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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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17
삼식의 넉살에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어무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대문을 열어젖히는 만능키요 공감의 정서다. 친구 집에 가서 어무이 하고 부르면 곧바로 한 식구가 된다.
두억시니 면상에 깍지동 체구를 가진 삼식이 바람불면 날아갈 듯 연약한 어머니에게 어무이 어무이 하면서 아양 떠는 장면이 그려졌다. 어머니를 찾아만 주면 어무이를 허락해 줄 참이다.
무쌍은 넉살 좋은 삼식이 밉지 않았다. 돈을 밝히는 놈이지만, 의리 있어 보이는 놈이다. 사부는 때가 되면 인연은 절로 찾아든다셨지만, 자식이 언제까지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거니와 참을 만큼 참았다.
“잘 부탁하오.”
무쌍은 삼촌뻘 아우의 등을 두드려 주고 삼식용역을 나섰다.
“형님,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계십시오.”
삼식이 건물 앞까지 따라 나와 구십 도로 허리를 꺾었다. 사단을 면하기만 해도 다행인데 졸지에 든든한 뒷배가 생겼으니 만세를 불러도 모자랄 판이다. 무쌍은 뒤돌아 보지 않았다. 등 뒤로 손을 흔드는가 했더니 거대한 바이크가 굉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후, 가셨구나!”
삼식이 긴 한숨을 쉬며 시계를 확인했다. 열 시간은 지난 듯한데 겨우 한 시간이 지나갔다.
“씨바, 내가 더 슬프네. 내일은 소고기 몇 근 끊어서 시골 엄니나 찾아봐야겠구먼.”
삼식이 맹맹한 코를 휑 풀고 발길을 돌렸다.
“넙치!”
“삼금! 부르셨습니까?”
잔뜩 긴장한 넙치가 사장실에 들어섰다. 보스에게 말도 않고 악몽을 달고 왔다. 죽도록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다. 아물러 붙은 갈비뼈가 갑자기 욱신거렸다.
“어이쿠, 요 예쁜 새끼 어서 오니라.”
삼식이 환한 얼굴로 맞았다.
‘씨바, 안 속는다. 안 속아!’
넙치는 굳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뼈를 딱딱 부러뜨리던 악몽이 떠올랐다. 삼식도 웃으면서 이빨을 뽑는 인간이다. 복부에 힘을 잔뜩 주고 펀치를 기다렸다.
“넙치야, 니는 오늘부터 부장으로 진급이데이. 김말순님 건은 니가 맡아라. ”
“예에?”
넙치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주먹이 날아올 계절에 웬 춘풍인가!
“와! 싫나?”
“너무 뜻밖의 말씀이라서요. 쏘가리 해임은 우야고요?”
넙치가 우물거렸다. 자신이야 좋지만, 김말순 사건은 직속인 쏘가리 부장이 맡고 있다.
“임마, 조직이 커지면 부장도 늘어야지. 자세한 건 내일 간부회의에서 말하기로 하고.”
삼식이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서 던졌다.
“쫄따구들 데리고 가서 한잔 빨아라.”
“삼금! 감사합니다.”
두툼한 봉투를 받아든 넙치의 얼굴이 늦가을 하늘처럼 환해졌다. 그제야 악몽이 춘풍을 몰고 왔음을 깨달았다. 벼락 진급하고 금일봉 받고,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역시 악몽이 아니라 길몽이었다.
“됐어 임마, 오늘부터 삼금은 치워!”
“예?”
“흐흐흐, 지금 현금 입금합니다. 따위는 이제 필요 없어. 푼돈에 코 박을 삼식이 아니다. 오늘부터 구호는 길몽이다. 알간?”
“옙, 알겠습니다.”
넙치는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대답부터 했다.
“너 대부 봤냐? 갓파다 말이다.”
“그럼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남자는 결코 진짜 남자가 될 수 없다.’ 캬! 말론 브랜도의 대사가 쥑인다 아임니꺼.”
