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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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10
정치판이 개판 되고 정의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국민의 입에 족쇄가 채워졌지만, 세상은 썩지 않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먹이를 나눠 먹는다는 점이다.’ 라는 A good person’s doctrine은 선풍적인 공감을 얻었다. 너도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일반인들이 대거 어굿퍼슨 사업에 참여했다. 최호림 총장이 좋은 사람을 얼마나 팔아먹었는지 어굿퍼슨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평범한 샐러리맨, 자영업자, 심지어는 구두닦이도 기부금을 보냈다.
기부 목적도 가지가지였다. 결핵 요양원 치료비, 고아원 아이들 운동화 구입비, 양로원 난방비,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 간병비, 심지어는 억울하게 수감된 아무개 영치금으로 써달라는 기부도 있었다. K 대학에도 무쌍의 출연금 17억 원이 줄기는커녕 20억원으로 늘어났다.
좋은 사람의 정체는 아무도 몰랐다. 기업인지, 재단인지, 개인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K 대학 총장 비서실에서 사업을 대행한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작은 행복을 얻은 사람은 많아진 만큼 총장 비서실은 야근에 시달렸다. 쏟아지는 감사 편지의 답장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사람이 보든 안보든 지 마음이지예. 세상에 그런 분이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고, 숨 쉴 구멍이다 아임니꺼.”
“됐고! 니들 먹을 괴기는 형이 준비해 주꾸마. 우리 과 동기가 서른두 명이지. 삼겹살로 삼십 근, 돼지갈비 스무 근을 준비해 주께. 배 터지도록 묵어 봐라.”
“헉, 해임!”
놀란 성식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듣고 있던 선영의 눈이 똥그래졌다. 50근이면 150인분이다. 분에 넘치는 찬조, 아니 놀라자빠질 찬조다.
80년대는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돼지고기 한 근을 국 끓이면 열 명이 나눠먹을 수 있지만, 로스팅하면 두 명이 먹어도 모자란다. 당시의 소득 수준에서 로스팅은 언감생심이었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은 감히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발상 자체를 못했다. 엠티가면 기껏해야 카레밥을 만들거나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성식과 선영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와, 고기, 고기다. 형, 돈 마이들겠…….”
성식이 선영의 옆구리를 툭 쳤다.
“헙! 오빠, 헤헤!”
깜짝 놀란 선영이 황급히 호칭을 바꾸었다. 선영이 불안한 눈으로 무쌍을 훔쳐보았다. 우리를 뛰쳐나온 호랑이를 보는 눈이다. 무쌍이 씨익 웃었다.
‘헉, 다크 포스!’
선영의 표정이 허옇게 떴다.
1970년 후반부터 대학가에서 오빠라는 말이 사라졌다. 여학생들 사이에 오빠 대신 형이라는 호칭이 자리 잡았다. 무쌍은 여자애들의 형이라는 호칭이 생경하고 못마땅했다. 마초 기질이 강한 무쌍은 여자애들이 형이라 부르면 심기가 불편해졌다.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젊은이들의 성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라도 발생했단 말인가? 오빠라는 호칭이 얼마나 정겹고 듣기에 좋은가! 형이란 호칭은 시커먼 남자 놈들 사이에 사용해야 한다. 확대하여 해석하더라도 동성 간에 사용되는 단어다.
여학생들이 무쌍을 형이 아니라 오빠라 부르게 된 사건이 있었다. 신입생일 때 과 동기인 김미희가 형이라고 불렀다가 된통 당했다. 물론 당했다는 말은 과 동기들이 하는 말일 뿐이다. 무쌍은 그냥 김미희의 얼굴을 쳐다보았을 뿐이다. 심사가 불편해진 나머지 조금 오래 쳐다보기는 했다.
무쌍의 눈길을 받은 김미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손발을 가늘게 떨고 얼굴이 파래지더니 픽 쓰러졌다. 체육과 애들이 인공호흡하고, 구급차가 달려오고 난리가 났다.
