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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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13
“서 설마!”
전직 사시미 파 친위대원 넙치의 동공이 벌어지고 입가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호리호리한 신체, 해사한 얼굴에 선량해 보이는 눈, 먹물처럼 검은 눈썹, 무엇보다 왼쪽 뺨에 남은 흐릿한 흉터가 결정적이었다. 눈앞의 인간은 5년 전에 조직을 박살 냈던 악몽이다.
악몽의 또 다른 별명은 삼불(三不)이다. 만나서는 안 되는 불가근(不可近), 쳐다보면 안 되는 불가망(不可望), 접촉하면 안 되는 불가촉(不可觸)이다.
삼불을 만나고, 쳐다보고, 접촉했으니 삼재수가 겹쳤다. 넙치는 극도의 공포에 질렸다. 식은땀이 등골을 주르륵 타고 내리고,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다 당신은 악몽~”
따악- 천막 지주가 정수리에 떨어졌다.
“아악!”
넙치가 머리를 싸쥐고 신음했다. 삼불 악몽에 외통수로 걸렸다. 세상이 좁아도 너무 좁고,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는 없다.
“주디 닥쳐!”
호랑이가 으르릉대는 끔찍한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헙!”
넙치의 입이 말조개처럼 단단히 봉해졌다. 지독한 통증이 5년 전의 사건을 고스란히 일깨웠다. 알짜배기인 동성로와 대구역, 서문시장 일대를 장악한 사시미 파는 지방 조직이지만, 서방파, 양은이파, 동재파 등 전국구 조직 못지않은 세를 과시했다.
야쿠자 출신인 보스의 칼질은 신의 경지에 달했고, 친위대 22명은 레슬링 전국 체전 우승자이자 유도 4단인 자신이 말단 멤버에 겨우 이름을 올릴 정도로 한가락 하는 주먹이었다.
납치당한 어린 촌년이 겁도 없이 ‘울 오빠 불렀제? 니들은 이자 클났데이.’ 라고 말할 때는 모두 웃었다. 전설의 시라소니라도 좁은 장소에서 수십 명의 칼잡이를 당할 수는 없다.
겁대가리 없는 맹랑한 가시나를 납치한 대가는 참혹했다. 그년이 말한 울 오빠가 악몽일 줄이야! 악몽이 화원 아지트를 방문한 그 날이 생생히 기억났다. 초장에 한방 얻어맞고 전투력을 상실한 덕분에 도살 장면을 똑똑히 봤다.
인질도 소용없고 연장도 소용없었다. 허깨비처럼 날아다니고, 주먹질 한방에 콘크리트벽이 뚫리는 놈을 무슨 수로 당한단 말인가! 단 20분 만에 보스와 친위대 22명, 행동대 30명이 결딴났다.
어둠의 세계에서 ‘화원 학살’이라고 불리는 그 날, 촌티 줄줄 흐르는 가시나 하나를 납치한 대가로 사시미 파 정예 멤버가 몽땅 병신이 되었다.
친위대 동료 두 놈은 지금도 칠성시장을 기어 다니며 구걸로 연명하고 있다. 잡아온 가시나의 뺨을 때린 대가로 척추와 골반이 박살 난 녀석들이다. 넙치는 부러진 갈비뼈를 슬며시 쓰다듬었다. 5년 전 발길질 한 방에 통째로 내려앉았던 갈비가 또 부러졌다.
‘망할 년!’
무쌍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당시에 사시미 파를 사주해서 진순을 납치한 장본인이 장 씨와 화자다. 진순을 미끼로 자신을 끌어내려 했다. 조금도 늦었어도 진순은 욕을 볼뻔했다. 가족만 아니었으면 찢어 죽였을 년이 장씨와 화자다.
딱- 넙치의 이마에 딱밤이 작열했다.
“아악!”
넙치는 이마를 싸쥐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인간의 손가락이 아니라 망치다.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극악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짜슥이 디비 자나? 창고 문을 지키던 비곗덩어리가 니 맞제?”