“흐흐흐, 맞다.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놈은 남자가 아인기라. 악몽님이 우리 가족이 되셨다. 아니 갓파다가 되셨다.”
“우오오! 진짭니까?”
넙치가 펄쩍 뛰었다. 이거야말로 밤세계의 지각변동, 쓰나미다.
“흐흐흐, 내가 형님으로 모셨능기라.”
“우와! 해임 대단하십니다. 일단 대구부터 몽땅 먹어야죠.”
“이 자식아, 할 일이 태산인데 먹긴 뭘 먹어. 내일부터 놀고 있는 새끼들 몽땅 거둬서 김말순님 찾기에 투입해. 인원을 200명까지 늘려.”
“200명이요?”
넙치의 눈이 커졌다. 인원이야 많을수록 좋지만, 비용이 문제다.
“새꺄, 얼릉 나가서 한 잔 빨고 내일부터 좇빠지게 뛰어.”
넙치를 쫓아낸 삼식은 장식장에서 아껴둔 헤네시를 꺼냈다. 오늘 같은 날 한 잔 빨지 않으면 언제 빨겠는가. 천하의 악몽이 나서주겠다고 했다. 무서울 게 없었다. 삼식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악몽을 만난 조폭 조직은 인연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 사시미 파는 강제로 퇴장당하고, 아베 일당은 노바토피아의 종신 노역장으로 끌려갔다. 삼식 파는 동아줄을 잡고 비상할 기회를 잡았다. 악몽과 길몽은 꿈꾸는 당사자에 달렸다.
1,200CC 복동엔진의 육중한 굉음이 인적없는 밤거리를 흔들었다. 가물치는 성서로 빠져서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구라리 갈대밭에 멈추었다. 검은 강물과 희게 빛나는 백사장, 끝없이 펼쳐진 갈대만 바람에 서걱일뿐, 사방은 괴괴한 정적에 눌려있다.
“크아아아!”
비통한 울부짖음이 인적없는 늪지에 울려 퍼졌다. 참고 참았던 분노, 슬픔, 고통, 안타까움, 온갖 음차원의 감정이 뒤섞인 울부짖음이다.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 에피듐의 유전자를 각성한 초인도 한 여자의 아들이었다.
전장에서 다져지고 수련으로 단련된 정신도 가슴을 저미는 천륜의 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서른 초반에 사랑하는 남편을 비명에 보내고 청상과부가 된 여자, 친 인에게 추행당하고 미쳐버린 여자, 사랑하는 아들마저 잊고 이름 모를 어느 바닷가를 16년째 헤매고 있는 여자,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다.
무슨 업보가 그리 많기에 삼십을 갓 넘긴 나이에 사랑하는 아들마저 잊어버린 채 하늘을 지붕 삼아 떠돈단 말인가! 아비는 농약 중독으로 죽고, 어미는 기억을 잃은 채 떠돌고, 자식은 인간 도살자가 되었다. 단란한 한 가족의 운명이 어찌 이리도 기구해질 수 있단 말인가?
고대광실 한옥과 복숭아밭이 기다리고 있건만, 흩날리는 연분홍 꽃잎 아래 치마폭 모아쥐고 싱그러운 미소 지을 어머니는 간 곳이 없다.
“하늘이여, 조율을 잊고 잠든 하늘이여! 빌어먹을 하늘이여, 깨어나기 싫으면 나 무쌍이 직접 조율하겠노라.”
굉량한 폭발음에 갈대가 쏠리고 놀란 밤새가 아우성을 치며 떼 지어 날아갔다.
“오빠!”
진순이 야밤에 선글라스를 끼고 대문을 들어서는 무쌍을 맞았다.
“아직 자지 않았구마.”
살짝 쉰 목소리가 새나왔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순이 머리를 당겨서 가슴에 안았다. 이심전심, 절절한 아픔이 진순의 가슴에 쿡 박혔다.
“오빠, 많이 아파?”
“내는 개안타. 미나는?”
동병상련의 정이다. 자신은 어머니를 찾을 희망이라도 있지만 어린 녀석은 영원히 어머니를 찾지 못한다.
