눈치 백 단인 연순과 계순이 무호의 아내를 주방으로 끌고 갔다.
“어머나, 세상에!”
주방에서 호들갑스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우야, 내가 미안타, 마누라가 경망스러워서 앞뒤 분간을 못 하는 구마.”
무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교양 없는 아내의 행동 때문에 밥알이 곧추섰다.
“살림하는 여자들은 현실적일 수밖에 없지요. 이만한 집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을 여자는 없어요. 마음쓰지 마시소.”
“임마, 그게 아이고 미나 말이다. 내가 무심했다. 오늘 보이끼네 옷도 말이 아니더라. 얼굴 두껍게 양육비를 넉넉히 챙기고도 애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어. 할 말이 없다.”
무호는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쌍은 묵정밭을 개간하고 고추 농사를 짓느라 무진장 고생했다. 황소 열 마리도 당해내지 못할 무지막지한 힘과 체력을 가진 무쌍이지만, 혼자서 2천 평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고, 내다 파는 일이 쉬울리 없었다. 그렇게 번 돈이 육백만원이다.
아내는 미나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고, 무쌍은 애써서 번 돈의 대부분을 양육비로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신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주먹으로 한 대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저놈의 주먹에 맞으면 바로 사망이다.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형, 마음고생이 많았겠어요.”
“난 미나가 본래 말수가 없고 조용한 아인 줄 알았다. 마누라가 자기 새끼만 편애하다 보니 애가 말수가 없어졌던 거였어. 내가 존나게 둔했어. 아우 보기가 창피스럽다.”
무호가 버석한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입니다. 형사가 집에 진득이 붙어있을 시간이나 있습니까. 형수도 딸 둘에다 미나까지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다 끝난 일인데 행여나 형수를 나무라지 마시소.”
무쌍은 가급적 진화하려고 애썼다. 무호 형은 욱하는 성질이 있다. 뒤늦게 형의 가정에서 파열음이 나서 좋을 게 없다.
“알겠다. 미나는 빠빠가 돈 많이 벌어서 자기를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지냈어. 다섯 살짜리가 뭘 안다고 너를 그렇게 기다렸을까? 나도 이해못했지. 우리 애들이 빠빠는 아빠가 아니라고 하면 어린것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어. 한 살 많은 윤희와 툭하면 싸웠지. 내가 무심했어.”
무쌍은 가슴이 먹먹했다. 오죽 마음 붙일 곳이 없었으면 채 일 년도 함께 지내지 않은 자신을 아버지로 알까!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무쌍과 미나가 오버랩되었다.
“깔깔깔!”
“호호호!”
대청에서 미나와 말순, 우순이 어울려서 난리다. 무쌍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사람이 하기에 따라서 남자 사이가 벌어지거나 가까워질 수 있다. 다행히 무호 형은 여전히 무호 형이다.
“지가 잘 키우지요. 장가도 안 간 총각 놈이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아우 말고 누가 자격이 있겠나. 저놈에겐 아우가 세상 전부다.”
무호는 무쌍을 보기 민망했다. 못난 자신과 달리 아우는 가슴이 넉넉한 진짜 남자다. 정에 굶주린 아이의 마음을 채워줄 사람은 아우밖에 없다.
“어르신들은 더러 찾아봅니까?”
“아우가 없으니 허전해서 가고 싶지 않더라고. 직원을 격주로 보내서 확인한다. 홍천 할머니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고, 방동 댁 양주분은 아직 정정한 편이다. 아침가리골도 한때는 칠십 가구나 살았는데 인적이 끊어지게 되었어. 그놈의 간첩 사건에 백백교 교주 놈까지 날뛰는 바람에 형편무인지경이 되어버렸어.”
“형, 혹시?”
“걱정할 것 없다. 인근 군부대 병력을 동원해서 재차 방태산을 훑었지만, 동굴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 폐허가 된 통나무집은 산짐승 놀이터가 되어 있더라. 인제, 원통 일대의 실종 사건이 사라지고 수사본부도 해체되었다.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은 거지. 그런데 그놈은 확실히 죽었겠지?”
“죽지 않았을 겁니다. 기를 다룰 줄 아는 고수는 치명상을 입어도 일정 기간 버틸 수 있어요. 놈이 안가에 칩거해서 안정을 취하면 재활할 수 있어요.”
“그거 큰일이네.”
무호의 얼굴이 꺼메졌다.
“오빠, 서재로 술상 보낼게.”
대화의 주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진순이 곧바로 대화를 끊었다.
“댕큐!”
무쌍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입안의 혀란 말은 진순을 이름이다. 에델이 따를 수 없는 부분이다.
“빠빠!”
무쌍이 일어나자 미나가 잽싸게 코알라처럼 등에 달라붙었다. 무쌍이 아이를 업고 서재로 내려갔다.
