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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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15 ->25권
“삼금! 다녀오셨습니까?”
입가에 묻은 시커먼 짜장면 소스, 묘한 구호, 뻣뻣한 조폭식 인사, 어색한 표준어, 왼쪽 가슴에 달랑거리는 스마일 배지, 무쌍은 똘마니의 모습에서 뒤죽박죽인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았다.
‘그런데 삼금이 뭐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이래 한국 사회가 온갖 구호의 경연장이 되었지만, 삼금이란 구호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삼금! 사장님 기시나?”
“야, 기십니더.”
십 대 후반의 어린 똘마니가 바짝 얼어서 대답했다. 퍽-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똘마니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임마, 대답은 ‘옙’ 끝말은 ‘다’ ‘나’ ‘까’로 끝내라고 교육받았어. 안 받았어?”
“교육받았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똘마니가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새끼가 빠져가꼬는, 똑바로 해라. 엉!”
“잘하겠습니다.”
넙치가 나무젓가락을 손에 쥔 채 잔뜩 굳어있는 옆의 똘마니를 노려보았다. 똘마니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존만아, 썩은 모찌방 풀어라. 스마일 배지는 폼으로 달았나? 존만아, 웃어라. 웃어!”
“삼금! 웃자!”
“더 크게!”
넙치가 똘마니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퍽-
“삼금! 웃자!”
‘이 새끼들을 몽땅 노바토피아 노역장으로 보내 버릴까?’
무쌍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넙치와 울상이 된 똘마니, 세 놈의 가슴에서 환하게 웃는 스마일 배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넙치, 불쌍한 얼라들 데리고 노닥거릴 시간 없다.”
“옙, 지송합니다. 가시죠.”
화들짝 놀란 넙치가 고개를 숙였다. 똘마니 둘의 눈이 황소 눈알처럼 커졌다. 하늘 같은 넙치 해임이 쪽도 못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근데 삼금은 머꼬?”
“조직 구호입니다. ‘지금 현금을 입금합니다’의 준말입니다.”
“지금 현금 입금? 푸하핫!”
‘씨바, 그러게 구호를 바꾸자니깐!’
넙치는 시원하게 웃는 무쌍을 외면했다. 삼금은 삼식 캐피탈을 설립한 보스가 새로 만든 구호다. 구호를 외칠 때마다 건달 체면이 말이 아니다. 쪽팔려 죽을 지경이다.
“좋은 자세다. 삼식은 성공하겠어. 가자!”
‘성공은 개뿔이, 건달이 언제부터 좋은 주먹 두고 일수 걷고 사채이자 받으러 다녔나. 좀팽이 보스 때문에 가오가 말이 아이구마. 씨바, 확 들이받아 뿌까!’
넙치가 속마음과 달리 새색시처럼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응답이 없다.
“비켜!”
무쌍이 거침없이 문 손잡이를 밀고 들어섰다. 넙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따라들어갔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40대 남자가 힐끔 돌아보았다.
“머꼬?”
각진 얼굴에 짜증이 묻었다. 무쌍은 한 눈에 사무실 넓이와 가구 배치, 창문 배치와 크기, 남자의 인상착의를 읽어냈다. 스나이퍼의 눈은 스캔 기기와 다를 바 없다.
제법 각이 잡힌 40대 중반의 호한이다. 각진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 윤이 나는 이마와 간격이 넓은 짙은 눈썹, 소위 심지가 굳고 돈이 붙을 상이다.
사방 벽은 온통 정밀한 5,000:1 군사용 지도로 덮였다. 조폭 두목 사무실에 흔한 수석과 트로피 한 개 보이지 않았다. 넙치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사장님, 다녀 왔심다.”
세모꼴 눈이 대답 없이 무쌍의 아래위를 훑었다. 양지로 나왔지만 진삼식은 한때 사시미와 혈투를 벌였던 전국구 주먹이다. 겁대가리 없이 불쑥 들어선 낯선 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 작자는 머여?”
설명을 요구하는 눈길이 넙치를 향했다. 그나마 수년간 용역회사를 운영한 덕분에 육두문자는 피했다. 넙치가 맹렬히 눈짓했다.
“이 새끼야, 눈병 났어? 말을 해. 말을!”
삼식이 버럭 했다. 넙치가 재빨리 삼식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뭣!”
회전의자에 상체를 잔뜩 젖히고 앉아있던 삼식이 튀기듯이 일어났다.
악몽이라니!
삼불 악몽이 왜 자신의 사무실에 나타난단 말인가? 사시미 파를 쓸어버리고 호수에 던진 돌처럼 정적이 묘연해진 악몽이다. 놀란 눈길이 방문자의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주르륵 훑었다.
삼식의 눈동자가 바르르 떨렸다. 먹고 먹히는 세계에서 수십년간 살아남은 원동력은 주먹이 아니라 눈썰미였다. 완벽한 균형을 이룬 자세, 삼 줄을 꼬아 붙인 팔근육, 깊은 호수처럼 고요한 눈동자, 운중룡 풍종호의 기세를 감춘 진짜배기다. 삼식의 허리가 노골노골해졌다.
