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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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12
“눈깔 먹물을 쪽 빨아 뿔 끼다.”
“창세기를 꺼내서 줄넘기를 해주꾸마!”
연장에 앞서서 지저분한 말이 난무했다.
‘어휴, 이 자식들은 패싸움 한번 안 해봤나?’
무쌍은 한숨이 나왔다. 회칼을 좌우로 휘두르는 놈과 오토바이 체인을 빙빙 돌리는 놈은 사용하는 연장의 특성도 모르는 놈이다. 투척용 손도끼를 들고 덤비는 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것들은 조직 싸움에 전위부대로 내세우는 피라미들이다.
손도끼를 던져서 시선을 뺏고, 체인은 사선으로 휘두르고, 그 틈을 타서 회칼을 쥔 놈이 일격필살의 자세로 품속에 뛰어들어 갈비뼈 3번과 4번 사이를 찔러라고 가르쳐주고 싶었다.
무쌍이 파리 쫓듯이 손바닥을 흔들었다. 짝- 짝- 짝- 쇄도하던 양아치 셋이 시차 없이 뺨을 한 대씩 얻어맞고 핑그르르 돌아갔다. 나름 신경 써서 밀어친 덕분에 양아치들은 머리가 박살 나는 횡액을 면했지만 몇 달간 유동식 신세는 져야 할 중상이다.
술 취한 듯 비틀거리던 양아치들이 풀썩 쓰러졌다. 사지를 바르르 떨던 양아치들이 맥을 놓고 늘어졌다. 패대기쳐진 개구리가 따로 없다.
“젠장, 얼라들 델꼬 뭣 하는 짓인지!”
스스로 한심해진 무쌍이 담배 연기를 푹푹 뿜었다.
“와, 다크 포스!”
“최고!”
“대박!”
“다스베이더 해임, 만세!”
성식 등이 함성을 질렀다. 다스베이더 해임 만세라고 외친 철순에게 동기들의 사나운 눈길이 꽂혔다.
“임마, 거기서 다스베이더는 왜 나와? 다크 포스를 얻어맞으려면 너나 맞어.”
성식이 눈을 부라렸다.
“어어, 난 그냥 좋아서”
철순이 무쌍의 눈치를 슬슬 보며 동기들 뒤로 숨었다. 어디나 바보는 있다.
“어, 어!”
어어 소리를 연발하는 놈은 따로 있었다. 넙치가 벌떡 일어났다. 간이 오그라들고 숨이 턱 막혔다. 멀대가 따귀 한 대에 무너질 때는 그냥 쎈 놈이거니 했다. 자신도 웬만한 인간은 한방에 골로 보낼 수 있지만, 연장 들고 달려드는 셋을 따귀 한 대로 홍콩 보내는 능력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씨바, 전국구다. 조때따!’
넙치의 얼굴이 꺼멓게 물들었다. 동성로에서 전국구로 날리던 사시미 형님도 저렇게는 못했다. 암담한 눈길이 무쌍과 졸도한 쫄따구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나름 피를 튀기는 싸움판을 전전한 감각이 위험신호를 맹렬히 울렸다.
“넙치라고 했제? 맞고 사과할래? 사과하고 맞을래?”
‘씨바, 그거나 그거나!’
듣고보니 열이 뻗쳤다. 넙치는 조직에서 단순무식의 대명사로 통한다. 건달 10년 동안 살아남은 원동력은 주먹이 아니라 깡이었다. 건달 싸움은 깡 싸움이다. 깡이 쎈 놈이 이긴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품속의 묵직한 날붙이가 용기를 불렀다.
“조또, 니는 배때기에 철판 둘렀나.”
넙치가 품속에서 날이 짧은 회칼을 꺼냈다. 허연 칼날이 정오의 햇빛에 번쩍거렸다.
“연장 들마 뼈다귀 뽀사진다.”
무쌍의 표정이 굳어졌다.
“씨바, 같이 죽자.”
넙치는 쉬이 덤비지 못하고 변죽만 울렸다. 깡도 깡이지만, 상대도 상대 나름이다. 기생오라비처럼 해사한 얼굴이 저승으로 끌고 가는 강림도령으로 보였다.
“허, 인생이 불쌍해서 싸다구 한 대로 끝낼라 캤더니만……. 쯧쯧! 죽고 싶은 놈은 죽어야지.”