목격자들은 다스베이더 해임이 어둠의 포스로 김미희의 심령을 파괴했다고 소문냈다. 무쌍은 졸지에 다스베이더 스킬을 구사하는 우주 악당으로 자리매김했다.
김미희 사건 후로 무쌍은 오빠라 불리는 유일한 남학생이 되었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겼다. 남학생들 사이에 눈알이 빠지라고 상대를 노려보는 도발적인 행태가 유행했다. 당연히 시비가 생기고 주먹질로 발전했다.
거울을 앞에 두고 노려보는 연습을 하는 띨띨한 놈도 생겼다. 물론 쓰러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극장가를 휩쓴 스타워즈가 남긴 헤프닝이었다.
우주 악당의 심기를 거스른 선영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무쌍이 보살 미소를 지어도 선영의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해임요,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됐어 임마, 그까짓기 머라꼬. 좋은 사람의 배포를 따라가려면 멀었어.”
“그건 그렇지예. 좋은 사람은 수천 명을 먹이고 등록금을 대준다 아임니꺼. 지도 얼릉 졸업해서 어굿퍼슨이 되고 싶심더.”
성식의 얼굴이 존경심으로 물들었다.
“되든가 말든가. 그렇게 알고 엉아는 간다잉.”
무쌍이 백 팩을 챙겨 나가자 선영이 막힌 숨을 토했다.
“후아아~ 십년감수 했네.”
“야, 니는 무신 깡으로 악어 아가리에 해골을 들이미노. 죽을라마 니 혼자 죽어라. 내 심장이 덜컥했다 아이가.”
성식이 지청구를 놓았다.
“미안 미안! 미남에 체격 좋고 성격 좋고 돈 많은 오빠인데 쉽게 접근하긴 힘들어. 섬뜩하다고 해야 하나, 무섭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정체 모를 포스가 있어.”
“선영아, 다스베이더 형님의 정체가 뭘까?”
“성식이 너만 알아야 돼. 알았지?”
선영이 목소리를 팍 낮추었다.
“먼데?”
“내 친구가 영대에 다니거든. 걔 친구 중에 계순이란 애가 있어. 그 애가 바로 다스베이더 여동생이라는 거야.”
성식의 눈이 둥그레졌다.
“진짜? 대박이다. 계순이라는 애가 혹시 레이아 공주?”
“지랄해라.”
선영이 손바닥을 휘둘렀다. 뒤통수를 맞은 성식이 비틀했다.
“걔한테 물어보마 우주 악당의 정체를 알 수 있겠구마.”
“내 친구에게 부탁해 놓았어. 다음 주면 드디어 다스베이더 오빠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거지.”
“화, 담주가 진짜 기대 되는구마. 난 우주 악당의 정체가 재벌 2세라는데 한 표.”
“아니야, 국제 킬러일 거야. 분위기가 싸하잖아.”
선영은 의외로 예리한 면이 있었다.
“기집애야, 턱도 없는 소리 말어. 국제 킬러가 뭘 얻어먹겠다고 한국에서 얼쩡거리노.”
“그건 그러네. 군바리들을 확 엎어버리면 좋을 텐데.”
성식과 선영이 무쌍의 정체를 두고 다툴 때 우주 악당은 급히 대구국민학교로 향했다. 열 살짜리 꼬맹이 하교 시간이 막 지났다. 무쌍의 정체는 열 살짜리 계집애를 딸로 둔 스물여섯 살 총각이다.
우우웅- 육중한 가물치가 묵직한 배기음을 토했다. 교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미나가 벌떡 일어나서 다다다 달렸다.
“빠빠아~ 악!”
미나가 돌부리를 차고 고꾸라졌다. 쉭- 무쌍이 순간 이동해서 미나를 번쩍 들어 안았다.
“우리 강아지, 빠빠 기다렸어?”
“아니야, 금방 나왔어. 빠빠, 나 뽑기 한 번만 하면 안 돼?”