“아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청에서 미나가 튀어나왔다. 손에 꼬질꼬질한 곰 인형이 들려 있다. 무호 형에게 맡기고 떠나던 날 사주었던 곰 인형이다.
“어이쿠, 우리 미나가 아직도 잠들지 않았구나.”
무쌍이 미나를 번쩍 들어서 안고 볼을 비볐다.
“앗 따거. 아빠가 사준 곰 인형을 안고 자면 금방 잠이 들어. 근데 아빠 울었어.”
‘예리한 녀석 같으니라고’
무쌍은 속으로 혀를 찼다.
“으잉, 아빠가 운다꼬? 턱도 없는 소리지.”
“그러엄, 울 아빠가 울면 방동 치마바위도 울 거야. 헤헤헤!”
“미나야, 아빠께 인사드리고 얼른 자야지.”
진순이 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어요. 아빠, 잘자!”
진순의 말에 미나가 뽀뽀하고 안채로 올라갔다.
“다 컸구마.”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아니까.”
정서적으로 안정된 미나는 무쌍과 함께 자려고 떼를 쓰지 않았다. 빠빠라는 명칭도 아빠로 바뀌고, 집안일도 곧잘 도왔다. 미나는 온전한 딸이 되었다.
“어엉, 그렇구나.”
무쌍이 잠긴 음성을 남기고 사랑방으로 향했다. 진순은 가슴이 아렸다. 천하무쌍의 강인한 등이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버석하니 메말라 보였다. 진순은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사나이는 지켜야 할 사나이의 고독이 있다.
텅- 서재 문이 닫혔다. 진순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오빠를 상심케 할 요소는 딱 두 가지다, 실종된 고모와 혜영이다. 분하지만 두 가지 모두 자신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녀의 가슴에도 큼직한 돌이 얹혔다.
이튿날 아침, 응심제가 소란해졌다. 건자재 트럭과 중장비가 도착하고, 십장이 일꾼들을 다루는 호통이 요란했다. 사부가 지팡이로 표시해 둔 장소에 연못을 파고 연못 중앙에 섬을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건축 당시에 연못을 염두에 두고 계곡을 집안으로 끌어들였었다. 그동안 착공을 미룬 이유는 계곡 물의 수량이 충분치 못하고 들쭉날쭉했기 때문이었다.
연못은 입수와 출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녹조가 생기고, 수생 곤충의 천국이 된다. 여름이면 모기와 하루살이 소굴이 된다.
고민은 사부가 해결했다. 사부가 표시해둔 장소에 파일을 박자마자 엄청난 지하수가 용출했다. 수질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겠소?”
“하이고, 택도 없심더. 꼬박 3주일은 걸리겠심더.”
설계도를 들여다보던 소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백 평밖에 안 되는데요.”
“이백 평이나 지요. 연못이야 크레인으로 파면되지만, 연못 안벽을 돌로 쌓고, 입수구와 퇴수구 레벨을 맞추고, 잔디를 새로 깔고, 정원수도 새로 식재해야 된다 아임니꺼. 연못 중앙의 섬을 돌로 두르고 정자까지 세울라 카마 3주일도 빠듯합니데이. 근데 이거 돈이 억수로 들낀데요.”
“돈 걱정은 말고 공사나 제대로 하시오. 하자 없이 제대로 만들면 보너스를 주고, 하자가 발생하면 소장님은 피곤해질 거요.”
젊은 집주인을 새피하이 보던 소장이 움찔했다.
“알았시다. 내가 사십 년 공사판을 돌았지만 이러키 큰 집은 처음입니더. 작품을 맹글어 볼텡게 너무 깝치지는 마시소.”
“알았소. 연못에는 연꽃을 심고, 연못 외곽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으시오.”
“하이고, 묘연거를 만들라 카요?”
“그럴지도……. 후후후!”
무쌍이 흐릿하니 웃었다. 연못 공사를 바삐 시작한 이유는 어머니가 얼른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복숭아 꽃잎 날리는 연못 정자에서 연 밥 찌는 어머니를 보고 싶었다.