“씨바, 죽기 전에 칼 빵 한번은 놓을 끼다.”
넙치가 칼날을 혀를 핥았다. 살짝 베인 혀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겁주기 이 단계다.
“임마, 스뎅을 프레스로 찍어낸 싸구리 주방 칼로 뭐하는 짓이고? 보는 내가 다 챙피시럽구마. 자해하더라도 혼야끼 청강 정도는 돼야 가오가 살제. 니 족보는 있나?”
“씨바, 어젯밤 꿈에 엄니가 보이두만. 똥 밟았구마.”
넙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겁먹을 상대도 아니고, 연장에는 도가 튼 놈이다. 똘마니들이 따귀 한 방에 나가떨어질 때 알아봤어야 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지금 와서 칼을 집어넣고 머리를 숙일 수도 없었다. 뒷골목 생활도 직장생활 못지않게 치열하다. 붙어 보지도 않고 머리를 숙이면 이 바닥은 끝이다.
“씨바, 모리겠다.”
머리 숙여도 곱게 용서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넙치는 오른발을 크게 내디디며 팔꿈치를 오므린 상태에서 어깨를 밀어 복부를 찔렀다. 사시미 형님에게 배운 히싸스(必殺)다.
“헉!”
넙치가 헛바람을 불었다. 표적 삼은 복부가 좌측으로 한 자나 밀려갔다. 상대는 하체도 상체도 움직이지 않았다. 칼날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는 순간, 넙치의 팔꿈치가 툭 꺾이며 칼날이 횡으로 돌았다.
“이 자식 바라!”
무쌍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간결하고 거침없는 칼질, 이놈의 연장질에 대퇴부 동맥이 끊어지고, 창자를 쏟은 놈이 한두 놈이 아닐 것이다. 턱- 시퍼런 칼날이 맨손에 잡혔다.
‘우흐흐흐! 잘 걸렸다.’
넙치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잡이를 비틀었다. 칼날을 잡은 손가락이 후두둑 잘리는 장면이 그려지는 순간 쩍하는 소리가 울렸다.
“크악!”
찰지게 뺨을 맞은 넙치가 공중제비하다시피 붕 떴다가 철퍼덕 엎어졌다. 탈곡하고 집어던진 짚단이 따로 없다.
“끄으으!”
넙치가 머리를 들었다. 얼굴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의식을 되돌렸다. 귀가 윙윙 울리고 눈앞이 안개 낀 듯 뿌옇게 보였다. 뇌가 두개골 속에서 굴러다니고, 거인이 물속에 집어넣어서 마구 흔드는 느낌이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곧 까맣게 변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뿌연 안개가 밀려가고 초점이 돌아왔다.
‘내 칼이 점마 손에 왜 있지?’
넙치는 상대의 손에 들려있는 회칼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일개 양아치가 공수납백인의 한 수를 알아볼 눈이 있을 리 없었다.
“허, 맷집이 선우현에 버금갈 놈이네.”
무쌍은 가볍게 놀랐다. 일개 동네 양아치 맷집이 아니다. 힘을 조절해서 때리긴 했지만, 양아치가 곧바로 정신을 차릴 줄 몰랐다.
“우와!”
“딱 한 방이다.”
“역시 무쌍 해임이다.”
그제야 환성이 터졌다.
“봤나?”
성식이 턱을 치켜들고 동기들을 둘러보았다. 마치 자신이 양아치들을 때려눕힌 주인공인양했다.
“봤다!”
동기들이 입을 모아 합창했다. 악을 제압하는 압도적인 폭력이 예술 작품 이상의 감동과 공감을 끌어냈다.
“눈떠 존만아, 정신 돌아온 거 벌써 알고 있거든!”
무쌍의 일갈에 양아치들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잔뜩 겁먹은 눈알이 분주히 굴러다녔다.
“집합!”
양아치들이 우물쭈물했다.
“이것들 봐라! 아직도 군기가 외출했네.”
무쌍이 축구공 차듯 머리, 가슴, 배, 엉덩이를 가리지 않고 뻥뻥 걷어찼다.
“끄아아!”
비명과 신음이 산등성이를 울렸다.
“하여튼 한국이나 아프리카나 양아치 새끼들은 더럽게도 말을 들어 처먹지 않아요. 집합!”
