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48
x 548
제50장 해묵은 인연11
“내 잘못 아님이라고? 크크크!”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귀신에 쫓기는 다급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하중도 버들 숲에서 녀석을 모질게 다루긴 했다. 코끝도 보이지 않는 음산한 숲에서 밤새도록 귀신에 쫓겨 다녔으니 얼마나 겁이 났겠는가.
겉보기에 멀쩡하지만, 내상을 입은 이 기사는 평생 피똥 싸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돈 몇 푼에 어린 학생의 앞길을 망치고, 꽃다운 나이의 여고생을 자살로 몰아넣은 업보다.
화자가 마약을 처먹든 말든, 우탁이 양아치 노릇을 하든 말든, 장씨가 집안을 털어먹든 말든 알 바 아니다. 백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문구만 눈길을 잡아끌었다.
폐기종은 종말 세기관지 원위부의 공기 공간(airspace)이 협착되거나 파괴되는 난치성 질병이다. 한마디로 허파꽈리가 탄력을 잃고 늘어진다. 산소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세포가 괴사하면서 청색증이 나타나고, 호흡 곤란과 발작 기침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고통이 심한 병이다.
발병한 지 육 년째면 제삿밥 먹을 때가 가까워졌다. 마누라 손에 독살당할 위기에서 구해주었더니 불치병에 걸렸단다. 백부의 삶도 기구했다.
“망할 사부, 이래서 서두르지 말라고 했구마. 업보인가!”
원한이 쌓인 백부가 불치병에 결렸음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겪은 탓이다. 생사 자체에 무감각해져 버렸다.
“아니야. 당신은 죗값을 받아야 해.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죽어선 안 돼.”
고함에 놀란 솔새떼가 푸르르 날아갔다. 백부가 덜컥 죽어 버리면 어머니 실종과 관련된 진실의 한 자락이 사라져버린다. 진실은 사실로 위장되어 조용히 덮이면 그걸로 무마된다. 그럴 수는 없다.
‘아니야, 그냥 조용히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무쌍은 혼란에 빠졌다. 이강철을 통해서 진실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또 다른 진실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 사실 속에 숨은 진실은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다. 애써 진실을 드러내려다 가시에 찔려 피를 줄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일단 살려놓고 죗값을 묻고 싶은 심정과 죽음으로 침묵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충돌했다.
[늑대와 승냥이는 비슷하지만, 종이 달라서 먹이를 다투느라 피를 보게 되어 있느니라. 매듭을 풀기 어려우면 시간에 맡겨 두어라.]사부가 6년 전에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상황은 사부의 말씀대로 흘러갔다. 사부 덕분에 패륜을 범하지 않았고, 손대지 않고 코를 푼 셈이다. 명불허전, 앉으면 천 리 밖을 보고, 서면 만 리 밖을 보는 대단한 영감탕구다.
그렇다. 일부러 패륜을 범할 이유가 없다.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된다. 손바닥 사이에 종이를 끼우고 비볐다. 삭은 편지지가 가루로 변해서 계곡 풍에 푸스스 날아갔다. 늘 가슴 한구석을 누르고 있던 흑역사도 날아갔다.
“지금쯤이면 늑대와 승냥이의 싸움은 대충 결판났겠군.”
백부가 늑대라면 장 씨 일문은 승냥이다. 약한 쪽에 조금씩 도움을 주면 양쪽 다 폭망하게 되어있다. 6년 전부터 시작된 싸움은 이미 이전투구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은 총구가 아니라 돈에서 나온다. 재산이 얼마인지 계산해보았다. 노바토피아를 제외하더라도 도바 유전, 토탈사와 아레바에서 받은 수수료, 프랑스 정부에서 받은 수당 등등, 대략 10조 원이다. 매년 들어오는 수입도 7,000억 원에 달한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장씨가문의 재력은 토지에서 나온다. 만석 지기인 장경주의 토지 평가액은 대략 35억 원, 연간 수입은 대략 2억원 내외다.