“예 예, 맞습니다요.”
넙치가 머리를 조아렸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아차 하면 널빤지에 바퀴를 단 캐리어에 엎드려서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는 불상사가 생긴다.
“이놈 새끼 바라.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지저분하게 놀고 있는가베. 니 이름 머꼬? 묘비는 세워 주꾸마.”
넙치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검은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보스의 뼈마디를 또각또각 분지르던 악몽이 눈앞의 인간이다.
“해임요, 살리 주시소. 저는 나쁜 짓은 절대 안 하고 삼식용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심더. 방국봉 과장이라 카마 성실하다고 소문이 났심더. 참말입니더.”
넙치는 머리를 처박고 결사적으로 빌었다. 뼈 없는 문어 꼴로 연명하다가 자살한 보스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훨훨 날아다니는 악몽 면전에서 언감생심이다.
“호호호, 이름이 방구뽕이란다.”
“얘, 애들처럼 유치하게 이름을 가지고 그래. 호호호, 쪼매 거시기 하긴 하네.”
“엉덩짝 바라. 떡판이다. 떡판! 그래서 방구뽕인가 봐.”
“가시나야, 너무 그카지 마라. 불쌍해서 못 보겠구마.”
여자애들이 깔깔거리며 찧고 까불었다. 넙치는 100kg이 넘는 거구다. 방국봉이란 이름과 고두배례하는 곰 같은 덩치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호가호위, 다스베이더의 위용을 목격한 갑남을녀는 깡패 무서운 줄 몰랐다.
‘베라묵을 년들, 가랑이를 확 찢어뿔라.’
넙치는 이빨을 갈았다. 주둥아리 놀리는 것들을 갈아 마시고 싶지만, 그전에 자신이 맷돌에 갈릴 판이다.
“사시미 파는 우예 됐어?”
“저 말고는 전부 은퇴했심더. 고향에 못 가는 놈들은 월배에 모여서 돼지를 치고, 사시미 해임은 싸이나를 콜라에 타서 마셨습니다. 지는 개과천선해서 삼식 해임 밑에 들어가서 사람 찾는 일만 했심더. 한 번도 나쁜 짓은 안 했심더. 참말입니더.”
넙치가 징징 울었다.
“가만, 삼식이라~”
어디선가 들은 이름이다. 기억을 더듬던 무쌍이 딱 손가락을 쳤다. 백부댁 거실에 모인 장 씨 가문 사람들이 삼식 캐피탈을 씹어댔었다.
“삼식용역이 삼식 캐피탈이냐?”
“옙, 둘 다 삼식 해임이 차린 회사임더. 삼식용역은 노가다, 파출부 같은 인력 공급이 주업인데 몇 년 전부터는 사람 찾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심더. 삼식 캐피탈은 작년에 만들었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더.”
삼식 캐피탈은 박인보가 장 씨 가문의 기둥뿌리를 뽑으려고 만든 유령회사다. 무쌍도 모르고 넙치도 모르는 사실이다. 삼식이 직접 챙기는 만큼 조직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을 찾는다꼬? 단디 이바구 해 바라.”
삼식 캐피탈이 장 씨 가문과 거래를 하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부쩍 흥미가 당겼다. 조폭과 양아치가 경찰보다 현지 물정을 더 잘 안다. 모종의 아이디어가 번쩍 스쳐 갔다.
“옙, 인력 공급을 제쳐놓고 전력을 다해서 여자를 찾기 시작한 지 칠팔 년 됐을 낌더. 향심섬유에서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비용도 부담합니더.”
“머라꼬! 향심섬유?”
무쌍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수리에 얼음물을 부은 듯 싸한 예감이 신경을 치달렸다.
“니들이 찾고 있는 여자분 이름이 머꼬?”
무쌍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김말순입니더.”
띠잉- 무쌍이 휘청했다. 김말순- 김말순- 메아리가 고막을 윙윙 울렸다. 김말순이란 촌스러운 이름은 흔하지만, 향심섬유와 연결된 김말순은 둘일 수 없다. 양아치 녀석의 입에서 어머니가 튀어나올 줄이야!
