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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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8
‘저년이 머땀시 갑자기 무게를 잡고 지랄이지? 참새 거시기라도 보는겨?’
장씨는 어리둥절했다. 황소라도 때려잡을 듯이 기세등등하던 년이 하늘을 쳐다보고, 더럽게 치마꼬리로 코를 풀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비죽거리는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대갈빡에 꽃 한송이 꽂으면 딱 그거다.
‘아하, 마카 지어낸 이야기구마. 그럼 그렇지!’
장씨는 정 많은 하동댁의 심란한 속내를 착각했다. 바닥에 눌어붙었던 기분이 급상승했다. 해태 눈깔이라고 퉁을 주려던 말도 집어넣었다. 장씨 유형의 인간을 반감(反感) 인격이라 한다. 상대가 즐거우면 짜증 나고, 상대가 괴로우면 즐거워지는 정신장애의 한 유형이다.
고양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동댁이 양손을 활짝 펴서 장씨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이년이 미쳤나?’
장씨가 뜨악한 얼굴로 북두갈고리 같은 손바닥을 노려보았다. 거친 농사일로 옹이진 시커먼 손가락마다 황금빛이 반짝였다. 눈이 어질어질했다.
“머꼬?”
장씨는 자신도 모르게 하동댁의 손을 잡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헐!”
장씨가 헛바람을 불었다. 양손의 새끼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 여섯 개에 반지가 끼어있다. 옴부티가 선물한 ‘씨스 아누’다.
씨스 아누는 아침-오전-점심-오후-저녁-자정으로 이어지는 하루를 뜻하며 반지를 장식한 보석이 모두 다르다. 하동댁을 대모로 인정한 옴부티는 투아레그족의 수호 반지를 선물했다.
짚은다리 박가들이 김말순과 무쌍을 괄시하고 괴롭힌 이유는 질시도 있지만, 장씨 가문의 위세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외면할 때 손을 뻗은 하동댁은 무쌍의 신조대로 열배 백배의 보상을 받았다.
장씨는 명색이 향심섬유 안주인이다. 보석을 보는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왼손의 백금 반지, 오른손의 황금 반지, 정교한 돋을새김, 제각각인 보석, 칠성시장 좌판에서 사온 모조품이 아니다. 촌년이 죽었다가 깨나도 가질 수 없는 진품 컬렉션이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억대다.
‘진짜였구나!’
올라갔던 장씨의 기분이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했다. 낙심한 나머지 안색이 컴컴해지고 다크서클이 늘어졌다. 이번엔 하동댁의 표정이 250W 가로등만큼이나 환하게 빛났다.
“집들이 온 외국인 사장 선물이라요.”
하동댁이 머릿수건을 훌렁 벗었다. 황금 귀고리가 한 쌍이 귓바퀴에서 달랑거렸다. 장씨가 얄팍한 입술을 실룩거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명품이다.
“쌍이 중국인 친구가 선물한 기라요. 쌍이가 ‘이분은 내 고모님으로 어머님과 다를 바 없는 분이다.’ 이카이끼네 중국인 친구가 ‘짜모우 완다이’하고 소리치데요. 무식한 년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야제. 연순이가 ‘대모 만세’란 뜻이라 카데요. 우리 무쌍이 고마워서 눈물이 나고, 딸년을 대학 보낸 보람에 웃음이 나오데요. 와하하하!”
하동댁이 남자처럼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농사 중에 제일은 자식 농사다. 인동댁 재산이 많으면 무슨 소용인가. 자식 농사를 망쳤는데.
희자와 우탁은 돈만 내면 들어가는 2년제 전문대학을 나오고, 화자는 그마저 마치지 못했다. 통쾌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하동댁이 내킨 김에 옷 소매를 둥둥 걷었다. 두 냥은 넘을 황금 팔지가 번쩍거렸다. 장씨를 만날 기회를 노려서 불편한 장신구를 꾸역꾸역 차고 다닌 하동댁의 고집도 어지간했다.
“이거슨 미국에서 온 손님이 선물 한기라요.”
장씨는 놀랄 기력도 잃었다.
“손님이 전부 외국인이라고?”