서민이 보기엔 입이 쩍 벌어질 재산이지만, 자신이 보기엔 파리똥에 불과하다. 입김만 불어도 훅 날아갈 재산을 믿고 그토록 유세를 떨고, 오만방자하게 굴었단 말인가.
‘장 씨와 장 씨 가문을 어떻게 처리해야 아버지와 엄마가 잘했다고 할까?’
늘 머릿속을 뱅뱅 돌던 화두다. 장 씨는 한 줌의 재산을 얻으려고 부모님을 쫓아내고, 조카를 학대하고, 남편을 독살하려는 악녀다. 함정을 파서 조카를 감옥에 처넣고, 아버지 무덤을 파헤치고, 어머니 실종에도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은 여자다. 사부님도 장 씨를 용서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장 씨의 정신적 지주는 친정이고, 재산은 그녀의 모든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 의지처를 잃고 소중한 것을 잃으면 삶이 죽음만 못하게 된다.
“장필녀, 오랜 악연이었어. 이제 끝낼 때도 되었지.”
무쌍의 얼굴이 스산해졌다. 그는 박인보가 이미 장 씨 가문을 시궁창에 처넣고 지근지근 밟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점마들은 머꼬?”
무쌍이 관안을 발휘했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야영장의 전경이 카메라 줌을 당기듯 눈앞에 펼쳐졌다. 자신의 애마인 가물치에 올라타서 핸들을 잡고 까부는 놈이 보였다. 담배를 삐뚜름하게 물고 있는 놈, 바닥에 침을 찍찍 뱉는 놈, 짝다리를 짚고 꺼꾸정하니 어깨에 힘준 놈, 분위기 칙칙한 녀석이 다섯이다.
삼겹살이 두툼한 덩치에 깍두기 머리를 볼작시면 볼 것 없이 동네 양아치들이다. 버르장머리없는 놈을 싫어하는 쌈디가 보았으면 땅에 묻혔을 놈들이다.
양아치 다섯과 대치한 과 동기들은 여학생 11명, 남학생 19명이다.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겁을 먹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하긴 가젤이 떼를 이룬다고 하이에나에게 덤빌 수는 없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은 유전자가 다르다.
“맞아야 정신을 차릴 중생이구만.”
무쌍이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양아치들의 시선이 휘적휘적 다가서는 무쌍에게 몰렸다.
“큰 해임, 볼일은 다 보셨심니꺼.”
반색하는 성식의 얼굴이 벌겋게 부풀었다. 딴에는 과대표라고 나섰다가 뺨따귀를 몇 대 얻어맞은 모양새다.
“얼굴은 와 그러노?”
“해임요, 저 사람들이 텐트 설치비를 개당 이천 원씩 내랍니다. 말도 안 된다 카이끼네 다짜고짜 쎄리뿌네요. 명수도 맞았심더.”
성식이 골목에서 맞고 들어온 막내처럼 일러바쳤다.
“알았다. 엉아가 알아서 타일러 보내꾸마.”
무쌍이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었다. 기분이 꿀꿀하던 차에 알아서 자진 납세하는 녀석들이 고마웠지만, 여자애들이 보는 앞에서 험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성식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러났다. 깡패가 타이른다고 들으면 깡패가 아니다.
“아따 그 새끼, 길쭉하구마. 니는 머꼬?”
넙치는 쭉빠진 몸매에 귀티나는 얼굴이 티꺼웠다. 보아하니 세상물정 모르는 샌님이다. 무쌍이무심한 눈으로 새들에 앉은 놈들 쳐다보았다.내려앉은 콧대, 찌그러진 귓바퀴, 양쪽 어깨에 얹힌 근육 뭉치, 보나마나 레슬링께나 해 본 놈이다. 나머지는 비곗살을 키워 몸무게를 잔뜩 늘린 몸빵 양아치들이다.
“허, 운 좋게 삼청교육대를 피한 놈들이구마.”
무쌍이 혀를 찼다.
“존만이가 머라카노. 넙치 해임요. 이 새끼 간띠가 억수로 부은 놈인데 좀 짤라주까요?”
