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57
x 557
제50장 해묵은 인연20
“참치파 이수복 맞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수복은 눈에 힘을 주었다. 먹물 같은 어둠 속에 사람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대답이 한 박자 늦어졌다.
퍽- 뾰족한 구두코가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인정사정없는 발길질이다.
“으억!”
이수복의 상체가 새우처럼 말렸다. 내장이 찢어지는 충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로새꺄, 어른이 물으면 싸게싸게 대답하더라고.”
넙치가 며칠 굶은 맹수처럼 으르릉거렸다.
“예 예, 지가 이수복임더.”
“몇 살이냐?”
“사십 둘입니더.”
“거짓말이군.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
이수복은 불길한 기분이 와락 들었다. 밥이라도 제대로 먹으려면 왼손은 지켜야 한다.
“오른손잡이~”
“또 거짓말이군! 버릇을 고쳐주지.”
이수복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손등 쪽으로 확 젖혀졌다.
“이익!”
놀란 이수복이 왼손으로 젖혀지는 새끼손가락을 잡아 눌렀다. 안간힘을 썼지만, 무정한 손가락은 서서히 손등에 가까워졌다. 자신의 손가락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니! 이수복은 겁나게 무서웠던 오멘의 한 장면이 퍼뜩 스쳐 갔다. 어린아이의 목이 등 뒤로 홱 돌아가는 장면이다.
‘내가 귀신들린 거야?’
이수복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감염 내과 의사가 보았다면 급성 파상풍 환자의 종말 발작 증세로 판정내렸을 모습이다.
‘점마가 또 무슨 사기를 칠라꼬 지랄 발광을 치노?’
돌빡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동그란 랜턴 불빛 속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잡고 부들거리는 모습이 딱 미친놈이다. 따악- 삭정이(마른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임계 각도를 넘어선 손가락이 기어코 부러졌다.
“끄아악~ 헙!”
이수복이 목청껏 내지르던 비명이 입안으로 말려들어 갔다. 손가락을 밀어젖힌 미지의 힘이 입을 틀어막았다. 벌떡 일어나던 이수복이 정수리를 타공 망치로 얻어맞은 듯 폭삭 주저앉았다.
‘귀신이다!’
자신의 의지를 배반하고 부러진 손가락,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입을 틀어막은 무지막지한 힘, 이수복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해 해임요. 귀 귀신~”
랜턴 불빛이 요동쳤다. 돌빡의 손이 덜덜 떨렸다.
“새꺄, 뒈지고 싶어? 똑바로 못 해!”
넙치가 돌빡의 귀에 입을 바싹대고 으르릉거렸다. 어둠 속에서 감정이 한 톨도 담기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수복, 거짓말한 대가다. 네놈은 왼손잡이지?”
“네 네, 왼손잡이입니다.”
“잔대가리 굴리지 마라. 나이는?”
“서른 다섯입니더.”
공포에 질린 이수복은 본래의 나이를 말했다.
“화! 저 새끼, 접시 아니랄까 봐 지 나이도 사기 쳤구먼.”
넙치가 혀를 끌끌 찼다.
“점마 저거 세숫대야가 팍 삭아가꼬 지도 사십 둘로 알고 있었심더. 갓파다께서는 우예 아셨지예?”
“새꺄 조용해. 큰형님은 모르시는 게 없어.”
돌빡이 입을 딱 닫았다.
“이번엔 손가락 한 개만 상납받았지만, 다음엔 덤으로 이빨을 상납받겠다. 언제부터 접시질했나?”
“스물두 살에 참치 해임 밑에 들어갔심더.”
“그것참, 경력이 만만치 않네. 기성섬유는 왜 건드렸나?”
‘조또, 하필 기성이었어!’
이수복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손가락 한 개쯤 잃어도 된다. 기성섬유 건은 무덤 속까지 가져가야 한다. 발설했다간 손가락이 아니라 목이 날아간다.