“장 씨, 네년인가?”
중얼거리는 음성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악독한 장 씨라면 어머니를 추적해서 해코지하고 남을 여자다. 조카 살해를 사주하고, 남편을 독살하려는 년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넙치의 표정이 푸르죽죽해졌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숨이 막혔다. 끈적한 물이 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넙치가 목을 움켜잡고 컥컥댔다.
“아차!”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쯔바라 프라바름타야…….’
무쌍은 정심공으로 격동을 가라앉히고, 살기를 갈무리했다.
“나이와 용모는? 아니 사진은 있나?”
“사진은 없고 초상화는 있심더.”
넙치가 품속에서 책받침 절반 크기의 비닐 코팅 지를 꺼냈다. 코팅 지가 넙치의 손을 쑥 빠져나가서 무쌍의 손에 들어갔다. 넙치는 깜짝 놀랐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상대는 악몽이다. 뭔 짓을 해도 놀랍지 않았다.
‘흐으!’
무쌍이 코팅 지를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갸름한 얼굴, 짙은 눈썹과 젖은듯한 눈매, 오뚝한 코와 선명한 입술, 가느다란 목과 좁은 어깨, 엄마다.
나이를 감안한 듯 목과 눈꼬리에 잔주름 몇 개를 그리고, 머리카락에 새치를 그려넣었지만, 놀랄 만큼 잘 묘사한 상반신 초상화다.
‘어머니!’
가슴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전장에서 다져진 강철 심장도 어머니 얼굴 앞에서는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무쌍은 마음을 추스르고 초상화를 비상 파우치에 챙겨 넣었다.
“향심섬유의 누가 의뢰했나?”
“지 지는 잘 모립니다요. 통통한 아가씨가 사장님을 찾아와서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것 같았심더. 참말입니더. 지는 얼라들을 델꼬 바깥으로 나돌아서 잘 모립니더. 진짭니더.”
넙치는 단순무식하지만, 눈치까지 없지는 않았다. 조직에서 찾는 여인이 악몽과 보통 관계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행여나 꼬투리가 잡힐세라 찢어지는 통증에 불구하고 방아깨비처럼 허리를 숙였다.
무쌍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보았다. 층층이 쌓인 흰 구름이 푸근한 엄마 치마폭을 닮았다. 실컷 놀다가 밤늦은 시간에 대문을 들어서며 ‘엄마, 밥!’ 하고 소리치면 툇마루에 앉아 기다리던 엄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놈 자식, 밥은 묵고 놀아야제.’ 치마폭으로 머리를 감싸서 꿀밤을 때림은 행여나 아들이 아플세라 걱정이 앞섬이다.
‘하느님, 조율 좀 해줘요. 16년이나 괴롭혔으면 풀어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하늘은 말이 없었다.
뚱뚱한 아가씨라며 희자도 아니고 화자도 아니다. 회사 직원일 가능성이 높았다. 장 씨 주특기가 돈으로 양아치 부리기다. 그년이 조직을 동원해서 엄마를 찾고 있다.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듯 마음이 급해졌다.
“그분을 찾는 일은 지가 책임지고 있심더. 식구 열 명에다 오십 명을 추가로 고용해서 전국을 뒤지고 있심더. 해임께 수시로 보고드리겠심더.”
넙치가 눈치를 보며 재빨리 덧붙였다. 위기에 처한 넙치는 발군의 생존 감각을 발휘했다.
“육십 명이나?”
무쌍이 눈살을 찌푸렸다. 60명을 몇 년간 움직이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장 씨는 씨비 함정에 빠져있다. 돈에 쪼들려서 눈이 벌게진 장씨가 가욋돈을 수천만 원씩 지출할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장씨가 아니라면 백부다. 백부가 왜? 무쌍의 혼란을 느꼈다. 이렇게 되면 삼식이란 놈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저것들은 머꼬?”