삼청교육대에 욱한 양아치 한 놈이 나섰다.
“멀대야, 조심혀. 그분은 칼 빵에 뱃가죽이 구멍 나지 않는 분인갑다.”
가물치에 올라앉은 놈이 이죽거렸다. 양아치 넷이 무쌍을 에워싸고 연장을 꺼냈다. 잭나이프 꺼내서 양손으로 이리저리 옮겨 잡는 놈, 사시미로 손톱을 깎는 놈, 오토바이 체인을 빙빙 돌리는 놈, 가관이었다.
“꺄악!”
여학생들이 무쌍의 뒤로 우르르 피신했다. 위기에 처한 암컷은 본능적으로 강자를 찾아내는 특수 유전자가 있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오빠, 어떡해요!”
여자애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허,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아무리 기세를 갈무리하고 있다지만, 이토록 둔감하기도 힘들다. 감히 자신의 애마에 엉덩이를 올린 행실은 맞아 죽어도 싼 놈이다.
“얼레, 이 새끼 가오 잡는거 바라. 눈깔 먹물을 쪽 빨아주까.”
가물치 새들에 앉은 넙치란 녀석이 눈을 부라렸다. 무쌍은 대답 없이 상의 포켓에서 은색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이곳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고향이다. 가능하면 타일러 보내고 싶었다.
버튼을 누르자 코히바지골로 한 대가 톡 튀어나왔다. 커터로 끝을 잘라내고 불을 붙여서 느긋하니 한 모금 빨았다. 구수함과 날카로움이 절묘하게 믹싱된 맛이 욱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화따, 그 새끼 폼 좋구마. 불곰아 저기 시가라 카는 담배 아이가?”
넙치란 놈이 물었다.
“맞심더. 쿠바라 카는 나라에서 만든 게 젤이라 캅띠더.”
키가 껑충한 멀대가 손을 비비며 대답했다.
“멀대야, 니 일로 와바라.”
짝- 넙치가 다짜고짜 멀대의 뺨을 후려쳤다.
“억!”
날벼락을 맞은 멀대가 뺨을 움켜쥐었다가 얼른 부동자세를 취했다.
“씨발 놈아, 내가 불곰한티 물었지 니한테 물더나?”
퍽- 퍽- 넙치가 멀대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아이고, 넙치 해임요, 지가 잘못 했심더.”
“이 새끼야, 내가 니한테 물었냐구. 남의 대답을 가로채는 놈은 시상에서 젤로 나쁜 놈이여.”
뺨을 계속 얻어맞은 멀대는 코피가 터지고 볼이 찐빵이 되었다. 학생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대답을 가로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하를 개 잡듯 잡는 포악함에 기가 질렸다.
넙치의 얼굴에 흡족함이 떠올랐다. 이 정도면 말빨이 팍팍 먹힐 기본 분위기가 잡혔다. 눈이 아프도록 힘을 바짝 주어서 시가 연기를 뿜는 만만치 않아 보이는 놈을 노려보았다.
무쌍은 연기를 길게 뿜었다. 똥오줌 못 가리는 양아치들의 행태에 헛웃음이 나왔다. 상대를 겁먹이는 전형적인 양아치 수법이 귀여울 지경이다.
“자슥, 귀엽게 노는구마. 이 자식아, 그만 내려 온나.”
넙치는 기운이 쭉 빠졌다. 겁먹기는커녕 눈도 깜짝 않는 놈이다.
“이거 니끼가? 물건 좋구마. 나한테 팔아라.”
넙치가 가물치 연료통을 탕탕 두드렸다.
“훗! 살 능력은 되고? 우리 돈으로 팔백만 원쯤 한다.”
무쌍이 피식 웃었다. 눈깔이 작은 만큼이나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놈이다.
“화따, 씨바 억수로 비싸구마. 키 조바라. 내가 한 바퀴 돌아보고 마음에 들마 산다.”
넙치가 손을 내밀었다.