“먹고살라꼬 일자리 찾아 들어갔심더. 파업은 노동조건을 개선할라꼬~”
따악- 왼손 약지가 예고도 없이 부러졌다. 불빛에 비친 왼손은 처참했다. 허연 뼈가 손바닥을 뚫고 나오고, 힘줄과 근육이 찢어진 피부 밖으로 허옇게 드러났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딱- 하고 생이빨 한 개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끄으윽!”
생이빨이 뽑히는 고통도 만만치 않다. 이수복이 피가 줄줄 흐르는 손으로 입을 감쌌다. 그 바람에 얼굴이 온통 피 칠갑이 되었다. 처참한 모습에 김기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평범하게 살아온 그가 언제 이처럼 끔찍한 장면을 보았겠는가.
“경고를 무시했군. 밤도 길고, 손가락도 많고, 이빨도 많아. 뽑을 물건은 발가락도 있고, 갈비도 있고, 거시기도 있지.”
‘악몽이다!’
감정 없는 나른한 목소리에 넙치와 돌빡이 진저리쳤다. 돌출된 물건은 전부 뽑고 부족하면 좆까지 뽑겠다는 소리다. 손가락을 도끼로 자르거나 이빨을 집게로 뽑은 적은 있지만, 악몽의 잔인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제발 다시 물어줘. 제발 제발!’
입이 틀어막힌 이수복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푸들푸들 떨었다. 두 번째 당한 통증은 처음보다 열 배는 강도가 셌다. 아니, 공포가 열 배로 커졌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사채 조직의 위협과 무서움은 깨끗이 휘발되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악귀다. 멀리 있는 왜도보다 가까이 있는 악귀가 열 배는 무서웠다. 얼른 대답하고 고통과 공포를 벗어나고 싶었다.
“대답할 기회를 한 번 더 줄까?”
“네 넵, 감사합니다.”
하늘의 복음이다. 이수복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성섬유를 타켓 삼은 이유는?”
“향심은 오래전부터 기성섬유에서 뽑아내는 고리땡(Corduroy, 골덴)원단에 눈독 들였심더. 공장을 건설하고 기계를 수입하는 것보다 기존 공장을 먹는 게 비용과 시간 면에서 훨씬 낫심더.”
“작전에 한 다리 걸친 놈들을 몽땅 불어.”
“향심섬유 장기수 전무가 착수금 오백을 주었심더. 계획은 지가 짜고, 인력은 참치 해임이 동원했심더. 동원된 놈들은 사채놀이하는 풍국파 똘마니들입니다. 풍국파 책임자는 강철민입니더. 장기수 전무가 경찰과 노동청 쪽에 정지 작업을 해준 덕분에 어렵지 않았심더.”
이수복은 혼이 날아갔다. 그는 사기꾼인 만큼 머리 회전이 빠르다. 상대는 거짓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한 번 더 거짓말을 했다간 목이 뽑힌다.
“저런, 죽일 놈의 새끼!”
김기택이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성공 보수금을 받았겠지?”
“선금으로 받은 오백만 원은 활동비와 경비로 썼심더. 참치 해임은 천만 원, 저는 칠백만 원을 받았심더.”
“풍국파는?”
“기성 사장에게 챙길 만큼 챙겼지예.”
“넙치, 들었나?”
“옙, 참치파의 불법 영업자금은 회수하겠심더. 그런데 향심은…….”
넙치가 말끝을 흐렸다. 삼식파는 향심과 손잡은 상태다. 자신의 선에서 대답할 수준이 아니다.
“그쪽은 내가 알아서 한다.”
“죄송합니다. 풍국파도 저희가 손을 대기엔 힘이 달립니다.”
“그것도 내가 알아서 하지. 너는 사기꾼 조직이나 탈탈 털어라.”
“넵, 알겠습니다.”
무쌍이 편지지 한 권과 볼펜을 이수복에게 던졌다.