폭력이 말보다 효과적임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양아치 다섯이 번개같이 한 줄로 꿇어앉았다. 무쌍이 들고 있던 사시미 날을 손가락으로 툭 튕겼다. 깡- 쇳소리가 울리며 칼날 끝단 30mm가 자른 듯 사라졌다.
“띨띨한 자슥, 시노기(칼등성이)와 요코테(칼날의 날카롭고 단단한 부분) 구분도 안 되는 사시미를 쪽팔려서 우예 쓰노. 허이구 하몬(담금질 무늬)도 안 보이네. 프레스로 찍어서 담금질 한번 안 한 싸구리로 피를 볼라 켔나? 치아라. 과도로 쓰기에 딱 좋은 물건이네.”
무쌍이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도첨이 뭉툭해진 회칼을 민자에게 내밀었다.
“민자야, 나물 다듬고 찌개에 비계 썰어 넣을 때 써래이.”
“옴마나, 식도가 개판이었는데 잘됐네예. 오빠, 고맙심더.”
민자가 환한 얼굴로 칼을 받았다.
“내가 연장질하마 뼈다귀 뽀순다 캤제?”
무쌍이 넙치를 돌아보았다. 민자와 대화할 때는 봄바람 같던 표정이 북풍한설처럼 서늘해졌다. 넙치의 얼굴에서 핏기가 쫙 빠져나갔다. 조폭 밥을 먹은 지 십 년이다. 이 계통에도 나름 법이 있다. 연장질하다 되치기당하면 아킬레스건이나 손목 인대로 보상해야한다.
“얼굴 노래질 거 없다. 재떨이!”
넙치가 잽싸게 왼손 바닥을 내밀고 오른 손바닥으로 받쳐 올렸다. 무쌍이 짧아진 시가를 넙치의 손바닥에 짓이겨서 껐다. 굵고 단단히 말린 시가는 일반 궐련과 다르다. 쉽게 꺼지지 않는다. 엽기적인 장면은 주먹 계통에서 철저한 복종 퍼포먼스다.
살타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넙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전자의 얼굴이 노래졌다. 여자애들은 얼굴을 가렸다.
“내가 젤로 잘하는 기 패는 거다. 뼈다귀 세 개만 뿐지른다. 기절하거나 죽지는 않을 끼다.”
‘씨바, 그걸 위로라고 하는 기가!’
넙치는 울고 싶었다. 차라리 다리나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게 낫다. 허벅지 뼈를 부수거나 척추를 부수면 시장바닥에서 구걸로 연명해야 한다.
“할 말 없수다. 맘대로 하슈.”
넙치는 눈을 감았다. 괴물에게 깡을 부렸으니 남은 건 묵사발이다. 괴물이 자비를 베풀어서 작살내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좋은 자세다. 할 일은 후딱 하고 쉬자고. 손바닥으로 때릴 테니 너무 겁먹지 마라. 네놈이 우리 애들을 심하게 다루지 않은 덕분인 줄 알아라.”
“봐주셔서 감사합니더!”
넙치가 고개를 숙였다. 설마 손바닥에 맞아서 뼈가 부러지랴 했다. 넙치는 상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무쌍은 아홉 살 때부터 백부에게 맞으며 자랐다. 청소년기에 최도식에게 맞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부의 지팡이에 곤죽이 되었다.
돈은 쓸 줄 아는 놈이 벌고, 여자는 후릴 줄 아는 놈이 존중한다. 매 맞기에 이골이 나다 보니 때리기도 도가 트였다. 무쌍은 생각한 만큼 고통을 주고, 필요한 만큼 데미지를 입히는 구타 마스터다.
뻑- “꾸액!” 퍽- “끄악!”
손바닥이 섬전처럼 날아다녔다. 넙치는 쓰러질 틈도 없이 꼿꼿이 선 채로 헌 집 벽 털리듯 발렸다. 타격음과 돼지 멱따는 비명이 가산산성을 울렸다. 새끼 양아치들은 아예 얼굴을 가슴에 묻고 귀를 막았다. 박살 나는 보스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넙치는 죽고 싶었다. 이건 손바닥이 아니라 철판이다. 한 대씩 맞을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통증이 밀려들었다. 평소 자랑하던 맷집이 원망스러웠다. 기절하고 싶었지만, 맷집이 좋다 보니 기절도 못 했다. 구타는 짧고 인상적으로 끝났다. 넙치는 걸레 뭉치가 되어 널브러졌다.
