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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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14
“우워, 마술이다!”
누군가 탄성을 터뜨렸다.
“진짜!”
“대박!”
분위기가 돌변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현상을 해석한다. 경험 범주를 넘어선 현상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스러운 것’으로 변모해 버린다. 칼을 놀릴 줄 아는 넙치는 말을 잊었지만, 양아치와 성식 등은 마술 공연 관람객이 되었다.
“임마, 남방 벗어!”
“벗는다. 실시!”
지적을 받은 양아치는 군필자가 분명했다. 복창하고 번개같이 남방을 벗어서 대령했다. 응급처치는 카스텔노다리 교육의 주요 과목이다. 용병으로 전장을 떠돌면 반은 의사가 된다.
무쌍은 넙치의 팔목과 가슴에 부목을 대고 남방을 쭉쭉 찢어서 고정했다. 부목을 만들고 치료를 끝내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물 흐르듯 끝내버린 응급처치에 구경꾼들은 입만 쩍 벌렸다.
무쌍이 지갑을 꺼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지폐를 뽑아서 내밀었다.
“치료비다.”
“헉, 아닙니다.”
넙치가 펄쩍 뛰었다. 잔칫날 잡을 돼지는 잘 먹인다고 했다. 지옥과 천국을 널 띄듯 옮겨 다니는 악몽의 언행에 겁이 덜컥났다.
“이 자식아, 엉아가 받으라면 받아. 깔끔하게 뿐지르고 깔끔하게 수리했다. 별일 없겠지만, 병원에 가라. 글고 저놈들도 치료해야제.”
양아치를 혐오하는 무쌍이 넙치를 치료해주고 치료비까지 건넨 행동은 이례적이었다. 넙치가 어머니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다니지 않았으면 턱도 없는 일이다. 이래서 재수있는 놈은 산사태에 깔려도 살아난다고 했다.
“고맙심더 해임!”
단순무식하고 거친 놈일수록 정에 약하고, 인간적인 대우에 쉽게 무너진다. 넙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악몽이 아니라 길몽이다. 그는 악몽을 삼불이라 부른 놈들을 전부 패 죽이고 싶었다. 이토록 인간적인 분을 가까이하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고, 접촉도 하지말라는 게 말이나 되는가!
“저기 말이 돼는 기가?”
성식 등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병 주고 약 주는 적나라한 현장을 볼 줄 몰랐다. 뼈가 부러져도 아픈 기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치료비 받았다고 가해자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는 세계다. 주먹 세계의 생존 환경은 참으로 만만치 않았다.
“넙치야, 아직도 오토바이를 사고잡냐?”
무쌍이 빙글빙글 웃었다.
“헉, 살려주십시오.”
넙치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잔뜩 움츠려서 눈치를 보던 양아치들도 잽싸게 꿇어앉았다.
“인생은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주먹을 휘두르고 욕지거리나 뱉으며 젊음을 허송하기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으냐?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느끼는 것만 느낀다면 너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지난날 너희가 살아온 순간의 합계가 지금의 모습이고, 현재 너희의 말과 행동이 너희들의 미래 모습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
무쌍이 양아치들을 둘러보았다. 열 개의 눈동자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열심히 듣고 있는지 듣는 척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목을 좌우로 뚜둑거리고, 잇새를 침을 찍찍 뱉는 모습이 멋있디? 양아치 짓을 하며 살아왔기에 양아치고, 양아치 짓을 하고 있기에 나이 들어도 양아치라는 소리다. 양아치를 만나서 즐거워하는 사람, 미소 짓는 사람이 있디? 니들도 행복해지고 싶지?”
“예!”
“대답은 잘 하는구마.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현실이다. 어린애 손에 들린 사탕을 뺏어 먹으면 행복할까? 어린애가 사탕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할까? 행복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인이 너희로 인해 미소 지을 때 너희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미소는 더 큰 미소를 부르고, 주먹은 더 큰 주먹을 부른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양아치들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빛내고, 학생들도 숙연해졌다.