“지금부터 기성섬유 사건을 육하원칙에 따라서 상세히 적어라. 거짓이 섞이거나 내용이 부실하면 말 않아도 알겠지? 이승에 남든지 저승으로 가든지 니놈이 알아서 해라. 두 시간 준다.”
무쌍은 미련없이 일어섰다. 찌질한 사기꾼과 니나도리하기엔 시간도 아깝고 모양새가 빠졌다.
“넙치, 저놈의 진술이 끝나면 보고하라.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쌍이 넙치의 옆구리에 시선을 던졌다.
“잘 하겠습니다아!”
넙치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믿어보지.”
무쌍이 후원을 빠져나갔다. 김기택이 허겁지겁 뒤따라갔다.
“돌빡, 일단 저 새끼 주디부터 막아. 씨발놈 땜에 내 갈비뼈가 뽑히게 생겼어.”
등 뒤에서 잔뜩 열 받은 넙치가 으르릉거렸다.
“이보게, 저놈은 보통 악질이 아닐세. 사기꾼이 지 무덤을 지가 팔까?”
“걱정 마시소. 조직은 조직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수복은 십 년 전에 먹었던 밥알 숫자까지 기억하게 될 겁니다. 제대로 기억 못 하면 남은 인생을 땅바닥을 기어다니거나 눈에 흙이 들어가겠지요.”
무쌍이 무덤덤하니 대답했다. 그는 철저히 이중적이다. 선량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하지만, 악당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죽음의 천사다.
“휴우, 나 같은 사람은 뭐가 뭔지 모르겠네.”
김기택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는 평범한 사업가다. 원한이 골수에 쌓였지만, 막상 이수복이 끔찍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니 살이 떨렸다. 피바람이 몰아칠 것 같은 예감이 가슴이 떨렸다.
“아저씨처럼 선량한 사람은 알아서 좋을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고 야비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되면 환멸을 느낄 테니까요.”
무쌍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서재로 돌아온 무쌍이 지갑을 꺼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돈을 꺼냈다.
“8년 전에 선금까지 받아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요. 늦었지만 선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머라꼬! 이건 아이다. 선금은 핑계고 용돈으로 준 기라.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와 이카노. 내는 이 돈 못 받는다.”
김기택이 손사래를 쳤다.
“목마른 사람에겐 황금보다 시원한 물 한 바가지가 소중하지요. 사막을 몇 달 헤매고 다니면 물과 식량 외에는 전부 쓰레기로 보입니다. 아저씨는 목마른 놈에게 물 한 바가지를 주셨습니다. 밀린 여관비도 정리해야 하고 가족들 옷이라도 제대로 입혀야지요.”
김기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받아선 안 된다면서 밀린 여관비와 딸내미 등록금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랴. 내가 염치가 없구마.”
돈을 받아든 김기택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쌍은 흐뭇했다. 궁지에 몰렸을 때 염치를 잃지 않는 사람은 믿을 수 있다. 진국이라던 상한이 아버지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
“큰형님, 끝났습니다.”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넙치가 열장 남짓한 보고서를 올렸다. 무쌍이 보고서를 주르륵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좋은 사기꾼답게 계획단계부터 진행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진술했다.
“어? 이 새끼는?”
무쌍이 살짝 놀랐다. 뒷배를 봐준 공무원, 경찰, 검찰 명단 속에 낯익은 이름이 들어있었다. 부장 검사 김달수! 장치수가 꿰어맞춘 수사 기록과 위증을 바탕으로 5년 징역형을 구형한 7호 검사가 바로 김달수다.
‘어린 놈 새끼가 감히 누구에게 대들어. 콩밥 몇 년 묵고 푹 썩으마 세상사는 방법이 눈에 보일 끼다.’ 실형 선고가 떨어지던 날, 호송차에서 놈이 던졌던 말과 야비한 미소가 눈에 선했다. 이놈도 장씨 가문의 인척이다.