어린애는 어린애다. 자신이 넘어질 뻔했다는 사실도, 이십 미터 밖의 무쌍이 자신을 받아 안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관심은 밀짚모자를 쓴 아저씨가 교문 옆에 펼쳐놓은 알록달록한 설탕과자에 온통 쏠렸다.
“안될 리가 있나.”
“대빵 언니가 야단치는걸. 불량식품이라고.”
“불량식품인 건 맞는데 재미있잖아. 크크크!”
무쌍이 킥킥 웃었다. 어린 계집애의 일탈 심리는 그저 귀엽기만 했다. 짚은다리 시절의 풀 빵집 냄새가 새삼 그리웠다.
“정말! 큰언니에게 고자질하지 않을 거지?”
미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흐흐흐, 고자질하면 아빠도 혼나는걸.”
“호호호, 맞아 맞아!”
미나가 비밀엄수 손도장까지 찍고서야 뽑기 행상을 향해 팔랑팔랑 뛰어갔다. 잔뜩 긴장해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미나를 지켜보는 무쌍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매달렸다. 총각 아빠 노릇도 할 만했다.
한티재를 중간쯤 오르면 산성 올라가는 방향 우측에 토끼 길이 나 있다. 소로를 따라 20분쯤 발품을 팔면 축구장 절반 크기의 공터가 툭 튀어나온다. 이곳이 오늘의 엠티 장소다. 공터 5분 거리에 수량이 풍부한 가산 계곡이 있다. 축구공을 찰만한 공터와 물이 있으면 야영 장소로 명당이다.
우우웅- 무지막지한 출력을 자랑하는 가물치가 험한 산길을 가볍게 치고 올랐다. 돌쇠 몇이 텐트를 치고 자리를 고르느라 법석을 떨고, 마님 셋은 그늘에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오머, 오빠 오싰어예”
여자애 셋이 발딱 일어나서 유치원생처럼 허리를 숙였다.
“어 그래, 이쁜이들 안뇽!”
무쌍이 손을 흔들었다. 쏠쏠한 일상의 재미다.
“큰 해임 오셨습니꺼!”
막노동꾼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조폭처럼 허리를 꺾었다. 무쌍은 입맛이 썼다. 졸지에 인민군 지도위원이 된 기분이었다. 나이 차 때문인지 동기들은 그를 지나치게 어려워했다. 사실은 나이 차가 아니라 묵직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와이고, 와이래 무겁노. 에쿠!”
가물치 뒷자리에 실린 고기 박스를 내리던 성식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놓쳤다.
“으이그, 약골 녀석!”
무쌍이 떨어지는 박스를 잽싸게 발등으로 차올려서 잡았다. 성식이 휘청거릴만했다. 삼겹살 20kg, 돼지갈비 10kg, 곱창 5kg, 등심 5kg, 파 절임 두 봉지, 상추와 깻잎, 쌈장까지 50kg이 넘는다. 약골이 다루기에 만만한 무게가 아니다.
“와, 오빠가 맥주까지 사 오셨다.”
배민지가 환성을 질렀다.
“민지야, 등심하고 손질된 곱창은 다이어트하는 예쁜이들 몫인 기라. 마음껏 꾸 묵어라.”
“우왓, 등심! 오빠 최고”
여자애들이 만세를 불렀다. 등심과 곱창은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아이템이다.
“바라 바라, 해임은 재벌 2세다 아이가.”
성식이 선영의 등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들 엠티에 등심을 찬조하는 인간이 재벌 2세가 아니면 누가 재벌 2세겠는가.
무쌍이 바이크에 헬멧을 걸어놓고 발길을 돌렸다. 별 기대는 않지만, 이 기사의 보고서를 확인해 볼 참이다.
“아그들아, 수고들 혀. 엉아는 잠깐 올라갔다 오꾸마.”
“다녀오이소.”
동기 여섯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이거 참!”
농담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무쌍은 인적없는 곳에서 청파보를 시전해서 소금쟁이가 물 위를 미끄러지듯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가산산성 따위는 오 분이면 오른다.