‘젠장, 사이비 교주가 따로 없구마. 뚜바이부르파가 몸에 익었어!’
무쌍은 계면쩍어졌다.
“건달과 양아치의 차이가 뭔지 아나? 건달은 염치를 알고 양아치는 수치를 모른다. 언제까지 코 묻은 사탕을 뺏어 먹고 살래? 이왕에 주먹을 쓸거면 건달로 살아라. 먹고살기 힘들면 불로동에서 제일 큰 집을 찾아오라. 건달로 만들어 주겠다. 알았나?”
“옙, 알겠습니다.”
“즉시 사라진다. 실시!”
“감사합니다. 실시!”
넙치와 양아치들이 번개같이 산을 뛰어 내려갔다.
양아치들이 사라지자 동기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해임요, 반로환동 고수입니꺼? 의사입니꺼? 둘 다입니꺼?”
“임마, 남들도 이 정도는 한다.”
“컥, 그 남들이 누군데요?”
“있어 임마!”
무성의한 대답에 남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여학생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사람 맞심니꺼?”
“아따 그 자식, 내가 사람이 아이마 머꼬.”
“배트맨이나 슈퍼맨이나 그런 거 아임니꺼.”
무쌍이 성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에라 이 자슥아, 니들이 다스베이더라며?”
“헤헤헤, 알고 계셨어요?”
“맨날 찧고 까부는데 우예 모리겠노. 내는 기양 평범한 학생인 기라.”
“에에에! 해임이 평범한 인간이마 저희는 아메바입니꺼 짚신벌레입니꺼.”
성식이 절규했다.
“오빠, 완전 멋졌어예. ‘니들 피곤한 인생은 니들이 알아서 챙기거라.’ 와! 직이는 대사라예. 내가 써먹어야지.”
민자가 방방 뛰었다.
“머라카노, 오빠가 내중에 하신 말씀이 가슴에 콱 틀어박히는구마.”
“무슨 말? 과거의 합계가 현재고, 현재가 미래의 모습이란 말씀?”
“아이다. 불로동에서 제일 큰 집을 찾아오라는 말씀이 가슴에 콱 박히뿟다.”
“찌랄한다!”
“진숙이 니가 기어코 미쳤구나.”
“어이구, 저년 사심 바라.”
비난이 쏟아졌다.
“해임요, 국회로 가시소.”
“이 자식이 먼 소리하노. 해임은 청와대로 가야지.”
30명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무쌍이 손을 내저었다.
“으이그, 분답시러버라. 니들에게 부탁이 있다.”
무쌍이 정색하고 동기들을 둘러보았다.
“입 다물어라. 이거지예? 지들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압니더.”
성식이 무쌍의 말을 가로채고는 동기들을 둘러보았다.
“니들 오늘 뭐 봤노?”
“엠티나와서 놀다 가는 기지 보긴 뭘 보노. 양아치들에게 자릿세는 뜯겼구마.”
철순이 잽싸게 잃었던 점수를 만회했다.
“하모, 우리는 아무것도 본 게 없다.”
“다크 포스 맛보기는 싫거든.”
“무쌍 해임이 뒤끝 있는 거 알제? 우리는 연대책임인 기라. 모두 주둥이 다물어라잉.”
성식이 주먹을 흔들었다.
“아, 그 자식 참! 아무것도 못 봤다 카는데 자꾸 지랄이고.”
동기들이 와글거렸다. 무쌍이 빙긋이 웃었다. 눈치 있고 순수한 놈들이다. 하긴 말해봐야 믿을 사람도 없다. 그냥 생까면 된다.
“됐고, 민생고부터 해결하자. 죽자고 뛰었더니 배고파 디지겠다.”
성식 등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무쌍을 쳐다보았다. 죽자고 뛰기는커녕 손바닥 몇 번 휘둘렀을 뿐이다.