“하모요. 보름 전에 집들이했다 아인교. 미국에서 오고, 프랑스에서 오고, 홍콩에서 오고, 아프리카에서도 무디기로 옵띠더. 영국 대사관에 있는 무슨 영사라는 외국인 신사분도 오시고, 프랑스 정부 고관도 오고, 세계적인 박사라는 외국인도 오고, 난리 났다 아인교.”
“머시라. 무쌍이가 머라꼬 그런 사람들이 찾아온단 말이고?”
“무식한 년이 말해도 아남요. 돈도 마이 벌고, 엄청나게 높은 자리에 있나 보지요. 쌍이가 잔치 음식 준비하라고 천만 원을 줍띠다.”
“천만 원!”
장씨가 신음했다. 집들이 음식 준비에 아파트 몇 채를 날렸다는 소리다. 돈을 얼마나 벌었길래 집들이 음식준비에 천만 원을 쓴단 말인가?
“다음에 보세.”
장씨가 치마를 쓸어 잡고 일어났다. ~아인교, ~하데예, ~캅띠더 삼종 세트를 계속 듣고 있으려니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머리가 둥둥 울렸다. 대갈빡에 들어앉은 딱따구리(편두통)가 깨어날 조짐이 보였다.
김말순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새끼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고?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 양아치를 사서 불로동 집에 불을 확 싸지르고 만다. 장씨는 이빨을 악물고 돌아섰다.
“갈라꼬요? 아직 이바구가 마이 남았는데……. 시원한 국수라도 한 그릇 하고 가시소.”
하동댁이 짐짓 말렸다.
“남은 이바구는 자네 혼자 국숫발 늘이듯이 늘이게.”
장씨가 잰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우탁 어메요, 쌍이가 K 대학에 들어간 거 모르지요? 작년에 입학했심데이.”
하동댁이 손나발을 하고 소리쳤다. 하동댁이 준비한 회심의 카운터 펀치다.
“밟아!”
심사가 뒤틀린 장씨가 차 문을 꽝 닫고 빽 소리 질렀다. 놀란 기사가 액셀을 사정없이 밟았다. 끼아악- 승용차가 먼지를 자욱이 날리고 튀어 나갔다. 먼지를 뒤집어쓴 하동댁이 멀어지는 승용차를 싸늘한 눈길로 쫓았다.
‘망할 년, 니가 성질 내면 우얄낀데!’
하동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까만 얼굴에 그어진 흰 선이 점점 커져서 두 개로 분리되었다. 입이 목젖이 보이도록 벌어졌다.
“꺄아, 호호호!”
하동댁은 쓴 물이 올라오도록 웃었다. 태어나서 오늘만큼 통쾌한 날이 없었다. 이런 장면을 못 보는 언니가 안타까웠다. 하동댁은 귀고리를 빼고, 팔찌를 빼고, 반지를 빼냈다.
“이건 말순이 언니가 해야 혀. 농사나 짓는 년이 풍족히 먹고살면 됐지 보석이 무신 소용이여. 남의 질시나 받고 험담이나 듣지.”
임무를 마친 장신구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종두득두라 했다. 분수를 알고 정이 깊은 하동댁이기에 진순을 낳고 무쌍을 거두었다. 하동댁의 전성기다.
“사모님, 어디로 모실까요?”
김 기사가 백미러로 사모님의 눈치를 보았다. 희번덕이는 눈, 미간 사이의 내 천자, 치켜올라간 눈꼬리, 시끄러워질 조짐이 역력했다.
“내가 집으로 가는 거 모리나.”
아니나다를까 고음이 쨍하니 터졌다. 김 기사의 목이 자라처럼 쑥 들어갔다.
‘씨팔년, 목구멍이 웬수다.’
운전이 살짝 거칠어졌다. 성질대로라면 신작로에 패대기치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천한 놈이 우야다 돈푼이나 만진 모양이제.’
장씨는 이빨을 뽀득뽀득 갈았다. 태어난 이래 오늘처럼 더러운 기분은 처음이다. 그놈의 집에 다녀온 여편네들을 닦달하려던 마음이 구만리 밖으로 사라졌다.