무쌍이 꿇어앉은 양아치들을 가리켰다.
“점마들은 기양 한 번씩 일 시키는 똘마니들입니다. 손이 부족해서 저 새끼들을 동원해서 칠곡과 동명을 수소문하고 있었심더.”
“그래? 그럼 얼른 가서 일해야지.”
무쌍이 들고 있던 천막 지주로 양아치들의 정수리를 드럼 치듯 옮겨가며 두드렸다.
“니들 교복 입었을 때는 비행 청소년이고 지금은 동네 양아치제? 그다음 코스는 조폭 몸빵 노릇하다가 감방 가거나 벵신되는 기 이 바닥 정규 코스고 공식인 기라.”
무쌍이 시가를 꺼냈다. 손톱으로 툭 치자 칼로 벤 듯 끄트머리가 잘렸다. 넙치가 번개같이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후우, 니놈들 피곤한 인생은 니놈들이 알아서 챙기고, 내 눈에 보이지는 마라. 몰려다니다 내 눈에 띄면 사지 중 한 개는 영원히 못쓰게 될 끼다. 알았나?”
“예!”
우렁찬 대답이 계곡을 울렸다.
“넙치!”
“옙!”
“니는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저녁 일곱 시에 중앙공원 정자에서 기다려라. 삼식을 만나야겠다.”
무쌍은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만큼 마음이 급했지만, 엠티와서 분위기를 망쳐놓고 휑 떠나기도 마뜩잖았다.
“옙, 성심성의껏 모시겠심더!”
넙치가 넙죽 허리를 숙였다. 보스를 만난다는 소리에 가슴이 덜컹했지만, 악몽의 면전에서 감히 딴소리할 정신이 없었다.
뼈다귀 세 개를 결딴내놓고 바로 나오라는 명령이 야속했지만, 죽으라면 죽고, 가자면 가야 한다. 주먹밥을 먹는 팔자가 감수해야 업보다.
“넙치, 팔을 내밀어라.”
당분간 써먹으려면 망가진 부분을 수선해야 한다. 무쌍이 부러진 팔목을 잡고 밀고 당겨서 척골을 맞추었다. 쏴아아- 공진파가 조골세포를 활성화하고 노폐물을 씻어냈다.
“아아아~”
넙치가 묘한 신음을 냈다. 아파서가 아니다. 춘자와 거시기를 할 때보다 더 강한 쾌감이 신경을 치달렸다. 딱- 손바닥이 뒤통수를 때렸다.
“새끼가 징그럽거러! 임마, 옷 걷어.”
부러진 갈비뼈에 손바닥을 붙이고 공진파와 흡공파를 번갈아 시전했다. 뜨드득- 부러진 갈비뼈가 맞물렸다. 넙치는 간질거리는 쾌감에 벌어지려는 입을 악착같이 다물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식은땀 흘리게 하던 통증이 사라지고 짜릿짜릿한 쾌감이 상체를 치달렸다.
“대충 맞춰졌구먼. 고정할 부목이~”
이리저리 살펴도 부목으로 쓸 적당한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쉭- 손날이 발목 굵기의 소나무를 스쳐 갔다. 소리도 없이 소나무가 싹둑 잘렸다. 구경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차!’
아무 생각 없이 진공파를 썼다. 동네 양아치가 휘두르던 회칼에 염력을 걸었다. 스윽- 풀숲에 뒹굴던 회칼이 공간을 단축해서 손에 쥐어졌다.
“엉아, 칼솜씨가 어때?”
무쌍이 회칼을 까닥거렸지만, 놀란 눈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회칼은 회를 뜨는 연장이지 나무를 자르는 연장이 아니다. 도끼를 휘둘러도 단번에 자를 수 없는 굵은 생나무를 가느다란 회칼로 싹둑 자르면 농담이 된다. 손날로 자르든 회칼로 자르든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이왕 내친 김이다. 쉬쉬쉬쉭- 회칼이 번득였다. 부목으로 쓰기에 알맞은 두께와 크기의 송판 6장이 우루루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