“밥 묵을 준비는 다 됐는데예. 김치찌개가 영 아닌기라예. 오빠가 맛 좀 보이소.”
“내는 요리 같은 거 모린다.”
무쌍이 딱 잡아뗐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에이, 거짓말! 요리를 모르는 분이 고기 양념까지 맛깔나게 챙겨오시나요.”
진숙이 무쌍의 팔짱을 끼고 질질 끌고 갔다. 민지가 국자로 찌개를 떠서 내밀었다. 무쌍이 인상을 찌푸렸다. 니 맛도 내 맛도 없이 밍밍했다. 시큼한 김치맛만 요란했다. 막내 우순이도 이보다는 훨씬 맛을 잘 낸다.
“육수를 따로 안 내고 맹물을 기양 썼구마. 삼겹살과 김치도 볶지 않고 맹물에 그냥 넣고 끓였제?”
“와! 대박, 우예 그래 잘 알아예?”
“남들은 그 정도는 다 안다.”
“에에, 또 그 말씀!”
“배고프니까 대충 간 맞춰서 묵자.”
육수를 다시 내기엔 굶주린 하이에나떼의 눈이 부담스러웠다. 무쌍은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김치와 삼겹살을 건져 넣고 들들 볶았다. 중간에 설탕을 살살 뿌려서 묵은지 신맛을 중화했다. 진순이 가르쳐 준 스킬이다.
볶은 재료를 넣고 찌개를 다시 끓였다. 부족한 육수를 보충하기 위해 양파를 듬뿍 다져 넣고 카레 가루를 소량 투입했다. 양파와 카레를 동시에 사용하면 카레 맛은 휘발되고 찌개의 진한 맛이 더해진다. 이것도 진순에게 배운 스킬이다.
“어때?”
“우와, 이 맛이야! 오빠는 못 하는 기 머라예?”
민지가 환호했다. 시고 밍밍하던 찌개가 환골탈태했다. 진한 국물과 어울린 묵은지의 깊은 맛이 살아났다. 여자애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무쌍은 내친김에 자신의 주특기인 코코칩을 만들었다. 코코칩은 영국의 피쉬 엔 칩스에 힌트를 얻어서 만든 자작품이다.
에피듐의 신체는 출력이 강한 만큼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 닭가슴살은 훌륭한 에너지원이지만 퍽퍽해서 질린다. 조리 방법은 어이없을 만큼 단순하다.
닭가슴살을 얇게 포 떠서 소금과 후추로 밑간해서 바짝 말려두었다가 먹을 때는 튀김옷 없이 기름에 튀겨내기만 하면 된다. 과자처럼 바삭한 꼬꼬칩은 다이어트는 물론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성식아, 다스베이더 해임이 너무 뜨는 거 아이가? 기집애들이 죽고 못 사네. 젠장, 전생에 삼천궁녀라도 구했나!”
철순이 질투의 눈빛을 번쩍였다.
퍽- 성식이 뒤통수를 때렸다.
“하이고 이 자식아, 그래서 니가 하수여. 가시나들이 저케봐야 맹탕 헛물이거든. 해임은 이미 코 꿰인 신세인 거라.”
“진짜! 킹카를 잡은 행운녀가 누군데?”
남자애들의 눈이 번쩍했다.
“나도 잘 모린다. 하여튼 그런 줄 알아라.”
성식이 딱 잡아뗐다. 무쌍은 화급한 심정을 밀어두고 어린 동기들과 어울렸다. 젊음이 있고, 풍족한 음식과 술이 있고, 끝없는 이야기가 있다.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의 망중한이다.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다스베이더의 정체는 더욱 모호해졌다. 그가 특급 요리사라는 근거 없는 루머도 퍼졌다. 아기 때 버려진 다스베이더가 프랑스로 입양되었다는 부록이 따라 붙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 요리 비법을 훔쳐가기 위해 재입국했다는 황당한 스토리가 나돌았다.