놈이 돈을 벌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충격은 대학교 들어갔다는 소리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오지게 밟았건만 징그럽게 버티던 놈이다. 적잖은 돈을 써서 감방에 집어넣고 안심했더니 잡초처럼 살아나서 대학교에 들어가 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장씨의 최대 트라우마는 자식농사다. 김말순을 빼닮은 외모에다 똘똘하기까지 한 놈이 죽도록 싫었다. 김말순의 새끼를 에미년처럼 시궁창에 처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에 김이 나도록 잔머리를 굴렸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줌마, 사장님은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
“녜, 곧 도착하신답니다.”
“빌어먹을 인간이 바다를 건너오나!”
장씨가 핸드백을 신경질적으로 팽개쳤다. 탄력좋은 소파에서 튕겨오른 핸드백이 스텐드를 쳤다. 전구가 퍽하고 깨졌다. 겁이 난 가정부가 주방으로 줄행랑쳤다. 사모님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 피하는 게 상수다.
장씨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극심한 두통이 밀려들었다. 삼식 캐피탈의 사채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희망은 난쟁이 똥자루 남편이다.
삼식 캐피탈은 대출 명의인을 박인보 사장으로 바꿔주면 연체이자를 절반 깎아주겠다고 했다. 장씨 가문 전체의 신용이 난쟁이 똥자루만 못하다는 소리다. 댓돌 아래서 문안 인사를 드리던 난쟁이 똥자루 말이다.
그 난쟁이 똥자루의 목이 뻣뻣해졌다. 눈만 부라려도 쑥 들어가던 고개가 천둥이 쳐도 꼿꼿했다. 이런들 저런들 좋다. 이자 절반이면 일억이 넘는 거금이다. 장씨는 기꺼이 머리를 숙일 작정이다.
문제는 백 리나 멀어진 남편과의 거리다. 오래전에 집 나간 남편은 두 달째 감감무소식이다. 자존심을 죽이고 찾아갔지만, 매번 허탕만 쳤다. 회사에 심어놓은 끄나풀도 모두 잘렸다. 이년 사이에 적막강산 신세가 되어버렸다.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토록 길 줄 몰랐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회심의 한 수로 여겼던 씨비가 가문을 진창으로 끌고 들어갔다. 남편마저 자신을 우습게 보고, 김말순의 새끼는 훨훨 날고, 하동댁은 덩달아 형편이 피었다. 모든 게 그녀의 뜻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탁 탁 탁- 딱따구리가 쪼는듯한 소리가 왼쪽 관자놀이를 울렸다. 편두통이 부쩍 심해졌다. 급히 약을 찾아서 입에 털어 넣는 순간 뚝-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툭 끊어졌다. 외부 상황이 악화하자 내재한 조울증이 공격성으로 튀어 나왔다.
“난쟁이 똥자루 같은 놈이 나한테 사기를 쳐. 똥물에 튀길 놈. 감히 장씨 가문의 큰 아가씨를 배신하고 니놈이 성할 줄 알았나!”
와장창- 거실 차탁에 올려져 있던 양주병이 날아가 장식장을 박살 냈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장씨의 정신을 현실로 돌려놓았다. 장씨가 번개처럼 인터폰을 들었다. 시커멓게 죽어가는 남편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저런 인간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장씨는 속이 뒤집어졌다.
“오랜만이네요.”
장씨가 뼈있는 인사를 건넸다. 아쉬운 입장이니 일단은 숙였다.
“어, 그려. 만수무강하려면 당신 얼굴을 보지 말아야지.”
박인보가 엉망이 된 거실을 둘러보았다. 가래 끓는 목소리에 장씨가 흠칫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도깨비(무쌍)가 들여다보던 거실 창쪽을 바라보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그래, 웬일로 만나자고 했소?”
박인보가 시침을 뚝 따고 물었다.
“뻔한 이바구는 치우고 20억만 융통해 주소.”
장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20억? 내가 무신 돈이 있노? 쇠 쪼가리는 몽땅 회사에 처박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
“회사에 자금이 충분하잖아요. 달러와 엔화가 넘친다면서요.”