“삼식용역을 굴리는 진삼식입니다.”
“당신들이 악몽이라 부르는 사람이오. 만나서 반갑소.”
나직이 울리는 바리톤 음성이 한 음절씩 삼식의 고막을 두드렸다. 삼식은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상대의 눈빛이 쏘듯이 동공을 파고들었다.
‘헙!’
삼식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맹수의 눈이다. 호랑이 우리에 던져진 느낌이 이와 같을까? 나이 스물에 조직 생활을 시작해서 26년을 험하게 살아온 인생이다.
삼식은 피 냄새를 느꼈다. 피 튀기는 싸움을 수없이 치러온 몸이 맡는 냄새다. 상대방의 뺨에 난 십자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험한 세상을 살아온 표식이다. 축적된 위험 감지 능력이 맹렬히 울렸다. 아차 하면 골로간다.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삼식은 즉시 자진 상납했다. 이래서 사람은 이름값이 있어야 한다. 무쌍의 위치는 작자에서 형님으로 단숨에 격상했다.
“오래 살겠구먼!”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놈이다. 야생에서 살아남은 놈이 강한 놈이다. 주먹세계에서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센 놈이 갑이다. 상대가 나이대접을 해주면 다행이다.
“넙치야, 형님 마실 거 챙기서 보내라.”
“옙!”
엉거주춤 서 있던 넙치가 발걸음 소리를 죽여서 사라졌다. 삼식은 소파를 마다하고 철제 의자에 앉은 악몽을 흘끗 쳐다보았다. 방만한 자세인 듯 보이지만 왼쪽 발이 뒤쪽으로 45도 살짝 빠져 있다. 전투태세가 몸에 밴 인간이다.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오. 댁이 찾는다는 여자분에 대해 물어보러 왔소.”
무쌍이 불문곡직 본론을 꺼냈다. 양아치 두목과 짝짜꿍할 일도 없고, 친분을 나눌 일도 없다.
“어?”
삼식은 깜짝 놀랐다. 용채가 필요해서 들른 줄 알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방문 목적이 튀어나왔다. 삼식은 이빨을 갈았다.
‘죽일 놈의 새끼!’
주둥아리를 놀린 넙치의 입을 확 찢고 싶었다. 고객은 왕이다. 의뢰자의 정보가 줄줄 새는 조직은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밥그릇과 강제 은퇴는 동급이다. 그래서 조직 간에 음성적인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삼식은 아랫배에 힘을 바짝 주었다.
“죄송합니다. 고객으로부터 함구하라는 요청을 받은 처지라~”
삼식은 말꼬리를 끌었다. 악몽도 무섭지만, 밥그릇은 신성하다. 일단 버텨볼 작정이다.
“이해한다. 찾는 사람이 김말숙이라면 나와 관계있는 분이다.”
‘씨파, 더럽게 살벌하네.’
삼식이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살기가 실리지 않은 고요한 눈이 더 무서웠다.
“알고 계셨습니까?”
“의뢰자는 박인보 사장이겠지? 나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다.”
무쌍이 앞에 놓인 티 테이블을 검지와 중지로 지그시 눌렀다. 손가락이 두꺼운 원목 상판을 감속 드릴처럼 느릿느릿 파고들었다.
“헉!”
삼식이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뱉었다. 그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티 테이블 상판은 스티로폼이 아니라 두께 3인치의 나왕목이다. 악몽이 보여주는 한 수는 차원이 다른 무시무시한 시위다.
연한 물체가 단단한 물체를 부수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속력이다. 손가락으로 테이블 상판을 단번에 뚫었으면 놀랄지언정 식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고 있는 순간에도 손가락이 테이블 상판을 느릿하게 파고들었다. 뽁- 기어코 구멍이 뚫렸다. 삼식은 뽁 소리에 움찔했다. 자신의 신체에 구멍이 뚫린듯한 싸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고객의 비밀도 중요하지만, 상대는 같은 인간이 아니라 악몽이다. 일단 살아야 밥그릇을 챙기든 말든 할 게 아닌가. 삼식의 입이 제꺽 열렸다.
“박 사장님께 의뢰를 받은 지 5년쨉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조직 전체가 박 사장님께 봉급을 받고 고용된 상태입니다. 지난 5년간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김말순씨를 찾았지요. 전국의 경찰 자료, 흥신소는 물론이고 지역 똘마니까지 동원해서 전국을 저인망으로 훑었습니다.”
“성과는 있었소?”
삼식의 시선이 구멍 뚫린 티 테이블과 무쌍의 손을 오갔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성과가 없다고 했다간 뱃가죽이 구멍이 숭숭 날 것 같았다.
“김말순 씨는 정처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쉽게 찾을 줄 알았지만, 매번 한발씩 늦었습니다. 우리가 확인한 것만도 거주지를 세 번 옮겼어요. 김말순 씨의 흔적이 처음 포착된 곳은 충무 부두가 월광식당입니다. 수소문해서 찾았을 때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여주인 말로는 정신이 온전치 못했지만, 무척 성실하고 심성이 착한 여자였답니다.”