“이상타. 악몽 해임이 마약을 처멕였나?”
넙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뼈가 세 개나 부러졌음에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뼈가 부러진 사실조차도 의심스러웠다. 마약은커녕 물 한 잔 마시지 않았지만, 상대는 악몽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약을 먹였을 수 있다.
“어디서 치료했습니까?”
정형외과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건 와 물어요?”
“부러진 뼈가 정합되었어요. 깔끔하게 부러지고, 깔끔하게 치료했네요. 조직 손상도 거의 없어요. 솜씨 좋은 의사에게 치료받고 보름은 지난 골절이오. 와 거짓말합니까?”
의사의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다.
‘이놈 담가 버릴까.’
넙치는 짜증이 났다. 심신이 피곤했다. 얼른 치료를 끝내고 쉬고 싶었다. 치료할 생각은 않고 엉뚱한 소리를 주절대는 의사 놈의 아구창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헉!’
의사를 노려보던 넙치는 저 혼자 소스라쳤다. 사시미로 생나무를 자르고 켜는 황당한 장면이 눈에 어른거렸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덜컹했다.
미소는 더 큰 미소를 부르고, 주먹은 더 큰 주먹을 부른다는 악몽의 말이 머리를 후려쳤다. 손목을 잘라 버린다는 위협보다 더 마음에 걸렸던 말이다. 남이 미소 짓게 만들기는커녕 인상만 벅벅 그리며 살아왔다.
‘미소! 미소를 짓게 하자.’
넙치는 결사적으로 미소 지었다. 굳어진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단춧구멍처럼 째진 눈이 파충류의 눈처럼 세로로 찢어지고, 안장코는 들창코가 되었다. 윗입술이 말려 올라가며 줄로 갈아서 뾰족하게 만든 송곳니가 드러났다. 판타지 소설에 묘사된 오크가 현세했다.
“헉! 와캅니까?”
놀란 의사가 회전의자를 주르륵 밀어서 넙치와 거리를 벌렸다.
“와 그카요?”
넙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싱거운 놈이다.
“치료한 의사에게 과정을 알아보고 싶어서 물어본 건데 와 뿔따구를 냅니까?”
“뿔따구? 무슨 소린지 모리겠네. 응급치료한 분은 악몽이오.”
“에에? 악몽! 나이트메어? 응급치료?”
의문사가 우르르 쏟아졌다. 넙치는 입을 다물었다. 의사 녀석에게 백번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회칼의 용도는 당연히 회 뜨기다. 사미미나 창칼은 더러 사람을 쑤시는 용도로 쓰이지만, 나무를 자르는 용도는 절대 아니다.
“알려주기 싫으마 그만두쇼. 내가 치료할 것도 없어요. 뼈가 아물러 붙고, 염증 반응도 없어요. 장난치지 말고 가보쇼.”
의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뭔가 모르지만, 자존심이 잔뜩 상해 보였다.
우우웅-
묵직한 엔진음에 실려가는 넙치는 식은땀이 솟았다. 악몽은 삼불이다. 쳐다보지도 말라는 삼불을 사무실로 데려갔다가 보스에게 떡이 되도록 맞기 십상이다.
‘아, 몰라! 보스에게 맞아도 죽기야 하겠어.’
넙치는 편하게 생각했다. 보스에게 떡이 되면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악몽에게 맞으면 그냥 떡이 되어 버린다. 인간으로 회귀 불가능이다. 선택권은 애당초에 없었다.
“해임요, 다 왔심더.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서 세 번째 오 층 건물 보이지예? 바로 그깁니더.”
무쌍이 가물치를 세우고 건물을 올려보았다. 5층 건물의 3층에 삼식용역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서 방화문을 밀고 들어섰다.
용역사무실치고는 널찍한 공간에 책상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소파에 앉아서 짜장면을 말아 넣던 똘마니 둘이 벌떡 일어나서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