무쌍은 치키봉 바위굴을 쉽게 찾았다. 우연히 발견한 이곳은 너구리나 드나들 만큼 좁은 입구를 망개나무와 가시박이 뒤덮고 있어 일반인은 알아도 찾기 힘들다.
“이노무 자식이 약속을 지켰을라나.”
손을 집어넣어 천장을 더듬었다. 종이 대신에 엉뚱한 녀석이 침입자를 응징했다.
“허, 그놈 참!”
무쌍이 혀를 차며 손을 꺼냈다. 중지 끝에 살모사가 대롱대롱 매달려 나왔다. 독사는 물고 늘어지지 않는 법인데 이놈은 별종이다. 살모사를 떼서 풀숲에 던졌다. 괘씸하지만 주거침입자는 자신이다.
살모사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공간지각력은 만능이 아니었다. 주변온도보다 체온이 낮은 냉혈동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자식, 제법 신용이 있네.”
종이는 넉 장이었다. 이 기사 녀석이 넉 달간 약속을 지킨 셈이다. 누렇게 변색하고 쭈글쭈글해진 편지지, 회색으로 번진 글씨, 7년이란 세월은 짧지 않았다. 문맥도 맞춤법도 엉망이고, 글씨도 괴발개발 했지만, 읽는 데 지장은 없었다.
1980.11.30
(사장님) 출근하시다가 병원에 다녀옴. 기침을 억수로 심하게 하고 숨도 캑캑거림. 병명은 모름.
(장기수) 전무로 진급. 쪼다 자슥을 사모님이 밀어붙이서 진급함.
(사모님) 큰 아가씨와 일주일 동안 일본 여행. 사모님 친정 식구들이 많이 찾아옴. 늙은이들이 대부분임.
(희자) 이혼당하고 친정에 왔음. 맨날 백화점과 도깨비 시장에 쇼핑 나감.
(화자) 맨날 나이트에 나감. 술에 째리서 지냄. 용돈 받고 필로폰 5그램을 구해줌.
(우탁) 새 오토바이 사들임. 일제 야마하 600cc, 귀가하지 않는 날이 많음.
1980.12.31
(사장님) 사모님과 한판 뜸. 화자 문제와 회사 임원 뽑기 때문인 듯. 사장님 집에 들어오지 않음. 이혼할 것 같음
(사모님) 점쟁이와 무당을 수시로 집에 불러들임. 강영숙이 자살함. 사모님께 보고했음. 잘 디졌다고 함.
(희자) 맨날 물건만 사들임.
(화자) 병원에 데리고 가서 애를 뗌.
(우탁) 복진전문대학에 합격함. 양아치들과 어울려 다님.
1981. 1. 31
(사장님) 병명이 폐기종이라 함. 제3공장 착공
(사모님) 기분이 무척 좋은 상태, 친정 식구들이 수시로 찾아옴.
……
특이사항
칼치 일당이 종적을 감춤. 나처럼 당했을 가능성이 큼.
1981. 2. 28
(사장님) 화자 문제로 부부싸움 후 외박. 사장님 입원.
(사모님) 짜증이 좃나게 심해짐. 물건을 자주 집어 던짐. 박씨 아줌마는 상패에 맞아 골통이 깨짐.
(화자) 강도를 만나서 폭행당하고 입원함. 전치 18개월 진단 나옴. 사장님께 불려가서 야질나게 쪼임. 화자가 마약을 계속 묵은 사실을 털어놓음. 사모님과 화자가 짝짜꿍으로 박무쌍을 강간폭행범으로 만든었다고 털어놓음. 사장님이 뿔따구나서 해고함. 더 이상 보고 못 함. 내 잘못 아님.
“크크크! 이 자식 바라.”
마지막 문장에 웃음이 터졌다. 나름대로는 성의있게 기록했다. 하비브처럼 독한 놈도 매질에는 견디지 못했다. 잔뜩 쫄아 겁쟁이가 된 이 기사가 눈에 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