“미나야, 빠빠등에 매달려서 산을 뛰어다닌 거 기억나니?”
“그러엄, 빠빠가 옷도 사주고, 장갑도 사주고, 과자도 많이 사준걸. 다 기억나.”
“오호. 우리 미나는 머리가 좋구나. 공부도 잘하겠네.”
“응, 그런데 일등은 못했어.”
미나가 삐죽거렸다.
“일등은 못해도 괜찮아. 올바른 사람이 되면 되걸랑.”
“올바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친구들과 함께 과자를 먹을 때 마지막 남은 과자를 양보하면 돼. 미나 덕분에 친구들이 즐거워하면 올바르게 사는 거야.
“빠빠, 걱정하지 마. 욕심부리지 않아.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아.”
“옳지. 그래야 빠빠 딸이지.”
“나 진짜 딸 맞지?”
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엄, 당연히 내 딸이지.”
“으헝!”
미나가 울음을 참느라 꺽꺽거렸다.
‘배가 놈을 죽여버릴 걸 그랬나!’
무쌍의 가슴에 불덩어리가 올라왔다.
“우와, 동화책 딥따 많다.”
사랑채에 내려온 미나는 곧바로 책장에 달라붙었다. 진순이 미나를 위해서 사온 동화책이 책장에 가득 꽂혀있었다.
“놀래라, 이건 로열 살루트 50년산!”
화들짝 놀란 무호가 대충 집어들던 술병 바닥을 왼손으로 얼른 받쳤다. 국회의원 사무실을 수색할 때 수십 병 쏟아져나왔던 값비싼 술이다. 보좌관 놈이 승용차 한 대 값이라고 했다.
“술은 술일 뿐이죠. 금복주나 로열 살루트나 마시고 취하기는 마찬가지죠.”
무쌍이 빙그레 웃고는 무호형 사랑방에 걸려있는 이백의 장진주를 뽑았다.
主人何爲言少錢(주인하위언소전,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 하리오.)
술잔을 받아든 무호의 눈이 우는 듯 웃는 듯 묘해졌다.
且須沽取對君酌(차수고취대군작, 곧 술을 사 와서 그대와 대작하리다.)
무호가 댓구를 읊고 독한 위스키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五花馬 千金裘(오화마 천금구, 명마와 천금 가죽옷)
무쌍이 잔을 받아서 홀짝 마시고 다시 돌렸다.
呼兒將出換美酒(호아장출환미주, 아이를 불러 미주와 바꿔오라 하시오.)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그대와 더불어 만년 묵은 시름을 쓸어버리세.)
둘은 댓구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돌렸다. 마지막 잔을 비운 무호가 껄껄 웃었다.
“아우, 고맙다. 자네가 징진주사를 일 단계부터 시작했으면 우형은 끝장났을 거야.”
이백의 장진주사는 삼 단계까지 댓구가 이십오 절이다. 무호는 위장을 태우는 위스키를 연속 열세 잔이나 마시고 버틸 자신이 없었다.
“약한 말씀 하지 마이소. 형이 수사비로 술병 바닥을 빵구낸다는 사실을 모를 줄 알았습니까. 한 잔 더 받으소.”
“어허, 이 사람이 형을 비리 경찰로 만드네.”
무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아우는 일부러 사랑채에 걸려있던 장진주사를 읊었다. 아우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우, 최도식이란 놈이 되살아나면 아우를 노릴 텐데.”
“걱정할 것 없어요.”
무쌍이 벽에 장식물로 걸려있는 꽹과리를 노려보았다. 우웅- 꽹과리가 저절로 고리를 벗어나서 허공에 떠올랐다. 손가락을 쭉 뻗었다. 스팟- 쨍- 꽹과리 정중앙에 구멍이 뻥 뚫렸다. 튕겨 나가던 꽹과리가 주르륵 끌려와서 곱게 손에 잡혔다.
“헉, 뭐야! 염력인가?”
꽹과리를 받아든 무호가 입을 쩍 벌렸다. 천박한 눈으로 일지선을 알아볼 리 만무다. 저절로 휙휙 날아다니는 꽹과리에만 정신이 팔렸다. 구멍 뚫린 부분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답답해진 무쌍이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문종이를 뚫듯이 손가락이 푹 들어갔다.
“우왁!”
그제야 반응이 왔다. 무호는 꽹과리를 받아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볼반으로 뚫은 듯 매끈한 구멍에서 탄내와 파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제야 첫 번째 구멍이 공간을 격하고 뚫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끔찍하네!’
무호는 몸서리를 쳤다. 뭔지 모르지만 끔찍한 능력이다. 멀리서 심장이나 머리에 구멍을 뻥 뚫어버리면 이유도 모르고 죽는다.