‘흐흐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번엔 내가 김달수 네놈에게 세상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무쌍이 킬킬 웃었다. 김 사장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일이 졸지에 자기 일이 되어버렸다.
“큰형님, 접시는 어떻게 할까요?”
묻는 걸 보니 죽이지는 않았다. 죽였으면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다.
“알아서 처리해. 가담한 놈들도 알아서 처리하도록.”
귀찮은 듯이 툭 던지는 말에 넙치는 암담해졌다. 아랫사람 입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말처럼 부담스러운 말이 없다.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제대로 못 하면 알아서 하라는 협박으로 들렸다.
‘몽땅 공구리 쳐서 멸치잡이 배에 싣고 나갈까? 힘줄 잘라서 증도 염전에 팔아버릴까?’
넙치의 고민이 깊어졌다. 무쌍이 생각 없이 뱉은 한 마디로 인해 사기꾼 한 놈과 양아치 20명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
“아저씨, 갑시다.”
무쌍이 시트로앵에 올랐다. 밤이 길면 탈도 많은 법이다.
“고맙네. 어서 가세.”
김기택은 불감청고소원이다. 눈치만 보고 있다가 허둥지둥 조수석에 올랐다. 야밤에 응심제를 빠져나간 시트로앵이 두류공원을 지나 성서공단 방향으로 달렸다.
김기택은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만큼 마음이 바빠졌다. 행여나 놈들이 여인숙을 찾아내면 큰일이다. 시트로앵이 감삼국민학교 네거리에서 경화여고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허름한 3층 건물 앞에 멈추었다. 이름도 없이 여인숙이라 쓰인 손바닥만 한 간판만 달린 건물이다.
“내가 데리고 나오겠네.”
“그렇게 하시지요.”
내리려던 무쌍이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건물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바깥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김기택이 덜컹거리는 현관문을 밀치고 뛰어들어갔다.
“어디나 양아치 새끼가 있구마.”
사건이 벌어진 위치는 창문이 열려있는 3층 맨 오른쪽 방이다. 사내놈의 위협적인 언사. 여자가 저항하는 소음이 고스란히 들렸다. 보나 마나 보안이 허술한 싸구려 여인숙에 기거하는 여자를 노리고 침입한 양아치다.
“백 원짜리는 아깝지.”
무쌍이 주머니를 뒤져서 십 원짜리를 찾았다. 아까운 백 원은 다시 주머니로 들어갔다. 지이잉- 공진파를 받은 구리 동전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쉬잉- 손을 떠난 동전이 창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3층 복도 끝의 공동 샤워장, 건장한 남자가 여자를 제압하고 벽치기 자세에 돌입했다. 막 엉덩이를 밀어 넣으려는 순간, 창문을 통과한 동그란 물체가 뺨에 철썩 달라붙었다.
“끄악!”
남자가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치이익- 볼 중앙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염력의 조정을 받는 구리 동전이 볼을 파고들었다. 졸지에 횡액을 당한 남자가 동전을 떼려고 몸부림쳤다. 대가리를 끄덕이는 물건과 이해못할 상황에 여자의 눈이 잔뜩 커졌다.
-남자 물건 첨봐? 계속 구경만 할거야?
난데없이 들린 목소리에 놀란 여자가 옷을 대충 걸치고 잽싸게 샤워장을 빠져나갔다.
“양아치가 10원짜리면 닥상이지. 룰룰~”
무쌍이 콧노래를 부르며 코히바지골로를 물었다. 양아치 녀석은 볼에 10을 새긴 채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낙인을 지우려면 볼살을 진피까지 뜯어내야 한다.
이때부터 노바토피아는 한국에서 10원짜리 동전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종신 노역자의 왼쪽 볼에 10, 오른쪽 볼에 다보탑이 어김없이 낙인찍혔다. 노바토피아는 물렁한 한국이 아니다.