작업 삼 일째, 십장이 정원석을 목도하다 엎어진 깡마른 인부를 잡아먹을 듯이 야단쳤다. 첫날부터 유난히 지청구를 자주 먹던 인부다. 중량물을 목도로 옮길 때 두 사람의 리듬이 맞지 않으면 힘이 두 배로 들고 안전사고 위험도 있다. 야단을 맞은 인부는 유난히 서툴렀다.
보고 있던 무쌍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인데 인물이 특정되지 않았다. 잔뜩 야단맞은 인부가 담배를 빼 물고 연기를 하늘로 푹푹 뿜었다. 본인도 어지간히 속이 상한 모양이다.
‘그렇군!’
담배를 쥔 오른손 검지 두 마디와 엄지 한 마디가 없다. 목봉을 잡고 힘을 줘야 할 손가락이 부실하다 보니 목봉이 자꾸 미끄러졌던 것이다. 담배를 쥔 불편한 오른손, 저 손을 어디선가 보았다.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아, 김 사장!”
생각났다. 상한이 아버지의 친구, 김기택 기성섬유 사장이다. 대구 구치소에서 출소했을 때 당장 채용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다. 입사 선금을 준다는 핑계로 용돈을 준 속 깊은 사람이기도 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이지만 넉넉한 살집에 인간미가 넘치던 사람이었다. 살이 쪽 빠진 얼굴과 대꼬챙이처럼 마른 몸 때문에 쉽게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날 저녁, 무쌍이 뒷정리하는 김 사장을 불렀다.
“김기택 사장님”
“허억!”
김기택이 불에 덴 듯 펄쩍 뛰었다. 가슴이 쿵 떨어졌다. 사냥개들이 기어코 따라붙었다. 정신이 아득해진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격렬한 반응에 불렀던 무쌍도 놀랐다.
“와 그래 놀랩니까.”
그제야 김기택은 의아한 눈으로 무쌍을 올려보았다. 쭉 빠진 체격에 귀티가 줄줄 흐르는 잘 생긴 청년이다. 딸내미들 말로 킹카다. 기억에 없는 사람이다.
“저어, 누구십니까?”
“모르겠습니까? 관호리에 사는 상한이 친구입니다.”
“관호리?”
김 사장은 기억을 더듬었다. 관호리에서 양계장 하는 친구의 아들이 상한이다. 기억을 더듬던 김기택의 눈이 커졌다.
“아! 관호리 이사장 집에서 만났던~”
상한이와 함께 있던 키가 훌쩍한 젊은이가 기억났다.
“기억력 좋으시네요. 그때 갑자기 일이 생겨서 회사로 찾아뵙지 못했심더.”
일은 개뿔, 사건에 연루된 양아치들을 찾아서 박살 내느라 잊어버렸다. 김 사장의 눈이 연신 무쌍을 더듬었다.
“자네 입성이 일하러 온 거 같지는 않구마. 내가 이 꼴이 되가꼬 자네 보기가 여엉 상그랍구마.”
김기택이 쭈뼛거렸다. 잘나가던 사업을 말아먹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자신의 신세가 새삼 서러웠다.
안채에서 미나가 나왔다.
“아빠, 저녁 드세요.”
“오이야, 손님이 한 분 계시다고 큰언니에게 전해라.”
“네, 말씀드릴게요.”
미나가 팔랑팔랑 안채로 뛰어갔다.
‘흐흐흐, 예쁘다 예뻐!’
뒷모습을 바라보는 무쌍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떠올랐다. 미나는 가족끼리 있을 때는 반말을 하지만, 남이 있으면 칼처럼 존댓말을 쓴다. 무쌍은 딸바보가 되었다.
“하하, 저하고 저녁이나 먹읍시다.”
“자 자네!”
김 사장이 펄쩍 뛰었다.
“예, 제가 집주인입니다.”
“시상에, 우째 이런 일이…….”
김기택은 망연한 눈으로 무쌍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