모지락스런 구타에 성식 등의 얼굴이 허옇게 떴다.
“성식아, 저 저분이 우리가 아는 그분이 맞나?”
“흐흐흐, 언제는 해임이 니 호구라메? 철순이 니는 이자 조때따.”
성식이 중환자 면회객 표정을 지었다.
“씨바, 내가 언제? 내는 해임이 세상에서 젤로 맘씨좋은 분이라 캤다.”
철순이 펄쩍 뛰었다. 다스베이더는 별명과 달리 늘 웃는 얼굴이다. 동기들 사이에 호구로 불릴 만큼 밥도 잘 사고 술도 잘 사준다. 마음씨 좋고 돈많은 형으로만 알았던 다스베이더의 잔악한 면모를 목격한 동기들은 할 말을 잊었다.
“약속대로 뼈다귀 세 개만 상납받았다. 오른쪽 6번 7번 갈비뼈와 왼팔 척골이다. 오른팔은 밥 묵으라고 내비두고, 위쪽 갈비뼈는 폐를 구멍 낼까 봐 봐주었다. 척추를 뿐지를라 카다가 인생이 불쌍해 봐준 거다. 고맙제?”
“해임, 고맙심더!”
넙치가 고개를 숙였다. 실지로 괴물이 크게 봐준 셈이다. 갈비뼈와 척골 손상은 실생활에 큰 불편(?)이 없고, 빨리 아물러 붙는 뼈에 속한다. 연장질에 대한 응징으로는 약한 편이다.
“뭐! 해임? 이 자식아, 내가 너 같은 양아치를 동생으로 둘 사람으로 보이디? 강냉이 확 털어버리기 전에 대가리 박아!”
살벌한 소리가 쩡 울렸다. 대가리라는 말에 나올 때 양아치들의 머리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군필자에게 원산폭격만큼 익숙한 퍼포먼스가 없다. 깡패 생활을 통해 후반기 교육까지 받은 양아치들은 자동이었다.
“명수야, 몽디 가져 온나.”
명수가 번개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숨죽이고 있던 학생들이 와글거리기 시작했다. 명수가 메추리알보다 굵은 공용텐트 지주를 들고 왔다.
“호, 이거 쓸만하네.”
씨우웅- 탄성 좋은 알루미늄 파이프가 날카롭게 대기를 갈랐다. 양아치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뺨 한 대 맞고 디질뻔했는데 저걸로 맞으면 진짜 디진다.
-씨바, 튀자!
-씨댕아, 지랄해라. 점마가 귀신맨치로 움직이는 거 못 봤나?
양아치들의 눈알이 서로 정신없이 더듬으며 텔레파시를 주고받았다.
“에이 귀찮다. 명수야, 니가 적당히 빳다 쳐라.”
무쌍이 지주를 명수에게 넘겼다. 양아치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명수와 성식이 교대로 빳다를 쳤지만, 양아치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괴물에게 한 대 맞느니 얼라들에게 백 대 맞는 게 낫다.
“넙치야, 점마들은 기양 양아치고 니는 사람을 제법 찔러 본 놈이구마. 족보 있제?”
“삼식파~ 아니, 삼식용역에 있심더.”
대답이 제꺽 나왔다. 입이 저 혼자 움직였다.
“연장질은 누구한테 배웠노?”
“사시미 해임께 배웠심더.”
“사시미? 야꾸자로 있다가 쪽발이 형사 두 놈 배때지 담그고 우리나라로 튀어온 놈 말이가?”
“어! 사시미 해임을 아십니꺼?”
넙치가 반색했다. 뻑- 알루미늄 파이프가 넙치의 정수리를 때렸다.
“이 자식아, 내가 그딴 양아치를 우예 아노. 가만! 이눔시키, 5년 전에 화원에서 여학생 납치한 적 있었제?”
무쌍이 불쑥물었다. 자신의 폐에 구멍냈던 사시미란 놈과 넙데데한 시커먼 얼굴이 연결되었다.
“허억!”
식겁을 한 넙치가 벌떡 일어서다 픽 고꾸라졌다. 부러진 갈비뼈가 장기를 찌를 때 느껴지는 극악한 통증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