“떠난 이유는?”
“주인 남자가 찝쩍거렸답니다.”
“빌어먹을!”
빠직- 철제 접의자가 비명을 질렀다. 손잡이 용도인 쇠파이프가 종이처럼 구겨졌다. 미모는 세상 모든 여자의 축복이지만, 어머니께는 저주가 되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리라는 예상도 맞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미모의 여자를 노리는 짐승은 세상에 널렸다. 미나의 친모도 그렇게 당하고 죽지 않았던가?
‘혹시 아들?’
삼식이 움찔했다. 김말순의 나이 46세, 눈앞의 악몽은 대략 이십 대 중반, 삼식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 무슨 기절할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삼식은 악몽과 김말순의 관계를 묻지 않았다. 짐작을 쓸데없이 확인할 만큼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자신이 할 일은 악몽이 만족할 수준의 성실한 보고다.
“주인 녀석을 몇 대 쥐어박았습니다. 그분이 욕을 보지는 않은 듯했습니다.”
삼식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김말순이 곧바로 그분으로 격상했다. 세상은 넓고도 좁았다. 천하의 악몽이 김말순의 아들일 줄이야!
“계속하시오!”
깊은 지하에 감금된 상처 입은 괴수가 고통에 못 이겨 신음하는듯한 음성이다. 삼식은 살이 떨렸다. 벌떡 일어나서 서랍에서 낡은 수첩을 들고왔다.
“그분을 월광식당을 떠났을 때가 79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찾았을 때는 이미 삼 년 전에 떠난 거지요.”
“정신이 어떤 식으로 온전치 못한지 들었소?”
음성에 물기에 젖었다. 묻기 싫었지만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
“요리도 잘하고, 셈도 잘하고,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 없었답니다. 희한하게도 본인에 대한 기억만 지우개로 지운듯이 기억하지 못했답니다. 이름도, 나이도, 고향도……. 그리고 자주 두통에 시달렸답니다. 머리를 움켜쥐고 괴로워할 때면 ‘내 새끼 쌍아’ ‘살아서 뭣하나’라고 중얼거렸다는데 제정신을 차리면 자신이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했답니다. 주인 여자도 참하고 일 잘하는 사람을 놓쳤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으윽!”
황소 영각 켜는 깊은 신음에 삼식의 말이 끊겼다. 눈알이 따가워지고 코가 맹맹해졌다. 새참을 머리에 이고 오는 어머니가 흩날리는 연분홍 복사꽃 잎에 가려졌다.
‘어머니, 그러셨군요. 기억을 잃은 채 그 오랜 세월을 떠돌고 계셨군요.’
뇌가 개체 보존을 위해 내리는 소거 명령, 특정 기억이 선택적으로 휘발하는 억압증상,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다. 눈물이 솟았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현기증이 몰려들었다.
아들의 눈을 피해서 슬쩍 젖가슴을 더듬고 함지를 받던 아버지, 곱게 눈을 흘기던 어머니, 봄바람에 흩날리는 연분홍 꽃잎, 땀 젖은 아버지 품에 안겨서 세상에서 젤로 좋은 냄새라던 어머니, 자신의 목숨보다 남편을 사랑했던 어머니다. 아들도 뒷전이었다.
기즈 박사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개체 보존을 위해 정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을 억압해서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는다고 했다. 심적 타격이 얼마나 컸으면 치욕적인 기억을 지워버렸을까!
어머니의 증상은 자신이 방태산에서 겪은 증상보다 더 심한 상태다. 동네 여자들, 이강철, 백부, 장씨가 눈앞을 스쳐 갔다. 갈무리된 살기가 스멀스멀 빠져나왔다.
삼식의 안색이 푸르딩딩해졌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맷돌을 올려놓은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끈적한 물속에 들어간 듯 호흡이 막혔다.
훅 훅-
삼식이 어깨를 젖히고 허덕거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무쌍이 살기를 갈무리했다.
“흠흠! 계속하시오”
“푸우!”
호흡이 터진 삼식은 오금이 저렸다. 무협소설에나 등장하는 유형화된 살기다. 사시미 파를 박살 낼 때 보였다던 신위는 전부가 아니었다.
“월광식당에서 시작된 추적은 포항 죽도시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회타운의 대게식당에서 이년을 머물고 떠났습니다. 그곳에서도 찝쩍거리는 손님이 많아서 떠났답니다. 직원들이 세 번째 찾은 곳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의 송도횟집이었습니다. 지난해 겨울에 간발의 차로 그분의 행적을 놓치고 땅을 쳤습니다. 홧김에 찝쩍거렸다는 몇 놈을 잡아다 두들겼습니다. 그 분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이 껄떡대는 망할 새끼들 때문입니다. 그 새끼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찾았을 겁니다.”
“그래서?”
무쌍의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았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발정 난 수컷들까지 피해 다녀야 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행동을 장악한 무의식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고, 감당하지 못할 기억이다. 현재진행형인 어머니의 혼란과 고난에 가슴이 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