“허, 회사 자금을 빼내서 처남에게 지원하고 나는 횡령과 배임죄로 쇠고랑을 차라꼬? 아직도 그따위 생각을 버리지 못했소? 그걸 말이라고 하는 기요?”
장씨는 남편이 던진 물음표 세 개에 머리 뚜껑이 열렸다.
“처가 기둥뿌리가 뽑힐 판인데 무신 억지 소리하는 거예요. 어제는 전화로 생각해 본다고 했잖아요. 객쩍은 소리 치우고 20억만 빼내 주소.”
“허, 이 여자 보소. 생각해본다고 했지 회사 자금을 뺀다고 한 적은 없어. 씨비는 내가 싫다는 걸 당신과 처남이 우겨서 발행했고, 당신과 처남이 우겨서 인수했지 않소. 이제 와서 나보고 회사 자금을 횡령해서 빚을 갚아달라고? 제정신이오?”
박인보가 멀거니 장씨를 쳐다보았다. 낯선 사람, 아니 미친년 보듯 하는 눈길이다. 장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돈을 땡겨 올 곳은 다 땡겼다. 매달릴 곳은 남편밖에 없다.
내일 돌아오는 사채를 막지 못하면 친정의 토지가 넘어간다. 생각해 보겠다는 남편의 말만 믿고 아버지에게 큰소리치고 오는 길이다.
“사위도 자식인데 10억 만이라도 아니 5억만 융통해 주소. 남은 토지가 겨우 1,400마지긴데 그것마저 날아가면 아버님이 돌아가신다 아이오.”
장씨는 평생 처음으로 남편에게 머리를 숙였다. 본가의 사정은 그만큼 급박했다.
“겨우 1,400마지기? 사위도 자식이라고?”
박인보가 외계어를 들은 듯 아내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아니 외계어가 맞다. 겨우 1,400마지기라니? 50마지기 농사를 지으면 웬만한 부농에 들어간다. 이 여자는 어떤 인간이길래 1,400마지기를 ‘겨우’라고 말한단 말인가.
사위도 자식이라고? 적어도 장씨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사위를 상갓집 개 취급했던 장인과 장모, 남편을 독살하려고 악을 쓴 여편네, 매형 회사의 자금을 쥐새끼처럼 빼돌린 처남들, 이들이 가족이라면 가족에 대한 모욕이요 테러다.
“장필녀, 나 몰래 집을 담보로 넣고 대출한 이억은 내가 이해하지. 아니 이참에 집을 당신 명의로 바꿔 주겠어. 회사 자금은 한 푼도 빼낼 생각 마시오. 예전처럼 경리 직원을 압박할 생각도 마시오. 회사에 남아있던 장씨 가문의 끄나풀은 모지리 잘랐거든.”
박인보의 얼굴이 냉엄해졌다. 죽은 동생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영문도 모르고 마누라에게 독살당할뻔했다. 주치의 김박사를 자르고, 회사내의 장씨 일가붙이와 매수당한 직원은 사그리 청소했다.
남편을 독살하려던 년이 사위도 자식이라는 말을 태연히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가증스러운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장씨의 눈이 뻘겋게 물들었다. 분노가 급상승하자 안구의 실핏줄이 터졌다.
“아하! 이 집은 이제부터 당신 집이군.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하기 전에 얼른 나가지.”
박인보가 현관을 나서며 비웃듯이 툭 던졌다.
“아아악, 난쟁이 똥자루 새끼야!”
소프라노보다 한 옥타브 높은 비명이 터졌다, 손에 잡힌 목침 크기의 청자 투각 향로가 허공을 날았다. 콘크리트벽의 강도는 도자기의 도전을 용납할 만큼 물렁하지 않았다.
와장창- 요란한 파열음이 추임을 넣었다. 박살 난 도자기는 남편이 여주에서 사온 이름난 작가의 콜렉션이다. 손짓 한 번에 쌀 스무 가마가 날아갔지만, 장여사의 서슬은 더욱 불타올랐다.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잖아. 나도 나쁜 놈이지만, 당신들은 더 나쁜 놈이야. 니들도 수많은 소작농들이 흘린 피눈물을 느껴보라고.”
박인보가 현관을 나서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