아우가 마음먹으면 대통령이고 뭐고 완전 살인을 할 수 있다는 소리다. 십 대의 무쌍이 둔탁한 오함마라면 지금은 예리한 보검으로 정련되었다.
“망할 새끼가 아우를 찾아가기를 바라야겠구먼.”
무호의 두툼한 입술에 흰 선이 그어졌다.
“그건 모릅니다. 최도식은 초인적인 고수입니다. 우짰던 놈이 두렵지는 않아요.”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온 거야?”
무호의 눈에 살짝 물기가 어렸다. 가인재사의 삶은 평탄한 법이 없다. 아우가 평안한 삶 속에서 초월적인 힘을 얻었을 리 없다.
“형은 말해도 모릅니다.”
“하긴 너는 예전에도 내 손이 닿는 놈이 아니었어. 지금 하는 일은?”
“프랑스 정부와 함께합니다. 험한 일을 하지만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형은 모르는 게 좋습니다.”
“……”
한참 말이 없던 무호가 불쑥 말했다.
“난 아우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우는 뭘 해도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사람은 아니잖은가.”
“그러게요. 저도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팔자에 역마살이 끼었나 봅니다. 허허허!”
무쌍이 툴툴 웃었다. 조용히 살고 싶지만 수시로 피가 튀는 전장이 그리웠다. 아수라의 숙명이다.
“돈도 충분히 번 것 같은데 빠져나올 수는 없나?”
“준비 중입니다. 한바탕 피를 볼 수도 있어요.”
무쌍은 준비해 둔 봉투를 무호에게 건넸다. 봉투에 천만 원이 들었다.
“이게 뭐냐?”
내용물을 확인한 무호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미나를 키워준 양육비라고 칩시다.”
“칩시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 하는 기고. 예전에 받은 양육비도 면목이 없게 되었구먼.”
무호가 봉투를 도로 밀었다.
“형은 기억을 잃은 거지새끼를 먹이고 재워주었어요. 형제간에 은혜 운운할 바는 아니지만, 형이 불편해 보여서 보기 싫습니다. 아파트를 한 채 사서 형수님께 선물 하시소.”
“어허, 싹수없는 마누라에게 선물은 무슨 선물!”
무호가 벌컥 했다.
“형도 잘한 거 없어요. 형사들은 수사비를 아껴서 마누라 선물을 사준다 카데요. 형은 쫄따구 술 사준다꼬 툭하마 가불 한다면서요. 쥐꼬리 봉급에서 술값까지 떼고 받는 형수는 기분이 좋겠어요?”
“윽!”
정곡을 찔린 무호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형수는 별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남편 봉급 받아서 알뜰히 살림 살고, 자식 잘 키우려는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잘난 동생 덕에 어깨에 힘 한번 주시소.”
“아우!”
무호는 목이 메었다. 미나의 일 때문에 기분이 상할 텐데 오히려 마누라 실드를 친다. 자신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흉중이다. 기억을 잃고 헤매던 고등학생이 어느새 인생의 쓴맛을 헤아리는 진짜 사나이가 되었다.
“마음만 받겠다. 오 년 전에 맡기고 간 돈도 적은 돈이 아니었어. 나를 더 이상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형, 형제간에 이것저것 따지지 맙시다. 형이 사준 짜장면 기억나요? 내가 십 인분씩 먹는 바람에 형 용돈이 거덜 났잖수. 사실 형수에게 바가지 긁히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았어요. 흐흐흐!”
“젠장, 햇볕은 높낮이가 없는데 풀대궁은 크고 작구마.”
무호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누가 형이고 아우인지 모르게 되었다.
“어머, 껌딱지가 따로 없네.”
재차 안주를 챙겨온 진순이 무쌍의 무릎에서 절구 찧는 미나를 보고 웃었다. 무쌍이 잠든 미나를 안으려는 진순을 말렸다.
“내가 안고 갈게.”
잠든 미나의 볼을 쓰다듬었다. 따스한 촉감이 가슴을 찌르르 울렸다. 세상에서 이보다 살가운 감촉은 없다. 추악한 어른의 이기심으로 인해 상처받은 어린 영혼, 세상에 미나가 한둘이겠는가!
‘니미, 사부에게 당했어. 어쩐지 넓은 후원을 보고도 별말씀을 하지 않더라니.’
연순의 전공이 아동복지라는 말을 듣고 빙긋이 웃던 사부가 생각났다.
“적면 오호, 이숙자는 늦었지만 남겨진 핏줄은 거두었다. 내가 이 녀석의 아버지가 되었다. 약속은 지킨 것으로 하자구.”
무쌍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찜찜함이 사라졌다. 업장 소멸이다. 무쌍이 미나를 안고 일어났다.
“순아, 별채로 안내해 드려라. 잘자쇼.”
무쌍이 휘적휘적 서재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