“허허허!”
무쌍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로 분별이 없는 놈이면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아 씨바 키 돌라꼬. 이 해임이 타보고 살끼다.”
“고마하고 애들한테 사과하고 조용히 가라. 사람 볼 줄 모르마 명대로 못사는 법이다.”
“씨발놈이 키 달라니깐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만 하네. 맞고 줄래 그냥~”
핏- 양아치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지갑이 무쌍의 손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무쌍이 지갑에서 내용물을 꺼내자 넙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많이 보던 지갑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 자식아, 지갑에 삼만 원밖에 없는 놈이 무신 BMW 바이크를 산다꼬 지랄이가.”
무쌍이 픽 웃고는 지갑을 휙 던졌다. 얼결에 지갑을 받아든 넙치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넙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체술을 제대로 수련했거나 생각이 있는 놈이면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것이다. 넙치는 상대방이 몰래 지갑을 빼내 갔다는 단세포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양아치의 한계다.
“허 이 새끼, 모찌방은 멀끔하게 생긴 놈이 말하는 뽄새 보소. 니는 암만해도 묵사발이 나야 쓰겠구마잉.”
“묵사발이라~ 사람이 묵사발이 되려면 상당히 복잡하거든. 세포 조직에서 케라틴을 빼내고, 젤라틴을 늘려야제. 수분도 많이 보충해야겠구마. 뼈를 녹이려면 탄산을 써야 하나 염산을 쓰야되나. 아 몰라! 과정이 너무 힘들어. 어이 넙치, 니는 무신 말인지도 모르겠제?”
“하하하!”
“호호호!”
“콜록콜록”
무쌍이 심각한 표정으로 주절거리자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여학생 몇은 깔깔거리다 기침을 토했다. 넙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말투만 들어도 조롱하는 소리다.
“요런 핏덩어리 새끼 바라, 존만아 그거 아나?”
“임마, 목적어를 대명사로 사용하면 국어학자도 무신 소린지 모린다.”
“와하하!”
학생들이 왁자하니 웃었다. 여자애들은 데굴데굴 구를 기세다. 험악한 분위기가 졸지에 개그로 흘렀다. 개뿔도 모르고 나대다가는 골로간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넙치는 뒷목을 움켜잡았다.
“이 씨방새, 에 또 그러니까 그 뭐라나~”
넙치가 제대로 말을 못하고 버벅거렸다.
“어이 안장코, 너 엄청시리 심한 욕을 하고 싶은데 적당한 욕이 없어서 버벅거리는 거제? 애쓰지 말고 기양 가라. 엉아가 예쁜이들 보는 앞에서 험한 꼴 연출하기 싫거든.”
정곡을 찔린 넙치가 콧김을 내뿜었다. 도저히 말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발작하려는 순간 과잉 충성하는 양아치 한 놈이 튀어나와 무쌍의 멱살을 잡았다.
“존만이가 가방끈 자랑하는 기가?”
“이 자식이 매를 버네.”
멱살을 잡으려고 와락 뻗친 손이 허공을 잡았다. 무쌍이 파리 쫓듯이 손바닥을 흔들었다. 쩌억- 도끼로 장작을 쪼개는 소리가 울렸다.
뺨을 차지게 맞은 양아치가 팽이처럼 한 바퀴 돌아서 가물치 흙받이에 머리를 박고 벌렁 자빠졌다. 사지를 바르르 떨더니 축 늘어졌다. 혼백이 반은 떨어져 나갔다.
“짜식이 버르장머리 없거러, 엉아가 이바구하는데 말을 짜르고 지랄이야.”
무쌍이 과장되이 손을 탁탁 털었다.
“머 머꼬!”
양아치들이 우르르 무쌍을 에워쌌다. 남학생들이 삽과 폴대를 들고 나섰다. 무쌍이 손을 흔들었다.
“니들은 가만있거라. 보는 눈이 없으마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 우신에 몇 대 맞고 시작하자.”
“씨팔, 죠져!”
넙치가 잇새로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